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아산병원 - 동아일보 의료봉사단은 10월21일부터 11월1일까지 11일 동안 파키스탄 지진참사 피해 현장에서 3000명이 넘는 환자들을 치료했다. 이번 봉사활동은 대한의사협회가 동남아 쓰나미 참사지역 의료봉사에 이어 두 번째로 추진한 것. 봉사단은 파키스탄에서 ‘코리아의 인류애’를 깊이 각인했다.
네살배기 파키스탄 소년 굴 칸은 10월8일 파키스탄 북서부를 강타한 지진으로 형 둘과 동생 하나를 잃었다. 칸 또한 머리에 심한 부상을 당해 중태였으나 한국에서 온 의사들 덕에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칸의 치료는 일반외과 전문의 송태효 박사가 맡았다. 송 박사는 대한의사협회가 주관하고 서울아산병원과 동아일보가 공동으로 참여한 ‘파키스탄 대지진 긴급 의료지원단’의 2진으로 참여해 지진 피해 환자를 돌봤다.
“칸의 머리에 두른 붕대를 푸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겨우 응급 치료만 받은 상태였습니다. 두개골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데도 대충 봉합만 한 데다 상처관리도 미흡해 진물이 흐르고 균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이었어요. 2∼3일 안에 패혈증으로 사망에 이를 것 같았습니다.”
송 박사는 1시간에 걸쳐 칸의 후두부에 열십자로 난 상처를 하나하나 봉합했다. 마취제 없이 봉합술을 시행했기에 응급 텐트 안은 칸이 지르는 비명으로 가득 찼다. 칸이 수술을 받는 동안 아버지 엘리는 땀을 흘리며 칸을 붙잡았고 그 뒤에서 어머니 룩사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아이 셋을 지진에 잃은 어머니는 겨우 목숨을 건진 칸마저 잘못될까봐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수술 후 칸은 한국 의료진이 베이스캠프를 차린 아보타바드시(市)의 아유브 대학병원에서 후속치료를 받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중상 아들 안고 18시간 걸어와
칸의 고향은 아보타바드시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바그. 칸의 부모는 지진 때문에 길이 끊어지자 칸을 안고 18시간 동안 산길을 걸어 아유브 대학병원의 한국 의료진 텐트에 닿았다. 아들을 살려내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었다.
칸의 부모가 아들의 생명을 한국 의사들에게 맡긴 것은 파키스탄에 1진으로 온 인천 길병원 의료진의 명성이 파키스탄인들에게 빠르게 퍼졌기 때문이다. 한국 의사들의 진찰, 처방, 응급처치 기술은 현지 의료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진적이어서 불과 며칠 만에 파키스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10월22일 오전 11시,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은 아보타바드시 아유브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대한의사협회가 지진 피해를 당한 파키스탄에 긴급 의료진을 보내기로 한 뒤 그 두 번째 팀으로 서울아산병원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파키스탄 땅을 밟은 것. 이들이 베이스캠프를 친 아보타바드시는 파키스탄 북서부 인구 20만의 중소 도시이자 이번에 지진 피해를 가장 심하게 본 카슈미르 지역의 관문에 해당하는 곳이다.
카슈미르는 한국과 위도가 비슷해 마치 강원도 어느 곳 같은 풍광이 펼쳐졌는데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히말라야의 냄새가 났다. 파키스탄으로부터의 독립 움직임, 인도와의 국경분쟁,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근거지로 지목돼 국제 뉴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곳이다.
10월8일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이 카슈미르를 강타했다. 공식 사망자만 6만명. 당초 서울아산병원팀은 지진 피해가 가장 심각한 파키스탄 서북부의 무자파라바드시(市)에서 진료할 계획이었으나 파키스탄 정부의 요청으로 아유브 대학병원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게 됐다. 아유브 대학병원은 파키스탄에서 랭킹 5위의 큰 병원이다. 그러나 1200개 병상은 지진 이후 병원 뜰에 400개 병상을 운영하는 규모로 대폭 축소됐다. 의사의 3분의 2가 계속된 여진을 피해 병원을 떠나면서 병원의 기능이 마비되는 차였다. 때마침 급파된 한국 의료진은 이 병원이 다시 활성화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서울아산병원팀은 이정선 단장(일반외과), 송태효(일반외과 개업의), 강석중(정형외과), 윤경은(가정의학), 차명일(응급의학), 유병주(인턴)씨 등 5명의 의사와 최현웅 약사, 이은숙 내과전문 간호사, 이은희·민들레 응급전문 간호사, 이은숙·오소영·박경애·정지영 외과전문 간호사, 신대성 행정요원 등 14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서울아산병원의 파키스탄 진료 자원자 모집에 자원한 50여 명의 의사와 간호사 중에서 선발됐다. 오소영 간호사만 지난해 인도네시아 쓰나미 진료를 다녀온 경험이 있고, 나머지 의료진은 이번이 첫 해외 응급 구호 활동이었다. 송태효 원장은 개업의인데도 대한의사협회의 파키스탄 의료진 모집 공고를 보고 서울아산병원팀에 합류했다. 송 원장은 “파키스탄 지진 참상 보도를 보고 외과의사로서 피해자들을 돌보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빈 라덴 은신 추정지 이동 진료
