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율방어로 부담하는 이자만 매년 13조원
- ‘외환시장 안전판’ 기금 바닥…도박성 강한 거래까지 동원해 방어
- ‘환율상승=수출경쟁력 강화’는 헛된 믿음
- 해외로 자본 유출돼 10년 불황 맞은 일본과 유사
- 적극적 원화강세 정책으로 기업체질 강화해야
외화 유출 범인을 찾아라!
그렇다면 두 번이나 겪은 이 ‘불행한 역사’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일까. 아니다. 처절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불행한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 물론 형태는 다르다. 역사는 스스로 변신하는 생명력을 가졌다. 불행한 역사는 그 양상을 살짝 바꿔가면서 우리의 방심을 노린다.
우리는 얼마나 철저하게 반성했을까. 이 물음에는 부정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의 원인이 무엇이고 전개과정이 어떠한지, 얼마나 무서운 경제 질병인지 경제전문가조차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외환위기는 언젠가는 또 반복된다. 실제로 그 징조는 점점 농후해지고 있다. 다만 그 양상이 과거와 달라 몰라볼 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 정권교체기의 일이다. 어느 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술렁거렸다. 외화가 대규모로 유출된 것이 확실하며, 이것이 외환위기를 일으킨 결정적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인수위는 그 범인만 잡으면 폭발 직전이던 국민감정을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우리 경제의 기초(펀더멘털)는 양호한 편이었다. 잠재성장률은 비교적 높았고, 재정 또한 튼튼한 축에 들었다. 외환위기 이전의 국제적인 평가도 나쁘지 않았으며, 국제수지 적자가 230억달러에 달하던 1996년에도 외자 도입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1996년 국제수지 적자는 전년도보다 3분의 1까지 줄었다. 누구나 외환위기를 겪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외환을 해외로 빼돌린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1997년 경상수지는 82억달러 적자였고 자본수지는 13억달러 흑자였으므로, 외환보유고는 69억달러만 줄어야 했다(82-13=69). 그러나 실제로는 그 두 배에 가까운 128억달러가 줄었다. 적어도 59억달러가 연기처럼 사라진 셈이다. 1996년 자본수지는 240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는데, 대부분 외국으로부터의 차입이어서 이것까지 합산하면 300억달러가 사라진 셈이다. 인수위원회가 술렁거릴 만했다.
그러나 이것은 외환시장을 몰라도 한참 몰라서 나온 이야기였다. 사실 그 많은 외화자산은 거의 다 환율을 방어하느라 소진된 것이었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자.
과거와 완전히 다른 위기
우리나라 국제수지는 1994년부터 급속히 악화됐고, 이때부터 환율도 자연스럽게 올라야 했다. 그래야 국제수지를 호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은 환율을 결사적으로 방어했다. 한 해 국제수지 적자가 230억달러로 치솟아 외환보유고와 거의 맞먹던 1996년에도 원화가치는 4.2% 떨어지는 데 그쳤다. 이처럼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정권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한때 종금사(종합금융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다. 해외에서 이자가 싼 자금을 들여와 이자가 비싼 국내에서 돈놀이를 했으니 앉아서 큰돈을 벌었다. 종금사 설립은 거대한 이권(利權)이었고, 김영삼 정권은 무더기로 종금사 허가를 내줬다. 그 와중에 정치자금이 오고간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환율이 상승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종금사는 환차손(換差損)을 입을 수밖에 없다. 달러당 800원에 10억달러를 들여왔다면 총 8000억원을 돈놀이해서 해외이자와 국내이자의 차이만큼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환율이 1000원으로 오른다면, 원금은 8억달러로 줄어든다. 환차손이 원금의 20%에 달해, 이자차익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다.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허가받은 종금사는 대부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해관계 때문에 당시 정권은 결사적으로 환율을 방어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버틸 수는 없었다. 외환위기 직전 4년 동안의 국제수지 적자는 430억달러로 1990년대 중반의 외환보유고보다 두 배가 많았다. 외환보유고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막대한 외채를 들여와 외환보유고를 메워야 했으니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결국 원화가치는 한꺼번에 하락했다. 1998년 1월의 평균 환율은 1707원, 불과 3년 전과 비교해 두 배 이상으로 폭등했다. 이 과정에서 환율을 억지로 방어하려다 외환보유고가 고갈된 것이다.
