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호

중국시장은 ‘경제올림픽’, 세계수준으로 정면승부하라

노용악(LG전자 중국지주회사 고문)의 중국사업 노하우

  • 글: 대담·황의봉 동아일보 출판국 부국장·전 베이징특파원 heb8610@donga.com

    입력2004-03-29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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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대한 중국시장이 한국에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가져다주고 있다. 수출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기업의 중국진출은 가히 러시현상을 보이고 있는 반면, 국내산업의 공동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 중국시장의 특성과 공략 노하우, 그리고 중국경제의 파고를 극복할 우리의 생존전략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중국시장은 ‘경제올림픽’, 세계수준으로 정면승부하라
    우리 사회에 중국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게 엊그제가 아니지만 요즘처럼 중국이 중대한 관심사로 떠오른 적도 없는 듯하다. 그 핵심은 역시 고속으로 성장하는 중국의 경제다. 금년들어 기록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수출도 따지고 보면 대(對)중국수출의 급증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중국진출 한국기업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휴대전화 단말기가 인기 상종가를 기록하더니 이제는 국산자동차가 중국대륙을 누빌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너나할 것 없이 떠나는 바람에 산업공동화 우려가 현실화되고, 이로 인해 사라진 일자리가 100만개에 달한다는 비명이 나오고 있다. 중국경제가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인 셈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이 우리에게는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노용악(盧庸岳·64) LG전자 중국지주회사 고문은 10년째 중국현지에서 사업을 진두지휘해온 경영인이다. 노 고문은 2002년에 중국경제보가 뽑은 ‘중국 10대 가전(家電)인물’에 선정됐고, 지난해에는 사스 창궐 기간에 보여준 용기와 사업능력을 평가받아 ‘역경을 이긴 10대 경영인’(중국 재경시보), ‘비상인물’(非常人物·대단한 사람, 경제참고보)로 꼽히는 등 중국 언론매체들로부터 높이 평가를 받은 바 있다.

    1965년에 LG전자에 입사해 한국 전자산업의 산증인이자 마케팅 전문경영인으로도 유명한 ‘중국통’ 노용악 고문. 그가 체득한 중국에서의 성공 노하우는 어떤 것일까. 또 그의 눈에 비친 중국시장의 내막과 특징은 무엇일까. 그리고 현지에 진출한 혹은 진출하려는 한국기업인들은 어떤 사업전략을 구사해야 하나? 이번달 중국탐험 인터뷰는 지난해 중국경제를 강타했던 사스파동의 극복사례를 시작으로 노 고문의 LG전자중국지주회사 경영 노하우를 들어본다.

    사스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지난해 사스가 창궐해 외국기업인들이 서둘러 중국을 떠나 귀국하던 시기에 노 고문은 중국에 계속 머무른 것은 물론 ‘아이 러브 차이나(愛在中國)’ 캠페인을 벌여 중국인들로부터 크게 신망을 얻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스기간중 중국인들로부터 가장 큰 가치를 얻은 기업의 대표’로 ‘비상인물’에 뽑히기도 했는데요. 당시의 상황은 실제로 어땠습니까.

    “무서웠지요. 그때 분위기를 전하면 이런 식입니다. 제가 계속 출근하니까 직원들이 회사에 나오고 싶지 않아도 안나올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연세가 든 사람에게 더 잘 걸린다는데 나오실 필요가 뭐 있습니까’ 하는 거예요. 제가 피신을 해야 자기들도 피신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사스 발생 초기에는 정말로 공포가 엄습했으니까 이런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통계적으로 보면 교통사고로도 몇백 명씩 죽는데 사스에 걸릴 운명이면 걸리는 거지 뭐, 이 기회를 이용해 우리가 중국사회에서 한 단계 점프해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의연하게 대처했는데, 주변의 평가가 달라지고 성과도 나니까 조금씩 안정되어갔죠.

    중요한 것은 덮어놓고 무모하게 버틴 게 아니라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입니다. 소독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오렌지, 김치 같이 사스 예방에 좋다는 음식을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공급했습니다. 물론 사스 예방약도 식구 숫자대로 지급했고요. 사스 예방에 좋다는 것은 다 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하니까 직원들이 집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회사에 출근하는 게 더 안전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어요.

    이렇게 내부적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모든 마케팅 컨셉트를 사스 공포에 질려 있는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바꾸는 작업을 했어요. 예를 들어 전자레인지 같으면 살균효과를 마케팅 컨셉트로 잡고 광고전단과 카탈로그까지 모두 바꿨습니다. 그 결과 매출도 늘고 주위에서 좋은 소리도 듣고 중국정부도 고마워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린 셈이었죠.”

    -당시 중국에 진출한 다른 외국기업들은 어땠습니까.

    “서양사람들은 대개 쉬었지요. 결과적으로 중국 국내업체들은 덜 쉬었고요. 저희 회사 바로 옆의 일본 마쓰시타 공장도 가동이 중단됐었습니다. 환자가 한 명만 발생해도 그 공장이 폐쇄되었으니까요. LG는 예방조치를 철저히 한 탓인지 다행히 직원 중에 감염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사스파동 때의 인상적인 처신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중국에 진출한 LG전자는 지난해 ‘포춘’ 중국판이 선정한 ‘가장 일하고 싶은 10대 기업’에 한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선정되는 등 중국에서 성공한 대표적 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동안 대(對)중국사업의 실적은 어땠습니까. 그리고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다고 보십니까.

    “1993년 중국에 진출한 지 10년 만인 2003년에 LG전자는 중국시장 매출이 70억달러에 도달했고, 전국 곳곳에서 19개의 공장을 가동하는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주요제품은 PDP, LCD, 프로젝션TV 등 디지털 제품과 디오스냉장고 트롬세탁기 등 프리미엄 제품, 여기에 IT제품 및 단말기 제품도 호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제품들은 중국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거의 전제품이 중국내 톱5에 진입해 있습니다. 중국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습니다만, 올바른 전략방향을 갖고 일관되게 추진해온 점과 중국 현지의 우수기업 및 중국정부와의 합작을 통한 윈-윈 사업 운영,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공격적이고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 등을 꼽고 있습니다.”