서울아산병원 의료 지원팀은 아유브 대학병원 인근 숙소에 여장을 풀자마자 진료에 나섰다. 반나절 동안 1차 의료진과 함께 합동 진료를 했다. 첫날은 업무 인수인계가 주목적이었는데, 4시간의 오후 진료 시간에 무려 200여 명의 환자가 몰렸다. 예상은 했지만 환자가 이처럼 많이 모여들자 의료진은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13명의 의료인력이 하루 400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무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음날에는 환자가 더 많이 몰려왔다. 의료팀은 진료를 마친 29일까지 하루 600명 이상의 환자를 돌봤다. 24일부터 29일까지는 이동 진료를 했다. 이동 진료는 의료진의 모든 의사와 간호사가 돌아가며 맡았는데,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울아산병원 의료팀이 이동 진료를 한 지역은 발라코트시로, 건물의 90% 이상이 파괴된 지역이었다. 인구 2만명인 이 도시는 지진피해 사상자 수가 집계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더욱이 발라코트는 탈레반의 은신처로 알려져 있어 의료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해발 4000m가 넘는 산맥이 즐비한 파키스탄 서북부 고산 지역인 이곳은 9·11 테러의 기획자로 알려진 빈 라덴의 은신처로 추정됐기에 의료팀이 활동하던 중에도 미군이 많은 병력과 트럭, 헬기 등을 동원해 수색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미군은 이번 지진으로 탈레반의 기동성이 현저히 약화됐다고 보고 이때가 빈 라덴 색출의 호기라고 판단했다. 발라코트는 탈레반의 은신처인 만큼 반미정서가 매우 강한 곳인 데다 때마침 미군이 대규모 작전을 개시했으므로 미군과 발라코트 주민 간 충돌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이라크에 파병한 한국의 의료진도 충분히 공격목표가 될 수 있었다.
의료팀은 발라코트시에서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곳으로의 이동 진료를 회피하는 건 의료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뜻을 모았다. 한국 의료진이 탈레반 및 그들을 심정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이 상당수 존재하는 준(準)전시 상태의 도시를 5시간 넘게 무방비로 넘나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면서도 내린 결론이었다.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의사와 간호사들로 구성된 우리 의료팀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의료팀의 열정은 매일 7시간의 강행군 진료를 오히려 ‘즐기게’ 만들었다. 외과 텐트에서 쉼없이 의료도구를 소독하던 민들레 간호사는 “나눌 수 있다는 게 행복해요. 힘들다기보다는 즐거워요.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들의 눈빛이 많은 말을 하는 것 같고 그 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있는 힘을 다해 제가 가진 것을 하나라도 더 주고 갈 겁니다”라고 했다.
의료팀은 아침 6시에 기상해 간단한 체조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어 한국에서 가져온 1회용 밥과 인스턴트 식품으로 식사를 한 후 일터로 떠난다. 의료팀이 병원에 도착해 맨 처음 하는 일은 의료 텐트 주변을 소독하는 것. 이는 주로 행정요원 신대성씨의 몫이었다. 진료는 9시부터 시작됐다. 점심은 대한의사협회 박일현씨나 행정요원 신대성씨가 나르는 라면으로 때웠다.
봉사 시기는 하필이면 이슬람의 금식기간인 라마단과 겹쳤다.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이슬람교의 율법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작은 텐트 안에 들어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한국 의사에게 환자 쇄도
진료 시작 둘째 날 저녁 회의에선 지진과 관련 없는 환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하루 500명에 달하는 내과 환자의 90%는 지진과 관련 없는 고혈압, 당뇨, 관절염, 소화기, 기관지 계통의 만성 질환자였기 때문이다. 일부 팀원들은 환자들을 되돌려 보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결국 “약값이 비싸고 의사에게 변변한 진료 한번 받지 못한 파키스탄의 의료실정을 생각하면 그럴 수는 없다. 새벽부터 몇 시간씩 걸어 찾아온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게 우리의 의무이므로 지진으로 부상을 당한 환자를 돌보는 것처럼 잘 돌봐주자”는 쪽으로 정리가 됐다.
하루 100~150명의 외상 환자를 치료한 외과 파트의 경우엔 환자의 대부분이 지진 피해자였다. 외과 파트는 이틀째 진료일에 아유브 대학병원으로부터 기존 입원 환자까지 인계받았다. 의료 수준의 차이로 빚어진 일이었다. 외상 치료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상처 처치와 봉합에서부터 한국 의사와 현지 의사의 수준차가 워낙 크다 보니 입원환자들이 “한국 의사에게 치료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한 것.
