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돈, 취업청탁에 경찰민원까지…끊임없이 여권 팔고 다녀
- 생계 목적으로 정치권 맴돌아…한화갑 대표측은 쫓아내
- “평소 한나라당엔 무관심…옥살이 탓도 안했다”
- “여권 인사에 청탁성 통화할 때만 한나라당 욕해”
- 지씨, ‘범행 동기’ 6번 번복…급조한 듯
- ‘우발적 단독범행’ 증거들 ‘신빙성’ 의문
유세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박 대표를 태운 차량은 인근의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5분 거리인데 20분이 넘도록 병원에 들어가지 못했다. 당황한 나머지 병원 입구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봉합 분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인 탁관철 교수가 주말임에도 인근에 있었던 것이 박 대표에게 불행중 다행이었다.
수술을 마친 탁 교수는 유정복 대표 비서실장에게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안면신경을 피해갔고, 조금 아랫부분에 이르렀으면 경동맥을 다쳐 손써 볼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을 찾은 기자에게 한나라당 관계자는 “자칫 목숨을 잃었거나 정치생명이 끝날 뻔 했다”고 말했다.
검·경, ‘배후’ 부분 없이 지씨 기소
5월31일 검경합동수사본부(본부장·이승구 서울서부지검장)는 지씨를 살인미수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한나라당은 세풍(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166억여 원 모금 수사), 병풍(정치인 자녀 병역비리 의혹 수사사건) 사건을 맡아 한나라당과 악연이 있는 이 지검장이 합수부를 지휘하는 것에 불만을 나타냈다. 한나라당측은 정상명 검찰총장에게 수사진 교체를 요구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이 사건을 지방선거에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5월25일 대전역 유세에서 “한 여성에게 당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칼부림을 하고…”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상호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지충호가 특정 정당의 당원인 것처럼 만들어 국민이 열린우리당을 증오하게 하는 고도의 흑색선전”이라며 전 의원의 정계은퇴를 요구했다.
이 사건의 가장 큰 관심은 지씨의 범행에 배후가 있는지 여부다. 지씨가 기소된 시점을 전후해 지씨의 단독 범행 가능성에 한층 무게가 실렸다. 검찰이 배후 의혹 부분에 대한 특별한 조사 없이 지씨를 기소해, 향후에도 검찰 기소내용을 중심으로 재판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지씨가 단독으로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일종의 해프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씨와 함께 복역한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지씨는 반(反)사회적 성격이 강했다’고 하더라. ‘소(小)영웅주의’ 심리에 빠져 그런 사건을 저지를 수도 있다. 일반인의 의식으로 그 사람의 행위를 이해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진짜 범행동기 숨기고 있는 듯”
그러나 이같은 단독범행설은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우선 합수부측은 5월23일 브리핑에서 “지씨에 대한 정신감정 계획은 없는가”라는 질문에 “없다. 정신이상자가 아니다. 진술을 받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지씨는 ‘정상인의 범주 내’에 있으므로, ‘이상심리’ 측면에서 범행 이유를 찾는 것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상인은 비록 ‘소영웅주의’에 빠져 있어도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고(인천~서울), 현실적 이익(금전적 대가 등)이나 원한관계가 없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박근혜)을 구태여 찾아가서 잔인한 방법으로 해치려는 행위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씨에게선 ‘테러리스트’가 가진 ‘맹신적인 확고한 정치적 신념’도 발견되지 않았다. 즉, 지씨 사건의 경우 범죄의 핵심 구성 요건인 ‘범행동기’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지씨는 자신의 테러행위에 대해 “박근혜 대표는 독재자의 딸이다”(사건 당일인 5월20일), “5공 때 억울하게 옥살이한 것을 한나라당이 책임져야 한다”(5월20일), “민주(民主)를 찾기 위해 그랬다”(5월21일 서대문경찰서), “여야 누구라도 관계없었다”(국선변호인 접견시), “감호소에서의 억울함을 여러 기관에 호소해도 받아주지 않아 강력한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처음엔 오세훈 후보를 노렸다”, “박 대표에게 미안하다”(5월29일 구속적부심) 등 그때그때 다른 이유를 댔다.