예를 들어 환율이 800원일 때 10억달러를 팔았다가 환율이 1000원으로 올랐을 때 다시 산다면 8억달러밖에 살 수 없다. 원화 규모는 같은데 외환보유고는 2억달러가 순식간에 준 것이다. 이런 거래가 반복되면 외환보유고가 남아나겠는가. 외환을 해외로 도피시킨 것이 아니라, 환율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보유 외환이 눈 녹듯 없어진 것이다.
아직 우리는 철저하게 반성하지 않은 것 같다. 과거에는 이처럼 ‘환율상승’을 방어하다가 외환보유고를 소진했다면, 이제는 ‘환율하락’을 방어하느라 원화 자산을 소진, 국가 부채를 누적시키고 있다.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외환위기가 닥쳐오는 것이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사용해야 할 외국환평형기금은 거의 바닥났다. 대규모 국채를 발행해 환율방어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지만, 이것으로는 모자라 스와프 거래를 통해 국민연금까지 끌어다 썼다.
심지어 도박성이 매우 강해 한순간에 거래액의 수십배 내지 수백배의 손실을 불러올 수 있는 NDF 거래(차액선물환거래)까지 동원했다. 노무현 정부 정책 당국의 무모함이 김영삼 정부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이래도 ‘제2의 외환위기’가 오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나는 1999년부터 외환보유고 과다누적이 불러올 경제적 해악을 경고해왔고, 계속 이 점을 강조했다. 외환보유고는 400억달러면 충분한 수준이라고 봤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거나 ‘미친 놈’ 취급을 받았다. 도저히 정책당국을 설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00년 1월 중순에는 ‘외환보유의 종류라도 다양화하라’고 촉구했지만, 정책 당국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는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할 것이고,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언명한 바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과다 외환보유의 심각성
현재 우리 경제는 외환보유고의 과다누적이 불러온 여러 가지 심각한 어려움과 손실을 겪고 있다.
첫째,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발행해야 한다. 그러나 외평채가 엄청나게 증가하는 바람에 이자부담이 만만치 않다. 2004년말 현재 외평채 발행잔액은 약 22조2000억원. 1998년에 비해 57배나 증가했고, 이자부담은 매년 9000억원에 이른다.
둘째, 외환보유고가 크게 늘었다는 것은 정책 당국이 외환을 사들였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국고채를 발행했는데, 발행잔액이 2004년말 123조원으로 1998년에 비해 2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때문에 부담해야 할 이자만 매년 6조원이다. 물론 국고채가 모두 외환매입을 위해 발행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외환을 사들이기 위해 발행됐다.
셋째, 외환을 사들였다는 것은 그만큼 통화공급이 증가했음을 의미하고, 증가한 통화를 환수하기 위해 통화안정증권(이하 통안증권)을 발행해야 했다. 실제 그 잔액은 143조원으로 1998년과 비교하면 30배가 넘는다. 그 이자는 매년 6조원을 상회한다. 이것이 모두 환율방어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 부분 외환보유고 급증에 따른 통화증발을 환수하기 위해 발행한 것이다.
