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말 김훈기 기자와 대담하고 있는 황우석 서울대 교수.
분명 황 교수는 복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다. 세계적 전문가의 연구내용을 쉽게 풀어내는 일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부담감은 이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의 연구가 전통적인 생명관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체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배아, 胚芽)이 형성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복제생명체는 어떤가. 정자와 난자 대신 보통의 세포(체세포)와 핵이 제거된 난자만 있으면 된다. 이 두 가지를 결합시키면 감쪽같이 체세포와 동일체인 배아가 만들어진다.
1996년 태어난 복제양 돌리에게는 어미의 젖세포가 이용됐고, 황 교수가 1999년 만든 복제소 영롱이의 경우는 자궁세포가 동원됐다. 여기서 ‘이 복제동물은 생명체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아마도 어리석은 얘기로 들릴 것이다. 매스컴에서 한 번이라도 돌리나 영롱이를 본 사람이라면 이들이 생명체가 아니라고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제인간 역시 분명 ‘인간’이다. 한 남성이 자신의 세포 하나를 떼어내 핵이 제거된 다른 여성의 난자와 결합시켜 자신과 똑같은 아기가 태어난다면 기분이 어떨까.
최근 황 교수가 성과를 거둔 인간배아복제 연구도 알쏭달쏭한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복제는 하되 수정 후 4~5일까지만 키우고 이로부터 몸의 각종 장기로 자랄 수 있다는 줄기세포(stem cell)를 얻은 실험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이 줄기세포를 환자의 손상된 장기에 이식하면 건강한 세포가 자라나 병이 치유될 수 있다.
“복제된 배아 입장에서 본다면…”
이 실험을 복제된 배아의 입장에서 보자. 줄기세포는 배아로부터 얻어진다. 만일 복제된 배아가 생명체라면 이 실험은 생명을 손상시키는 행위가 된다. 이런 논란 때문에 황 교수의 ‘연구발표’ 뒤에는 항상 시민·종교 단체들의 ‘반대성명’이 이어진다. 황 교수의 연구 성과를 취재할 때 부담감이 따르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월 말 오전 9시 황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과연 황 교수는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김훈기 : 지난달 미국에서 발표한 내용은 인간배아복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복제’와 ‘인간’이라는 말이 들어 있어서인지 교수님 실험소식을 접했을 때 곧바로 복제인간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연구논문은 사실상 복제인간을 만들 수 있는 설계도인 셈인데요. 복제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고 10개월이 지나면 복제인간이 탄생할 테니까요.
황우석 : 맞습니다. 하지만 복제인간은 절대 태어나서도, 태어나도록 시도해서도 안 됩니다.
김 : 왜 그렇습니까. 인간복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불임부부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또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어버이 중 한 명과 자식이 단지 유전자가 동일한 생명체라고 주장합니다. 그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쌍둥이일 뿐이라는 것이죠.
황 : 현대인의 15%가 불임이라고 합니다. 이를 해결하는 마지막 수단이 복제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만, 무엇보다 복제기술 자체가 매우 불안정합니다.
일단 유산이나 사산의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요. 대리모만 해도 이상하게 양수과다증 등으로 인해 생명에 위협을 받지 않습니까. 태어났다 해도 내부 장기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해요. 심장벽에 구멍이 생긴다든지, 허파가 일부만 생성된다든지, 뇌가 물로 가득 찬다든지…. 이렇게 불안한 기술로 어떻게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겠습니까.
김 : 그렇다면 안전성이 확보되면 복제인간이 탄생해도 괜찮다는 이야기인가요?
황 :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반대이유가 있습니다. 생명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를 절반씩 얻어야 ‘진정한’ 생명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신성(神性)’이라 봅니다.
하지만 복제인간은 다릅니다. 아버지든 어머니든 어른 한 명의 세포를 떼어내고, 이를 핵이 제거된 난자와 결합시켜 생긴 것이죠. 유전자의 99%가 동일한 자손이 탄생한 셈입니다. 이는 신성을 벗어난 행위입니다.
황 교수는 불교신자다. 따라서 여기에서 표현된 ‘신성’은 특정 종교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