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박기영 전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 단독 인터뷰

“연구실 밖 ‘섞어심기’ 없었다면 줄기세포는 만들었다”

  • 김승훈 동아닷컴 기획취재팀 기자 huni@donga.com

    입력2006-11-13 18: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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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성일·황우석·문신용·안규리는 ‘아름다운 팀’
    • 북한 복제기술 수준 높아 남북 협력으로 세계적 연구 하려 했다
    • 배반포 만든 기술은 독보적…황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 계속해야
    • ‘황금박쥐’는 함께 음악회도 가고 피자도 먹는 친목모임일 뿐
    • 국민의 당혹감 생각하면 내 억울함은 가슴에 새겨야
    박기영 전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 단독 인터뷰
    박기영(朴基榮·47) 전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순천대 생물학과 교수)을 만나기 위해 전남 순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누렇게 익은 곡식으로 호남의 들판은 황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1년 전 초등학생용 ‘황우석 전기’를 출간하기 위해 박기영 당시 보좌관을 만났을 때와는 딴판으로 지금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는 전 국민을 절망에 빠뜨린 ‘황우석 사태’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번번이 거절했다. “황 교수와 관련한 일은 아직 개인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며 “좀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무작정 내려가겠다며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하자 그는 마지못해 그러라고 했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할말이 있는 듯했다.

    짧은 대답, 긴 한숨

    검찰과 황우석 박사의 법정공방은 이제 1년을 넘기고 있다. 기차 안에서 그간 진행된 사건일지를 거듭 훑어봤지만 난마처럼 얽힌 사건을 다시 정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유전공학 박사들이나 알 법한 전문용어를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도 한동안 검찰, 언론, 국민은 마치 생물 공부를 다시 하려는 듯 황우석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려 열심히 노력했다. 그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와 열망이 컸다.

    밤늦게 순천에 도착해 순천대 근처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박 전 보좌관과는 9월25일 오후 1시,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기로 돼 있었다. 이튿날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일찍 여관을 나섰다. 가을 날씨치고는 너무 더웠다. 그의 연구실은 자연과학대학 1호관 2층. 지난해 청와대에서 그를 만났을 때와는 달리 수수한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은 외모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며 살짝 웃었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전공 공부에 몰두하면서 예전에 쓴 논문도 다시 읽어보고 있어요. 글도 좀 쓰고….”

    그는 지난 1월27일 순천대 자연과학대 교수로 돌아가 3월부터 강의하고 있다. 2004년 1월30일 대통령비서실 최초의 여성보좌관에 임명돼 화제를 모았던 그는 꼭 2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순천은 그가 태어난 곳이고, 순천대는 청와대에 가기 전 몸담았던 직장이다.

    ▼ 다시 강단에 선 감회가 남달랐을 듯한데요.

    “학생들이 열심히 강의 듣는 걸 보니까 새삼 ‘가르치는 건 참 보람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답변은 짧았다. 긴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인터뷰 내내 박 전 보좌관은 몇 번씩 말을 멈추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황우석 박사를 지칭할 때 꼬박꼬박 ‘황우석 교수님’이라고 했다. 황 박사에 대한 믿음이 여전히 두터워 보였다.

    ▼ 황우석 박사는 어떤 인연으로 만났습니까.

    “2001년 국회에서 ‘생명윤리법’에 관한 토론이 있었어요. 그때 처음 만났죠. 그때 저는 경실련 과학기술위원장으로 참석해 ‘생명윤리법’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배아복제 연구를 영국처럼 허용하되 정부의 철저한 관리를 받으면서 투명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죠. 그날 황 교수님은 내게 연구를 같이 하자고 했고, 생명윤리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황 교수님 연구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인문·자연과학 연결고리 되려 했다”

    ▼ 박 교수께선 황 박사 연구팀에서 어떤 일을 맡았습니까.