이 세 분야에서만 해마다 13조원의 재정 혹은 금융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8조원은 외환보유고 과다에 따른 기회손실로 보인다. 2004년말 현재 외환보유고는 1991억달러이고 이것을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206조원에 달하므로, 내 추정이 그렇게 무리한 것은 아닐 것이다. 외환보유고는 미국 연방채권 등으로 보유해 일정한 이자수입이 있지만 외평기금은 계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물론 적정한 규모의 외환은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추정한 적정 외환보유고 400억달러를 뺀 1600억달러는 과다한 것으로, 우리 돈으로 160조원에 달한다. 이에 따른 통안증권과 국고채의 이자손실만 따져도 6조원이 넘는다. 외평채 이자손실을 여기에 합하면 매년 7조원이 넘는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앞으로 10년 동안에 지불할 이자가 80조원이 넘는다. 국민경제는 그만큼 심각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과도한 외환보유는 또 다른 피해를 부른다. 환율을 방어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이에 따른 비용도 적지 않게 투입해야 한다. 추산컨대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환율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12조원 이상의 거래 손실이 발생했다. 이 같은 거래 손실은 정책 당국이 환율방어를 치열하게 전개했던 2000년 하반기부터 2001년 상반기까지, 그리고 2004년 중반에 주로 발생했다.
2001년의 손실은 환율을 2000년 연평균 1131원에서 2001년 연평균 1291원까지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2004년의 손실은 환율이 2003년말 1198원에서 2004년말 1044원으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그것을 막으려다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NDF에서 입은 손실만 2조원이 넘는다.
정책 당국자의 속임수
간단하게 말해서, 정책 당국이 달러를 비싼 값에 사들인 뒤에 싼 값에 되파는 것을 반복해 국가경제에 큰 손실을 입힌 것이다. 지금도 이 같은 환율방어는 계속되고 있으며, 손실도 쌓이고 있다.
정책 당국자들은 이것을 ‘실현되지 않은 평가손실’인 것처럼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한다. 그렇지만 평가손실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 표의 수치로 추정하면 외환위기 이후에 누적된 외환보유고의 평가손실은 약 37조원에 이른다. 외환위기 이후에 사들인 외환보유고의 원화가치는 240조원, 지난해말 환율로 환산한 원화가치는 약 203조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240조원-203조원=37조원).
지금도 국제수지는 대규모 흑자를 기록해 환율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평가손실 규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엄청난 재정·금융 손실액을 국가경제 발전에 사용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기회를 외환보유고 과다가 빼앗고 있는 것이다.
승률 0%의 가위바위보 놀이
그렇다면 위와 같은 평가손실과 기회손실이 발생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당시 외환보유고는 많을수록 좋다고 떠들던 자들이 져야 한다. 지난해까지 현재의 외환보유고는 과다한 것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린 정책 당국자들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환율방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지적했듯 거래 손실 누적액이 12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이것은 직접손실이다. 그 책임은 아무리 가혹하게 묻더라도 지나치지 않다. 만약 기업에 이런 정도의 손실을 끼쳤다면 그 책임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더욱이 정책 당국은 한쪽 방향으로만 환율방어를 하고 있어서 손실은 마냥 커지고 있다. 환율이 떨어질 때만 외환을 적극적으로 매입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가위바위보 놀이에서 항상 가위만 내는 꼴이다. 비쌀 때 사서 싸게 팔고 있으니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런 방법은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기능을 하며, 이에 따라 외환보유고가 누적되면서 평가손실까지 키우고 있다.
양 방향으로 환율을 방어하면 손실을 줄일 수 있다. 환율이 오를 때 외환을 팔면, 거래이익을 남길 수 있다. 최근에 그런 기회가 있었다. 환율은 9월 중순까지 1020원 선을 유지하다가 10월 중순 한때 1058원을 기록했다. 이런 때에는 달러를 적극적으로 매각해야 했다. 이후 환율이 다시 1020원으로 내려갈 때 되사들이면, 1달러당 38원의 거래이익(380억원)을 남길 수 있다.
이런 간단한 거래기법조차 외환 당국은 모르고 있다. 그래서 거래손실이 무려 12조원에 이르고 이런 추세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참고로 지난 9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조사에서 한국의 환율정책은 85위를 기록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22단계나 하락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환율을 적절하게 방어하기 위해서는 외환을 매각하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거래이익을 남긴다. 장차 환율이 갑자기 폭락하는 사태도 예방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환율 목표를 어느 선에 둬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1020원을 목표로 할 것인가, 아니면 1050원을 목표로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환율 목표를 정책적으로 점차 하락시켜야 한다고 결정했다면 해마다 환율을 얼마나 떨어뜨려야 하는지도 결정해야 한다. 이 또한 쉽지 않다. 국제경쟁력과 국제수지, 잠재성장률과 경기 동향, 외환보유고의 기회손실과 통화량 및 이자율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반성할 줄 모르는 정부 엘리트
아쉽게도 정책 당국은 이 같은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아 능력을 키우기 위한 수련을 쌓을 기회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문가에게 자문이라도 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평가손실과 거래손실을 합하여 무려 50조원의 손실이 생기는 일은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엘리트의식은 하늘을 찌른다.
