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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광장 논란’ 지상격돌

상상력 빈곤, 정치적 야심에 사라진 ‘빛의 광장’

서울시청 앞 광장 현상공모 당선자 서현의 직격고발

  • 글: 서 현 한양대학교 교수·건축학 hyunseo@hanyang.ac.kr

상상력 빈곤, 정치적 야심에 사라진 ‘빛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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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빈곤, 정치적 야심에 사라진  ‘빛의 광장’

컴퓨터 모니터가 바닥에 깔리도록 설계된 시청앞 광장 예상도.

그러나 이 시대의 인터넷은 맞춤법도 맞지 않게 써놓은 시민의 목소리까지 시장에게 직접 전달되는 시스템을 가능케 했다. 이것은 새로운 시민사회의 모습이다. 놀랍게 그 맨 앞에 한국이 있다. 세상의 눈이 한국을 향해 동그래졌다. 축구장에 모이는 사람들의 복장을 통일시키고 대통령선거의 결과를 좌우할 정도로 인터넷으로 꽁꽁 묶인 이상한 나라가 한국이었다.

인터넷과 공동체의식,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니터가 세상의 매개체였다. 책도 전화도 미술관도 도서관도 카페도 그리고 여자친구도 남자친구도 모니터 안에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존재까지도. 그 안에선 아바타가 자신을 대신했다. 설계는 그 매개체로 광장을 만드는 데서 출발했다. 그러니까 모니터가 바닥에 깔린 광장이다.

모니터가 시민사회를 보여준다면 운영방식도 시민사회에 걸맞게 임대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 광장에 놓인 모니터를 직접·보통·평등의 정신 아래 임대한다. 대기업도, 유명 연예인의 팬클럽도, 고위관료도 이웃의 초등학생과 마찬가지로 한 개의 모니터만 빌릴 수 있다. 누구나 단 한 장의 투표용지를 받듯이. 그 모니터를 통해 자기가 공개하고 싶은 내용을 띄운다. 광장 전체의 색과 모습은 시민들이 올린 화면의 집합적인 영상으로 표현된다. 광장은 빛으로 번안된 시민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빛의 광장’으로 명명했다.

왜 광장이 필요한가

해마다 연말이면 명동과 종로가 들끓는다. 축제를 원하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을까 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별로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빛의 광장’은 축제를 담고자 한다.



이런 모습을 상상해보자.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모니터의 화면이 하나씩 꺼진다. 광장은 침묵의 어둠으로 덮인다. 그리고 새해가 시작되면서 광장의 모니터가 한꺼번에 점등되고 ‘빛의 광장’이 되살아난다. 그때 보신각에서는 전통대로 종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이 ‘빛의 광장’이 축제를 담아내는 방식이다.

현상공모는 경쟁이다. 심사위원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광장이 너무 열려 있다는 의견에 따라 빛의 기둥을 첨가했다. 모니터 개수가 계속 문제였다. 적당한 선에서 무작위로 배열해놓으니 2300여개가 됐다. 숫자에 얽매이는 디자인을 혐오하지만 현상설계니만큼 혹시 이런 숫자에 호감을 갖는 심사위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에 따라 2003개로 결정했다. 2003이 무언가를 상징하거나 의미한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기로 했다.

대한문 어간(御間)에 서서 원구단 쪽을 바라보면 원구단의 황궁우와 원구단 공원이 강조되도록 바닥 조형물을 배치했다. 이 공간의 형성에서 소공로가 지니는 중요도를 존중해 분수는 소공로의 축과 맞추어 배열했다. 버스정류장이 마련된 위치에는 나무를 심었다. 광장은 인위적 공간이다. 그만큼 나무를 심는 방법도 인간의 질서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무는 격자형으로 배열했다.

광장에서 필요한 온갖 도시시설물들은 서비스 스테이션(service station)이라는 도구 속으로 넣어 일괄 정리했다. 공중전화 부스, 벤치, 자동판매기, 안내판 등이 그것이다. 서비스 스테이션 자체는 조명등이다. 이것만으로도 특허감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시청 청사의 대척점에 서비스 스테이션과 인터넷 서버를 배치했다. 이 사회를 유지하는 두 개의 무게추를 극명하게 대비시킨 구도다.

당선작, 찬사와 우려 엇갈려

2003년 1월27일. 저녁에 당선통지가 왔다. 당선안이 보도되자 극단적인 찬사와 비판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엽서 반 장 크기의 조감도를 보고 이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각기 의견을 내놓았다. 설계자로서 칭찬보다 비판에 귀기울이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러나 비판의 내용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2003개의 모니터는 2003년을 상징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런 괴상한 상징을 앞세워 설계한 건축가에게도 비난이 쏟아졌다. 광장 전체에 유리를 까는 것으로 간주한 비난이 가장 직설적이었다. 미끄러워서 어떻게 걸어다니냐는 것이다. 물론 광장 전체에 유리를 깔지 않는다. 모니터를 흩뿌려놓고 그 위에 유리를 덮더라도 전체 광장면적의 3.3%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돌이나 나무판이다. 비가 오면 어떤 길이든 미끄럽다. 눈이 와도 마찬가지다. 건물의 로비에 물갈음방식으로 마감한 돌 표면도 물이 묻으면 미끄럽다. 문제는 어떻게 미끄럽지 않게 만드느냐다. 사람들은 그 작은 조감도에서 파악할 수 없는 대비책은 아예 없는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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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 현 한양대학교 교수·건축학 hyunseo@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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