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의 즐거움’ 박홍규 외 지음/월간 ‘신동아’ 기획/ 북하우스/360쪽/1만2000원
이 말은 사진의 ‘뉴욕현대미술관(MoMA)’으로 불리는 ICP미술관에서 아시아 작가로는 최초로 2005년 12월부터 전시회를 열게 된 작가 김아타가 내게 뱉은 일성이다.
어느 날 나는 한 지인의 권유로 박생광 탄생 100주년 기념 회고전을 보러가게 되었다. 경기도 용인의 이영미술관으로 가는 승합차의 내 바로 옆자리에 김아타가 앉아 있었다. 그때 한 변호사가 자기 아들이 사진을 공부하겠다는데 사진이 정말 가능성이 있느냐고 묻자 그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그의 얘기는 2000년에 펴낸 ‘디지털과 종이책의 행복한 만남’이란 책에서 내가 한 말과 똑같다. 나는 그 책에서 아날로그 종이책은 디지털 기술을 만나 새로운 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아타의 발언은 책이란 말이 사진으로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논리였다.
다음 회동은 김아타의 작업실에서 있었다. 김아타는 그날 자신의 작품 슬라이드를 하나씩 넘기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그의 최근작인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 시리즈는 나를 압도했다.
찬란한 대중문화 꽃피운 기술복제
이를테면 2002년 월드컵 축구의 한 경기를 장시간 노출을 주어 한 장의 사진에 담아냈다. 빨리 움직이던 것일수록 더 빨리 사라지고 고정된 물체만 남는다. 경기장에는 쉼 없이 움직이던 선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파란 잔디만 보인다. 당연히 관중석에는 붉은 물결이 넘친다. 비슷한 시기 같은 방법으로 국회의사당을 여섯 시간 동안 찍는다.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박관용 국회의장의 모습은 보이지만 국회의원석은 텅 비다시피 한다. 국회의원들은 워낙 바빠 제 자리를 지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브로드캐스팅 시리즈가 말하고자 한 바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존재하는 것은 결국 모두 사라진다는 의미다.
21세기 사진은 이렇게 디지털 기술을 맘껏 활용함으로써 피사체를 단순하게 재현하는 20세기적 한계를 뛰어넘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시작했다. 어쩌면 사진이 가장 위선적인 매체라는 것을 실증해 보인 것이다. 사실에 가까운 사진일수록 연출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런 사진은 인간의 관념과 체험마저 하나로 결합시킨다. 원래 그런 구실은 회화의 기능이었다. 그러나 이제 사진이 가지고 있는 ‘신체성’은 회화가 지니고 있는 가식성보다 인간에게 더욱 큰 감동을 안겨준다.
19세기 말에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란 저서에서 사진의 등장으로 인해 예술작품의 기술복제가 가능해졌지만 그로 말미암아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성, 즉 아우라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술의 몰락이 아닌 새로운 예술, 즉 대중예술의 화려한 출발을 불러왔다. 20세기에 등장한 텔레비전이나 영화는 기술복제가 아니었으면 그토록 찬란하게 꽃 피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20세기 말에 등장한 디지털 기술은 ‘기술복제’의 수준을 한 차원 진전시켰다. 새로운 기술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일상성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는가 싶더니 곧 이어 휴대전화에 디지털 카메라 기능이 첨가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사진 찍는 것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진은 휴대전화나 인터넷의 블로그 등 유비쿼터스 환경에 힘입어 곧바로 전세계로 퍼져 나간다.
사실 사진영상도 인간을 곧잘 ‘정서’와 ‘환상’으로 몰아넣는다. 인터넷에서 읽기는 ‘검색’을 통해 이뤄진다. 그런데 우리는 단 한 장의 사진을 보기 위해 수없이 클릭하기도 해서, 너나없이 선택을 받을 만한 사진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래서 사진은 이미 현실인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교양, 문화
새로운 기술은 여러 예술을 결합시키고 있다. 수없는 이종(異種)배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의 공간과 놀이의 공간이 하나로 합쳐짐에 따라 인간은 일하면서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즐기다가 바로 일로 전환할 수 있다. 또 일을 하면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즐기기도 한다.