외환 당국의 반성을 모르는 자세가 국가경제를 병들게 하는 사이에 외국인은 환차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지난 9월14일부터 10월14일까지 한 달 사이에 외국인이 순매도한 주식대금을 거래당일의 달러가치로 환산하면 23억8000억달러에 이른다. 만약 주식매입 대금을 2003년에 들여왔다고 가정하면, 이 매각대금의 당시 달러가치는 20억7000만달러다. 외국인이 불과 한 달 사이의 주식 순매도로 얻은 환차익이 3억1000만달러, 우리 돈으로 3100억원인 셈이다. 여기에는 주가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정책 당국은 어떤 짓을 하고 있는가.
2004년 10월, 정부가 개입해 환율을 방어하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 나오자 재정경제부는 “외환시장 문제와 환율문제는 국익과 직결된 사안이므로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지 않도록 협조해달라”고 언론에 공식 요청했다. 환율방어에 따른 손실은 국가경제를 위한 비용이라는 것이 정책 당국의 해명이다. 그렇다면 환율방어는 무엇을 위한 비용일까.
그 비용 지출의 목적을 굳이 찾는다면, 수출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거나 국내 경기를 안정시키는 비용이다. 그런데 환율방어가 진짜로 이런 목적에 기여할까. 과거에는 환율방어가 이런 목적에 기여했을지 몰라도(나는 이것도 부정한다),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미 두 차례나 증명됐다. 환율방어는 수출을 촉진하지도 않았고, 경제성장이나 경기의 안정에도 기여하지 않았다.
특히 2001년에는 원화가치를 12.4%나 떨어뜨려 수출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국내 경기를 부양하려 했으나, 수출은 오히려 12.7%가 감소해 국내 경기는 더욱 부진했다. 당국의 정책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당시 해외 경기가 대체로 부진한 탓도 있었다. 미국의 성장률은 0.8%에 불과했고, 일본도 0.5%, 유럽도 다른 해에 비해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플러스 성장을 한 것도 사실이므로 수출이 마이너스 12.7%를 기록할 상황은 아니었다.
가격 내려 망한 백화점
2001년에 환율방어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수출이 12.7%나 줄어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원화 강세가 오히려 수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뒤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이 경우 환율방어 탓에 감소한 수출 규모는 최소 219억달러에 이른다(2000년 수출실적 1723억달러-2001년 수출실적 1504억달러=219억달러). 우리 돈으로 25조원이다(2000년 연평균 환율 1131원×219억달러=24조8000억원). 부가가치로만 따져도 기회손실 규모가 10조원에 달한다. 수출은 케인스의 승수효과는 물론이고 산업의 전후방 연쇄효과까지 발휘하기 때문에 무리한 환율방어정책으로 국민소득이 최소 30조원 사라졌고 성장률도 2% 이상 떨어졌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외환위기 후에는 환율이 떨어질 때(원화가치가 오를 때) 대체로 수출이 증가하거나 호조를 보였으며, 환율이 오를 때(원화가치가 내릴 때) 수출이 감소하거나 부진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 해답의 비밀은 품질에 있다. 경제학에선 ‘가격은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는 신호등’이라고 가르치지만, 이것은 반쪽 이론이다.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품질이다. 품질이 좋아지면 가격이 올라도 수요는 많아진다(품질이 낮아지면 가격이 낮아져도 수요는 오히려 감소한다). 공급은 이 수요에 반응한다. 가격과 함께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는 ‘품질’이라는 변수가 현 경제학의 이론체계에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 경제이론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처럼 현실을 외면한 경제이론에 입각해 경제정책을 수립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외환 당국은 환율이 높아야(원화가치가 낮아야) 무역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그래야 수출이 호조를 지속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헛된 믿음이다. 해외수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마련인 ‘품질’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다.
