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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해(국방차관)가 선공, 윤종구(해군무관)가 마무리

북·소 군사동맹 와해 비사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권영해(국방차관)가 선공, 윤종구(해군무관)가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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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북·러 자동군사개입의 모순 지적한 권영해
  • ● 러시아 외교부 설득한 주러 해군무관 윤종구
  • ● 윤종구, “내 아들은 푸틴 딸과 결혼하지 않았다”
  • ● 중국에도 북·중 자동군사개입 폐기 요구해야
  • ● 왜 對中 전선에는 서희 같은 외교관이 없는가
권영해(국방차관)가 선공, 윤종구(해군무관)가 마무리
‘대우조선해양(주) 고문인 윤종구 해군 예비역 준장(해사 24기)’ 하면 금방 알은체 하는 이를 보기 힘들다. 하지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딸과 결혼설이 돌았던 한국 젊은이의 아버지”란 설명을 붙이면, “아! 그 사람” 하고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결론부터 밝히면 윤씨의 아들은 푸틴 대통령의 딸과 결혼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모른다. 그것은 두 젊은이가 결정할 일이기 때문이다.

윤씨는 1997년부터 4년 6개월 간 러시아 주재 국방무관이 돼 두 번째로 모스크바에 체류하게 됐는데, 그때 청소년이던 그의 두 아들이 푸틴의 두 딸과 가깝게 지냈다. 큰아들은 큰딸과, 작은아들은 작은딸과 친구가 돼 넷이 어울렸던 것. 윤씨가 귀국하면서 두 아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네덜란드에 푸틴 딸이 숨어 산다”

그 사이 의대를 마친 푸틴의 큰딸은 2009년 러시아 회사에서 일하는 네덜란드인 요리트 파센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결혼식은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석유회사로 옮겨간 남편을 따라 부어스코텐 시(市)에서 ‘조용히’ 살다가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7월 17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을 이륙한 쿠알라룸푸르 행(行)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을 지나다 친러 우크라이나 반군이 쏜 대공 미사일을 맞고 격추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탑승자 295명 전원이 사망했는데, 그중 193명이 네덜란드인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반군 측에 대공 미사일을 제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다. 그때 이웃한 힐베르쉼 시(市)의 시장인 피터르 브로어체스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푸틴의 딸을 추방하는 것이 러시아에 대한 확실한 경고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아버지의 죄를 딸에게 묻겠다는 연좌죄를 거론한 것이라 논란이 일자, 시장은 즉각 트위터를 통해 “현명한 발언이 아니었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방송을 들은 사람들은 큰딸(마리아 푸틴)이 살고 있는 아파트 주소를 알아내고, 그 앞에 모여 침묵시위를 벌였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윤씨의 큰아들은 지난해 11월 미국 여성과 결혼했다. 역시 미국에서 공부한 차남은 미혼인 상태로 러시아로 건너가 회사에 다니고 있다.

윤종구 씨는 “몇몇 언론에서 첫째와 둘째도 구분하지 않고 우리 아들이 푸틴 딸과 결혼했다고 수차례 엉터리 보도를 했다. 그러한 보도는 제발 하지 말아 달라. 둘째 아들 일이 궁금하다고? 그것은 나도 모른다. 장성한 아들이 결정할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개입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농담이지만 둘째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결혼한다면, 나는 ‘미소(美蘇)의 며느리’를 거느린 시아버지가 되는 것인데, 그 스트레스도 생각해 달라”며 손사래를 쳤다.

김일성이 서명한 우호조약

그러한 윤씨가 박근혜 정부의 대중(對中) 외교를 보며 매우 답답함을 토로한다. 그는 “왜 알맹이 없는 외교, 밥만 먹는 외교에 전력을 기울이느냐”고 비판한다. ‘밥만 먹는 외교’라고 한 것은 과장된 지적이지만, 그의 애국심이 묻어 있는 표현으로 보인다. 그는 이러한 평가를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한·러 외교사에 큰 획을 그은 업적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주재 해군무관으로 파견되기 전 그는 권영해 당시 국방부 차관의 지시를 받아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해 성공시킨 역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성공 비화를 처음으로 ‘신동아’에 털어놓았다. ‘한국 정부의 대중외교 전략을 바로 세우기 위해’라는 단서를 달고.

한·러 외교사에서 그가 이룬 최대의 업적이란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을 담은 북한-소련 간의 ‘우호협조 및 호상(互相)원조에 관한 조약(1991년 이후 북·러우호조약)’을 폐기시킨 것이다. 이 조약은 1961년 7월 6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북한 수상 김일성과 소련 수상(공산당 총비서 겸임) 흐루시초프가 직접 서명한 것이다. 그리고 양쪽 의회가 동의해 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발효했다.

북·러 군사동맹을 보장한 이 조약의 효력은 10년인데, 10년 뒤에는 한쪽이 폐기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5년씩 효력을 연장하기로 했다. 양쪽은 폐기 의사를 밝히지 않았기에 이 조약은 계속 유지됐다. 그리고 1991년 소련이 무너짐으로써 고비를 맞았으나, 러시아가 구 소련의 모든 지위와 책임을 이어받기로 함으로써 존속했다.

이 조약 1조에는 ‘체약 일방이 어떠한 국가나 국가련합(유엔이나 다국적군 등을 지칭)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체약 상대방은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주: 조약 문장은 북한 것을 옮김). 상대가 전쟁을 하면 다른 쪽은 자동으로 군사지원을 해주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2조에 ‘체약 각 방은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동맹도 체결하지 않으며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행동 또는 조치에도 참가하지 않을 데 대한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했다. 1조의 의무를 강화해놓은 것이다.

윤씨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길고 긴’ 수련의 길을 밟아, 이러한 내용을 담은 조약을 영원히 사라지게 했다. 잠시 옛날로 돌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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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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