    “생명공학에 대한 연구 결과를 시민사회와 공유하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눴어요. 시민사회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 어떤 우려를 표명하는지 과학계에 알려주고, 과학자는 시민의 요구를 어떻게 충족하면서 연구해야 하는지 자문에 응했죠. 실험실에서, 그리고 생명공학을 연구하면서 지켜야 할 원칙에 대해서도 조언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지만….”

    ▼ 박 교수의 전공과 관련이 없는데도 황 박사의 요청만으로 연구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게 잘 납득되지 않습니다.

    “자연과학은 자연과학만의 발전으로는 안 된다, 인문사회과학과 조율해야 한다는 걸 늘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연결고리 노릇을 하고 싶었어요. 당시 생명공학계의 상징이던 황 교수님의 연구를 ‘모델’로 양쪽의 매개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 박 교수의 의견이 황 박사에게 제대로 전달됐다고 봅니까.

    “시민사회가 어떤 요구를 하고, 황 교수님의 연구를 시민사회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전달했다고 봐요. 저는 황 교수님이 생명윤리 부분에 있어 규율을 철저하게 따르면서 연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자문에만 응했나요.

    “광우병 내성(耐性)소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황 교수 연구팀과 정기적으로 만났어요. 2004년 1월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생명윤리의 세계적 흐름 등에 대해 조사해줬습니다.”

    ▼ 그러나 상황은 박 교수의 조언과는 정반대로 진행됐습니다. 우선 배아줄기세포 오염 얘기부터 해보죠. 박 교수께서 청와대보좌관 시절인 2005년 1월, 황 박사로부터 배아줄기세포 6개가 곰팡이에 오염됐다는 사실을 보고받았지요?

    “황 교수님께서 구두로 ‘줄기세포가 오염됐다’는 사실만 제게 알려줬어요. 보고의 형식은 아니었고, 저와의 친분 때문에 알려주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 줄기세포가 오염됐다는 사실은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야 하지 않습니까.

    “실험실에서 오염 사고는 간간이 일어납니다. 줄기세포를 다시 만드는 게 힘들기는 하겠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황 교수님께 ‘살릴 수 있는 한 살려보십시오’라고 말씀드렸어요.”

    ▼ 황 박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다.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해보겠다’고 하셨어요.”

    ▼ 그 말을 믿었습니까.

    “황 교수님께 ‘저의 실험 경험으로 봐서 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 MBC ‘PD수첩’의 취재과정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될 때 박 교수께선 노무현 대통령에게 “취재태도가 위압적이고 취재과정에 협박까지 있었다”고 보고했는데요.

    “당시 황 교수님을 둘러싼 내용 전반을 대통령께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김선종 연구원이 병원에 입원했던 건 사실이기 때문에 그 원인이 취재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어서인 것 같다고 말씀드렸죠.”

    청와대 고위층이 사태 봉합?

    ▼ ‘PD수첩’의 보도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글쎄…. 참 말하기 어렵네요. 전반적인 평가는 시간이 지나야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황 교수님이 법적인 판단을 받고 있는 중이잖아요. 이런 게 다 끝난 뒤라야 저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이것이 옳다, 그르다는 판단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박기영 전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 단독 인터뷰

    박기영 전 보좌관과 황우석 박사는 한 때 ‘환상의 팀’으로 불릴 만큼 가까웠다.

    ▼ 지난해 1월 배아줄기세포가 오염됐고 이를 복구하는 데 실패했음에도 황 교수는 2개월 뒤 ‘사이언스’지에 논문 게재를 신청했고, 5월에는 논문이 게재됐습니다. 논문의 진위에 대해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을 텐데요.

    “그저 ‘짧은 기간에 다시 만들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다시 만든 줄기세포를 최종 확인하기까지 3∼4개월 걸리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는 대개 2개월을 잡거든요. 황 교수님도 4월에 ‘논문의 내용은 이런 거다’라고 했고요.”