백화점이 물건값을 낮추면 매출이 늘어날까, 줄어들까. 일시적인 바겐세일은 매출을 늘린다. 세일 기간에는 낮은 가격으로 좋은 품질의 제품을 산다고 소비자가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상시에도 다른 백화점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 백화점은 2류로 낙인찍혀 업계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만다. 화신백화점이 그랬고, 명동백화점이 그랬으며, 미도파백화점도 그랬다. 후발 백화점들이 등장하면서 가격을 할인해 경쟁에서 이기려고 했다가 오히려 쇠망의 길로 들어섰다. 반면 신세계백화점은 롯데백화점이 등장했을 때 오히려 가격을 올려 지금까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소득 4만달러의 비결
물론 재래시장에서는 가격이 낮을수록 잘 팔린다. 이곳을 찾는 소비자는 품질이 아니라 싼 가격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화점은 다르다. 백화점을 찾는 고객은 좋은 품질을 원한다. 지금 우리나라 수출품도 재래시장에 내다파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따라서 환율을 높여 가격경쟁력을 높여도 장기적으로는 해외 수요가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봐야 한다. 가격을 올려 수출에 성공한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현대자동차는 세계적인 자동차업체와 당당하게 경쟁하고, 일본산 일부 자동차보다 더 비싸게 팔리기도 한다. 그러나 2002년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전문가 다수가 현대차가 세계 메이저 업체들의 등쌀에 못 이겨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러나 현대차는 과감하게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판매가 증가했다. 해외 소비자들은 가격인상이 품질향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신차 가격이 상승하자 중고차 가격도 상승했고, 이것이 수요를 더 늘렸다(중고차 가격은 자동차 구입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그뒤 현대자동차는 또 한 번 모험을 감행했다. 보증수리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렸다. 그러자 전문가들은 현대자동차가 망하려고 작정을 했다고 봤다. 당장은 판매량이 늘겠지만, 10년간 무상으로 수리해주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고, 결국 이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산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소비자는 품질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받아들였고, 판매량이 더 늘어났다. 물론 그 사이에 현대자동차는 미국에 연구소를 세우는 등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품질을 개선한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다른 대기업도 이런 성공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한국산 전자제품은 선진국 백화점이나 대형할인점에서 미끼상품이었다. 원가보다 더 싸게 팔렸다. 그러나 지금은 매장의 가장 좋은 곳에 진열되고 가장 비싼 값에 팔리는 상품의 대열로 올라섰다. 많은 중소기업도 앞을 다퉈 이 같은 성공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수출은 환율이 하락하는 속에서도, 즉 수출가격이 올라도 여전히 호조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실책
이런 ‘효자기업’을 양산하려면 환율을 점진적으로 떨어뜨려 기업이 수출가격을 높이지 않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해외시장은 대한민국 수출품이 점점 고급화하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품질향상과 국제경쟁력의 향상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환율을 열심히 방어해줌으로써, 그리고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림으로써 이런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무엇보다 환율 문제가 장차 국가적인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프랑스 정부처럼 말이다. 당시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 독일로부터 전쟁배상금을 받을 권리를 확보했다.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전쟁에서 패배한 후, 1870년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거액의 전쟁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던 프랑스로서는 패전국 독일로부터 배상금을 받게 되리라는 걸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정부까지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각종 기간시설과 산업시설의 복구에 나섰다.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적자는 전쟁배상금이 들어오면 갚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독일 경제가 사상 유례없는 초(超)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심각한 경제난에 처하자 전쟁배상금을 지불하기가 어렵게 됐다. 프랑스는 전쟁배상금 규모를 대폭 줄여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치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잔액마저 지급을 거부당했다. 여기에다 프랑스는 미국과 영국에 70억달러에 달하는 전쟁채무를 지고 있었으며, 이것을 상환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심각한 재정적자와 외환사정 악화에 시달리게 됐고, 국내외 신뢰도는 떨어졌다. 프랑화의 가치도 폭락했다.