    현지화 전략의 사례

    -현지화 전략을 성공요인으로 들었습니다만, 어떤 내용입니까. 현지화의 필요성이랄까 장점은 무엇인가요.

    “생산 마케팅 인재 연구개발 등 전방위적으로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현지완결형 기업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발상인데요, 연구개발(R&D)까지 현지화하면 그야말로 완결형 체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과정에서 핵심경쟁요소를 발견할 수 있고 중국 현지에 뿌리내려 진정으로 중국인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를 통해 현지의 경영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경영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중국지주회사 전체 종업원의 98%가 현지채용 인력인데 앞으로 99%까지 늘릴 예정이고 간부직도 현지인 비중을 늘려나갈 겁니다. 3~4개의 성(省)을 관장하는 분공사는 지역영업본부에 해당하는데 사장 9명 중 4명이 중국인이에요. 이 부분도 궁극적으로는 모두 중국인이 끌고 나가도록 한다는 방침입니다.”

    -R&D의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같은 품목의 제품이라도 한국에서의 R&D와는 다르게 진행되는 부분이 많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한국에서 생산하는 냉장고와 중국에서 생산하는 냉장고는 서로 독자적으로 연구개발이 이루어지는 겁니까.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품목은 중국이 주생산지가 되고 한국에서는 일부만 생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R&D 기능을 중국에 옮겨옵니다. 또 중국에서의 생산물량이 한국에 비해 미미하더라도 제품의 특성에 차이가 클 경우는 중국에도 R&D 기능을 운영하게 됩니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한국에 R&D의 중점을 두어야겠지요. 한국과 중국에 각각 R&D 기능이 있을 경우 그 내용은 물론 공유합니다.”

    -R&D의 현지화를 말씀하셨습니다만, LG전자는 요즘 중국소비자에 대한 과학적 조사와 분석을 거쳐 디자인과 성능을 특화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럴 경우 한국에서 생산되는 제품과 중국현지 생산제품과는 차이가 많지 않겠습니까?

    “제품에 따라서 다르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차이가 난다고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생산하는 냉장고는 유럽식에 가까워요. 한국형과는 반대로 냉동실이 밑에 들어가는 것이 많습니다. 용량도 여기서는 300ℓ이상의 길거나 넓은 것을 선호합니다. TV의 경우, 형태의 차이는 미미한 편이지만 규격 자체가 NTSC식이 아닌 PAL방식이라 한국제품과는 많이 다르지요.”

    현지직원 관리 노하우

    -중국 진출기업의 경영실태를 연구한 것을 보니까 현지직원의 직무만족과 업무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임금 위주의 인센티브 제도 외에도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승진이나 자기발전의 동기를 부여해서 감정적 몰입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더군요. LG는 현지직원에 대한 관리의 원칙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문자 그대로 감정적 몰입을 유도할 수 있다면 좋겠지요. 그런데 이런 문제는 기업의 규모와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지직원 몇 사람 데리고 하는 경우라면 쉽게 감정적 몰입을 유도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대규모의 인력을 여러 단계를 거쳐 사용하는 경우에는 역시 인센티브 제도가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저희는 인센티브제를 한국에서보다 좀더 적극적으로 실시했어요. 물론 현지인의 능력에 맞게 승진도 시키고, 중요한 직책을 맡겨 비전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감정적인 측면에서는 생일파티든 길흉사든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결국 인센티브 제도와 감정적 접근의 두 가지를 적절히 구사해 상승효과가 일어나도록 해야 할 것 같아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중국의 존재에 대해 이는 우리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고 말하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어떤 게 위기이며, 어느 경우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중국이 우리에게 하나의 기회가 되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회라는 측면만 보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피나는 노력이 필요해요. 국가경영부터 기업경영이나 개인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려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반면에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하면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에게 위기가 닥쳐올 수도 있습니다.

    중국에 줄 수 있는 것은 과감히 주고, 우리는 시장경제의 노하우, 중국보다 한 발 앞선 서비스 자산 등을 밑천삼아 새로운 첨단기술을 개발해 그들이 따라오는 속도보다 더 빨리 달아나면 됩니다. 그러나 이 기회도 일반론이나 범용성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각 제품별, 산업별로 각론 차원의 차별화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제품의 빛깔, 디자인 등 각 산업별 포인트를 찾아내야 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중국에 대한 총체적인 국가전략을 세워서 하나하나 실천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국이 기회다, 위협이다 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린 문제입니다.”

    중국사업 10계명

    이제 오늘의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 중국진출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현지에서 성공할 수 있는 노하우를 습득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을 듯하다. 마침 노용악 고문이 만들었다는 중국사업 10계명이 있다기에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다.

    -중국사업 10계명이라는 걸 역설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10계명이라는 게 누구나 알고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몸에 배어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처음 중국에 와서 사업을 시작할 때 이러이러한 마음가짐을 갖자는 취지에서 만들어본 것입니다.

    열거해보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운영하라, ▲좋은 합작파트너를 찾아 관계를 유지하라, ▲사업의 현지화를 적극 추진하라,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로 승부하라, ▲중국에 맞는 독특한 마케팅을 개발하라,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라, ▲관시(關係)에 모든 것을 의존하지 말라, ▲회사내 최고인재를 파견하라, ▲중국직원을 동반자로 생각하라, ▲솔선수범하고 희생정신을 가져라 등입니다. 어찌 보면 상식적인 내용입니다. 중국을 잘 모르는 사람은 그 내용이 가슴에 와닿지 않을지 모르지만 중국경험이 많은 사람에게는 깊이있는 내용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10가지 가운데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떤 내용입니까.

