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호

명창 김영임 찹쌀쇠고기 전병 구절판

  • 글·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 사진·김용해 부국장 sun@donga.com

    입력2005-12-16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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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성진 가락 속, 아홉 가지 맛과 정성구절판에는 아홉 번의 정성으로 아홉 가지 음식이 담긴다. 이 음식을 찹쌀가루 묻힌 쇠고기 전병에 싸먹으면서 한 번의 정성이 더 들어간다. 도합 열 가지 맛과 정성이 한데 어우러진 요리의 매력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초겨울로 접어든 11월 중순. 잉꼬부부로 소문난 경기소리 명창 김영임(金榮姙·52·중앙대 예술교육대학원 국악과 교수)씨와 개그맨 이상해(60)씨 부부가 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S빌라를 찾았다. 집안에 들어서니 현관부터 온통 꽃 천지다. 화병에 꽂힌 꽃, 물 위에 띄운 꽃, 벽마다 걸린 꽃그림, 그리고 촛불에선 라벤더 꽃향내가 풍겼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을 배경삼아 거실 한쪽에서 조용히 주인을 기다리는 장구다. 그 옆에는 이런 노랫말이 적힌 종이쪽이가 놓여 있다.

    “풋고추, 절이김치, 문어, 전복 곁들여 황소주 꿀 타 향관이 들여 오리정으로 나간다. 어느 년(年) 어느 때 어느 시절에 다시 만나 그리던 사랑을 품 안에 품고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에~어 화둥게 내 건곤…”

    경기잡가(京畿雜歌) 중 ‘출인가(出引歌)’의 일부로 이도령과 춘향이 오리정에서 이별할 때 주고받은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다. 김씨는 8월28일 국립국악원에서 이 곡을 포함해 경기 12잡가를 3시간에 걸쳐 완창했다. 경기잡가 무형문화재인 묵계월 선생에게서 1995년부터 무려 10년간 가다듬은 결과물이었다. 10년이란 세월 동안 부르다 보면 지겹기도 하련만 김씨는 지금도 같은 곡을 끊임없이 연습 중이다. 남편 이씨가 전하는 김씨의 평소 모습이다.



    “항상 노래와 같이 살아요. 차에서도 자기가 부른 노래를 들으면서 연습을 해요. 옆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늘 준비하고 준비하는 정말 놀라운 여자예요. 가끔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두 사람이 부부가 된 지는 올해로 27년째다. 1974년 서울 무교동 뉴타운 호텔 커피숍에서 처음 만났다.

    “어두운 불빛 아래서 봤는데 아내의 첫인상이 괜찮더라고요. 처음엔 국악을 하는지 몰랐어요.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직접 보러 갔죠. 무교동 극장식 무대였는데, 하얀 옷을 입고 나온 모습이 천사 같았어요. 그때 완전히 반했죠.”

    이씨는 김씨를 줄기차게 쫓아다녔고 결국 4년 만에 결혼에 성공했다.

    이씨는 11월1일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문화훈장을 받았다. 이보다 앞선 2003년엔 김씨가 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어 국내 최초로 부부가 모두 문화훈장 서훈자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

    부부는 그동안 남모르게 봉사활동을 벌여왔다. 남편 이씨는 맛깔스러운 입담으로 힘들고 가난한 이들의 입가에 웃음을 선사했고, 부인 김씨는 구성진 가락으로 그들의 시름을 덜어줬다. 부부는 함께 공연해 벌어들인 수입금 중 일부를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쾌척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김씨는 “행복이란 자기가 만들고 찾아가는 것”이라며 “남편에게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씨는 요즘 “남편을 위해 산다”고 한다. 남편을 위해 기꺼이 해줄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정성을 가득 담은 요리다.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찹쌀쇠고기 전병 구절판’도 그중 하나다.

    김씨는 “특별한 재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고, 뭐든 집에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며 “그래야 평소에도 해먹기 쉽다”고 했다. 김씨가 즉석에서 마련한 재료는 무와 무순, 당근, 밤, 잣, 호두, 양파, 배 등.

    이 요리는 재료를 하나하나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껍질을 벗긴 무는 채 썰어 소금을 뿌려뒀다가, 어느 정도 절여지면 물기를 뺀다. 그래야 씹히는 맛이 신선하다. 당근과 밤은 껍질을 벗겨 채 썬다. 마른대추는 하루 정도 물에 불렸다가 씨를 빼고 채 썬다. 잣과 호두는 껍질을 잘 벗겨 잘게 다진다. 양파도 껍질을 벗겨 적당한 크기로 썰고, 무순은 물에 잘 씻는다. 배는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먹기 직전에 써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달걀지단을 부친다.

    명창 김영임 찹쌀쇠고기 전병 구절판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꽃을 본다. 정말 예쁘다. 어떻게 이렇게 예쁠 수 있을까 싶다. 그걸 화폭에 담는다. 그리고 행복을 노래한다.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행복도. 세상에 완전한 인간은 없다.

    그리고 이 재료를 싸 먹는 전병은 쇠고기로 만든다. 얇게 저민 쇠고기에 소금과 후추를 골고루 뿌려뒀다가 찹쌀가루를 골고루 묻혀 기름에 지져내면 된다. 이 전병에 준비된 아홉 가지 재료를 싸서 소스를 찍어 먹으면 열 가지 맛과 정성이 한입 가득히 맴돈다. 소스는 매실 원액과 진간장으로 만들고, 취향에 따라 겨자나 포도씨 기름을 넣어도 된다.

    김씨에게는 요즘 또 하나 행복한 일이 생겼다. 지난해부터 꽃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좋아하는 꽃그림을 화랑에서 사려니 너무 비싸고, 그림을 전공하는 딸에게 그려 달랬더니 바쁘다고 해서 직접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헌데 1년 반 정도의 경력치고는 그림 솜씨가 범상치 않아 보인다.

    “그림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죠. 조용한 혼자만의 공간에서 그림을 완성해가면서 갖는 느낌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색감과 구성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표현됐을 때는 흥분해서 잠자는 남편을 깨워 보여주기도 하죠.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나 완성했을 때 모두 정말 행복해요.”

    김씨는 이런 행복을 좀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남편 이씨도 같은 생각이다. “나이도 들고 상도 받아서인지 더욱 조심스러워지네요. 우리 부부가 뭔가를 남겨야 할 것 같은 부담도 들고요. 아직은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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