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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협소설 명인열전 ④

실존주의적 무협작가 좌백

기존 질서 거부하는 하위주체의 데카당스

  • 글: 전형준 서울대 교수·중국문학junaura@snu.ac.kr

실존주의적 무협작가 좌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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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적 무협작가 좌백

좌백의 초기 작품들. ‘대도오’는 대만 무협소설 주류에 대한 전복이라고 평가된다.

‘생사박’의 주인공 흑저(黑猪)는 오척 단신에 못생긴 얼굴을 가진, 내공은 파괴되고 팔의 힘줄이 끊겨 조막손이 된 파계승이다. 자신이 창안한 ‘박투술’을 완성하고 자신을 파문시킨 소림사로 귀환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자 삶의 의미이며 가치이다. 그는 결국 이 소망을 이루지만 그 대신 무공을 잃고, 또 무공을 잃은 대신 불도(佛道)를 얻는다.

그런데 흑저의 박투술 완성 과정은 금룡장의 구룡(九龍)과의 대결 과정과 겹친다. 흑저는 엽검영, 통비원, 곽상, 금조운, 한백, 귀도 등과 함께 작은 공동체를 이룬 후 대결을 수행한다. 주목할 것은, 이 작품의 대립구조가 단층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흑저는 ①자신을 파문시킨 소림사의 전통과 대립하고 ②구룡과 대립하며 ③금조운과 대립한다. ①은 소림사 전통의 수정 ②는 흑저 등의 작은 공동체의 승리 ③은 양립으로 귀결된다. ②는 ‘대도오’와 유사한 이야기라고 하겠고 ③은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대립에 관한 이야기라 하겠는데, 문제는 ①이다. 소림사로부터의 파문과 귀환, 그리고 무공 상실과 불도 획득은 보다 심층적인 해석을 기다리는 착잡한 이야기이다.

보다 치열해지는 실존적 질문

‘야광충’은 주인공 야광충과 무림의 최고수 로부 옹고트 사이의 대결 이야기이다. 야광충은 흑수당(黑手堂)이라는 작은 공동체를 결성하여 로부 옹고트와 대결해 결국 승리한다. 이 대결 이야기는 ‘대도오’와 ‘생사박’②와 유사하다. 그러나 야광충의 더욱 중요한 이야기는 다른 곳에 있다.



야광충은 처음에 햇빛을 볼 수 없는 괴물로 나온다(그래서 이름이 야광충이다). 그가 햇빛을 볼 수 있으려면 흡혈귀가 되어야 한다. 흡혈귀가 되기를 거부하던 야광충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결국 흡혈귀가 되고 마는데, 그 다음에는 흡혈귀를 극복하고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도대체 야광충은 무엇이고 흡혈귀는 무엇일까?

야광충은 로부 옹고트에 의해 만들어졌다. 로부 옹고트는 ‘예충’이라는 또 다른 신분으로 위장하여 갓난아이를 괴물 야광충으로 만들고 사부가 되어 그를 어려서부터 키웠다. 로부 옹고트의 의도는 ‘야광충(현음옥령지맥)-흡혈귀-인간’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옥령체에 있다. 옥령체를 사용하여 불로불사를 이루는 것이 로부 옹고트의 목적인 것이다.

야광충과 로부 옹고트의 대결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둘을 노예주와 노예의 관계로 볼 때 이 이야기는 자유주의 휴머니즘의 알레고리가 된다. 또 둘을 상징계와 주체의 관계로 볼 때 이 이야기는 억압적으로 구성된 주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서사가 된다. 둘을 대립관계로 보지 않고 동종으로 본다면 둘 다 억압된 본능과 욕망의 표현 이야기일 수 있다. 그렇다면 ‘야광충’은 억압된 본능과 욕망을 명백히 드러내되 다시 그것을 길들이는 이야기가 된다. 이 세 가지 해석이 나름대로 성립된다는 점, 그 복합성 내지 혼란이 이 작품의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생사박’과 ‘야광충’은 ‘대도오’에 비해 구조가 한결 복잡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복잡한 정도는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점점 깊어지고 치열해져가는 것과 상응하는 듯하다. 실존적 충일에 대한 비교적 단순한 물음(‘대도오’)에서 자아와 정체성에 대한 비교적 복잡한 물음(‘야광충’)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있는 것이다.

1998년작 ‘독행표(獨行?)’는 전작들에 비해 종래 무협소설, 특히 1980년대의 ‘창작무협’적인 면모를 많이 나타낸다. 멸문한 표국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14세 소년 용유진(龍游眞)이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용유진이 우여곡절로 가득한 성장 과정을 거쳐 무림의 고수가 되고 가문의 복수를 이룸과 동시에 악당들의 음모를 분쇄하는 이야기이다. 작가 자신은 “이 작품은 1980년대 무협의 대표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으며, 나 자신이 한때 열광했던 사마달류의 이야기 구성을 따른 것이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 구성의 유사성을 넘어 훨씬 더 중요한 차이를 갖고 있다. 우선 문장부터가 그렇다. 단단한 문장과 절제된 언어, 그리고 정제된 표현은 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플롯 또한 치밀하고 설득력 있게 잘 짜여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성격이다.

주인공 용유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자신이 추구하는 바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며 끊임없이 그 답을 모색한다. 물음과 모색의 핵심에는 ‘표사(驃師)로서의 삶’이 있다. 용유진은 무림 십대 고수 중의 하나인 상관대부를 격파하고 황제의 신임을 얻은 뒤에도 표사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곧 생활세계를 선택한 것이고, 하위주체를 선택한 것이며, 결국 실존적 의미를 선택한 것이다. 이 선택이야말로 좌백다운 상상력의 소산인데, 이러한 상상력은 후속작 ‘금전표(金錢?, 2000)’에서 더 잘 발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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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형준 서울대 교수·중국문학junaur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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