    ▼ 대통령보좌관으로서 줄기세포가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점검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 임무는 과학기술정책 전반을 챙기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었죠. 황 교수님의 연구를 챙기는 것이 아니었어요. 실험과정을 챙기는 게 대통령보좌관의 일은 아니잖아요.”

    ▼ 김병준 전 청와대정책실장이 지난해 11월28일 ‘PD수첩’과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공동 검증 과정에서 황 교수측 법률자문을 맡은 김형태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그때 김 변호사가 김 전 실장에게 “황 교수 논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지만, 김 전 실장은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김 변호사는 “청와대 고위층에서 사태를 봉합하려 한 것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PD수첩’이 김선종 연구원을 인터뷰하러 갈 무렵 그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거예요. 섀튼 교수가 문제를 제기하고 결별 선언을 한 후에는 좀더 다양한 정보들이 입수됐습니다. 연구원 난자 제공 문제는 초창기인 2004년부터 제기됐다는 것, 줄기세포가 없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MBC에서 취재한다는 것, 논문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는 것 등이었죠.”

    ▼ 김 변호사의 말대로 ‘재연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사태를 봉합하려 했던 건 아닌가요.

    “황 교수님 연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정보의 진위를 정확하게 판단하기가 어려웠어요. 지금도 법원에서 조사하고 있는 중이잖습니까.”

    ▼ 지난 1월 보좌관에서 물러날 때의 심정은 어땠습니까.

    “국가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고 국민이 굉장히 큰 혼란을 겪은 데 대해 도의적, 정무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 사표를 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황 교수님의 연구에 애정이 많았어요. 2001년부터 가까이서 지켜봤으니까요.”

    ▼ 한나라당 황우석조사특위 김석준 위원장은 지난 1월 “황 교수가 일부 의원에게 거액을 후원하겠다고 제안했다”며 “야당 의원들 가운데도 그런 예가 몇몇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정치자금법상 개인 지원한도액인 연 2000만원을 넘겨 정치자금을 지원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황 교수님과 정치권에 관련된 이야기는 많이 나누지 않았어요. 황 교수님과 친분이 있는 정치인이 많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 황 박사의 후원금 전용은 어떻게 봅니까. 2004년에는 부인에게 승용차를 사줬고, 2005년 5월에는 통장에서 2억9000여만원을 찾아 자신에게 우호적인 연구원들에게 나눠줬다고 하는데요.

    “그것은 제가 언급할 부분이 아닌 것 같아요. 지금 법적인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 당시 정치권에서는 “박기영 보좌관이 청와대 정책실장과 과기부 장관까지 따돌리면서 몇몇 연구자를 중심으로 청와대의 사조직 비슷하게 운영해 국정 문란의 중심에 있었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사조직을 만든 적이 없어요. 보고할 게 있으면 공식 루트를 통해 보고했어요. 청와대는 ‘이지원’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보고하기 때문에 누구를 따돌리고 사조직을 운영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꽃이 필 때까지 기다려야”

    ▼ 박 교수께서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즉 대학교수 시절에 황 박사로부터 2개의 위탁과제 연구비 명목으로 2억5000만원을 지원받고도 연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연구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형질전환을 통한 광우병 내성소 개발 및 사회적 영향 평가’와 ‘형질전환 복제기술을 이용한 바이오 장기 생산 및 이식기술 개발’이라는 두 개의 위탁과제를 받았는데, 정확히 말하면 하나는 위탁과제이고 다른 하나는 세부과제였어요. 그런데 그 일을 하다가 2004년에 청와대로 들어갔어요. 그래서 마지막 부분을 우리 연구팀에게 완성해달라고 했습니다. ‘광우병 내성소’ 관련 보고서는 다 작성했어요. 보고서를 보내는 과정에서 누락됐나봐요. e메일로는 보내놓고 제본을 하지 않았어요.