    “10가지가 다 중요합니다. 중국사업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말은 다른 외국도 그렇겠지만 특히 중국에서는 기반을 닦고 시장을 개척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없으므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중국파트너 문제는 이곳의 사업적 토양이 한국과는 판이하므로 좋은 파트너의 안내를 받으면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사업의 현지화를 강조한 것은 최근 많은 사람이 깨닫기 시작했는데요. 중국도 노임이 계속 올라가고 있으니까 단순히 저임금에 의존해서는 승산이 없으므로 사업 자체를 현지화하고 그 과정에서 핵심경쟁요소를 찾아내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케팅 개발도 현지화와 관련이 됩니다만, 지금까지 중국에 진출한 대부분의 외국업체들은 마케팅을 개발하기보다는 중국내 도매상에 제품을 일괄해서 넘기면 그 도매상이 팔아주는 식이었는데, 저희는 처음부터 독자적인 마케팅 채널을 구축했어요. 바로 이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중국특유의 인간관계를 의미하는 관시는 분명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단지 어떤 일을 촉진하는 촉매역할 정도로만 활용하라는 겁니다. 기본적인 것은 역시 법과 제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겁니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을 보면 대개가 한국에서 파견된 사원이 중요한 일을 하고, 현지의 중국인은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중국에서 사업하는 의미가 없어요. 중국인의 두뇌까지 활용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인 직원을 육성하고 그들에게 비전도 주어야겠지요. 그래서 중국직원을 동반자로 생각하라는 것이지요. 이런 내용들은 아주 당연한 것인데 실제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중국시장은 ‘경제올림픽’, 세계수준으로 정면승부하라

    지난해 6월 사스 퇴치를 위한 ‘아이 러브 차이나’ 캠페인에 나선 노용악 고문(왼쪽).

    -현지직원의 승진은 어디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공장에는 부총경리까지 현지직원이 맡고 있습니다. 우리로 치면 부사장 직책입니다만, 한정된 일을 맡긴다든가 해서 좀 다른 점이 있긴 합니다. 영업쪽으로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중국 전역의 9개 분공사 가운데 절반 정도가 중국인이 책임자인데, 앞으로 가급적이면 현지인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이게 별 것 아닌 듯 보이지만 실제론 굉장히 큰 것입니다. 중국을 9개로 나누었다고 하면 한 개 분공사에서 담당하는 지역이 웬만한 나라보다도 크니까 여기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있다는 것은 큰 직책이라고 볼 수 있지요.”

    -중국에 진출한 다른 나라 기업들도 현지인을 중용하는 추세입니까.

    “서양기업과 동양기업이 서로 다릅니다. 제가 보기에 서양기업들은 현지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겨서라기보다는 자체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인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양기업이 외견상 동양기업보다 현지화라는 점에서 앞서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동양기업들이 외국인을 책임자로 두는 것은 상당히 어색한 측면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현지화니, 현지인에 의한 경영이니 해서 명분이 앞서가지고 억지로 앉혀 놓은 경우도 많아요. 제 경우는 회사의 전반적인 면을 고려할 때 중국인에 의한 경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편입니다만, 이 문제는 국적보다는 어떤 사람이 잘할 수 있느냐에 기준을 두어야 할 겁니다. 억지로 현지화를 추구하면 홍보거리는 될지 모르지만 사업 자체는 진전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 중국인에게 더 중요한 일을 맡기려면 교육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되겠지요.”

    -중국인의 소득수준은 아직 전반적으로 낮지 않습니까. 그러나 상류층은 상당한 구매력을 가진 데다가 그 절대 규모가 만만치 않습니다. 따라서 중국에서 사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의 타깃을 어디에 두느냐는 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오셨는지요. 그리고 중국사업을 구상중인 한국기업인들에게 이와 관련해 조언을 하신다면 어떤 것입니까.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겠습니다만, 저희는 한마디로 상류층에 타깃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또 앞으로도 저희는 중국의 상류층을 상대로 제품을 출시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상류층에 고급제품이나 고가제품을 팔고 싶을 겁니다. 문제는 자기 회사의 여건을 따져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LG는 여건을 갖추었고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제품을 개발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브랜드 이미지도 올라간다고 생각합니다.”

    지역별 중국시장의 특징

    -중국은 영토가 광활해 시장도 지역에 따라 각각 특색이 있을 것 같은데요.

    “우선 기후가 북부는 한랭하고 남부는 덥습니다. 또 양쯔강 이북에서는 밀가루를 주식으로 하고, 이남에서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등 지역별로 기후·문화·인간성에 차이가 많습니다. 따라서 시장환경에 맞추려면 같은 제품이라도 달리할 필요성이 있어요. 예를 들어 에어컨은 남부지역에 판매할 것은 냉난방 겸용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남부는 기후가 따뜻해 아주 춥지 않은 한 별도의 난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에어컨이 냉방기능은 물론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는 시기에는 난방기능도 갖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탓에 에어컨은 북부와 남부의 수요패턴이 전혀 다릅니다.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대외개방이 시작된 남부지역 사람들이 외국문물을 빨리 받아들이는 데 비해 북부에서는 그 속도가 굉장히 늦습니다. 또 북부사람들은 아주 씩씩하고 결단력도 좋고, 기분에 따른 구매를 많이 하는 반면, 남부사람들은 연구를 해가며 합리적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판촉전략이 달라져야 합니다.

    LG의 경우 기본적인 판촉활동은 각 지역 책임자가 지역실정에 맞게끔 변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경품이나 판촉물을 예로 들면 북부 사람들은 덩치 큰 물건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물품을 많이 안겨줍니다. 그러나 남부사람들은 정밀하고 작고 예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한국에서 잘 만든 전통제품을 사다가 주기도 합니다. 또 남쪽에서는 PDP TV의 수요가 많은데 북부지역에서는 아직은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중국LG가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평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큰 위기나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어떤 일이었습니까.

