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무렵 기자는 우연히 당시 벤처기업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로부터 ‘이수영 사장이 주주들이 짜놓은 덫에 걸려 억울하게 웹젠을 그만두었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배경에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여러 후보군 중 한 사람의 핵심 측근이 자리잡고 있다는 이 관계자의 귀띔은 더더욱 기자의 흥미를 자극했다. 그녀가 지난해 8월 웹젠 이후 두 번째 CEO를 맡았던 마이클럽 사장직을 내놓으면서 ‘두 달 뒤에 모든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던 의미심장한 말도 기자는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IT나 게임업계에 대한 취재 경험이 많지 않았던 기자는 당연히 ‘이수영’이라는 사람도 다른 매체의 기사를 통해 접해 보았을 뿐 일면식도 없었던 터였다. 이 사장은 당시 웹젠을 그만두고 여성 포털 마이클럽 사장을 맡았다가 이마저 그만두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던 중이었다.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온 뒤 서너 차례 통화한 끝에 ‘인터뷰가 아니다’라는 선을 긋고서야 이수영 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자리를 마주한 곳은 강남의 메리어트 호텔 지하 멤버스 클럽.
“어머, 진짜 디아블로네.”
웨이터가 내온 칠레산 와인의 이름이 유명 게임 타이틀과 이름이 같은 ‘디아블로’인 것을 확인하자 그녀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게임업계의 최고 유명인사와 시중에 유명한 게임 타이틀과 같은 이름의 와인을 마시면서 만남을 시작한 것만으로도 왠지 대화가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수영 사장은 이리저리 찔러보는 기자의 질문에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자정이 훨씬 넘도록 겉도는 이야기 끝에 ‘나중에 인터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그 후에도 기자는 몇 차례 이 약속을 내세워 접촉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이수영 사장은 장애인이면서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부장검사로 성공한 정범진씨와의 결혼을 발표해 또 한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5개월 걸린 인터뷰
‘신동아’ 3월호 최종 마감을 앞둔 2월 중순경, 결혼 소식을 화제삼아 다시 ‘인터뷰를 하자’며 이수영 사장과 만났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3월호의 실제 발행 일자를 확인하더니 갑자기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4월호에 인터뷰 기사를 게재할 수 있도록 다시 약속을 받았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었던 만큼 이번 인터뷰는 이수영 사장으로서는 ‘작심하고’ 기자를 만난 것이었다. 지난 3월9일 강남구 논현동 그녀의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는 당연히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회사의 성장이나 발전에는 관심이 없고 ‘머니게임’만 노린 무책임한 초기 투자자들이 벌인 일입니다. 그분들은 연줄을 동원해서 돈만 벌 줄 알았지 회사라는 것을 바라보는 시각부터가 저와는 달랐어요. 회사는 언제든지 팔아치울 수 있는 것이라는 식의 ‘게임의 법칙’만이 지배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수영 사장은 인터뷰 초반부터 웹젠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사실이 본인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 웹젠이 코스닥 등록을 추진하던 시점에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배경은 무엇입니까?
“2002년 당시 코스닥 심사에 들어가면서 회사 대여금에서 문제가 발생했던 거예요. 하지만 당시 초기 투자자들이 저에게 “코스닥위원회에서 등록 심사를 담당하는 믿을 만한 사람이 ‘이수영 사장이 사임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고 종용하는 바람에 일단 서류상으로 제가 대표이사직을 내놓고 경영 경험이 전혀 없는 엔지니어 중 최연장자를 대표이사로 앉혀서 코스닥 등록 서류 심사를 받았던 거죠.”
이 사장이 이야기하는 ‘대여금’이란 당시 회사돈을 잠시 빌려쓴 뒤 채워넣었던 것을 말한다. 당시 이수영 사장은 주주 한 명이 팔려고 내놓은 주식을 개인 자격으로 사들였는데 일시적인 자금 부족으로 회사돈을 꿔서 주식 매입 대금을 치르고 몇 달 뒤 채워넣었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봤을 때 회사 대표의 대여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 큰 금액이 아니었고, 코스닥 등록 심사 서류를 제출한 것이 2003년인데 그 돈은 이미 2001년에 발생해서 회계처리가 끝난 것이었거든요. 게다가 발생 사유도 모두 소명 가능한 것인 데도 그것 때문에 대표이사를 바꿔서 코스닥 등록 심사를 받고 나중에 복귀해달라는 것이었어요. 물론 제 입장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작 나를 제외하고 엔지니어 3명과 투자자들이 모여서 그렇게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렇게라도 해서 빨리 코스닥을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