경제는 불안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고, 자본의 해외도피가 극성을 부렸다. 이런 와중에 내각이 10번이나 바뀌었으며, 정정(政情)불안은 프랑화의 가치폭락을 더욱 부추겼다. 새 내각이 들어선 뒤 감세(減稅)정책을 발표하자, 외국으로 도피했던 자금이 되돌아오면서 환율은 안정됐다. 외환보유고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외환보유고가 급증하자 프랑스 정부는 통화팽창과 그에 따른 물가불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외환보유고를 런던 금융시장에 맡겨놓았고, 이것으로도 모자라 파운드화 선물(先物)을 대규모로 매입했다. 이면에는 프랑화의 저평가를 통해 수출을 촉진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렇지만 외환자금의 해외 예치는 국내 소득의 해외 이전을 의미했고, 수출호조 속에서도 국내경기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이 과정은 우리나라 경제가 외환위기를 겪게 된 것과 외환위기를 거친 뒤에 겪은 경험과 거의 일치한다. 재정 팽창이 일시적인 경기과열을 불렀고, 경기과열은 국제수지 적자의 누적을 불렀으며, 이것이 외환 고갈을 불렀다. 김영삼 정권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1993년에 화폐발행 잔액을 42%나 늘렸고, 이것으로도 부족했던지 1995년에는 재정지출(대여금순계)을 43%나 늘리는 용감함(?)을 보여줬다. 당연히 경기가 과열될 수밖에 없었다. 국내 생산능력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하도록 했고, 이것이 수입을 크게 증가시켜 국제수지 적자를 눈덩이처럼 불렸다. 결국 외환보유고는 고갈됐고, 환율이 폭등했으며 외환위기라는 재앙을 부르고 말았다. 이것이 외환위기의 원인이고 진상이다.
경기 부진이 사회주의 세력 키워
잠시 샛길로 빠졌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프랑화의 저평가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었다. 수출이 지속적으로 급증하고 외환보유고가 쌓이자 2년 뒤인 1930년부터 프랑화 가치가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고, 그 추세는 1931년에 들어서자 속도가 더 빨라졌다. 1931년 중반에는 영국 파운드화에 대한 가치가 한꺼번에 40% 가까이 상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추세는 1936년 말까지 5년 이상 지속됐고, 그 결과 수출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수출 부진은 경기 부진을 심화시켰고, 이에 따라 수입도 급감했다.
1932년부터 1937년까지는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되던 때였다. 이 5년 동안에 독일의 공업생산은 2.2배가 증가했고, 미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일본은 1.6~1.8배, 이탈리아와 영국은 1.5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1.1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프랑스만 경제난을 겪었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프랑화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해 1936~38년 중반까지 세 차례에 걸쳐 폭락했다.
정치가 다시 불안정해졌고, 사회주의 계열은 총집결해 인민전선을 형성했다. 권력을 쥔 인민전선은 급진적인 정책을 양산했다. 독과점 억제, 부정 상행위 금지, 의무교육기간 연장, 연금생활자와 군인의 생활보장, 사회보장제 확충 등은 물론이고 주 40시간 근무제까지 도입했다. 급진적인 경제정책은 당연히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약화시켰고 자본은 봇물 터지듯 해외로 유출됐다.
경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고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점령당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재무장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프랑스는 극심한 경제난 때문에 아무런 대비도 할 수 없었다(지금까지 인용한 프랑스의 각종 통계는 킨들버거가 저술한 ‘대공황의 세계’ 중 여러 곳에서 발췌한 것).
혹자는 일본과 대만은 외환보유고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많이 쌓여 있어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던 대만이 최근에는 경기 부진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일본은 이미 1990년대부터 초장기 불황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의 사례는 우리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만하다.