    “중국진출 초기만 해도 중국의 정치나 법, 제도 등이 국제적 기준과 크게 달라 리스크가 크다는 서양사람들의 평가를 듣고 많이 머뭇거렸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직접 이곳에 와서 적극적으로 상황을 파악해보니 중국경제가 발전하리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어요. 그래서 과감히 사업계획을 실행해나갔죠.

    중국진출 이후 최우선 과제는 현지기업은 물론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중국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는 경쟁사가 아주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기업이 갑자기 판매가를 20% 이상 떨어뜨리는 경우도 자주 일어납니다. 이럴 땐 정말 난감합니다. 가장 큰 위기는 역시 지난해 발생했던 사스였습니다. 정체 모를 질병은 외국에 나와 있는 기업으로서는 대처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현지직원들에게 발병할 위험도 있지만 한국인 주재원들의 상황도 문제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책임자의 입장에서 정말 고민스러웠어요.”

    노용악 고문의 베이징 사무실을 둘러보니 한쪽 벽면이 책으로 가득하다. 거의가 중국관련 책들로 중국고전부터 한국에서 출판된 중국소개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들이다.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중국역사상 부와 명예와 권력 그리고 최고미인 서시(西施)까지 쟁취한 대표적 인물인 춘추전국시대 범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었다”고 한다.

    노 고문은 또 휴일이면 각종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찾는 게 취미라고 한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중국인과 친구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가 경제계의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꼽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런 노 고문인 만큼 중국이라는 거대한 사업장과 시장을 보는 시각은 그리 단순치 않아 보인다. 좀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자산업계 최초로 미국 현지판매법인을 설립해 대표를 맡으셨고 캐나다 일본 필리핀 독일 등 세계 각지에 현지법인을 세우는 데도 산파역을 하셨는데요. 중국에서의 회사설립 경험을 다른 국가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저희가 처음 미국에 진출할 때 헌츠빌에 컬러TV 공장을 세웠는데 당시에도 미국사람들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만, 지금 중국은 거기에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공무원이 외국인투자를 유치하면 그 실적에 따라서는 팔자를 고칠 만큼 파격적인 혜택을 주고 있어요. 국장이 차관이 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현재 상황을 보면 중국의 투자유치 정책은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잘돼 있고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열심이어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중국이 워낙 넓다 보니 한마디로 외국과 비교하기는 어렵고 투자여건 등 여러 부분이 지역마다 모두 다르다는 점입니다.”

    -중국시장은 현지브랜드의 경쟁력이 유난히 강하다고 하는데, 전자업종의 예를 들어 현지브랜드의 실태를 설명해주십시오.

    “말씀하신대로 중국은 현지브랜드 파워가 막강합니다. 전자업종을 보면, 지금 미국 같은 곳은 주인은 없고 손님들끼리 싸우는 형국인데 비해 중국시장은 아주 강한 주인이 여럿 있고 여기에 또 여러 손님이 와서 싸우는 양상이에요. 거의 모든 제품의 50% 이상, 경우에 따라선 80%까지 중국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나머지를 놓고 외국사끼리 경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휴대폰 단말기는 불과 3년 전만 해도 중국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모두 합쳐봐야 5%밖에 안 됐어요. 신규제품이어서 현지브랜드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나머지 95%는 노키아 모토로라 등의 제품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닝보 버드나 TCL 같은 중국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금방 현지브랜드가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해버렸거든요. 중국기업이 외국기업들을 제치고 1위가 됐어요. 이렇게 된 것은 중국기업들이 다른 외국기업보다 경쟁력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고, 또 예부터 중국인이 장사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중국기업들을 얕볼 게 아니라 이들을 잘 연구해야 합니다.”

    -이처럼 중국에서 현지브랜드가 강한 문화적 바탕은 무엇일까요. 중국인들이 한국의 ‘신토불이’ 정신을 높이 평가하면서 부러워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만, 중국인들도 역시 애국적 소비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만약에 당국에서 정책적으로 애국심을 부추기며 국산 애용 등 소비행위를 유도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체적으로 중국인들은 정치색을 떠나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인은 최소한 다섯 집(가게)을 방문해보고 구매를 결정하며, 주위의 평판을 중시하기 때문에 입소문이 잘못 나면 망하기 일쑤입니다. 이것이 중국인들의 특성이에요.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 일본과 중국간 분쟁이 생겨서 그게 사회적 이슈가 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고서는 일본제품이라고 해서 배척하지는 않지요.”

    -중국의 통계수치를 신뢰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래서 합작파트너 선정시 상대가 제시하는 데이터를 그대로 믿지 말라는 충고도 있고, 경영계획 수립에도 각종 통계의 오차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실제 경험에서 느끼신 중국의 각종 통계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저희가 처음 중국에 진출했을 때만 해도 마케팅과 관련한 부정확한 통계수치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부분이 급속도로 개선돼 지금은 큰 문제가 없습니다. 간혹 국가적인 차원의 통계문제가 외국언론에 보도되는데, 마치 중국이 조작의 소굴인 양 소개되는 경우를 봅니다. 저는 중국을 이상한 나라로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라가 크다 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통계작업 과정에서 거치는 단계가 많으므로 오류가 발생할 여지야 있겠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조작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그런 예를 발견하지도 못했고 말이죠.

