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기자단은 또한 평양시 통일거리에 위치한 농수산물 무역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도 중국산이 상당수였다고 보도했다. 중국산 가전제품, 생활제품, 식품, 냉동고기, 수산물 등이 유통되고 있으며 하얼빈에서 인기 있는 ‘룽창룽’ 소주가 6000원에 판매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북한 일반주민의 월 평균 소득이 3000~4000원인 만큼 엄청난 가격이지만, 평양시내 50만명에 달하는 이른바 ‘핵심계층’ 인사들에게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다.
특히 2002년 7월 북한이 발표한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화폐경제가 부분적으로 도입됨으로써 일부 계층에서 부(富)의 축적이 이뤄짐에 따라 고가의 중국산 제품 소비가 가능하게 됐다. 북한 주부들에게 인기 있는 가전제품은 중국산 텔레비전, 세탁기, 선풍기 등이다. 북한 주민이 선호하는 이른바 ‘5장6기(이불장 양복장 책장 식장 신발장과 텔레비전 수상기 냉장기 녹음기 세탁기 재봉기)’ 가운데 80% 이상이 중국산이다.
중국측 세관통계에 따르면 2004년 중국의 대북수출 품목 1위는 53만t의 원유를 포함한 광물성 연료이고, 2위는 냉동육류다. 육류는 2003년에는 전년대비 6배, 2004년에는 전년대비 2배가 증가했다. 3위 품목인 컬러TV는 2002년 7만대, 2003년에는 17만5000대, 2004년에는 21만대로 증가했다. 비디오는 2002년 2000달러에 불과했지만 2003년 41만달러, 2004년에는 216만달러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밖에도 전년과 대비해 2004년 들어 급신장세를 보인 소비재로는 커피와 차(4.7배), 유제품 및 베이커리(3.7배), 음료 및 알코올(2.9배), 도자기제품(2.2배), 악기(9.4%), 가구 및 침구(73%) 등이 있다. 모두 북한에서는 비교적 고급 소비재로 분류되는 품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북한에 일반 식당이 증가하고 일부 부유층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통계다. 이쯤 되면 고급 육류를 먹으면서 중국산 차와 술을 마시고, 컬러TV와 비디오로 외국 유명 드라마를 보며, 역시 중국산 악기로 여가를 즐기는 북한 고위층과 비즈니스 계층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신의주가 중국 단둥(丹東)의 하청생산기지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이터, 셔츠 등 중국 업체들이 요구한 임가공이 신의주의 저렴한 임금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단둥-신의주 벨트는 북중 국경지대에 가설된 아홉 개의 통로 가운데 물자교류가 가장 많고 비즈니스 종류도 다양하다. 단둥 주민들이 돈이 되면 무슨 업종이든 가리지 않는 신의주 주민들을 보고 ‘돈산주의’라고 놀리는 형국이다. 돈이면 무엇이든 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이 벨트를 통해 북한 산업분야를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다. 평양시내 정보통신 전문상점에서 판매하는 컴퓨터와 관련 용품은 대부분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다. 중국의 롄샹(聯相)그룹은 북한의 정보통신(IT) 시장을 장악했다. 일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조립된 미국산 델(Dell) 컴퓨터도 판매되지만, 686 펜티엄 컴퓨터의 가격이 1500달러 선에 불과한 중국산은 가격도 저렴해 시장에서 압도적이다. 평양 시민의 주된 운송수단인 자전거도 중국이 투자한 평양자전거합영공장에서 만든다.
향후 중국의 대북진출 분야는 여행사, 호텔 및 무역업 등 서비스 분야를 중심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 올해 1월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시 조선반도투자사업설명회에 나온 쳰융창 성(省) 행정간부학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조만간 보험, 증권 및 은행 부분의 투자가 가시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 자본의 북한진출 러시는 한중일 3국의 대(對)북한 무역비율을 비교하면 확연해진다. 중국의 대북 무역비율 규모는 2004년 현재 총 13억8500만달러(36.6%)로, 한국의 6억9700만달러 (18.4%), 일본의 2억5200만달러(6.7%)를 각각 두 배, 여섯 배 차이로 따돌렸다. 북·중과 북·일 무역 규모는 2000년 당시 중국이 4억8800만달러, 일본이 4억6400만달러로 비슷했으나 최근 그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도대체 중국 자본은 왜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가난한 북한에 진출하는 것일까. 평양은 가까운 시일 안에 수익을 남기는 시장이 될 것인가. 북한은 왜 중국 자본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는가. 그에 얽힌 경제적 고려 이외의 정치적 요인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중국 자본의 대북투자에는 북·중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몇 가지 측면이 있다. 우선 북한은 북핵 위기에 따른 미국과 일본의 경제봉쇄로 중국 자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을 강화하는 바람에 돈줄이던 무기 수출과 마약밀매가 막힌 것이다.
반면 중국 처지에서 보면 우선 북한의 투자환경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자본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압록강을 건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기업의 독립채산제가 확립되고 비즈니스 관행이 정착되기 시작한 평양의 기업활동 여건 개선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이 향후 훌륭한 시장으로 성장할 가능성 또한 중국 기업을 자극하고 있다. 푸젠(福建)성 대외경제무역청 대표로 베이징에 근무하는 왕웨이리 주임은 “북한의 현재가 중국의 1970년대말~1980년대초와 비슷하며, 지금 북한에 진입하는 것이 시장을 점령하는 데 가장 좋은 시기”라고 설명했다. 미개척 시장의 봇물이 터지면 경공업과 사회간접자본 투자수요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수시로 투자설명회 등을 개최하며 기업인들로 하여금 북한시장 선점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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