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종일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오기 전부터 정책자문을 한 핵심 경제 브레인이었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빈부격차 해소, 국토 균형발전, 연간 7% 성장 등 노 대통령이 대통령후보 시절 내놓은 공약은 대부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러나 대선 직후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노 정부 출범 3년이 다 되도록 정부 정책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던 유 교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정부 정책이 현실성을 결여한 탓에 동력을 얻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노무현 정부는 ‘양극화 해소’ 운운하며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 문제는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는 정부 정책이 사실상 양극화를 부추기는 면이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양극화 즐기는 부유층과 중산층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빈부격차·차별 시정위원회’를 가동했고, 최근에는 ‘희망한국21-함께하는 복지’라는 사회안전망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양극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경제구조의 양극화는 여러 차원에서 심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돼 소득분배의 양극화가 나타났다. 도시 근로자가구의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7년 0.283에서 2004년 0.310으로 높아졌다. 빈부격차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절대빈곤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임금근로자의 경우 절대 빈곤율이 1996년 2.5%이던 것이 2004년 3/4분기에는 4.9%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자영업자의 빈곤율은 같은 기간에 1.6%에서 6.2%로 무려 4배 가까이 급증했다.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외치는 사이에 수많은 국민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소득분배의 양극화는 고용의 양극화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정규직 임금의 60%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자영업에 과다 진입한 결과 자영업주의 평균소득이 격감했다. 노동부 기준으로 비정규직 비중은 2001년 27.3%에서 2004년 37%로 급증했다. 한시적 근로자를 포함하면 41.3%에서 61.7%로 증가한다. 자영업주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2000년 304만원에서 2004년 248만원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소득과 고용의 양극화 이면에는 산업의 양극화가 있다. 그래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산업부문간, 업종간 그리고 기업규모별로 생산성과 임금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일례로 서비스업의 제조업 대비 생산성은 1990년 143이던 것이 2003년에는 59로 하락했다. 정보통신(IT)업종과 경공업 간의 생산성 격차는 1995년 1.8배에서 2002년에는 5.2배로 벌어졌다.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도 날로 확대돼 제조업부문에서 중소기업의 평균임금은 1997년 대기업 평균임금의 64%이던 것이 2002년에는 55%로 떨어졌다.
양극화가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
양극화 현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세금을 더 내건, 자신이 속한 기업의 경영행태를 바꾸건, 나부터 발벗고 나서야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소수 부유층은 물론이고 다수의 중산층에게도 양극화는 남의 문제로 비칠 뿐이다. 오히려 부지불식간에 그 혜택을 즐기고 있다. 실업자가 늘어나면 종업원이 말을 잘 들어서 경영자가 좋고, 양극화가 심화되면 저숙련 서비스 요금이 내려가 중산층이 덕을 본다.
사회윤리적 차원에서 양극화가 옳지 않다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근본적인 주장을 하는 것만으로는 양극화 해결의 동력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양극화는 사회윤리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양극화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엄청난 사회 비용을 유발하며, 한국 사회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양극화가 초래하는 사회 비용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내수 침체가 가장 심각하다. 소득분배 양극화는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계층으로부터 소비성향이 낮은 고소득계층으로 상대적 소득이 이전되는 것을 뜻한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양극화는 경제 전체의 소비수요를 감소시킨다. 지난 수년간 소비수요가 극심한 침체를 겪은 것은 외환위기 이후 경기회복기에 급팽창했던 가계대출이 조정기를 거친 것도 요인이었다. 그러나 양극화라는 구조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양극화는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켜 각종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노사분규의 빈발과 노동시장 유연성의 제약이다. 노사분규는 1993년 144건에서 2003년에는 320건으로 늘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노사분규 때문에 빚어진 수출차질액은 같은 기간 5억6400만달러에서 10억5300만달러로 2배 가량 증가했다. 분규로 인한 근로자 1000명당 노동손실 일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10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인 47일과는 비교도 안 된다.