재판을 맡은 김윤권 부장판사는 언론 브리핑에서 지씨의 ‘지능적 범죄 가능성’에 대해 “피고인(지씨)이 사실을 숨기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3시간40분 만에 이택순 경찰청장은 기자회견에서 “지충호씨는 술에 취했다”고 발표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는 질문이 나오자 이 청장은 “술을 어느 정도 마신 상태”라며 재차 강조해 ‘취객의 우발적 범행’으로 몰아가려는 듯한 인상을 줬다. 음주측정 결과 지씨는 술을 마시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경찰이 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지충호씨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병리상태였나. 이는 이번 테러 사건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정신이상자가 아니라는 수사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더 구체적인 탐구가 필요하다. 그는 왜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대표를 표적으로 삼았을까. 그의 주장대로 한나라당에 대한 증오 때문에 단독으로 범행한 것일까.
현재까지 합수부가 “확인된 사실 없다” “본인이 진술 안 한다”는 표현과 함께 뜨문뜨문 내놓고 있는 수사 결과만으로는 답을 찾기 힘들다. 재판의 쟁점도 검찰 기소내용인 지씨 단독범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인데다, 법률과 증거에 따라 판결해야 하는 사법기관으로선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창촌과 도살장
지충호씨의 지인들을 상대로 지씨의 성장배경 및 범행 직전 행적을 추적해봤다. 물론 주변인 증언만으로 테러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건 발생 당시 지씨를 둘러싼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범행동기를 파악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예컨대 ‘사회부적응자’의 ‘충동적 범행’인지, 아니면 금전 문제 등 ‘현실적 이유’가 범행동기인지. 또한 배후 의혹이 있다면 ‘공범’의 단계, 단순히 ‘부추긴 정도’ 등으로 세분화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지씨의 40년 지기 김모씨는 1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했다. 지씨의 주 생활공간은 교도소 및 청송감호소 복역기간을 제외하면 어릴 적 터전인 인천시 학익동이었다. 같은 동네 친구인 김씨는 지씨의 심리상태와 속사정을 꿰고 있었다.
-지충호씨의 유년시절은 어떠했나.
“지씨는 고아여서 고향이 어딘지 본인도 모를 것이다. 지씨를 입양해 키운 부모는 원래 살던 곳이 도시계획으로 정비되자 이곳으로 이사 왔다. 어릴 적 지씨가 살던 집은 집창촌 한복판에 있었다. 지씨의 부모는 성매매 여성 등을 상대로 구멍가게, 칼국수집을 했다. 지씨는 ‘창녀촌에 사는 놈’이라며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다. 지씨 집에서 불과 10m도 안 떨어진 곳엔 소·돼지 도살장이 있었다. 잔인하게 도축하는 장면, 가축이 내지르는 소리를 밤낮 곁에 끼고 살아야 했다. 밤에도 돼지를 잡았으니까.”
-주거 환경이 지씨의 정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줬을 듯한데.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사는 곳 때문에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했으니…. 어린 지씨로선 억울했을 것이다. 그의 부모는 그를 끔찍이 아꼈다. 과잉보호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지씨가 외동아들인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지씨는 더 비뚤어졌으며 폭력적 성향도 나타냈다. 중학교 때 학교를 그만뒀다.”
-지씨가 표출한 폭력 수위는 어느 정도였나.
“가출을 했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상가에서 사소한 시비로 선배나 나이 든 사람과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욱하는 성격에 소란을 피우는 정도였지,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지씨 부모는 ‘가정을 가지면 안정을 찾겠지’라는 생각에 지씨를 결혼시키려 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지씨는 18년4개월 간 옥살이를 했다. 29세이던 1985년 5월 남편이 고위공무원인 한 여성을 폭행하고 1050만원을 뜯어낸 혐의로 구속돼 징역4년을 선고받았다. 1984년 5월 지씨가 면도칼로 이 여성의 얼굴을 그어 전치2주의 상처를 입힌 것도 죄목에 포함됐다. 1989년 3월 출소한 지씨는 2개월 뒤 다시 같은 여성과 남편을 찾아가 협박해 395만원을 받은 혐의로 1991년 재구속됐다. 이 일로 지씨는 징역7년을 살았으며, 형기를 마친 뒤엔 사회보호법(1980년 12월18일 제정)에 따라 청송감호소에서 7년4개월간 보호감호 생활을 했다. 2005년 8월 가출소했다.