    바이오 장기 관련 세부과제는 특정연구개발사업 규정상 풀(전문) 보고서를 쓰지 않게 돼 있었어요. 그래서 요약 보고서를 썼죠. 그것도 보고서는 다 만들어놓고 제본을 안 했을 뿐입니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바이오 장기 연구팀에서 만든 연구윤리 매뉴얼은 외국 대학에서 채택됐다고 하더군요. 지난 6~7월경 외국 대학에서 활용하게 됐다고 합니다.”

    ▼ 청와대에 들어간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까.

    “저는 과학기술운동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과학기술의 연구 개발은 국민의 세금을 쓰는 공적 영역입니다. 이를 잘 활용해 국가의 생산성을 높여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과학기술 성과물을 제대로 관리하고 생산성 확대를 위해 노력한다면 결국 분배도 건강하게 이뤄질 수 있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지금이 과학기술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할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했죠. 1980년대부터 공부하고 연구해온 정책, 소신을 국가 발전에 활용할 수 있겠다 싶어 정부에 들어갔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은 언제 만났습니까.

    “노 대통령께서 후보였을 때 캠프에서 과학기술정책 자문에 응했어요. 아까 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캠프에 들어갔습니다. 인수위 시절에는 정책을 만들었고, 보좌관이 돼서는 그걸 기반으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정책을 기획했어요.”

    ▼ 청와대에 있는 동안 어떤 정책을 만들었습니까.

    “국가기술혁신체계와 관련한 기획안을 만들었어요. 과기부를 비롯해 각 부처, 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가 그룹이 많이 도와줬어요. 제가 과학기술운동을 했기 때문에 전부터 같이 연구하던 전문가가 많이 참여했습니다. 산학연과 함께 인재를 육성하는 ‘창조적 인재강국’ 프로젝트,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해 중소기업의 기술을 혁신할 방법을 기획한 ‘기초연구진흥계획’ 등을 만들었어요. 의미도 있고 보람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열매를 맺고 있다고 봅니까.

    “과학기술정책을 현장에 적용하는 데는 시간이 걸려요. 과학자가 개발한 연구가 경제적 가치로 전환될 시점에는 기업이 참여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과정을 마련해야 하죠. 그런 게 다 시스템으로 연결돼야 합니다. 이런 시스템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정책이 결실을 보는 거예요. 아직은 꽃이 필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황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사항만…”

    ▼ 지난 5월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이 2005년 6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남북공동줄기세포 연구를 제안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는데, 남북공동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해 아는 것이 있습니까.

    “남북간 과학기술 협력 분야 중 생명과학 분야가 들어가 있던 것 같아요. 당시 북한도 토끼 복제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북한은 복제 분야에서 상당한 실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어요. 그래서 남북이 협력하면서 세계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연구 테마를 선정했습니다. 줄기세포가 그중 하나였던 거죠. 진행은 잘 되지 않았지만.”

    ▼ 지난해 11월24일 황 박사의 난자 조달 윤리 문제에 대한 기자회견 주체가 서울대 수의대 IRB(기관윤리위원회)였다가 갑자기 보건복지부로 바뀌었습니다. 당시 박 보좌관의 지시로 그렇게 됐는데요. 또한 보건복지부의 기자회견 과정에도 박 교수께서 개입해 사태를 축소,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서울대 수의대 IRB가 보고서를 내면 그 진위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보다 앞서 IRB나 보건복지부가 발표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일방적인 주장을 국민에게 여과 없이 전달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복지부와 사전에 협의했어요. 수의대 IRB가 직접 발표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IRB측에 전달했고요. 이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

    ▼ 수의대 IRB 조사결과를 보면 초안에는 “황 교수가 여성연구원들의 난자 제공 가능성을 2003년 8∼9월 어렴풋이 느꼈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에 공개된 최종본에는 이 부분이 빠진 채 황 교수가 2004년 5월에야 인지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몰랐어요.”

    ▼ 난자 조달 과정에 윤리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점도 몰랐습니까.