양극화는 정책 왜곡을 초래, 경제의 효율성과 성장을 저해하기도 한다. 이것 또한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정치 상황에 따라 정책 왜곡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양극화가 특권층의 영향력을 비대화해 경제 전체에는 나쁘고 특권층에게만 유리한 정책이 추진되는 경우다. 한때 투기세력에 유리한 부동산 관련 정책이나 과다한 건설 관련 예산편성을 했던 사례가 있다.
반대로 저소득층을 위한 재정지출 팽창을 유발하는 한편 고소득층은 세(稅) 부담 증가를 회피하는 경우 재정적자와 물가상승으로 거시경제 불안이 나타날 수 있다. 중남미의 이른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인적자원의 양과 질 함께 훼손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것도 양극화의 폐해다.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인적자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과거 개발연대에는 저임금 노동자의 근면과 숙련도 축적이 성장의 주된 동인이었다. 그러나 지식기반경제 시대인 지금은 지식노동자의 창의력과 혁신이 성장의 견인차 노릇을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양극화는 인적자원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외환위기 이후 소득 및 고용의 불안이 증대되면서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한 것도 양극화 때문이다. 양극화가 미래 인적자원의 양을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는 의료 양극화를 유발, 건강 상태에서도 부유층과 서민층의 차이를 벌려놓는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최저 소득수준 가구의 5세 이하 아동의 경우 주요 영양소 섭취량이 권장량의 60∼80%에 불과하다.
양극화는 인적자원의 질도 훼손한다. 미래의 인적자본을 담보로 하는 대출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저소득층의 인적자본 투자가 실현되지 않는 것은 전형적인 시장실패 사례다. 계층간 교육비 지출의 격차가 이를 증명한다. 2003년 기준으로 상위 10%는 하위 10%보다 교육비를 약 4배 더 지출했다.
인적자본 투자의 불평등은 빈곤의 대물림과 같은 계층의 고착화를 낳는다. 서울대 사회대 입학생 중 고소득직 자녀와 저소득직 자녀의 비율이 1985년 1.3대 1이던 것이 2002년에는 16.8대 1이 됐다는 놀라운 통계가 있다. 기회균등의 원칙에 입각한 공정경쟁이 불가능하면 상대적으로 기회 박탈을 경험하는 계층의 근로의욕과 인적자본 투자의욕이 저하된다. 심지어 범죄, 마약, 가정폭력 등 파괴적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다.
글로벌 경제 시대의 경쟁전략이라는 면에서도 양극화 문제를 짚어보자.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의 인구대국은 무서운 기세로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막대한 저임금노동력을 무기로 강력한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이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고급 기술의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면서 지식 콘텐츠가 많은 서비스업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아시아 경제의 성장은 우리에게 기회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들의 저가 공세에 시달리며 경제는 위축될 것이다.
과도한 비정규직 활용과 저임금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환상이다. 마약처럼 일시적으로 고통을 유예시켜 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몰락을 자초하는 길이다. 거꾸로 우리는 고임금·고숙련·고지식 노동에 입각해서 고기술·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워야 한다. 직장은 학습과 훈련을 포함한 평생교육 체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그래서 대다수 노동자를 지식노동자로 키워내기 위한 투자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유럽의 변방국가에 불과하던 핀란드가 오늘날 ‘강소국(强小國)’의 대명사로 떠오른 것은 바로 이런 전략 때문이다.
유수한 다국적기업이 한국에 투자할 때는 임금, 지가, 세금 등 비용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수한 인적자원 때문이다. 실현되지도 않을 비용 경쟁보다는 우리의 강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양극화는 우리의 핵심적인 역량을 파괴하고 있다.
불경기 탓에 문 닫은 종로4가 지하상가.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미약하다. 1980년대 이후 주로 영·미계 국가의 빈부격차가 확대된 것을 근거로 나온 주장이다. 그러나 분배 문제에 관한 당대 최고의 권위자라 할 앤터니 앳킨슨이 지적한 대로, 소득분배는 제도와 정책에 따라 상이한 결과를 보이며 대다수 유럽 국가는 세계화 과정에서도 분배의 악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경제개방으로 분배 악화?
