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혁의 ‘수용소’, 신은미의 ‘찬양’이 남긴 것
- 경력 위조 다반사…생계수단 된 거짓말
- ‘증언의 재생성’ ‘왜곡의 재생산’ 악순환
- 젊은 탈북자들 “거짓 경력, 허위 증언 검증하겠다”
‘수용소’와 ‘찬양’의 이면
신은미 씨의 발언 중 또 하나 문제가 된 것은 한국에 사는 탈북자의 80~90%가 북한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는 것이었다. 이 발언에 발끈한 몇몇 탈북자가 공개토론을 제안했고 미국에서 날아온 신동혁 씨는 여러 언론에 출연해 자신이 경험한 ‘14호 정치범수용소’의 상황을 언급하며 신은미 씨에게 정치범수용소에 가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나중에 신은미 씨는 “전체 탈북자 80~90%가 아니라 자신에게 e메일을 보낸 사람의 80~90%가 북한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는 뜻”이라며 “탈북자들이 한국에서의 차별 때문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뜻이지 북한이 좋아서 돌아가고 싶다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신은미, 신동혁 씨 사건은 단순히 북한에 대한 정서적 호불호의 차이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분단에 대한 또 다른 성찰을 제공하는 역사의 한 단면이 아닌가 싶다. 재미교포 여행자 신은미 씨가 본 북한은 분명히 일부다. 그러나 그가 자신이 본 북한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던 일반화·전체화한 형태로 한국 사회에 전달하려고 시도한 것은 남북의 분단 상황을 너무나 순진하게 본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북한을 찬양하는 듯한 이른바 ‘종북 발언’을 하는 것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엄연하게 실정법으로 존재하는 국가보안법상 북한 찬양·고무와 연결된다. 신동혁 씨는 어떤가. 탈북자인 그가 경험한 북한도 분명히 일부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증류된 채 일부 경험만을 의도적으로 과장, 왜곡해 국제사회에 전달했다면 이 역시 특정 경험을 일반화·전체화하는, 인식의 오류를 넘어서는 문제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북한과 관련한 탈북자 증언의 명과 암을 살펴보자. 주지하듯 우리가 아는 북한은 폐쇄 사회다. 외부의 북한 전문가도, 심지어는 북한에 사는 주민들도 북한의 일단만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탈북자들의 개인적 경험과 증언에 의존해 북한을 들여다봤다.
실제로 탈북자들은 북한 사회의 실상을 외부에 전함으로써 북한 밖의 사람들이 북한 내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1990년대 중반, 한국으로 온 탈북자들로부터 시작된 북한 실상에 대한 증언은 2만8000명으로 탈북자 수가 늘어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사실 탈북자들의 증언은 북한을 당최 알 수 없던 이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전해 궁금증을 해소하는 긍정적 기능을 했다. 지금도 한국에 들어온 상당수 탈북자가 북한 내 가족, 친지와 연계해 북한의 실상을 정기적으로 외부에 알리고 있으며, 정보기관이나 북한 전문가들도 파악하지 못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에서 단행한 화폐개혁 소식을 국내의 한 탈북자단체가 최초로 공개한 것이다. 김정일 건강이상설이나 김정은 후계설도 탈북자 정보에 기초한 것이었는데 나중에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주장이나 정보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 또한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 북한 출신이라고 해서 북한의 실상과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탈북자들의 주장도 주관적인 경험과 개인의 사고에 기인한 것임을 염두에 둘 때 북한 실상에 대한 오도나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인한 부작용은 충분히 예견되던 부분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 실상을 의도적으로 과장·왜곡하거나 자신의 경력을 허위로 부풀리고 위조하는 사례와 관련한 것이다.