이처럼 오랜 수형생활은 단지 한 여성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씨는 “그 여성을 좋아한 것뿐인데 7년 보호감호처분까지 받다니 억울하다”고 주변에 말해왔다. 그러나 지씨의 범행은 재판을 통해 입증됐으며 ‘경합범 가중처벌’과 ‘누범 가중처벌’에 따라 형량이 결정됐다. 재판이 외압 등으로 지씨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진 않았다는 얘기다.
피습 9일 뒤인 5월29일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다음은 한나라당 모 의원의 설명이다.
“지씨는 2005년 8월4일 사회보호법이 폐지되면서 그 혜택으로 가출소했다. 그런데 사회보호법 폐지에는 한나라당도 동참했다. 지씨는 청송감호소에서 사회보호법 폐지를 탄원하는 편지를 내게도 여러 차례 보낸 것으로 기억한다. 한나라당도 노력해 자신이 감호소에서 빨리 출소하게 됐다(만기 출소 예정일은 2006년 5월21일)는 사실을 지씨는 잘 알고 있었다.”
이와 관련, 지씨의 지인인 김모씨는 “지씨는 ‘청송감호소에 갇혀 있었던 것이 억울하다’면서 평소에 여러 번 분통을 터뜨리긴 했다. 그러나 그것을 ‘한나라당 탓’으로 돌린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옥살이, 피해여성만 탓했다”
김씨는 “상식적으로 지씨는 누구를 가장 원망했을 것 같나”라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기자는 “4년 복역한 후 출소하자마자 자신이 좋아했다는 여성을 찾아가 복수하고 그 일로 무려 14년이나 복역했으니 그 여성을 가장 원망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맞다. 지씨는 이번에도 그 여성에게 달려갔다”고 밝혔다.
-18년여 간의 옥살이에 대해 지씨가 무척 억울해한다던데.
“지씨는 1982년 9월쯤 그 여성을 알게 된 뒤 내게 둘이 사귀는 얘기를 자주 했다. 볼링장에서 처음 만났다는데, 지씨보다 8~9살 많았다고 한다. 유복한 고위 공직자의 부인이었다. 지씨 말로는 그 여성과 알게 되면서 인천 Ⅰ카바레 옷 보관소를 운영하기도 했고, 용돈을 꽤 받는다고 했다. 한번은 포니 승용차를 선물 받았다며 친구들 앞에서 자랑삼아 운전을 해보이기도 했다. 면허증도 없으면서.”
-판결문에 따르면 지씨는 그 여성으로부터 1050만원을 뜯어냈다. 1980년대 초반엔 상당한 거액이다. 선물 명목으로 받은 것이 분명한가.
“그걸 지씨가 선물로 받은 건지, 다른 방식으로 받은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지씨 얘기만 들었으니. 지씨는 그 여성과 알게 된 뒤 돈을 펑펑 쓰게 돼 만족해했다. 얼마 뒤 지씨는 그 여성이 자신을 만나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씨는 그 여성이 인천에서 서울로 이사하자 이사한 곳을 찾아내기도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후 지씨는 1984년 5월16일 서울 강남구 한 주택가 골목에서 이 여성을 심하게 폭행했다.
-박근혜 대표 테러 사건 이전에 인천 시내 B횟집에서 지씨 휴대폰으로 전화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데, B횟집 얘기를 들어봤나.
“B횟집은 1980년대 지씨가 그 여성과 함께 자주 들르면서 단골집이 된 식당이다. 지씨는 요즘도 그곳에다 약속을 잡는다.”
-‘1985~89년 복역’과 ‘1991~2005년 복역’은 모두 지씨가 이 여성을 폭행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그런데 2005년 8월 가출소 후 이 여성을 또 찾아갔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 여자 때문에 징역 산 게 억울해서 찾아갔다’고 하더라. 그러나 이번엔 충돌이 없었다. 그 여성의 남편이 ‘다시 찾아오면 신고하겠다’고 하자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남편은 지금쯤 일흔이 넘었을 텐데, 무슨 악연인지….”