    “몰랐어요. 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한 것도 황 교수님이 언론에 발표할 때 알았어요. 저도 구체적인 연구 내용이나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에 대한 내용은 접할 수가 없었어요. 연구팀도 아니었고 실험에 직접 참여하지도 않았니까요. 황 교수님이 말씀해주시는 사항만 알았어요.”

    ▼ 그렇다면 2004년 3월 사이언스 논문의 공동저자로 이름이 올려진 경위는.

    “2003년 6∼7월경 저는 황 교수님 실험실에서 바이오 장기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어요. 황 교수님은 제게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팀들의 대표자 이름을 논문에 올리겠다’고 하더군요. 2001년부터 황 교수님 연구실에 자주 갔고, 실험실 관리나 연구윤리 문제 등에 대해 논의도 하면서 실험 전반에 관여했죠.

    줄기세포 연구에선 실험 외적인 요소도 중요하거든요. 외국에서도 이런 실험을 할 때는 관리 문제와 같은 실험 외적인 부분을 많이 봐요. 그래서 제게 그런 제안을 한 것이라 생각하고 오케이했죠. 황 교수님의 연구는 제 전공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그 논문은 제게 아무런 혜택도 주지 못해요. 아무런 이점이 없는 연구여서 이름을 넣는 데 동의한 겁니다.”

    “난자 숫자 변한 건 ‘애석한 일’”

    ▼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황 박사가 우리나라 ‘제1호 최고과학자’에 선정된 과정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최고과학자 사업은 특정 연구자에게 명예를 주기 위한 사업이 아니에요. 연구팀이 진행하는 테마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게 취지죠. 따라서 최고과학자 연구상은 황우석 개인에게 준 게 아니라 황 교수님 연구팀에게 준 겁니다.

    당시에 만든 배아복제줄기세포는 실험재료였어요. 초기 단계였죠. 실험재료를 만들었으면 그 재료를 활용해서 분할 연구를 해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황 교수님과 함께 연구할 연구팀이 필요하거든요. 최고과학자 사업은 황 교수님이 중심이 돼 같은 연구를 하는 분들이 한 팀을 이뤄 연구하도록 지원한 것입니다.”

    ▼ 그런데 다른 과학자들은 연구논문에 대해 상세하게 적고 자료도 첨부한 반면, 황 박사는 논문 제목만 적어서 제출했습니다. 검찰에서 제기한 ‘황 교수 내정설’을 뒷받침하는 게 아닌가요.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제출한 서류가 미흡했나봐요. 당시 최고과학자상은 세계적으로 연구 성과가 상당히 알려지고 입증된 사람한테 준다고 했어요. 황 교수님은 당시 전세계적으로 각광받던 분이었기 때문에 선정된 것 같아요. 자료가 좀 불충분해도 이미 언론을 통해서 그간의 연구업적이 많이 알려져 있었잖아요.”

    박 전 보좌관은 이 대목에서 말을 잠시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지 않은 채 알려진 게 너무 많지 않나요? 뭐랄까요. 기사가 그냥 소나기 식으로 쏟아져 나오다 보니 왜곡돼서 알려진 것 같아요.”

    ▼ 황 교수가 사용한 난자 개수는 조사할 때마다 늘어났습니다. 지난 1월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서는 2061개였는데, 2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조사 보고서에서는 2221개로 늘어났죠. 검찰 조사에서는 2236개로 발표됐습니다.

    “난자 개수가 처음부터 정확하게 밝혀졌으면 참 좋았겠죠. 제가 그 실험을 직접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자가 몇 개 사용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용된 난자 개수가 계속 변했다는 것은 참 애석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연구를 진행하면서 수율(收率)을 얼마만큼 높이느냐가 관건인데. 난자 개수 때문에 수율이 낮아서 이 기술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야 할지, 그렇게 난자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평가해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황 박사도 믿었다”

    ▼ 지난 8월 보건복지부는 황 교수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무려 2000여 개의 난자를 사용하고서도 단 한 개의 ‘체세포복제배아 유래 줄기세포주’조차 확립하지 못했다고 말이죠.