통일에 악영향
탈북자들은 탈북자 역사의 변천만큼이나 그 유형이 다양하고 복합적이라는 특징을 지녔다. 노동당 비서 출신의 황장엽과 같은 고위층도 있고 출신 성분이 빈한한 탈북자도 있다. 탈북자들의 북한에서의 직업도 이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으며 계층, 계급, 지역, 지위에 따른 시각과 실상, 증언과 내용, 정보와 동향도 제각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조된 경력으로 활동하거나 자극적이고 왜곡된 실상 증언을 일삼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북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뿐 아니라 통일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확산하는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경력 위조 문제다. 북한에서 살다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새로 시작해야 하는 탈북자들에게 남한 땅은 사실상 불모지나 다름없다.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조차 힘들어하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탈북자의 적응이 쉽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이런 상황에서 탈북자들이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 대한 자극적인 증언이나 화려한 경력에 관심을 보이는 한국 사회의 풍토가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한국 사회 ‘유혹’도 한몫
북한에서 노동당 간부나 엘리트로 생활했다거나 출신 성분이 좋다고 하면 일반 탈북자와 다르게 대해준다는 게 탈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특권계층이나 기득권층에 대한 특별 대우가 탈북자에게도 어느 정도 동질적 모습으로 투영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령의 먼 친척’‘장성의 자제’, 하다못해 ‘수령의 접견자’나 ‘주요 비밀기관의 종사자’ 등 자신을 성골이 아니면 진골로 소개하는 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그들의 말이 맞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런 사람일수록 인드라망처럼 얽히고설킨 탈북자 사회에서 자신의 노출을 꺼린다.
문제는, 경력을 위조해 북한에서 잘 나가던 탈북자임을 내세우면 쉽게 돈을 벌거나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남보다 쉽게 한국 사회에 정착한다는 점이다. 교회 간증이나 방송 출연, 북한 실상에 대한 강연, 북한 관련 기관이나 NGO 자문 등에 초청되다보면 강연료 수입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친교를 통한 직업 알선 등도 수월해진다. 이는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생계와 필요에 의한 경력의 재구성과 증언의 재생성이 이뤄지며 결국 북한 실상과 정보가 ‘생계 메커니즘’에 의한 확대 재생산으로 한국 사회에 유통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경력 위조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정보기관이다. 신동혁 씨가 ‘14호 정치범 수용소’가 아닌 ‘18호 경제사범 격리지역’ 출신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곳은 그를 처음 조사한 정보기관일 것이다. 항간에는 조사기관에서 거짓 진술을 하고 통과되는 탈북자들도 있다고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봤을 때는 쉽지 않다.
탈북자가 사회에 나가 거짓 경력으로 활동하는 것을 포착해낼 수 있는 곳 또한 정보기관이겠으나 인권침해나 정치적 중립 등의 이유로 선뜻 개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보니 위조된 경력으로 활동해도 법적 처벌과 같은 손해가 없으리라고 판단하는 현실에서 일부 탈북자가 자신에게 이익이 될 만한 일들에 어떻게 접근할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경력 위조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들이 탈북자 사회의 성공모델로 비치는 잘못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10년 전 자신의 경력과 경험을 위조하고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 끓는 쇳물을 부어 기독교인들을 살해하고 생체실험을 했다고 증언한 여성 탈북자가 있었다. 필자는 그가 한국과 미국에서의 간증과 북한 실상 강의로 큰돈을 벌어 으리으리한 집과 여러 대의 고급 승용차를 소유한 것을 직접 보았다. ‘수령의 접견자’로 경력을 부풀려 큰 식당을 운영하며 활동하는 탈북자도 있다.
경력을 위조한 사람들이 정치인이 되고 공무원과 기업가가 되는 현실을 다른 탈북자들이 보고 그 변칙적인 과정을 답습했다면 무작정 그들만의 잘못으로 돌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캐리커처’로 보아야 하는가.
신은미, 신동혁 씨 얘기로 돌아가보자. 신은미 씨를 종북으로 보는 쪽에서는 그가 북한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한 채 북한 체제를 긍정적으로 미화했다고 비난한다. 특히 그가 본 북한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면서 ‘북한에서도 콘서트를 열어보라’고 압박한다. 반대로 그를 지지하는 이들은 목격한 것을 그대로 옮긴 ‘여행기’일 뿐이라고 옹호한다.
그리고 한때는 북한 인권 실상의 아이콘이던 신동혁 씨에 대한 비난은 보수, 진보진영을 막론하고 터져나왔고 많은 탈북자도 이에 가세한다. 그럼에도 또 다른 쪽에서는 신동혁 씨의 ‘사소한 거짓말’을 동정하며 그의 진정성과 북한 인권의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변호한다.