김씨는 “지씨의 관심은 오직 돈 버는 일뿐이었다”고 말했다.
-지씨의 최근 생활은 어떠했나.
“지씨는 젊었을 때부터 돈이 생기면 물쓰듯 썼다. 최근에도 그랬다. 친구에게 손을 벌려 10만원 정도 받으면 그 날 바로 다른 친구들 불러내 그 돈으로 술을 샀다. 며칠 뒤면 돈 준 친구로부터 그 얘기가 나온다. 그래서 친구들이 황당해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지씨의 부친은 타계했고 모친은 경기도 화성에서 요양 중이다.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지씨의 외삼촌이 지씨 모친 명의의 집을 팔아 치료비를 대고 있다(지씨의 다른 친구는 “지씨 외삼촌과 지씨는 요즘 거의 왕래가 끊겼다”고 말했다).
지씨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당한 노동으로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돈 나올 데가 없으니 본인은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자신의 명의를 빌려준 수원의 유흥주점 사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조금만 해달라’고 부탁하는 걸 들었다. 사정이 급해지자 그리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형님’이라며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박근혜 대표를 공격했다”는 지씨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민주주의? 지씨는 자기 먹고사는 일과 관계없는 문제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지씨가 박근혜 대표에게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씨는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공격한 적이 없었다. 한나라당 관련 사건(박근혜 대표 테러, 곽성문 의원 폭행)만 빼곤 말이다. 정상인이라면 그런 일 하지 않는다. 지씨도 마찬가지다. 전과자이고 남에게 얻어먹는 것 좋아하긴 했지만.”
최근 지씨와 함께 살기도 했던 친구 최모씨도 “지씨는 담뱃값까지 내게 빌릴 정도로 생활비가 달렸다. 평소 그가 한나라당에 대해 나쁘게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한나라당’이라는 말 자체를 안했다. 살아가는 일 걱정하기도 바빴다”고 말했다. 지씨와 거래했던 한 사채업자도 “돈 타령만 하던 위인이었는데 칼질을 한 이유가 민주주의 때문이었다니,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씨는 자신의 옥살이를 두고 여전히 피해여성을 원망하고 있다. 그것을 한나라당 탓으로 돌리는 편집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씨가 범행동기로 밝힌 ‘(억울한 옥살이로 인한) 한나라당에 대한 증오’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씨가 진짜 범행동기를 감추기 위해 둘러댔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부재중 전화 와서…”
지씨의 지인들과 그를 접촉한 여러 인사들에 따르면 지씨는 출소 이후 줄곧 정치권을 맴돌았다. 그는 “정치권으로부터 물질적 도움을 받고 있다”고 떠벌리기도 했다. 정치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왜 정치권을 기웃거렸을까. 지인들에 따르면 정치권을 이용해 취직하거나 생계비를 얻기 위한 목적이었다.
지씨의 지인 김모씨는 “지난 3월쯤 지씨가 열린우리당측 추천으로 취직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최근 지씨와 함께 거주한 적이 있는 지씨의 친구 E씨는 “지씨는 열린우리당측 인사와 자주 통화했는데, 어떤 경우는 30분 이상 통화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이어 E씨는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지씨는 나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에게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얘기를 일절 한 적이 없다. 그가 한나라당에 무슨 원한이 있겠는가. 그러나 오직 열린우리당 인사에게 청탁성 전화를 할 때만은 ‘한나라당 때문에 내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한나라당에 욕을 퍼붓곤 했다.”
E씨의 말에 따르면 지씨가 옥살이를 한나라당 탓으로 돌리는 말을 하는 장면이 일부 확인된다. 열린우리당 인사와 가까워지기 위한 의도에서 그런 논리를 만들어 얘기한 셈이다. 그러나 생계 목적에서 한 말일 뿐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정치엔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가까운 친구들에겐 그런 얘기를 하지 않은 듯하다. 지씨가 범행 후 ‘한나라당에 대한 증오’를 범행동기로 밝힌 것도 열린우리당 인사와 대화하면서 풀어 놓았던 논리와 일치한다.
