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불만 원인이 반드시 로마에만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약자의 처지에 있었던 민족은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의지할 것이라고는 피해의식밖에 없기 때문에 강자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기 쉽다. 다른 속주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고 끝날 일도 유대인과의 사이에서는 문제가 되곤 했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역사란 결국 반복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로마인의 관용을 오해했던 코린트인들과 같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유대인들과 같이 보이는 현실 너머의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실수를 오늘날의 우리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보려고 한다. 하지만 조직이든 국가든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보고 싶지 않은 현실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톡톡히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많은 이들이 경기 불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불황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데 있다. 육신은 이 땅에 있지만 이미 정신은 ‘이민’을 떠나버린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특히나 투자할 경제적 여력이 있고, 어느 정도 살림 기반을 마련한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늘고 있다. 나는 그런 현상을 ‘정신적 이민’이라고 부르겠다.
좋든 싫든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이 떠나버렸으니, 어떻게 성장이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의 겉은 물질로 드러나지만, 그 속은 의욕과 의지라는 엔진에 의해 움직인다. 불신, 보복, 갈등, 분쟁, 비난, 음해, 사기…. 이러한 낱말들이 오늘날 이 땅을 대표하는 용어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어느 지방 도시에 강연을 갔을 때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한 쪽에서는 새 건물을 짓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폭약을 이용해 건물을 허물고 있었다. 건물을 허무는 일은 건물을 세우는 일과는 달리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사람의 명성이나 조직의 번영 또한 이와 같아서 사람이 명성을 쌓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명성을 잃는 데는 하룻밤이면 충분하다. 하나의 조직, 하나의 국가가 번영의 기반을 닦으려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수십 년 쌓여야 하지만 그것을 허무는 일은 불과 몇 년 걸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허물어지는 모습은 쉽게 눈에 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것들이 허물어지는 일은 벼랑 끝에 다다르기 전에는 알아차리기 힘들다. 조직과 국가를 지탱하는 자산이 그러하다. 그래서 더더욱 무서운 일이다.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한 우리 사회는 폭약으로 허무는 건물처럼 쉽게 무너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가 가진 우열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자질을 어떻게 활용했는가에 달려 있다는 ‘로마인 이야기’의 교훈이 새삼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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