    중국의 통계수치 신뢰도

    인구센서스도 5년마다 전국적으로 실시하는데, 중국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과정이니까 누락되는 것도 있겠지만, 인구를 줄이기 위해 주관부서에서 일부러 조작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지난 얘기지만 재작년까지만 해도 일부 서양사람들은 중국이 경제성장률을 실제보다 부풀려서 높게 발표했다고 비판했어요. 그런데 제가 관계자들을 관찰한 바로는 성장률을 더 올리고 싶어하는 기색을 전혀 찾을 수 없었어요. 조작할 필요성이 없는 거죠. 그러다가 작년부터는 거꾸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굉장히 높은데 이를 숨기고 실제보다 낮게 발표했다고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태도들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서 중국에 대해 위스풀 싱킹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니까 희망사항을 갖고 주장한다는 말이지요. 중국이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 하는 전제를 두고, 그런 쪽으로 예상하고 그렇게 되도록 애를 쓰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10년 전 저희가 중국에 진출할 무렵만 해도 미국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중국은 분열될 것이라느니, 민중봉기의 가능성이 있다느니 하는 전망을 내놓았어요. 요즘은 거창한 예측들이 잘 맞지 않아서인지 금융대란설이나 위안화 절상설 등을 내놓고 있는데 계속 틀리고 있어요. 위안화 문제만 해도 90년대 후반에는 곧 인하할 것이라고 소동을 피웠지만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고, 이제는 그 반대상황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런 일들을 보면서 중국의 문제는 중국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외국에서 보는 중국에 대한 전망, 예측이 전혀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국문제는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보아야 정확하다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부분 틀리는 것을 보면 오히려 중국방식으로 중국을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노 고문께서 대(對)중국사업을 하려는 분들에게 강조하는 말 중에 서양시각으로 중국을 보지 말라, 중국을 하나로 보지 말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하나가 아니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서양의 시각으로 중국을 보니까 선입견이 작용해 결과적으로 제대로 보지 못하더라는 거죠.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중국 내부를 중국적 시각으로 관찰할 때 중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중국을 하나로 보지 말라는 것은 국토가 넓고 지역마다 특성이 강하므로 이걸 하나로 뭉뚱그려 중국이 어떻다고 말하기가 굉장히 어려우니까 광둥성은 어떻고, 상하이는 어떻다는 식으로 구분해서 얘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각 지역마다 발전 정도와 사람들의 기질 등이 모두 다르거든요. 유럽을 예로 들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하나의 유럽으로 통합된다고 해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각국의 개성이 제 각각이고 강하지 않습니까.

    중국시장은 ‘경제올림픽’, 세계수준으로 정면승부하라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에서 가장 번화한 난징(南京)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다르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유의해야 할 대목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기업인이 베이징에 와서 후진타오 주석이라든가 중앙의 지도자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경우는 후난(湖南)성에서 성장(省長)을 만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때 가령 후난성에 TV공장이 없다면 후난성장은 TV공장을 유치하고 싶을 것이므로 투자를 요청할 것입니다. 반면 베이징에서 만난 중앙정부 지도자들은 전국적으로 TV공장이 포화상태이므로 오히려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니까 서로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우 후난성장의 말이 중국을 대표하는 게 아닙니다. 중앙과 지방의 판단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외국투자기업에 대한 지원책

    -나라가 커서 빚어지는 현상 같은데요. 이런 경우 중앙정부에서 계획적으로 산업시설을 안배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다시 계획경제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옛날 같으면 이런 일들에 대해 철저히 중앙정부의 비준을 받았는데, 요즘은 지방에 권한이 대폭 이양돼 있어요. 또 예를 들어 2000만달러 규모 이상의 외자유치는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도록돼 있지만, 지방정부에서는 1900만달러짜리로 꾸며서 자기들 뜻대로 처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하나로 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특히 기업인의 입장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입장을 둘 다 이해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중국 당국이 외국투자기업에 대해 여러 가지 파격적인 지원을 해준다는 얘기는 이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상하이는 지난해 여름 40℃를 넘는 무더위가 계속됐지만 공식적인 기상예보는 38℃ 이하였다는 것입니다. 38℃가 넘으면 근로자들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중국측이 얼마나 기업 입장을 배려하고 있는지 짐작이 갑니다. 직접 경험하신 중국당국의 외자기업 지원사례를 드신다면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이런 점도 중국 전체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 지역의 사례인지를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아무튼 기업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외자도입을 하면 처음 3년은 면세를 해주고, 다음 2년간은 절반만 세금을 내면 됩니다. 또 기술도입에 유리한 투자라고 판단되면 중국정부가 굉장히 잘해줍니다. 이런 경우는 이익이 나고부터 7년간 면세받을 수 있어요. 저희도 이런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토지는 50년간 사용권을 주는데, 당연히 무료입니다. 더 나아가 아예 공장을 지어줄 테니 월세를 좀 내고 사용하라는 파격적인 조치도 제안합니다. 이밖에도 한국에서 파견나온 사원이나 핵심기술인력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면제해주기도 하고, 기술자들을 연수차 외국에 보낼 때 그 경비를 정부에서 부담해주기도 합니다. 또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증치세의 25%정도가 지방정부로 가는데, 이 부분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난징(南京)에 LG산업원이 있는데요. 이곳은 LG가 디스플레이 복합단지를 조성한 지역입니다. 이곳에 단지를 조성하게 된 배경에는 난징시에서 경제기술개발구내 60만평이나 되는 부지를 LG산업원으로 명명해주고 주변의 왕복 4차선 진입도로도 LG남로, LG북로 하는 식으로 명칭까지 고쳐 줄 정도로 지원해준 것이 적잖게 작용했습니다.”

    중국적 노사관계

    한국의 사업장을 중국으로 옮기는 기업인들 중에는 노사문제를 이전사유로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에 가면 노사분규를 피할 수 있어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중국 노사관계의 실상은 어떤 것일까.