외환위기 때 환율은 1달러당 2067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의 해외 순자산은 1992년까지만 하더라도 대체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무역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지만, 일본에 대한 해외 자본의 투자가 그보다 더 많이 증가했다. 그런데 1993년부터는 해외자본의 일본 투자가 위축되고, 반면에 일본의 해외 투자는 급증하면서 해외 순자산이 빠르게 증가했다. 1993년에 약 32조엔이던 것이 1998년에는 100조엔을 넘었고, 2001년말 127조엔으로 증가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국내 소득이 해외로 이전됐음을 의미한다. 국내 소득이 해외로 이전되면 당연히 국내 수요는 부진해지고, 이에 따라 국내 경기는 하강할 수밖에 없다. 일본 경제가 장기 경기 침체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 진짜 이유다. 물론 일본 경제가 부진해진 원인은 1980년대말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빠진 것에도 있지만, 일본 정부가 경기 부진에서 탈출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여도 경기회복에는 특별한 성과가 없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일본 경제 장기 침체의 진짜 이유
일본은 1992년 이래 무려 11번에 걸쳐 경기부양정책을 집행했는데, 총 규모가 129조엔에 달한다. 10년 동안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재정이 경기 부양 자금으로 투입됐으나 경기를 살려내지 못했다. 원인은 국내 소득이 끊임없이 해외로 이전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해외 자산이 반드시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데 있다. 만약 일본 금융기관이 국내에서 예금을 유치하기 위해 지급한 비용 이상의 수익을 해외 자산에서 올리지 못할 경우 심각한 일이 벌어진다. 가령 어떤 사람의 수입이 연간 1억원이고, 그중 절반을 저축해 빌딩을 한 채 샀다고 치자. 처음에는 임대료 수입이 많았다. 그러나 임대료 수입이 어느 순간부터 빌딩 수선비와 관리비보다 적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사람의 경제 사정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일본 경제에서 벌어진 셈이다.
일본은 외환보유고가 급증하자 통화증발 압력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1980년대 후반부터 기업의 해외투자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그 결과 국제수지의 지속적인 흑자에도 외환보유고는 줄었고, 기업과 금융기관은 해외의 부동산과 기업 사냥에 혈안이 됐다. 1990년대 초반부터 국제경기가 후퇴로 돌아서자 그간의 대규모 해외 투자는 큰 손실로 귀결됐다. 경기 부진의 여파로 투자자산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금융기관과 기업의 경영수지는 빠르게 악화됐으며, 매입했던 각종 부동산과 기업, 영화사 등을 모두 헐값에 다시 매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바로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국제수지 흑자의 경제적 기능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제수지 흑자의 누적은 외환보유고의 증가와 그에 따른 통화증발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해외 자산을 취득해야 하는데, 해외 자산 취득은 항상 수익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그것이 사실상 어려우므로 지속가능성이 없다.
또한 국제수지 흑자, 외환보유고, 해외 자산의 증가는 환율의 하락, 즉 자국 화폐가치의 상승을 부르는데, 이것이 해외 자산에 대한 평가손실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환율이 1달러당 1000원일 때 산 1억달러어치 해외 자산의 원화가치는 1000억원이지만, 환율이 900원으로 떨어질 경우에는 원화가치가 900억원으로 떨어진다. 이에 따라 해외에 투자한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의 경영수지는 악화되고, 심각할 경우 금융 시스템 위기, 즉 금융공황이라는 재앙이 발생하기도 한다.
기업엔 시련, 국가경제엔 축복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수출은 2002년 하반기 이래 2년 넘게 두자릿수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수출호조가 이처럼 장기간 지속된 것은 근래에 없던 일이다. 최근 반세기 동안에는 단 한 차례, 단군 이래 최고의 호황이라던 소위 세계적인 ‘3저(低) 호황기’인 1980년대 후반이 유일하다. 더욱이 2004년에는 수출증가율이 31%에 이르렀다. 이처럼 높은 증가율은 1970년대에도 어쩌다 한번 나타났을 정도였다. 그러나 국민은 살림살이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부품 수입의존도가 높아서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과거에는 부품의 국산화 비율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대기업 수출만 잘되기 때문일까. 이것도 아니다. 2003년 수출통계에 따르면 중소기업 수출증가율이 대기업보다 훨씬 더 높았다(그후에는 이 통계를 발표하지 않는다). 경기 양극화 때문일까. 경기 양극화는 경기변동이 잦거나 그 진폭이 클 때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며, 경기가 호전되고 안정되면 자연히 사라진다. 양극화는 경기부진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셈이다.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문제 때문일까.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그 책임은 정책 당국이 져야 한다.