2013년 10월 23일 신동혁 씨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함께 산책했다. 신씨는 “부시 전 대통령이 북한 참상을 널리 알려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사실 이번 신동혁 씨 사건으로 탈북자 사회에서도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수 탈북자가 “몇몇 탈북자의 경력 위조와 허위 증언으로 탈북자 전체가 오해받을까 두렵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특히 한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은 젊은 탈북자를 중심으로 의심스러운 인사들의 경력을 탈북자들이 모여 검증하려는 움직임까지 생겨났다. 그간 탈북자 사회에선 과장하거나 왜곡된 발언을 내놓은 이들의 위조 경력이나 ‘거짓말’을 정정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라는 인식이 있었으나 이번 일을 계기로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탈북자들이 힘을 모아 거짓을 검증할 소지가 과거보다 커졌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거짓 경력이나 과장되고 왜곡된 증언이 하루아침에 개선될 상황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증언의 진실 여부보다는 북한 정권의 잔악성을 알리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검증이나 합리적 의심도 배제한 채 오직 북한을 압박하고 성토할 수 있는 내용이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이해집단이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 북한 전체를 악(惡)으로 규정하는 이들 집단은 증언의 신뢰성이나 사실 확인은 별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듯 보인다. 생활고라는 핍진한 환경에 처한 일부 탈북자들이 이러한 영향에 정향되면서 그들과 보완과 협치의 재생산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요즘 수많은 언론매체에서 탈북자들을 초대한다. 탈북자들에게 ‘북한 전문가’라는 인위적인 타이틀을 만들어주고 경쟁적으로 출연시키는 마당에 빈한한 처지의 사람들일수록 사회적 인기와 경제적 수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에 대한 유혹이 강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언론매체가 그들이 자극적인 발언을 내놓기를 원하고 그러지 못하는 탈북자들을 갈음하는 식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부 출연자들이 제작진의 묵인 아래 과장과 왜곡으로 구미에 맞는 스토리를 각색하는 일도 잦다. 일부 기자들이 국민이 북한 정보의 출처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가상의 탈북자나 북한 주민을 만들어 기사화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언론에서 띄워준 탈북자들이 강연과 집회에 초대받는 기회를 선점, 독점함으로써 경력 위조와 과장, 왜곡의 악순환이 거듭된다. 군부대 강사 등 안보교육 기관이 선호하는 탈북자가 출연자들로 주로 구성되다보니 좀 더 자극적이고 그릇된 증언으로 방송 활동을 하는 탈북자가 늘어나고, 이 같은 활동을 선망하는 이 또한 적지 않다. 국가기관이 감싸고 묵인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식이다. 이러한 상황을 탈북자들만의 문제와 잘못으로만 치부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편법과 적폐의 불가해한 모습이라고 꼬집는다면 너무 직설적인 표현일까.
그동안 한국 사회에 정착한 탈북자는 분단의 상징 중 하나가 됐으며 최근의 대북 삐라 살포 논란에서 보듯이 때때로 그들은 남북 또는 남남갈등의 대명사로 확인되곤 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 사회에서는 왜 탈북자들이 분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특히 한국에 입국한 순간부터 불편한 존재로 규정되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나 반성적 성찰조차 없었다. 탈북자는 실체적 본질보다는 분단 상황이나 한국 사회에 의해 정치화한 존재로 규정되는 측면이 더 크다.
탄탄한 진실의 서사
신은미 씨, 신동혁 씨로 인해 불거진 작금의 현상은 분단의 일그러진 단면이다. 흑백론적이거나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하고 전체 스펙트럼을 아우를 때 분단 극복 과정에서 필요한 교훈과 진중함을 획득할 수 있다. 신은미 씨가 본 일면의 북한 말고도 또 다른 북한이 있듯이 신동혁 씨에게는 분단의 현실에서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들은 그들을 필요로 하는 거대한 욕망에 편승해 단편적이고 편향적으로 행동하면서 스스로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이다. 사회 혹은 언론이 원하는 대본 혹은 각본대로 소비되는 일부 탈북자들이나 분단 혹은 북한 문제를 오락화, 상업화하는 사람들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까닭은 깊은 성찰을 결여한 채 분단이라는 복잡한 결을 잘못 읽거나 단순하게 이해해 통일 과정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단은 통일을 지향할 때 무겁지만 역동적인 것이 된다. 역사에는 잔인함을 털어낸 자리에 희망이 들어선 예가 많다. 묵묵히 통일을 준비하는 많은 탈북자를 볼 때면 더욱 그렇다. 분단이 준 상처 속에서도 통일이라는 희망을 품고 연고도 없는 이 땅에서 겸손하게 배우고 열심히 일하며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다수 탈북자의 삶이야말로 담담하게 북한을 증언하며 통일을 준비하는 탄탄한 진실의 서사일 것이다.
*주승현은 최연소 탈북인 박사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원 및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강사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