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면 그녀는 내게, 전성기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얼굴을 ‘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다른 스타들처럼 따로 포즈를 취하는 대신 인터뷰하는 도중 자신의 얼굴을 그냥 찍어달라고 사진기자에게 부탁했다.
그랬다. 그녀의 주름진 얼굴은 지금도 당당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아름다움과 도도함은 그녀를 단순한 연기자가 아니라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로 자리잡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인터뷰 내내 그녀에게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에너지와 자의식이 넘쳐흘렀다.
도대체 누가 그녀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열일곱에 데뷔해 열아홉 살에 첫 결혼을 했고 스물세 살에 재혼하여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던 삶. 그리고 이어지는 아들의 죽음과 두 번째 남편 최무룡씨의 영화 제작 실패, 이혼 재혼을 반복하며, 월세와 대저택을 오가던 삶, 입도선매격으로 수입한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로 흥행 대박을 터뜨리고, 남편에게는 그렇게도 말렸던 영화제작을 시작해 지미필름의 대표와 영화인협회 이사장이란 공직을 맡았던 그녀의 삶.
이제 63세인 그녀는 다시 한번 이혼해 또다시 세간의 눈길을 받고 있다. 보통 여인네라면 그 절반의 삶조차 감당키 어려웠을 질풍노도 같은 삶을 견디며 지탱해온 이 철의 여인의 삶의 비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가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다”
그녀는 인터뷰 도중 자주 “나는 어제 일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슬며시 다른 주제로 방향을 바꾸곤 했다. 필자가 느끼기에 그녀의 망각은, 현재를 살게 하는 거의 유일한 방어기제이자 미래로 향하는 마지막 출구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대 여배우는 과거를 흘려보내며 자신 앞에 닥친 현재의 삶을 부단히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배우로서, 연기자로서 김지미를 연구하는 일은 인간 김지미를 인터뷰하는 일보다 더 어려울 듯싶다. 그녀 자체가 자신의 영화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데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가 무려 700편에 달한다는 사실에 압도되었는지 세상의 많은‘김지미론(論)’에도 그녀의 연기 자체에 대한 세세한 분류나 언급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그녀의 연기 세계를 요약하자면, 영화 속의 김지미는 가부장제에 짓눌리거나 무조건 순종하는 가련한 여인네보다는 현대적인 이미지의 여성이었다. 팜므 파탈, 단순히 악녀라고 번역할 수 없는 강인한 의지와 품위로 독립적인 기질이 강한 주체적인 여성상을 체화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김지미란 여배우는 영화판을 열렬히 그리고 평생 뜨겁게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과거 인터뷰에서 “출연을 못하면 스태프로 뛰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고, 이번 인터뷰에서는 “좋은 역할이라면 이빨이라도 다 뽑고 맡겠다”고 고백했다. 아마도 그녀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그녀가 어떤 남자에게도 보여주지 못했던 불꽃, 오직 영화하고만 가능했던 평생 지속된 김지미의 단 한 개의 연애담이기도 하리라.
-한동안 외국에 나가 계셨죠? 얼마 만에 들어오신 건가요.
“3개월 만이에요. 자주 드나들어요. 미국에 식구가 많거든요. 그래서 한번 나가면 몇 개월씩 있게 돼요. 가려고 그러면 식구들이 자꾸 더 있다 가라고 그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