‘동아일보’는 사건 4일 뒤인 5월24일, 지씨와 함께 생활한 친구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2006년) 2월 충호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보좌관과 수차례 통화하면서 ‘내가 열린우리당 당원이다. 선거운동도 나서서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달(5월) 초 한 보좌관이 충호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를 우편함에 넣어두었는데 최근 없어졌다.”
또한 이 기사는 “지씨가 ‘열린우리당 의원 두 명을 거론하면서 의원들에게 20만~30만원씩 용돈을 받는다. 한꺼번에 200만원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한 의원은 열린우리당의 법률 지원을 받아 이 보도 내용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신청했다. 해당 의원측은 “지씨는 열린우리당 당원이 아니며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보좌관이 지씨에게 편지를 보내지도 않았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지씨에게 용돈을 준 사실도 없다”고 정정보도 신청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언론중재위원회’는 6월12일 이에 대해 ‘조정 불성립’ 결정을 내렸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중재위는 ‘신청인의 주장이 이유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직권으로 조정(정정보도문, 반론보도문의 게재 결정 등)할 수 있다. 조정 불성립은 “조정에 적합하지 아니한 현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 내려지는 결정이다.
지씨와 함께 지낸 한 친구는 “2월쯤 지씨는 여권 인사들과 통화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여당 관계자는 “우리 쪽에서 몇 차례 지씨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부재 중 전화 기록이 남아 있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리콜해준 것”이라고 했다.
인천의 구의원을 역임했던 C씨는 “지씨가 ‘열린우리당측으로부터 용돈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고 말했다. C씨는 “그 자리에서 지씨는 ‘출소 후 내가 경찰에 붙잡혔을 때 여권의 힘으로 쉽게 풀려났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C씨는 한나라당 소속 구의원이었다. 다음은 C씨와의 일문일답.
-지충호씨와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5월초 평소 친한 새마을금고 이사장 집무실에 찾아갔더니 지충호씨가 친구와 함께 와 있더라. 그때 처음 만났다.”
-지씨가 그 자리에서 용돈 얘기를 꺼냈나.
“그렇다. 지씨는 열린우리당 의원 두 사람을 거론하면서 ‘의원들이 20만~30만원씩 용돈을 준다. 그 돈으로 그럭저럭 지낸다. 그러나 그걸로 생활기반이 되겠는가. 어쩌다 200만~300만원 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얘기는 없었나.
“대화 도중 내 휴대폰으로 친구 D씨가 전화를 걸어 왔다. D씨는 새마을금고 이사장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와 새마을금고 이사장은 잠시 D씨와 관련된 화제로 대화를 했다. D씨도 한나라당과 관계된 사람이었는데,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천막당사를 차렸을 때 그 앞에서 D씨가 당직자들과 몸싸움을 한 일이었다.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지씨는 ‘나도 폭행사건으로 경찰에 잡혀간 적이 있는데 여권의 힘이 좋아 풀려 나왔다’고 말했다.”
C씨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구청장 공천을 신청했으나 낙천했다. C씨는 “나는 지씨로부터 들은 그대로 말했을 뿐이다. 이 문제로 검찰조사까지 받았는데, 검찰에서도 똑같이 얘기했다”고 주장했다.
지씨는 2005년 12월17일 서울 신촌에서 사학법개정 반대집회를 하는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을 주먹으로 때려 한나라당 당직자들에 의해 파출소로 넘겨진 적이 있다. 곽성문 의원은 “피해자인 내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이 그날 바로 지씨를 풀어준 것으로 안다. 여권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지충호씨는 2005년 8월 출소 이후 한화갑 대표를 두 번 찾아가기도 했다. 개인적인 민원 요청이었다. 면담성사가 안 돼 지씨가 무리하게 항의를 하자 청년당원들이 지씨를 끌어냈다고 한다. 한 대표측은 “대표실에는 민원인이 많이 찾아온다. 최대한 민원청취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표가 이들을 모두 만날 수는 없다”고 했다.