    -중국의 개혁개방이 완전히 정착하면서 중국근로자의 의식도 많이 바뀌고 있어 어떤 면에서는 한국보다도 더 자본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임금 등 근로조건에 대한 중국근로자들의 의식이나 태도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양면성이 있어요. 사회주의국가여서 노동자 보호에 대한 의식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는 반면에 하루빨리 경제를 일으켜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기업경영에 해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측면이 있는데, 현재는 후자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즉 기업이 웬만큼 잘하면 노사문제는 원활하게 풀어나갈 수 있지요. LG의 경우도 대부분의 현지법인에서 노사 마찰이 없습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중국근로자들은 평등논리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일 잘하는 사람이 더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상식으로는 사회주의 국가니까 평등지향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예상과는 많이 다르군요. 어떤 이유에서 그런 의식을 갖게 됐을까요.

    “고찰하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 저는 우선 노동력이 풍부하니까 그런 사고방식이 생겨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 근래에 와서 젊은 사람들의 의식이 굉장히 선진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국식 조직문화를 고집할 게 아니라 중국인의 사고방식에 적합한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역설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적인 조직문화의 특성과 이를 반영한 경영방침을 소개해주시지요.

    “중국에 어울리는 조직문화를 간단히 말하기는 힘듭니다. 중국에는 우리의 노조에 해당하는 공회(工會)라는 게 있습니다. 저희는 이 공회와의 관계를 좋은 쪽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으로 중국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무슨 기념행사라든가 시상식 같은 게 있으면 처음 계획단계부터 행사진행까지 공회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맡깁니다. 당신들이 더 잘 알 테니까 알아서 해라 하면 기대 이상으로 잘합니다. 그 사람들하고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의미있는 일을 맡겨주면 아주 잘합니다. 한국에서도 잘하는 사람에게는 더 주는 성과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만 저희가 여기서 지향하는 것은 한국보다도 좀더 적극적인 성과주의입니다. 이곳에서는 임금 자체가 아직은 그리 높지 않으니까 잘하는 사람에게는 인센티브를 더 주어서 안정되게 일할 수 있게 해주어야겠다는 게 기본방침입니다.”

    대부분 1년 계약제로 직원 채용

    -후난성 창사(長沙)에 한중합작으로 설립된 LG필립스서광의 경우 4360명이 가입한 공회가 조직돼 있는데, 아직 노사분규나 쟁의신고가 한 건도 없고 공회가 품질향상 경진대회와 사원교육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중국의 공회는 한국의 노조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까.

    “중국의 공회는 기본적으로 회사에 큰 지장을 초래하거나 손해를 입히면서까지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관계당국에서도 외국기업이 중국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게 확실한 이상 공회의 활동이 그 회사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거꾸로 중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업이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우리가 중국경제에 기여하고 중국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만큼 잘하는 한 당분간은 공회 때문에 어려움에 처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는 건 아니죠. 정상적으로 잘해나가면 정부에서도 보호해주고, 공회와도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노사관계는 노사간 합의에 의해 주요사항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까.

    “한국처럼 노사합의라는 건 없어요. 함께 논의하고 협조를 구하기는 하지만 공회와 합의해야만 무엇을 할 수 있도록 돼있지는 않습니다. 완전히 동반자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중국인을 배척하는 게 아니라 함께 가고, 적절한 역할을 주어 회사경영의 동반자라는 의식을 심어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경영을 해보니까 중국인 근로자들을 적절하게 대우해주고 공회측의 의견을 들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조금 더 잘해주고 그것을 통해 능률을 올리는 쪽이 옳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런 정신으로 해나가면 당분간 중국에서는 노사문제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중국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는 어떤가요. 외국기업들은 대부분 1~2년 계약제로 직원을 뽑는다고 하더군요. 중국노동부도 외국기업이 직원을 해고할 경우 누구도 간섭할 수 없도록 보장했다는데, 실제로 그렇습니까.

    “처음 직원을 뽑을 때 3개월의 견습기간을 거칩니다. 그리고 나서 정식으로 채용할 때는 대개 1년 계약제로 합니다. 1년 후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자동해고되는 셈이지요. 많은 기업들이 이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만, 저희는 최근들어 이런 식으로 채용하는 건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다고 보고, 다른 회사가 어떻게 하든 우리는 장기계약을 해서 현지직원들의 마음을 붙잡아 장기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 게 옳은 방식인지는 각 회사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말로 유능한 인재를 채용하고 유지하려면 차원높은 생각이 필요합니다.”

    베이징올림픽과 중국경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중국경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등 호재를 앞에 두고 있어 당분간 흔들림이 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또 중국경제를 이끌어나가는 지도부의 능력과 자세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하다. 중국경제의 도약을 현장에서 목도하고 있는 노용악 고문의 평가와 전망은 어떤 것일까.

    -지난해말까지 중국에 대한 외국인투자 누계액이 무려 5000억달러에 달했고, 중국에 설립된 외국기업이 46만여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같은 외국자본의 중국진출 현상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십니까.

    “제가 보기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중국경제의 응집력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에, 이곳에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거든요. 현재 진행되는 여러 가지 현상으로 보아 상당 기간, 최소한 2008년 내지 2010년경까지는 무난하게 경제성장을 해나갈 것으로 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까지 중국의 경제는 계속 상승세를 탈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베이징올림픽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 때 중국경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올림픽 때까지는 중국경제가 잘나갈 것이라고 누가 먼저 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시각이 지배적인 건 사실입니다. 지금 중국경제의 형세를 보면 마치 기차가 막 달려오는데, 철로에 돌멩이 같은 장애요소들이 있어요. 그런데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가 이런 장애요소들을 휩쓸고 지나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중국관리들은 장래를 상당히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인데 비해 학자들은 상대적으로 비관적인 입장입니다. 원래 학자들은 남이 다 그렇다고 하면 자기는 다른 쪽으로 말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중국 학자들조차도 중국경제가 잘 안될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현재 중국은 계층간·지역간 빈부격차를 비롯해 국유기업문제, 금융문제 등 난제를 앞에 두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런 것들도 경제발전 추세를 가로막지는 못할 것으로 봅니다. 국유기업의 경우 과거에는 그 비중이 100%를 차지했지만 이제는 30% 미만으로 줄어들었어요. 설사 이게 문제를 야기한다고 하더라도 과거처럼 치명적인 타격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30%는 문제가 된다고 해도 그게 몽땅 망하지는 않을 것이니까 말이죠.