경제의 개방화와 무한경쟁 압력 때문에 분배와 복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일견 그럴 듯한 주장도 허구에 불과하다. 미국 하버드대 대니 로드릭 교수는 경제개방과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분배나 복지부문의 사회지출이 많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또한 선진국은 개방화와 세계화가 급속히 진전된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사회지출에 상당부분 치중했다. 모든 나라가 앞다퉈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한 결과 사회지출이 감소한 것은 아니다. 1980년부터 2001년까지 원래 OECD회원국이던 선진 21개국의 GDP 대비 사회지출 평균은 17.7%에서 21.9%로 증가했다. 미국·일본·영국 등 거의 모든 국가에서 사회지출은 증가했고, 아일랜드·네덜란드·룩셈부르크 3개국만 감소했다. 참고로 한국의 2001년 GDP 대비 사회지출은 6.1%로 OECD 30개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양극화와 관련, 또 하나 잘못된 생각은 경제성장만이 바람직한 양극화 해법이라는 것이다. 이는 적하(滴下)이론(Trickle down theory)에 근거한 것으로 성장이 최선의 분배정책이며, 분배를 강조하는 정책은 성장을 저해하여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황에서 성장이 증가하면 고용이 증가하고 소득분배가 개선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함정은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황에서’라는 가정에 있다. 실제로는 경제성장을 제고한다는 명분 아래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을 약화시키고 고소득층이나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분배가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선 1980년대에 레이건 정부가 적하이론에 입각한 정책을 펼친 결과, 분배가 매우 악화됐고 성장률마저 침체됐다. 소위 ‘고용 없는 성장’이 일어나는 경우에도 분배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성장 자체가 나쁘다거나 분배를 저해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성장 지상주의에 빠지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분배의 개선 또는 재분배를 추진하면 경제의 효율과 성장이 저해된다는 주장도 편견이다. 예를 들어 복지지출이 노동공급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복지병(病) 논리, 조세부담 증가가 경제활동 유인을 약화한다는 것, 최저임금제가 노동수요를 위축시켜 실업증가를 낳는다는 게 이러한 주장의 밑바탕을 이룬다.
성장 강조한 세계은행도 태도 바꿔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부정적 효과의 크기는 의문이며, 재분배 정책이 지극히 미약한 우리나라의 경우 우려할 만한 문제는 아니다. 미시적으로 약간의 부정적 효과가 있더라도 소비수요의 견고화 같은 긍정적 효과와 함께 평가해야 한다. 공교육에 대한 투자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효율적으로 추진되면 분배의 개선과 성장의 촉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분배의 개선은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었다. 구미의 경우 19세기 자유방임주의하에서는 심각한 소득 불평등과 경제 불안정이 상존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복지국가가 발달하면서 사회적 안정과 총수요 안정이 실현되고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개도국도 마찬가지다. 많은 학자는 토지개혁 성공 등으로 비교적 고른 분배구조를 갖추고 경제성장을 시작한 동아시아의 성공과 극심하게 양극화된 분배구조를 지닌 남미의 좌절을 대비하며 분배의 형평이 지속성장의 조건임을 지적하고 있다.