지인들 및 지씨를 만난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정치권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조직적 연계 정황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정치권 접근이 ‘일방 구애’로 끝난 사안인지, 아니면 일부 인사와 ‘쌍방 소통’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지씨의 취업 경위 논란과 관련해 일부 언론이 열린우리당 한 의원을 실명 보도한 것에 대해 해당 의원측은 “지씨가 지역구 사무실에 두 번 찾아와 취직을 부탁했고 여러 차례 통화도 했다. 그러나 민원인에 대한 통상적 대응이었다. 지씨의 취직을 알선한 사실은 전혀 없다. 지씨가 ‘취직이 됐다’며 만나자고 했으나 거절했다”고 밝혔다.
“지씨가 열린우리당측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는 주변 증언에 대해 당사자인 지씨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검찰 발표를 통해선 확인되지 않았다. 향후 지씨가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부인할 수도 있다. 또한 그가 실제로 그런 말을 했다 하더라도, 과장했거나 꾸며낸 말일 수 있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우리당이 지씨를 파견했다는 것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밝힌 바 있다. “지씨는 신념이 없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정치인 테러와 같은 일을 사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
여권뿐 아니라 한나라당도 배후론에 거론됐다.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성명을 통해 지충호씨 사건에 대해 “배후에 한나라당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도 “박근혜 피습사건은 명백한 자작극 테러”라고 주장했다. 테러사건으로 지방선거 압승 등 가장 큰 이익을 본 세력이 한나라당이고, 한나라당 인사들은 정치공작의 경험이 많다는 것이 한나라당 배후론의 주요 논거다. 경찰은 선관위 의뢰로 ‘커터 칼의 비밀’ 등 한나라당 자작극임을 주장하는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중요한 증언’ 번복
지씨는 2005년 8월 가출소 당시 거의 무일푼이었다. 따라서 지씨가 출소 후 범행 직전까지 사용한 본인 명의 신용카드 대금 700여 만원의 출처는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지씨는 가출소 후 올해 2월까지 6개월간 한국갱생보호공단 인천지부 생활관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이후엔 생활보호대상자로 등록했다. 지씨가 모 은행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시점은 2005년 11월경. 당시 지씨는 고정 수입처가 없었다.
이 은행 한 관계자는 “‘카드대란’ 이후 3개월간 월 평균 수입이 70여만 원 이상 되는 직장인, 자영업자에 한해 신용카드를 발급해 주도록 돼 있다. 재직 증명이 돼야 한다. 아니면 수백만원 정도의 예금이 들어있는 은행계좌나 부동산을 갖고 있어야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전산 처리되기 때문에 요건이 안 되는 사람에게 간부나 직원이 임의로 발급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현금 수입이 없던 지씨는 카드깡 등을 통해 현찰을 조달하는 등 이 카드를 매우 유용하게 활용했다.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한 지씨가 어떻게 카드를 발급받았을까.
이 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갱생보호를 받는 사람이나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신용카드가 발급되지 않는다. 지씨가 ‘직업란’에 어떻게 표기했는지 모르겠다. 그 자료는 공개할 수 없다. 다만 해당 부서는 ‘지씨가 제출한 서류에 하자가 없어 발급해줬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지씨가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누군가 도와줬을 개연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지씨와 거래했던 사채업자는 “지씨가 100만원권 수표를 사용하는 것을 봤다”고 밝힌 바 있다. 지씨가 액수가 비교적 크고 출처 추적이 가능할 수도 있는 100만원권 수표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증언이었다. 그러나 지씨는 이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이후 사채업자의 얘기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결론 났다. 최근 이 사채업자와 얘기를 나눴다.
-지씨와 카드깡 거래 등을 한 것이 사실인가.
“소개를 받아 지씨를 몇 차례 만났다. 거래 문제에 대해선 얘기하고 싶지 않다.”
-검찰 조사를 받았나.
“여러 차례 불려갔다. 내가 한 말이 지씨의 진술과 일부 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지씨가 화를 내면서 나와 대질심문까지 시켜달라고 요구했다고 들었다. 위압감을 느꼈다. 내가 지씨와 무슨 원수진 사이도 아닌데…. 이런 일에 더는 개입하고 싶지 않다.”