    또 동서지역간 격차는 서부대개발사업이 시작돼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이고, 도농간 격차는 농촌의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도시인구가 늘어나고 있으니까 그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빈부격차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해결한다는 목표아래 중국정부가 애쓰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처럼 중국정부가 자신들의 약점과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고 나름대로 최선의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는 베이징올림픽 이후에도 큰 문제가 발생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담당분야에 통달한 중국관료들

    -중국의 영도급 인사들이나 관료들과도 교분을 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 공직자의 자세나 마인드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중국사람들과 친해지면 부정부패 같은 문제를 화제로 삼아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때 중국인들에게 ‘당신들은 어떠냐’고 물으면 ‘우리도 이런저런 부패사건이 일어나고 있지만 한국처럼 최상층부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장담합니다. 중국엔 최소한 국가 영도자들에게 부정부패 문제는 없다는 것이지요.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를 예로 들면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국민에게 모범을 보이고 있거든요. 이런 점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나라가 크다 보니 학습효과도 큰 것 같아요.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외국인을 많이 접하고 있어 세계정세와 흐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 사람들이 옷도 허술하게 입고 나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국내외 정세를 세밀하고도 객관적으로 보는 식견을 갖추고 있어요. 또 높은 사람부터 아랫 사람에 이르기까지 자기 담당분야의 목표나 진전사항 등과 관련된 수치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윗사람이 되면 그런 세세한 것은 모르는 게 미덕인 줄 아는데 여기선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를 들어 어느 시(市)의 시장이면 그 시의 현황에 대해 몇 시간이라도 통계숫자를 인용해가며 떠들어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게 무슨 시험공부식으로 외워서 하는 것은 아닐 테고 그만큼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중국의 경제관료들이나 경제인들은 한국경제의 경쟁력이나 향후 잠재력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하고 있나요.

    “중국사람들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아요. 겉으로는 한국이 대단한 나라다, 중국기업이 세계적 수준이 되려면 한국부터 따라잡아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합니다만, 시간이 흐르면 지금과는 서로 다른 위치에 서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저와 친한 중국친구는 ‘마오쩌둥 주석이 문화혁명을 하지 않았다면 한국이라는 존재가 있겠냐’고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중국을 찾는 한국의 고위층이나 기업인들이 중국인들과 만나면 이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좀 듣고 가면 좋겠는데, 오히려 그 반대란 점이에요. 중국사람들이 오늘날 한국이 많이 발전했는데 어떻게 한 겁니까 하고 물으면 그냥 자랑삼아 막 얘기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면담시간이 다 지나가버립니다. 중국은 세계 각국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지난해의 경우 사스 파동이 가라앉고 연말까지 각국의 원수급 지도자 방문이 60여회에 달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보다 훨씬 많은 국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한번 물어보는 건데 정말 한국을 대단하게 여기는 줄 알고 말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상대방의 속셈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은 이제 하나의 도도한 흐름이 되었지만 그만큼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도 산적한 느낌이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제대로 돈을 벌고 발전해나갈 수 있을지, 국내의 산업공동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중국에 대한 투자러시가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지는 않을는지 등등 하나같이 쉬운 문제들이 아니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에 모두 정통한 노고문의 시각이 궁금하다.

    -한국수출입은행에서 펴낸 우리 기업의 해외투자수익률 자료를 보니까 대 중국투자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더군요. 2002년의 경우 한국기업의 세계 전체 투자수익률이 7.6%인데 비해 대중국 투자수익률은 10.8%였어요. 제조업만 보면 12.8%의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중국에 투자해서 그런대로 돈을 번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투자했다가 노련한 중국인에게 당해 손해만 본다는 식으로 알고 있어요. 현장에서 느끼시기에 한국 투자기업들이 돈을 벌고 있는 것 같습니까.

    “투자수익률 통계라면 지금 잘 운영되고 있는 곳을 대상으로 한 것 아닌가요. 망한 회사를 통계에 넣을 수는 없잖아요. 분명한 건 중국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망하는 사람도 많고, 그러니까 덮어놓고 중국에 와서 기업하면 돈벌 것이란 믿음은 금물이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중국에 오면 다 망하느냐 하면 역시 아니거든요.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 어떤 업종을 갖고 들어오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볼 때 한국기업, 특히 중소기업들이 갖고 있는 하나의 맹점은 과거의 사례와 경험을 전수받아 피할 건 피하고 따낼 건 따낸다는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점이에요. 어떤 사람이 어떤 부분에서 실패했다면 그 다음에 오는 사람은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하다못해 컨설팅이라도 받아보고 진출하면 실패할 확률이 상당히 줄어들텐데, 중소기업일수록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아무튼 통계적으로 중국에서 투자수익률이 높게 나온 것을 보면 충분히 준비하고 제대로만 한다면 중국시장이 기회가 많은 곳이고, 다른 나라에 비해 유리한 조건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노 고문께서는 LG전자가 중국에서 성공한 기업에 만족할 게 아니라 중국을 동반자로 삼아 세계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의 성공과 세계시장 진출의 연관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중국에서의 사업을 운동경기에 비유한다면 이것은 중국의 국내리그가 아니라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난이도도 그렇고 중요성도 그렇다는 것이죠. 앞으로 글로벌기업을 지향한다면 중국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세계적 기업들이 모두 나와 있는 중국에서 등수에 들지 못한다면 세계랭킹에 들 수 없는 것이죠. 이건 아주 명확한 사실이에요. 그래서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을 공략하는 한편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입니다. LG가 중국에서 성공한다면 이는 곧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LG 혼자만이 아니라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세계시장으로 비약하자는 게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승부해야

