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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마르크스에 정면 대응한 한국의 자생철학 ‘주체사상과 인간중심 철학’

  • 글: 권용혁 울산대 교수·철학 yhkwon@mail.ulsan.ac.kr

마르크스에 정면 대응한 한국의 자생철학 ‘주체사상과 인간중심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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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서 그 광범위한 체계가 갖는 의의를 들 수 있다. 인간중심 철학에서는 세계관, 사회역사관, 인생관 등이 하나의 체계 안에서 일관성 있게 정리되어 독특한 총체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는 현대의 철학적 상황에 비추어볼 때 매우 독특한 보편주의, 포괄주의를 지향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가 성공적인지 여부는 학계의 주목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서평을 서평답게 하려면 서평자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밝혀야 할 것 같다. 인간중심 철학을 강의하면서 느낀 나름대로의 소감은 이 철학이 우리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해서였다.

다른 서구 현대철학과 비교할 경우 어느 정도 그 적실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주체사상은 태생부터 남북한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데올로기적인 논쟁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철학적 의미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철학에 담겨 있는 세계관과 우주론은 자연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학제적인 토론을 통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논의의 초점을 사회철학적인 면으로 국한시킨다면 보충돼야 할 부분들이 꽤 있어보인다. 가장 비판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은 인간중심 철학에는 유감스럽게도 시민사회론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이 책의 3부에서 지적되고 있듯이 인간중심 철학의 민주주의론은 비판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인간중심 철학을 포함한 북한 사상 전반에 근대 이후 사상계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시민사회론이 없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의 역사적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황장엽 자신도 이 부분이 보충돼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문제를 좀더 명확히 하자면 남한 전체를 포함해서 시민사회가 어느 정도 발달해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 이론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부분은 전체 체계 안에서 일관성 있게,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재구성돼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중심 철학이 구체적인 토론의 장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지 않고 있는 이면에는 이런 문제가 놓여 있기에 더욱 그렇다.

민족·국가에 밀린 개인

어쨌든 이 문제는 황장엽 개인에게만 비판을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가 속한 사회에서 그러한 인식의 지평을 펼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평이 없는데 상상만 동원한다는 것은 공허한 작업이 될 것이다. 20~30년 전 우리 사회도 시민사회와 다양한 시민문화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소적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다.

또한 인간중심 철학이 민족과 국가라는 개념을 과도하게 단일화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인간중심 철학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의 비판적 거리두기에 사용된 가장 중요한 논거가 북한의 주체적 상황이며 민족이며 국가였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는 국민국가와 남북한 통일에 대한 관점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나는데, 민족통일의 우선성 앞에서는 통일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르는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주장들이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은 채 단순화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국가와 민족의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기 전에 이들이 다양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다원적인 그물망의 고리들이라는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인간중심 철학은 민족 공동체의 구상에 만족하지 않고 인류 공동체로의 도약을 강조하고 있다. 생명의 평등성과 인권이론에 기초한 민주주의 원칙 아래에서 민족 통일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평등성과 인권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있게 만드는 것임을 상기한다면, 현실적으로는 다양한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 및 선호도 등에 대한 보다 자세한 분석을 바탕으로 현실과의 비판적 대화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인간중심 철학은 사회과학과의 부단한 학제적 대화를 통해서 그 원칙과 현실사이의 간격을 메워가야 한다. 이 또한 이 땅에서 학문하는 사람들의 몫이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의 출판으로 인간중심 철학이 학계에서 진지하게 토론되고 평가되기를 기대한다.

신동아 200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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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용혁 울산대 교수·철학 yhkwon@mail.ul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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