그렇다면 수출이 호조인데도 국내 경기가 부진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수출 증가가 국내경기를 상승시키는 경로는 이렇다. 수출 증가→국내 소득 증가→국내 소비 증가→생산과 설비투자 증가→고용 증가→국내소득과 소비 증가. 그런데 외환보유고의 과다누적과 환율방어정책이 이 선순환의 고리를 깨뜨린다.
외환보유고가 지나치게 많이 쌓이자 정책당국은 해외 투자와 해외 소비를 적극 권장했고,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금융기관과 기업이 외화예금 형태로 외환을 더 많이 보유하도록 했다. 또한 환차손을 막아줌으로써 국내 자본의 해외 투자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국내 소득을 해외로 이전시킴으로써 국내 경기의 부진을 초래한 것이다. 일본 경제를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지게한 정책을 우리나라 정책 당국도 그대로 본받은 셈이다.
또한 적극적인 환율방어는 새로운 설비의 투자를 방해하고 품질고급화나 기술개발 노력을 저해하는 경향이 있다. 환율을 방어해주면 수출기업의 이익이 보장되고, 이익이 충분히 보장되면 위험부담이 높은 새로운 설비투자를 들여올 이유가 없다. 엄청난 비용을 수반하는 품질 고급화나 기술개발을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어진다.
오히려 환율이 점진적으로 떨어질 때 이런 노력이 더욱 가열될 수 있다. 환율이 떨어지면, 기업은 수익성이 떨어지고, 수익이 감소하면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며, 이런 몸부림이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또 후발국의 도전을 뿌리치게 한다. 한마디로 환율 하락, 즉 원화가치 상승은 기업에는 가혹한 시련이지만, 국가경제의 측면에선 축복이다.
실패의 길, 성공의 길
다만 환율 하락은 반드시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살아남는 데에 필요한 시간적인 여유가 주어진다. 그래야 가격경쟁력 하락을 이겨내기 위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새로운 설비를 들여올 수 있으며, 기술개발과 상표력을 확충할 시간이 주어진다. 정책 당국도 국제경쟁력을 국가적으로 향상시킬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새로운 제2의 외환위기가 닥치고 있다. 이미 발행한 외평채, 국고채, 통안채 등에 지급해야 할 이자만 매년 무려 13조원에 달한다. 물론 우리나라 재정은 아직 양호한 상태로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가장 양호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이자가 추가적인 채권발행을 부르고 이것이 다시 이자부담을 더욱 키운다면 재정은 한순간에 급격히 악화될 수도 있다.
가장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것은 통안증권 이자, 그 규모가 연평균 화폐발행 증가액의 약 네 배에 해당하며(화폐발행잔액은 지난 5년 동안 약 8조3000억원이 증가했다), 통안채 이자를 갚기 위해서 통안채를 추가로 발행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리고 국제수지가 계속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고 외환보유고가 과다하여, 환율이 앞으로도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외환보유고의 평가손실도 피할 수 없는 지경이다. 또한 국내자본의 해외유출을 촉진하는 정책이 국내경기의 구조적인 부진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우리 경제가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경제 체력도 튼튼하고 경제여건도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국제경쟁력도 높고 성장잠재력도 왕성하다. 다만 정책당국이 어떤 자세를 갖느냐가 관건이다. 과거에 실패했던 정책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제2의 외환위기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성공의 길을 개척해간다면 우리 경제의 앞날은 다시 한 번 영광의 빛으로 가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