단독범행론은 ‘범인인 지씨가 사용한 본인 명의 신용카드 대금 700여 만원의 출처가 어느 정도 규명됐다’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지씨는 ‘명의 변경을 일삼은’ 경력이 있다. 사채업자들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지씨 카드의 카드깡 과정에 사용된 휴대폰 역시 외국인 이름으로 등록돼 있었다. 지씨 본인 명의 금융거래에 대한 조사만으로는 배후의혹 규명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단독범행의 정황증거들도 아직은 객관성이 충분치 않다. 지씨가 중간 소개자 두 사람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빌려준 대가로 수원 B유흥주점측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사용한 700여 만 원 가운데 대부분의 출처를 설명해줄 수 있다.
그런데 검찰의 기존 발표 내용에 따르면 B업소는 지씨에게 돈을 직접 준 것이 아니라 중간 소개자에게 준 것이다. 중간 소개자는 100만원권 수표는 지씨에게 준 적이 없으며 10만원권 수표나 현금으로 지씨에게 돈을 줬다(검찰 발표).
그런데 검찰은 B업소의 돈이 ‘세 차례’만 중간 소개자를 통해 지씨에게 전달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검찰 브리핑에 참석했던 한 언론사 출입기자는 “브리핑 내용만으로는 500만원이 전액 지씨 손에 전해졌는지, 아니면 중간 소개자 2명이 상당액의 수수료를 떼고 일부만 지씨에게 줬는지 확실히 확인이 안 된다”고 말했다.
지씨가 B유흥업소에 명의를 빌려준 기간은 한달 남짓이다. 지씨가 전과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B업소측에서 오히려 꺼려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지씨의 지인인 김모씨는 “지씨가 수원 유흥주점 사장에게 ‘조금만 (돈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걸 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지씨가 카드깡을 한 것도 단독범행의 정황증거로 거론됐다. 700만원 대부분이 카드깡이기 때문에 지씨가 실제 사용한 금액은 300만원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카드깡은 기본적으로 카드 사용자가 엄청난 고리(高利) 부담을 감수하는 사채거래다. 지씨가 실제 사용한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씨가 부담한 결제금액이 핵심이다. 또한 지씨가 사채업자와 거래를 했다는 점만 나왔을 뿐 구체적인 거래 과정이나 내역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씨가 지인들로부터 금전적 도움을 받았다는 점도 단독범행론의 정황 증거로 거론됐다. 그러나 돈을 준 지인에 따르면 지씨가 그들에게 받은 돈은 몇만원 단위에 지나지 않았다.
강력범죄는 현장에 단서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이 사건의 경우 범구(犯具)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지충호씨는 문구용 커터 칼을 사용했을까.
이 사건을 지씨의 우발적, 충동적 범행으로 보는 사람들은 커터 칼을 그 근거로 댄다.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실제로 지씨는 범행 당일 현장 인근 상점에서 이 칼을 구입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지씨는 또한 커터 칼의 고작 한 단(1cm)만을 내어 범행에 사용했다. 이를 두고 “한 단으로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 힘들다. 따라서 지씨는 살인을 할 의사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 같은 견해가 사실일 가능성은 있다. 지씨는 면도칼로 여성의 얼굴에 상처를 입힌 전력도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지씨가 구입해 사용한 커터 칼의 길이는 14.5cm다. 한 강력범죄사건 전담 경찰관은 “일반인은 흉기 소지로는 체포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씨처럼 가출소된 폭행 전과자는 15cm 이상의 칼 등 흉기를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체포된다. 전문가는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커터 칼’은 공산품이므로 대체로 길이가 일정하다.
지씨의 범행은 일몰 전 군중이 운집한 다중이용 장소에서 이뤄졌다. 이 경찰관은 “이 같은 시간적, 공간적 조건에서 목표 대상자에게 타격을 입힌 뒤 도주에 성공하기 위해선 커터 칼이 매우 효율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격 효과 면에서 커터 칼은 날을 1cm만 내어도 테러 대상자에게 충분히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총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범구를 숨긴 채 테러대상자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서야 범행성공확률이 높다. 커터 칼은 이런 점에서 유리하다.