    “애석한 부분은요…줄기세포가…연구를 계속했다면…그러니까 줄기세포가 바뀌지 않고 연구를 계속 했다고 하면 만들 수도 있었죠. 줄기세포가 안 만들어지면 왜 안 만들어지는지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섞어심기, 즉 줄기세포가 외부에서 유입됐기 때문에 황 교수님은 그걸 줄기세포로 생각했겠죠(김선종 연구원은 미즈메디병원에서 영양세포를 가져오면서 수정란 줄기세포 일부를 미리 담아온 후 마치 서울대 연구실 배반포에서 줄기세포가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편집자). 나아가 줄기세포를 만드는 시스템이 확립된 거라고 판단했겠죠. 만일 줄기세포가 안 만들어졌으면 줄기세포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연구를 했겠죠.”

    ▼ 박 교수께서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줄기세포가 아예 안 만들어졌다면 만들려고 노력했을 것 아닙니까. 그 부분에 주안점을 뒀겠죠. 학문은 그렇게 해서 진보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줄기세포가 섞어심기로 자라니까 그 단계의 연구를 안 한 거죠.”

    ▼ 황 박사도 줄기세포였다고 믿었다는 얘기군요.

    “검찰 발표를 보면 그렇게 돼 있잖아요.”

    박 전 보좌관은 “김선종 연구원의 섞어심기가 없었다면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었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만일 줄기세포가 안 만들어졌다면 황 교수님은 그 단계를 열심히 했겠죠. 왜 안 만들어졌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겠죠.”

    ▼ 김선종 연구원의 섞어심기가 황우석 사태를 초래했다고 보는군요.

    “그게 핵심입니다. 줄기세포 재료가 있어야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거죠. 줄기세포 실체가 없으면 아예 논문을 못 썼을 것 아닙니까. 줄기세포가 나왔으니까 그 다음 진도를 나간 거죠.”

    ▼ 황 박사는 김선종 연구원이 섞어심기를 했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됐나요.

    “그건 모르겠어요.”

    그에게 줄기세포 논란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격랑이 치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았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가을 날씨치고는 너무 덥다는 둥, 캠퍼스가 아름답다는 둥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또 한번의 항해를 준비했다.

    ‘아름다운 팀’

    ▼ 황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은 왜 등을 지게 된 건가요.

    “왜 틀어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 함께 만난 적은 없습니까.

    “몇 번 만났어요. 두 분 관계가 좋을 때, 만나서 주로 줄기세포 연구나 줄기세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노성일 이사장, 황 교수, 문신용 교수, 안규리 교수가 ‘황금의 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분들을 뒷받침해주는 강성근·이병천 교수, 헌신적으로 연구에 몰두하는 실험실 연구원들. 팀 전체가 어우러져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정말 아름다운 연구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세포치료 분야 연구는 굉장히 활발해요. 시험관 아기나 체외수정 영역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고요. 특히 체외수정 분야는 20∼30년 전부터 우위를 드러냈죠. 이 때문에 체외수정 분야가 동물복제 기술을 가진 황우석 교수팀과 결합해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어요. 황 교수님 연구팀은 세포분화 연구에 주력하는 분들의 협력을 받아야 했어요. 이런 분들이 결합되면 생명과학 분야의 수준을 상당히 높일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 효과는 생명과학 전반에 확산될 거라고 생각했죠.”

    ▼ 그처럼 아름다운 팀이었는데, 왜 노 이사장과 황 박사의 관계에 금이 간 걸까요.

    “두 분의 감정적 대립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황 교수님 연구팀의 젊은 교수들, 연구원들, 그리고 네 분의 리더십과 팀워크는 정말 멋졌어요. 그러니 지금 저렇게 되고 나니까 아쉬움이 크죠.”