    -비슷한 맥락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정면승부해야 중국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역설하고 계신데요. 이는 대기업이라면 몰라도 중소기업에는 다소 이상적인 주문이 아닐까요. 지금 중국진출 중소기업의 상당수는 세계적 기술력보다는 저임금 등의 메리트를 보고 왔는데, 그렇다면 이들 기업은 희망이 없다는 얘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한 예로 베이징에 오토바이 탈 때 쓰는 헬멧 만드는 한국투자회사가 있는데, 이 분야에서 세계1위예요. 중국의 광둥성 쪽에서는 주민들이 오토바이를 많이 타니까 헬멧업체가 수십개에 달합니다. 그렇지만 이 기업은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경영의 효율화로 자기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된 것이지요. 한국에서 곧 문을 닫을 정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체가 중국이나 가볼까 한다면 과연 중국에서는 살아 남을 수 있을까요? 약간 생명이 연장될 뿐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기업의 중국진출을 이렇게 비유합니다. 나무가 아주 싱싱할 때 옮겨와도 제대로 살 것인지를 자신할 수 없는데, 죽을락말락할 때 옮기면 살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절대로 중국을 피난처로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은 앞으로 서비스 분야에도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얼마 전에는 국내 모 은행이 전화로 고객상담을 처리하는 콜센터의 중국이전을 추진중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한국어가 가능한 중국동포를 활용하고, 인터넷 전화회선을 사용하면 국내보다 훨씬 싼 비용으로 콜센터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분야까지 중국으로 이전한다면 국내에 무슨 업종이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 분야의 중국이전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기업이 영어가 통용되는 인도로 그런 기능을 옮겨간 데서 나온 발상인 것 같습니다만, 그게 만만치는 않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 미국이 인도사람들을 활용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 조선족 동포들을 뽑아서 쓰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서비스의 질에 한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서서히 서비스분야 진출 사례도 늘어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인터넷을 활용하면 단순한 콜센터에 비해 좀더 두뇌를 써야 하는 분야도 중국에서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내에서 중국어를 번역하려면 돈이 많이 들겠지만 이걸 인터넷 상에서 중국으로 가져가 번역해서 한국으로 보내면 비용을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미 일부 신문사의 인터넷판에 제공되는 중국어 서비스는 중국현지 인력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단순 서비스 분야보다는 경비가 비교적 많이 드는 분야부터 중국인력으로 대체하는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좀더 차원높은 설계나 디자인 등은 한국에서 만들어 중국으로 가져갈 수도 있을 겁니다.”

    서비스 분야의 중국진출 전망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이 확대되면서 국내에서는 산업공동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동안 100만개의 일자리가 중국으로 이전됐다는 통계도 발표된 바 있습니다. 이런 국내산업의 공동화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걱정되는 부분입니다만, 이 같은 현상을 중국진출 자체의 결과로만 돌리는 데엔 문제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중국이 없었다면 산업공동화 현상도 없었을 것이냐를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중국에서 한국기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막말로 수명연장도 못하고 사망선고를 받은 기업이 적지 않았을 겁니다. 예를 들어 가방 섬유 신발 업종이 중국에 많이 진출해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데 이들이 계속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지금 어떤 처지가 됐을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대안도 없이 문을 닫아버리면 국가적으로 큰 골칫거리였겠지요.

    문제는 한국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기업들이 서둘러 뜬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내기업들이 틈새시장을 잘 찾아내야 한다고 봅니다. 가령 철강산업이라면 아주 특수한 스테인레스 강판이라든가, 조선산업이라면 유조선을 심화 발전시키고 가지를 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식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남들보다 한 발 앞서갈 수 있는 분야를 계속 창출해서 국내산업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만이 공동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는 근본대책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중국과 한국의 기술수준 차이가 나날이 좁혀지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2010년경이면 휴대전화의 기술력이 비슷해지는 등 상당한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적 우위현상이 상쇄될 전망이라는 겁니다. 전자산업의 경우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한중간 기술수준의 차이는 어느 정도입니까.

    보유기술 특화만이 살길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이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어요.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분야의 종사자들은 중국이 쫓아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미 수준이 같아졌거나 우리를 추월했다고 난리입니다. 각자 자기분야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곧 닥칠 수 있는 일들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가령 지금 죽겠다고 하는 사람도 한 해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좌우간 기술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임은 확실한 것 같고,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를 압도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보유 기술을 날카롭게 가다듬어 특화시키고, 각 기업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계속해서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또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현재 다소 비중이 작더라도 앞으로 가능성이 큰 분야, 예를 들어 바이오산업 같은 쪽을 육성하는데 좀더 힘을 실어주어야지요. 이런 일은 분야별로 매우 세밀하게 돌아가야 하는데, 항상 총론에서만 맴돌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전문가들 중에는 중국에 대한 투자러시가 나중에 부메랑이 돼 한국을 겨냥할 것이라며 경고합니다. 한중간 기술수준이 대등해지면 기술력과 저임금으로 무장한 중국제품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경쟁력을 앞세워 한국으로 밀려올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우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특별히 대비하지 않는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인구를 비교해보면 중국의 자동차 보급률이 우리의 절반만 된다고 해도 수요 물량이 우리의 15배 이상이 될 겁니다. 정말 엄청난 규모지요. 한국기업도 중국 자동차시장에 진출해 있습니다만, 이렇게 엄청난 중국시장이 잘나가다가 경기가 부진하다고 해서 만약 한국으로 물량을 실어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동차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겠지요. 철강의 경우,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포철에서 연간 2000만t을 생산한다고 하는데 중국의 연간수요량이 2억t입니다. 일년에 2000만t씩 늘어난다고 하니까 포철만한 철강업체가 하나씩 생기는 셈이지요. 중국이 여러 가지 여건상 철강을 해외시장에다 많이 팔아야겠다고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잘못하면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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