더 중요한 것은 범행 은닉 및 도주에도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범인이 칼을 손 전체로 감싼 채 날을 보일 듯 말 듯 내어 순간적으로 공격을 가할 경우,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도 칼을 볼 수 없게 된다. 면도날은 크기는 작지만 칼을 손으로 감쌀 수 없어 커터 칼에 비해 노출될 확률이 높다.”
또 범구가 발각될 경우 주변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우발적 행위였다고 주장할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커터 칼을 이용한 테러가 사전 기획된 것이라면, 기발하면서도 대담한 방법이다. 지금까지 시도된 전례도 없어 모방범죄로 볼 여지도 없다. 지씨는 커터 칼의 이 같은 ‘특장점’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날을 1단만 낸 것부터 그렇다.
“히트 앤 런, ‘완전범죄’ 노렸다”
지씨를 현장에서 붙잡은 사람은 한나라당 김영숙 의원실 소속 양우식 비서관이다. 양 비서관(태권도 선수 경력, 한국체육대 졸업)은 “지씨는 범행 후 도주에 성공할 뻔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가 연설한다는 예고방송이 나가자 지씨가 유세차로 올라가는 계단 앞으로 나섰다. 박 대표가 올라갈 수 있는 길을 터주기 위해 내가 팔로 지씨를 약간 제지했다(사진1).
박 대표가 계단에 막 오를 때 지씨가 순간적으로 커터 칼을 꺼내 박 대표의 얼굴에 댔다. 침착하게 대표의 귀 아래 부위에 칼을 밀착시켜 올려놓더니 손가락으로 힘껏 누르면서 턱 쪽으로 그어갔다. 날이 피부 속에 부드럽게 파묻히며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씨의 행위는 순간적으로 일어났고, 그는 날을 아주 조금만 낸 채 칼 몸통을 손으로 덮어 숨기고 있었다. 이 때문에 바로 옆 사람도 단지 박 대표의 얼굴 쪽으로 지씨가 손을 댔다 뗀 것으로 밖에는 안 보인다(사진2). 범행당시 지씨가 범인임을 인지한 사람은 나를 빼곤 아무도 없었다.
지씨는 범행을 마친 뒤 바로 등을 돌려 인파 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도주하려는 의사가 분명했다(지씨는 동시에 범구인 칼을 슬쩍 떨어뜨렸다). 빠져 나가는 지씨를 내가 뒤에서 달려들어 제압했다. 내가 소리쳤지만 한동안 주변 사람들은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지씨의 범행 순간을 아무도 못 봤기 때문이다.”
지씨와 함께 거주한 적이 있는 친구 E씨는 “평소에 지씨는 커터 칼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씨는 자신의 머리 속에서 우연히 커터 칼이 떠올라 이를 충동적으로 실행에 옮겨 본 것일까. 6월4일 한 노숙자가 43cm 길이의 망치로 이명박 서울시장을 공격하려다 청원경찰에게 제지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망치가 쉽게 눈에 띄었기 때문에 막을 수 있었다. 우발적, 충동적 공격이라면 이처럼 한두 가지 허술한 점이 있어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커터 칼 테러는 기획에서 실행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고 완벽했다.
박근혜 대표와 오세훈 후보의 5월20일 신촌 유세는 전날 오후 늦게 결정됐다. 지씨는 사건 당일 오전 오 후보 사무실 앞까지 가서 공중전화로 박 대표와 오 후보의 일정을 확인한 뒤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 이날 박 대표는 인천시 계양구, 강화군에서도 지원유세를 했다.
그러나 지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인천을 범행 장소로 택하지 않고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 신촌에 가서 박 대표를 테러했다. ‘지씨가 신촌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20분. 그는 4시간 동안 박 대표를 기다렸다.
지충호씨는 돈에 쪼들렸으며 수십만원, 수백만원 때문에 불법·탈법적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나라당에 대한 증오’는 그의 마음속에 없었다. 지씨가 박 대표를 테러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진짜 동기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