    ▼ 황 박사는 지난 5월 법무법인 ‘서린’ 개업식에서 “연구를 재개하고 싶다”고 밝혔고, 7월에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의 설립허가를 받아 서울 구로동에 연구실을 마련했습니다. 황 박사의 연구 재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제는 어느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도록 좋은 연구 성과를 내기를 바라죠. 배반포까지 만들어내는 건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기술이잖아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하지 못하더라도 동물복제나 동물 줄기세포 분야는 계속 연구하셔서 좋은 결과를 냈으면 합니다.”

    ▼ 황 박사가 줄기세포를 다시 만들 수 있을까요.

    “어떤 노하우를 갖고 있는 분들이 팀을 이뤘는지, 시설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알 수 없어서 판단하기가 힘들군요.”

    “그건 본인만이 아시겠죠”

    ▼ 황 박사가 박 교수께 다시 자문역할을 제의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을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것이 저의 오랜 꿈입니다. 우리 경제가 압축성장 했다고 하는데 과학기술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많았죠. 참여정부 인수위에 참여하면서 연구윤리나 과학기술인헌장 등을 제안하고 제정도 했어요. 이런 마당에 황 교수 사태가 벌어졌으니 안타깝습니다. 자연과학자, 인문과학자, 사회과학자가 함께 노력해 과학기술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 과학기술이 경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황 교수님 연구에도 참여하고 정부 정책위에도 참여했던 겁니다. 이제는 학교에서 조용히 연구만 하고 싶어요.”

    ▼ 지난 7월 2차 공판에서 황 박사는 “구체적으로 지시한 기억은 없지만 논문 조작에 대해 포괄 책임을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본인이 직접 지시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건지, 아니면 자신과는 무관하지만 팀의 수장으로서 논문 조작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건지….

    “그건 본인만이 아시겠죠.”

    ▼ 황 교수는 끝까지 NT-1(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토대였던 줄기세포)이 처녀생식에 의한 것이라는 서울대 조사위원회 조사 결과를 반박했습니다.

    “줄기세포는 맞는 것 같은데요.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는 과학계가 연구해서 밝혔으면 좋겠어요. 처녀생식이라는 주장도 있고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니까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면 그것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것도 과학계가 할 일이라고 봅니다.”

    ▼ 황 박사는 검찰조사 과정에서 차명계좌로 관리한 21억여 원의 연구지원금 중 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5억여 원의 행방에 대해 “밝힐 수 없다”고만 되풀이하다가 7월25일 “이 중 일부를 매머드와 호랑이를 복제하는 데 사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매머드 복제를 몇 번 시도했는데 잘 안 됐다고 황 교수님께 들었어요. 매머드 복제를 위해 체세포를 채취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셨습니다. 빙하에 묻혀 있는 매머드의 체세포를 채취해서 활용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호랑이 복제에 대해서는 언론에도 여러 번 보도됐죠.”

    황 교수는 매머드 및 호랑이 복제와 관련해 “보안을 위해 이 부분을 밝히지 못했다. 매머드 복제는 3번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호랑이는 국내산, 매머드는 러시아산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검찰이 “복제를 시도한 근거 자료가 있느냐”는 추궁에 “러시아로부터 자료를 요구할 수 없다”며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복제 시도 시기와 실패 이유 등에 대해서도 자세한 진술은 하지 않았다.

    “글로벌 스탠더드 만드는 과정”

    ▼ 2004년 초 황우석 박사, 김병준 전 대통령정책실장,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함께 황 교수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황금박쥐’(황우석, 김병준, 박기영, 진대제의 성을 따서 만든 모임)팀이 결성됐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황 교수 지원 문제 등을 협의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친목모임이에요. 가끔 음악회도 가고, 부부 동반으로 만나기도 하고, 피자도 먹는 그런 모임이에요. 황우석 교수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모임이 아닙니다. 2004년도 초기에만 한 달에 한 번씩 만났어요. 그 다음에는 각자 일이 바빠서 못 만났어요.”

