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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산책

한국 불교 통해 본 중국문화

민중불교 기여한 김교각, 조화사상 설파한 원효

  • 글: 유재신 토론토대 동아시아학부 석좌교수

한국 불교 통해 본 중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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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의 문화는 중국과 한국이 함께 이룩한 것이다. 특히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독창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그럼에도 한국의 학계는 동아시아 문화가 한국문화와 중국문화의 조화를 통해 발전해온 사실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국 불교 통해 본 중국문화

신라 고승 김교각의 등신불. 3년이 지나도 법구가 변하지 않자 이를 보전한 것이다.

한국은 중국문화권에 속하고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유입된 불교와 도교가 고유문화와 접목되어 한국문화를 이룩했고 또 그것이 일본으로 건너갔기에 일본문화의 원류가 되었다. 동아시아의 문화는 중국이 홀로 이룩한 것이 아니다. 중국과 한국이 협력해서 이룩한 것이다. 삼국시대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교류를 보나 만주가 중국 땅으로 편입된 다음 고구려 유민과 발해민 등이 수백년 동안 중국문화에 기여했던 점을 보더라도 그것이 중국 홀로 이룩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문화를 이해함에 있어 동아시아 문화가 중국과 한국의 조화를 통해 발전된 것이라는 점을 그간 한국 학계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1986년 옌볜대학에 초빙교수로 있을 때 베이징에 있는 북경대학, 중앙민족대학, 창춘의 동북사범대학 등에서도 동양문화, 특히 동아시아 문화와 한국문화의 관계에 대하여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각 대학의 교수들과 토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발견하고 귀중한 자료를 수집했다. 필자는 그 중에서 고구려와 발해사 자료들을 모아 고려대 김정배 교수와 ‘중국학계의 고구려 인식(1991)’ 이라는 책을 함께 출판했는데 거기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고구려 무덤벽화에 대한 연구결과가 자세히 실려 있다. 또한 ‘발해국사(1988, 김정배·유재신 편저)’를 통해 발해문자를 소개하는 한편 발해사에 대한 논문목록도 수록했다.

이 글에선 극히 부분적이긴 하지만 한국 불교학자들이 중국에 끼친 영향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승랑 승랑은 고구려 문자왕 때에 중국 양나라에 가서 중국 삼론종 성립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여 삼론종의 대가가 되었다. 중국 길장(吉藏)이 대성시켰던 삼론종은 고구려의 삼대조(三代祖)인 승랑의 사상을 기점으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이를 신(新) 삼론종이라 한다. 이에 대해 라십(羅什)으로부터 승랑 이전까지의 성실론적(成實論的)인 공(空)사상(思想)을 우(右)삼론론이라 한다.

승랑은 ‘공(空)’과 ‘가(假)’를 모두 갖춘 것이 실상(實相)이며 이것을 중도(中道)라 했다. 그가 ‘공’ 사상을 근간으로 제창한 중도사상은 획기적인 것이다. 필자는 ‘한국불교개론 (Introduction of Buddhism of Korea)’에 김동화(金東華)의 고구려불교 사상을 소개했는데 이것은 중국에 끼친 한국 불교학자를 서구 사회에 처음 소개한 것이다.

중국 삼론종의 선구자

이제 중국에 영향을 끼친 신라와 고려의 불교학자들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원측 신라의 고승 원측(圓測·613∼696)은 신라의 왕손이었다. 그가 쓴 ‘해심밀경소(海深密經疏)’는 중국어뿐 아니라 당시 티베트어로도 번역되어 티베트의 사상계와 종교문화 개혁에 크게 공헌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중국어로 된 책의 일부가 없어졌는데 다행히도 최근 중국 간쑤성 둔황(焞惶) 유적지에서 티베트어로 쓰여진 책이 발견되어 그것이 다시 중국어로 번역되었으며 또한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해심밀경소의 전문(全文)이 남게 된 것은 불교문화연구에 크게 공헌할 것으로 생각된다.

티베트어로도 번역된 원측사상

원측은 원래 신라의 왕손으로 어려서 출가하여 지혜롭고 유능한 승이 되었다. 정관 초년에 중국 장안에 가 있을 때 당 태종이 그의 총명을 아껴서 도첩을 하사하여 원법사(元法寺)에 있게 하였다. 그는 당나라에 머무르면서 역경(譯經)과 저술 등에 종사하여 중국의 불교 발전에 공헌하였다. 원측은 유식(唯識)학자였으며 후에 서명사에서 대덕(大德)이 되었다. 원측 사상의 요체는 중국의 자은종(慈恩宗)과 달리 자종(自宗)을 고집하거나 타파(他派)를 배척하지 않고 융합하는 것으로서 원효의 사상과 비슷하다.

김교각 김 지장(地藏)보살이라 일컬었는데 그의 본래 이름은 교각이요, 신라 국왕 김씨의 족속이다. 그는 개원 7년(A.D. 719)에 당나라에 건너와 구화산에서 수도하고 지냈다. 그의 인격은 고상하고 매우 결백해 많은 불교도들이 그를 따르기 위해 구화산으로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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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재신 토론토대 동아시아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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