이송된 환자 중엔 ‘고관절 치환’이라는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환자도 있었는데, 의료팀은 이 환자를 위해 서울에서 필요한 기구를 공수해 5시간에 걸쳐 수술을 했다. 이 수술을 주도한 강석중 정형외과 의사는 “한국에서도 어려운 수술이지만, 환부의 염증이 심해 수술하지 않으면 불구가 될 수 있어 무리를 했다”고 털어놨다. 아유브 병원에서도 처음 하는 수술인지라 파키스탄 의사 두 명이 수술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수술을 도왔다고 한다.
파키스탄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세계 각국에서 의료진이 몰려들었다. 한국은 NGO 중심 의료지원단이라는 것이 특색이었다. 지진 발생 이틀 후 국내 여러 NGO는 인력과 구호품, 의약품 등을 한국에서 파키스탄으로 공수했다. 탤런트 김혜자씨를 비롯한 개인 차원의 구호에서부터 불교 기독교 단체의 지원, 대한의사협회 및 병원을 가진 의료단체의 지원 등 파키스탄 돕기에 나선 한국 NGO의 숫자는 다른 나라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한국의 많은 NGO 인력이 파키스탄 지진 현장을 누비며 구호에 전념하는 것은 그간 한국이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외국의 재난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것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한국 NGO들의 맹활약
민간 차원의 이처럼 활발한 지원은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의 인지도 향상은 물론이고 국가 이미지도 올라갔다. 파키스탄 TV와 신문은 한국 의료진의 활약상을 자세히 보도했으며, 파키스탄 정부도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특히 파키스탄 5대 병원인 아유브 대학병원이 정상 기능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준 한국 의료진의 활약은 파키스탄 지진 구호의 백미라 할 만했다. 아유브 대학병원에서 의료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 의료진의 활약상이 현지 언론에 자세히 보도된 때문인지 10월24일에는 여당 총재이자 전직 총리인 자말리씨가 의료팀을 방문해 사의를 표하고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병원 공터에 세운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지진으로 부상당한 아기를 돌보고 있다.
해외구호 활동에는 상당한 비용이 드는데도 국내 NGO들이 많은 의료진을 파키스탄에 보내는 바람에 파키스탄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도 몇 명의 의료진이 왔는지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였다. 지진 현장 여기저기에 텐트를 치고 의료 구호에 나선 국내 의료진이 치료한 환자 수는 한 달간 수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의료 서비스의 질은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평이다.
이유는 ‘컨트롤 타워’의 부재 때문이었다. 파키스탄 지진 피해지역에는 각국에서 온 NGO들의 협의체가 가동되고 있었는데, 국내 NGO들은 정보 부족으로 협의체에 거의 참가하지 못했다. 지진 피해가 가장 심한 무자파라바드시의 공설 운동장에는 세계보건기구와 세계식량기구가 파견한 대규모 인력이 발전 차량, 위성수신 장비, 인터넷, 전화 등 구호활동에 필수 불가결한 장비를 갖추고 구호활동을 조정하고 있었다.
유엔 기구는 매일 아침 8시 무자파라바드 지역에서 활동하는 NGO들을 모아 회의를 열고 그날의 최우선 구호활동이 무엇인가를 결정해 그 일을 먼저 처리하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국내 의료진은 이 회의에 나가지 못했다. 10월24일 무자파라바드에서 만난 세계보건기구 지원단의 포팔 박사는 “한국에서 많은 의료진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NGO협의체에 나오지 않아 아쉽다. 무자파라바드 인근 산간지역에는 긴급 의료지원이 필요한 곳이 아주 많은데, 헬기를 지원할 테니 진료할 수 있겠냐”고 이정선 단장에게 물어오기도 했다.
정부 차원에서 응급 의료팀을 파견한 나라들은 수술실을 통째로 옮겨와 응급의료 지원 활동을 벌였다. 서울아산병원과 조계종 의료지원팀은 발라코트시에서 처치하기 힘든 환자가 발생하면 시 외곽에 위치한 아랍에미레이트 군병원에 환자를 이송하기도 했다. 파키스탄 지진 현장에 수술이 가능한 장비를 갖춘 의료진은 모두 정부 차원에서 보낸 의료팀들이었다. 외국 재난 현장에서 이상적인 의료 구호 방식은 무엇인지에 대해 한국 정부와 NGO들이 진지하게 논의해볼 시점인 듯하다.
체계적 재난국 지원 시스템 갖춰야
‘서울아산병원-동아일보 의료봉사단’이 10월21일 발대식을 열었다.
아유브 대학병원 천막에서 체력의 한계에 달할 만큼 열성적으로 환자를 진료한 서울아산병원 윤경은 의사는 “재난국에 제공하는 한국의 의료봉사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해줘야 합니다. 비록 내가 환자를 많이 돌보고 그들 또한 제 진료에 만족했다고 생각하지만, 치료가 일회성에 그친다는 회의를 피할 수 없었어요. 의사 개인에게 의존하는 방식보다는 재난국 지원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추는 것이 더 절실하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