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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으로 떠나는 여로 충남 공주·부여

영화와 비애 함께 품은 ‘百濟風’의 도도한 유혹

  • 글: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사진: 김성남 기자 photo7@donga.com

1500년 전으로 떠나는 여로 충남 공주·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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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둠이 서서히 걷히는 새벽녘, 부여 시내 한복판에 있는 정림사지오층석탑 앞에 섰다. 언뜻 보기엔 소박하지만 요모조모 살펴볼수록 세련된 백제풍(百濟風)에 혹해 연신 마른침을 삼켜대고 있자니 어느 결에 해가 떠오른다. 여명을 안고 눈부시게 빛나는 석탑 뒤로 화려했던 고대 왕국의 대도읍이 위용을 드러낸다.
1500년 전으로 떠나는 여로 충남 공주·부여

여명을 등지고 우뚝 선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

영화 ‘황산벌’의 마지막 장면에서 전투에 패한 백제의 계백은 신라의 김유신 앞에서 참수를 당한다. 삼국시대에도 지금과 같은 사투리를 썼을 거라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황산벌’이 단순한 코미디 영화가 될 수 없었던 것은 백제의 최후가 이처럼 비장했기 때문이 아닐까. 중원을 호령하던 고구려,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한 신라에 비하면 백제는 상대적으로 ‘잊혀진 제국’에 가깝다. 해토머리 봄 기운이 제법 풍겨나던 2월말 백제의 고도(古都) 공주와 부여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불현듯 ‘황산벌’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라 가슴 한 끝이 아려왔다.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탄 지 2시간여 만에 공주에 닿았다. 공주는 백제 문주왕 원년(475)부터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천도하기까지 5대 64년간 백제의 도읍지였다. 당시 이름은 웅진성. 공주 시내로 들어서자 예로부터 비단처럼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으며 숱한 문필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금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공주의 백제 유적지는 대부분 시내에 몰려 있어 찾아보기 편하다. 우선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 고분군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엔 백제 웅진 도읍기의 왕과 왕족 무덤이 모여 있는데, 무령왕릉을 비롯해 7개의 고분이 있다.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주인이 밝혀진 무덤이다.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따르면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은 ‘8척 장신에 이목이 수려하고 인자관후하여 민심이 잘 따랐다’고 한다. 실제로 무령왕은 재위기간(501∼523) 동안 민생을 안정시키고 국력을 신장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큰 업적을 남겨 그의 아들 성왕대(代)에 이르러 백제 중흥을 이뤄내는 기반을 닦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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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이라는 궁남지. 일본식 정원의 시원이기도 하다. <br>▶ 춘경(春景)이 특히 아름답다는 마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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