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도와타 호수에서 고니와 철새들이 어울려 휴식을 취한다.
일본 동북지방의 관문 중 한 곳이라는 아오모리 공항을 뒤로하고 한 시간 남짓 달리자, 눈 속에서 ‘아오니 온천(靑荷溫泉) 주차장’이라는 작은 안내판이 고개를 내민다. 아오니 온천은 진입로 지형이 험하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 보통 자동차로는 갈 수 없다. 모양새도 이상한 설상차로 갈아탄 뒤 사람 키보다 높게 쌓인 눈 속을 헤집고 달리는 동안, 보이는 것은 멀리 겹겹이 연결된 산과 엄청난 양의 눈뿐이다.
‘겨울이야기’ 축제에 참석한 연주자들.
눈 덮인 계곡에 숨은 청정 온천
아오니 온천에 들어서면 우선 어둡다는 느낌부터 받는다. 그 흔한 형광등도 하나 없이 긴 겨울밤을 밝혀주는 것은 호롱불이 전부다. 척박한 산 아래 터를 잡고 있는 아오니 온천은 규슈와 홋카이도에 있는 큰 온천하고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작고 시설도 낡았다. 그런데도 제법 많은 방문객이 이곳을 찾는 까닭은 다른 어느 곳보다 풍광이 빼어나고 깨끗한 온천수, 그리고 정(情)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녀가 함께 목욕을 즐기는 류신탕 같은 노천탕이나, 남탕과 여탕이 구분되어 있는 네 개의 온천탕에는 무슨 성분의 어떤 효능을 자랑하는 요란한 안내문도 없다. 탕마다 사용되는 물의 온도가 43~ 46℃로 다를 뿐 그냥 온천수라는 것이다. 이것저것 넣지 않아도 워낙 수질이 좋아 신경마비와 피로회복에 효능이 뛰어나다는 자신감의 표현인 듯하다.
아오니 온천의 명물인 찻집에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지배인(오른쪽).
아오니 온천의 또다른 자랑거리는 모든 투숙객이 함께 음식을 즐기는 식당이다. 보통 일본의 전통온천이나 료칸에서는 손님이 원하면 방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지만 아오니 온천은 다르다. 오지에 자리잡은 탓에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투숙객이 식당에 모여 함께 음식을 먹는다. 종업원들은 수저 정도만 준비해줄 뿐 음식은 손님이 직접 테이블로 가져와 먹는 독특한 방법을 취하고 있다.
깊은 계곡에 위치한 아오니 온천엔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 다행인 것은 겨울이면 언제나 눈이 쌓여 있어 호롱불과 달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아 산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온천을 찾은 관광객들은 영하의 기온에도 두터운 방한화 대신 짚신을 신고 산책에 나선다. 예부터 내려오는 산촌지방 사람들의 전통적인 삶을 한번쯤 체험해보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겨울이야기 축제’의 낭만
청정 온천에서 휴식을 누렸으면 이제는 즐거움을 찾아 움직일 차례다.
아오모리에서 가장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도와타(十和田) 호수에서는 계절마다 흥미로운 축제가 벌어진다. 줄잡아 십여 개에 이르는 축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호수 주변에서 열리는 ‘겨울이야기 축제’. 눈과 얼음을 이용해 만든 조각상 축제에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불꽃놀이, 네부타 하네토란 춤꾼 축제, 쓰가루자미센 라이브 축제 등을 망라해 ‘도와타 겨울이야기 축제’라 부르는 것이다.
호수를 찾으니 눈을 다져 만든 거대한 건물과 조각상이 가득하다. 이들을 비추던 태양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리면 조각상 주변에 설치된 각양각색의 조명등이 빛나 더욱 아름답다. 이어지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방문객의 시선을 유혹하더니 불꽃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얼음으로 만든 넓은 무대에서 ‘쓰가루자미센’이라는 라이브 공연이 열린다.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는 겨울이야기 축제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호수의 상징인 ‘도와타의 소녀상’ 주변에서 열리는 등불축제다. 청동 소녀상을 중심으로 호수 근처 오솔길을 따라 설치된 등불은 자그마치 5000여 개. 모두 얼음과 눈으로 만든 것으로 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다. 얼음 등(燈) 속에서 빛나는 촛불은 순식간에 호수 주변을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만든다.
이외에도 아오모리현에는 스카유와 야겐 온천, 히로사키 등불축제 등 독특한 분위기가 넘치는 장소가 즐비하다. 어느 곳을 방문해도 신선한 풍광과 맛깔스러운 음식, 구수한 인심이 관광객을 맞는다. 충분히 쉬고, 충분히 즐겁게 놀고, 충분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니, 그야말로 웰빙의 진수다.
① 숙소에서 온천장으로 향하는 투숙객들.② 아오니 온천으로 가는 제설차. ③ 여성 관광객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온천욕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