근래 들어서는 형평성 혹은 공평한 기회가 경제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는 인식이 경제학계의 대세다. 성장을 통한 빈곤의 해결을 고집해오던 세계은행도 태도를 바꾸고 있다. 지난 9월 ‘공평함과 발전(Equity and Development)’이라는 제목의 세계개발보고서(World Development Report)는 불공평이 심각한 나라는 경제성장이 저해될 수밖에 없고 빈곤 문제를 풀거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불공평을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양극화 문제에 대한 정책대응 방향으로 사회안전망 강화론, 과거회귀론, 그리고 구조개혁론의 세 가지 담론이 있다. 사회안전망 강화론은 외환위기 이후 강력한 힘을 얻고 있는 담론이다.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함께 시장경쟁에서 낙오한 사람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단순하고도 강력한 논리다. 정부·여당의 주장이나 한나라당이 내세우는 ‘공동체 자유주의’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이 안에도 사회안전망을 복지국가 수준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견해, 그리고 재정부담과 복지병을 우려해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는 견해 사이에 상당한 편차가 있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원론적인 수준이고 현실적으로는 사회안전망 강화에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의 차이밖에 없다. 유럽 복지국가의 사회지출 수준이 대체로 GDP의 25% 내외이고, 미국·일본·아일랜드 등 사회안전망 제공 수준에 그치는 나라도 15%는 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7%에 머물러 있다.
최근 정부·여당이 양극화 대책으로 발표한 ‘희망한국21’은 사회안전망을 조금 보강하는 수준이다. 과거에 비해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 해도 기존 제도의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기에는 미흡하다. 이마저 예산의 확보가 불투명해 자칫 정치적 구호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위험요인은 놔두고 병원만 짓는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접근법으로는 양극화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극화는 경제구조의 문제인데 이를 그냥 놔둔 채, 사후약방문식의 사회안전망 대책만 세우면 재정소요만 늘어날 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마치 위험한 교통시설은 방치한 채 자동차보험 체계를 수립하고 병원을 확충하는 꼴이다.
그래서 대안연대 등 일부의 논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일련의 시장개혁 조치를 양극화의 원인으로 지적하며 이를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시장 유연성, 시장개방,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 등 소위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양극화를 불러왔고, 따라서 이를 되돌리지 않고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반드시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의 시장 통제를 옹호하며 관치금융이나 재벌체제에 대해서도 단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에 과거 회귀적이라 볼 수 있다.
과거회귀론의 논지는 일견 타당성을 가진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조하면서 비정규직은 급격히 확대되고 인력감축 위주의 구조조정이 진행돼 자영업으로의 과다 진입이 이뤄진 것이 양극화의 핵심적인 원인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것은 그간 추진된 시장개혁이 신자유주의적 편향성을 보인 때문으로 시정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국가의 시장통제, 관치금융, 재벌체제 등 과거 개발독재시대에 형성된 경제질서로 돌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시장개방은 부작용이 따르지만 불가피한 대세이며 긍정적인 면이 많다. 금융·기업지배구조 개혁은 경제위기를 예방하고 투자의 효율성을 제고하며 책임경영을 유도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사실 비정규직 증가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 확대 같은 경제구조의 양극화 경향은 외환위기 이전부터 시작됐고, 최근 들어 급격히 악화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양극화를 그저 시장개혁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오히려 과거 관치금융시대에 자행된 자원배분의 왜곡과 재벌 위주의 산업체제가 초래한 구조가 문제의 근원이다. 최근 경제·경영학자 100인 선언에서도 지적됐듯 그동안 금융·기업 개혁이 지지부진했던 것이 문제이지 개혁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양극화에 대한 올바른 대처는 양극화를 확대·재생산하는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다. 구조개혁의 핵심 내용은 금융·기업개혁, 노동개혁, 그리고 재정개혁이다. 금융·기업개혁은 중소기업 육성과 맞물려 돌아간다. 대기업이 인적자원이나 금융자원에서 고급자원을 독식하고 불공정 하도급이나 부당 내부거래 등 횡포를 부리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성장은 지난할 수밖에 없다. 재벌은 핵심역량에 집중해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전력을 다해도 쉽지 않을 일인데, 요식업이다, 택배다, 광고기획사다 할 것 없이 돈 되는 일이면 뭐든지 진출하는 풍토에서 중소기업 경영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공공 서비스 일자리 크게 늘려야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 실시돼야 하고,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금융·기업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들 정책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금융·기업 개혁의 주안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한다는 시각에서 추진돼야 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듯이 우리 경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 날개’가 필요하다.