    ▼ 황 교수와 노 이사장 중 누가 거짓말을 했고, 누가 진실을 이야기한 건가요.

    “서울대 조사와 검찰 수사 내용을 보니 누가 옳다, 그르다고 말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두 분이 알고 있는 정보를 각자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 말했다고 생각해요.”

    ▼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진위를 가리기 위해 뭔가를 했어야 하지 않습니까.

    “줄기세포가 없다는 데 대해 저도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고 과학기술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공직자로서 커다란 책임도 느꼈어요.

    국민에 대한 죄송함 때문에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저로서도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고요.”

    ▼ 요즘도 황 박사와 자주 연락합니까. 이젠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뭔가 얘기를 할 법한데요.

    “가끔 통화는 해요. 하지만 긴밀한 이야기를 한 적은 없어요. 진위도 물어보지 않았고요. 그저 안부나 묻는 정도입니다. 저는 황 교수님 덕분에 국민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정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 과학기술자들, 그동안 열심히 일하면서도 빛 한번 못 보지 않았습니까.”

    ▼ ‘황우석 사태’가 주는 교훈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한국 과학은 압축성장을 해오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생했어요. 지금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황 교수님의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가 전체의 지혜가 모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모아진 지혜를 과학이 더 건강하게 발전하는 데 활용했으면 해요. 각자 맡은 연구를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수행하고, 성과에 대해서는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해요.”

    ▼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겠죠.

    “과학자들이 학생들이 가져다주는 데이터를 못 믿는다더군요. 학생들이 포토샵을 이용해서 사진 이미지를 조작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현미경 사진 같은 것도 요즘은 직접 보러 갑니다.”

    “도시락 두 개 싸들고…”

    3시간 넘도록 이야기를 나눴지만 아쉬움이 크다. 황 교수와 노 이사장의 관계가 틀어진 결정적 계기를 듣지 못해서일까.

    그와 함께 연구실을 나왔다. 한낮의 열기는 많이 가셨다. 그는 자신의 승용차로 순천대에서 멀지 않은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기자를 태워줬다. 서울행 버스는 1시간쯤 후에 있었다. 박 전 보좌관은 “시간이 좀 남았으니 가까운 관광명소라도 둘러보고 가라”고 했다.

    다시 그의 차를 타고 간 곳은 죽도봉공원이었다. 공원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산길을 따라 걸었다. 울창한 숲 사이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청량했다. 연구실을 벗어나서인지, 그는 개인적인 아픔을 조금씩 내비쳤다.

    “사표를 내고 청와대에서 물러날 무렵, 정말 힘들었어요. 몸무게가 8kg이나 빠졌어요.”

    ▼ 그렇게 힘들었는데 그간 왜 인터뷰 한 번 안 했습니까.

    “국민과 우리 과학계가 겪은 혼란과 충격을 생각하면 드릴 말씀이 없었죠. 과학기술 정책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모든 걸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요즘은 종일 연구실에서 지내는 모양이죠.

    “도시락 두 개 싸들고 학교에 와요. 약속이 없으면 연구실에 계속 있다가 밤 10시 전후해 나갑니다.”

    박 전 보좌관은 정상에 가면 순천시의 전경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올라가보니 울창하게 자란 나무가 시야를 가려 시가지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쉬었다가 내려오는 길에 아주 사적인 질문을 던졌다.

    ▼ 왜 결혼 안 하시죠?

    “못 한 거죠. 공부하고, 연구하고, 청와대 들어가고…. 대학생, 대학원생 때는 연구에 푹 빠졌고, 그 다음에는 일에 빠졌죠. 결혼 안 하고 혼자 살면 편한 점도 있어요. 일에 전념할 수도 있으니까.”

    어느새 주차장에 다다랐다. 그의 차를 타고 다시 터미널로 왔다.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황금 들판은 여전히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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