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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폐허된 정치, 찢겨진 사회…한국은 몇시인가

‘의회민주주의 승리’ vs ‘제2의 6월항쟁’… 보혁갈등 기폭제 되나

  • 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의회민주주의 승리’ vs ‘제2의 6월항쟁’… 보혁갈등 기폭제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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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極)과 극(極)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안 가결 직후부터 한국사회는 마주보며 평행선만 긋는 2개의 칼날 위에서 춤을 춘다. ‘의회 쿠데타’를 ‘시민항쟁’으로 무력화하겠다고 나선 시민사회단체들. 여기에 탄핵안 통과를 ‘의회민주주의의 승리’로 추켜세우는 보수진영.
  • 아노미 상태에 빠진 민심의 향방은 어디인가.
‘의회민주주의 승리’ vs ‘제2의 6월항쟁’… 보혁갈등 기폭제 되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 3월12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는 보수단체 회원들.

3월12일 회사원 김모(38·서울 망원동)씨는 세 번 혼돈에 빠졌다. 이날 밤 11시30분 야근을 마친 뒤 차를 몰고 퇴근하던 그는 마포구 공덕동네거리를 지나는 순간 쏜살같이 불법 U턴을 하는 차량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평소 평일 심야에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차량들을 종종 봐왔던 그로선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잠시 스쳤지만, 이날 따라 과속차량 역시 유난스레 많이 눈에 띄었다.

김씨는 문득 이런 혼란스러움이 이날 전격적으로 이뤄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과 무관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날 오전 11시40분쯤 직장동료들과 이른 점심식사를 하러 간 식당에서 “TV 좀 켜달라”고 하자 “아침부터 뭐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있겠느냐”는 주인아주머니의 천연덕스런 대꾸에 잠시 뜨악해했던 일, ‘설마 통과야 되겠느냐’며 무심히 바라보던 TV화면에 ‘탄핵안 가결’이란 문구가 선명히 떠오르던 에피소드 등이 묘하게도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3월12일, 하루가 길게만 느껴지면서 혼돈을 경험한 이가 비단 김씨뿐일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발의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진통 끝에 가결된 직후부터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아노미(anomie) 상태에 빠졌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등 이른바 친노(親盧)단체는 물론 시민사회단체들까지 ‘탄핵 반대’ 대열에 일제히 합류해 거리로 나선 데 이어 보수단체들도 그들대로 공동대응을 모색하면서 민심이 요동치고 있는 것.

아노미 상태에 빠진 대한민국

3월13일 오후 6시15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 양방향 차로를 경찰이 전면 통제한 가운데 ‘근조 국회’ ‘탄핵 무효’라고 적힌 붉은색 리본을 단 시민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집회 참가인원은 7만여명. 발디딜 틈조차 없이 빽빽한 인파 속에서 ‘탄핵무효 부패정치 척결 범국민대회’가 ‘임을 위한 행진곡’과 더불어 시작됐다.

집회는 태극기를 망토처럼 두른 진행요원과 자원봉사자들의 질서유지 노력으로 시종 평화로운 분위기이긴 했지만 사뭇 비장감이 감돌았다. 집회참가단체들의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시민단체 소속의 연사들이 연단에 등장할 때마다 시민들은 “탄핵 무효!” “민주 수호!”를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집회장엔 ‘헌법재판장 할아버지, 대통령 아저씨 혼내지 마세요-일반시민 가족이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힌 애교 섞인 피켓도 눈에 띄긴 했지만, 탄핵안 가결에 찬성한 국회의원 193명을 빗댄 ‘집 나간 193마리의 미친개를 찾습니다’등 비판의 수위가 높은 피켓이 대다수였다.

“탄핵안 가결은 박정희, 전두환에 이은 세 번째 (의회) 쿠데타다” “4월15일은 한·민(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장례식날” “4월15일은 쓰레기(탄핵안 가결 참여 의원들) 분리수거의 날” “대한민국이 193명만의 나라인가” “전국민이 똘똘 뭉쳐 수구꼴통 박살내자” “딴나라당과 미친당을 박살내자” 등의 자극적 구호들도 터져나와 성난 민심을 대변했다. 참가자들은 전날의 여의도 집회에 이어 ‘탄핵 무효 모금함’을 돌려 집회 기금을 모았다.

밤이 이슥해질수록 집회군중은 더 불어나 촛불 수만 개가 광화문에서 종각역까지 뒤덮었다. 집회 참가자들도 가족, 직장인, 노인, 대학생, 고교생 등 다양했다.

부인과 함께 이날 집회에 참가한 양혁철(43·연극연출가·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씨는 “1987년 6월항쟁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이번 탄핵정국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당시의 항쟁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온 것 아니냐”며 “집회 참가자들 대다수가 자발적 의지에서 모였다. 탄핵무효는 당연한 주장이며 앞으로도 ‘제2의 6월항쟁’에 계속 참가할 것”이라 말했다.

네 살바기 딸을 데리고 집회에 참가한 김종빈(37)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민심은 생각지 않고 탄핵안을 가결한 부패 정치인들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어 집을 나섰다”고 밝혔다.

연인 사이인 듯한 한 20대 커플은 “역사적 순간에, 훗날 교과서에 나올 그날의 현장에 함께 있고 싶었다”며 연신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찍어대기도 했다.

이날 촛불집회의 주최측은 ‘탄핵무효 부패정치 척결을 위한 범국민행동 준비모임(이하 범국민행동(준))’.

참여연대, 민주노총, 민언련, 한총련 등 전국 55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범국민행동(준)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YMCA 강당에서 비공개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탄핵 무효 때까지 전국 동시다발 촛불집회 개최 ▲탄핵 무효 1000만명 서명운동 ▲‘근조 국회’ 리본 달기 등 실천지침과 함께 3월20일 서울 광화문에서 1차 대중집회를 갖기로 결의한 터였다. 범국민행동(준)은 또 ‘탄핵안 가결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며, 헌법재판소는 탄핵안이 무효임을 신속히 결정할 것’을 요지로 하는 시국선언문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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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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