노동개혁은 무엇보다 비정규직의 남용과 오용을 방지하고 부당한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 핵심이다. 도요타 자동차나 사우스웨스트 항공 등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기업은 종업원을 결코 해고하지 않는다. 또 복지와 교육훈련에 힘써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생산성 향상을 일궈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해고하기 쉽고 임금이 싼 비정규직을 활용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이에 비하면 한참 하수(下手)의 전략이다.
한때 월수 1000만원을 웃돌았던 식당이 요즘은 월세 대기도 빠듯하다고.
과연 이 주장은 사실일까. 월 50만원에 쓰던 청소원을 10만원 더 줘야 한다고 안 쓰겠는가. 프린스턴대의 앨런 크루거와 버클리대의 데이비드 카드는 ‘신화와 실증: 최저임금의 새 경제학’(Myth and Measurement : The New Economics of the Minimum Wage)에서 방대한 실증연구를 통해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한 후에도 고용감소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정개혁은 거의 무의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는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재정확충을 위해서도, 조세저항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소득파악률을 크게 높여 조세형평성을 높여야 한다. 또 지나치게 건설예산 위주로 돼 있는 재정지출을, 사람을 키우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조정해야 한다.
제조업 부문의 고용창출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공공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창출 없이는 소득과 고용의 양극화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보건·보육 등 사회복지 서비스 분야에 고용된 인력을 예로 보면, 한국의 경우 2000년 기준으로 전체 취업자의 2.2%에 불과하나, 미국은 11.1%, 독일은 10.3%, 스웨덴은 무려 18.4%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남미처럼 주저앉을 수도
역사적인 사실에서도 배워야 한다. 18세기 초까지만 해도 북미와 중남미의 경제수준은 비슷했다. 그런데 오늘날 북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경제를 자랑하지만 중남미는 빈곤, 그리고 빈발하는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최근까지는 북미의 성공을 영국식 법·제도의 산물로, 중남미의 실패는 스페인식 법과 제도 때문으로 봤다.
그러나 UCLA의 스탠리 엥거만과 케네스 소콜로프는 이 통설을 반박했다. 이들에 따르면,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남부나 자메이카는 영국식 법·제도를 갖고 있었지만 중남미형 경제 낙후를 면치 못했다. 이들은 경제적 격차 확대의 근본원인을 중남미의 양극화에서 찾는다. 대토지 소유에 입각한 플랜테이션 농업이 발달한 지역에서 대다수 국민은 노예적 착취에 시달렸다. 이는 특권층에게는 한없이 좋은 제도였지만, 중산층을 기반으로 제조업을 발전시킨 지역과 비교하면 경제가 전체적으로 낙후됐다. 특권층은 자신의 특권유지에만 급급했지 대중교육을 실시한다든지, 사회간접자본시설에 투자한다든지, 경제발전을 위해 효과적이지만 노동착취에는 유리하지 않은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다.
중남미뿐 아니라 대부분의 식민지에서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고, 불행하게도 식민지에서 독립한 대다수 신생국가는 소수 엘리트에 의해 정책이 좌우되면서 양극화된 경제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것이 수많은 개도국이 ‘후발자의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고 경제적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는 근본 원인이다.
한국의 경우는 광복 이후 대중의 혁명적 열기에 힘입어 토지개혁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됐다. 이후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실물자산이나 금융자산이 붕괴되어 신생독립국으로는 드물게 자산과 소득의 분배가 고르게 됐다. 그리고 의무교육의 실시와 1960년대부터 추진된 수출지향 공업화 덕분에 급속한 고용창출이 이뤄졌고, 비교적 고른 소득분배가 유지됐다. 이것이 한국경제의 지속적 고도성장을 뒷받침하는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성장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등으로 자산분배가 악화됐고, 특히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소득분배가 악화되면서 오늘날의 양극화 위기를 맞았다. 양극화를 방치하거나 사후약방문식의 미온적인 복지정책을 추진한다면 우리도 남미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구조개혁에 진지하게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