문화는 이제 누구나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교양이 되었다. 교양 없는 인간은 어디에서도 소통하기 어려워졌다. 단 한 건의 비즈니스를 위해서, 사교계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서 문화라는 교양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 면에서 ‘문화적 교양인이 되기 위한 20가지 키워드’란 부제를 달고 있는 ‘교양의 즐거움’은 눈길을 끈다.
이 책은 5장으로 되어 있지만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1, 2장과 3∼5장은 각각 이론과 실제처럼 읽힌다. 1, 2장은 오늘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교양을 다루고 있다. 르네상스 문화, 구조주의, 심리철학,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를 다룬 1장 ‘인간의 근원, 학문의 근원’과 중남미, 일본, 한국, 프랑스의 문학을 다룬 2장 ‘문학, 세계의 반영’은 그야말로 문사철(文史哲) 교양이다. 이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기반학문이기도 하다. 마치 일식집에 가면 처음에 내오는 죽 같은 냄새가 난다.
3∼5장은 각각 시각예술, 청각예술, 몸의 예술을 다룬다. 시각예술로는 사진, 만화, 현대미술, 조선 후기의 진경풍속과 건축을 다뤘고, 청각예술로는 서양음악, 현대음악, 재즈, 판소리 열두 마당이, 몸의 예술로는 발레와 뮤지컬, 유럽영화가 선택됐다. 모두 요즘 각광받는 문화 코드들이다.
각 코드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분야의 역사와 기본개념, 한국적 상황이 잘 정리되어 있다. 가령 사진예술을 다룬 꼭지에서는 사진예술이 등장한 배경부터 언급한다. 사진예술은 어느 한 사람의 독특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1789년을 기점으로 하는 프랑스혁명(계몽과 근대를 아우르는 시점인)과 19세기 초반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혁명(인간이 기계와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서)의 진행과정이 빚어낸 시대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사진의 역사가 다뤄지면서 각 시기를 대표하는 주요한 사진작가들에 대한 간략하지만 명쾌한 설명이 이어진다.
리얼리즘 시기를 대표하는 으젠느 아트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하인리히 칠레 같은 작가들은 사진을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쳤던 사람들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속하게 발전한 광학과 기계학으로 인해 소형 카메라가 등장했고, 소형 카메라의 달인도 나타났다. 바로 ‘결정적 셔터 찬스’라는 사진미학을 구현한 카르티에 브레송이다. 현대사진을 대표하는 로버트 프랭크는 이전까지의 리얼리즘적인 사진 재현 태도를 주관적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든다. 작가 자신이나 주변 친구들이 사진의 대상이 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정신을 구현한 신디 셔면이나 낸 골딘 같은 사진가는 사진을 더욱 전투적인 예술로 만들었다.
학문적 역량 총동원
정리해놓고 보니 지나치게 소략하다. 이런 정도의 지식으로 교양까지? 하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앞에 열거한 작가들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하나하나 검색해보았다. 그곳에는 그들의 대표작과 작품 활동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사진의 ‘톨스토이’로 비견되는 카르티에 브레송의 대표작을 그곳에서 보는 맛은 색다르다. 이를 통해 글의 의미를 더욱 깊게 깨우칠 수 있었다.
나는 2002년에 ‘21세기 지식키워드’라는 책을 기획한 적이 있다. 이 책은 키워드별로 200자 원고지 10매 분량의 설명과 키워드와 관련해서 꼭 읽어야 할 책 다섯 권의 목록에 대한 설명 5매, 이에 보태어 더 읽어야 할 책 10권의 목록으로 구성돼 있다. 이 책을 기획하게 된 동기는 ‘검색’이라는 습관이 책을 어떻게 변모시킬 것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우리는 하나의 키워드를 가지고 인터넷에 접속해 그곳에 펼쳐진 ‘인류가 생산한 모든 지식’을 맛보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상상하고 있다.
‘교양의 즐거움’ 또한 그 같은 시스템에 어울리는 책이다. 더구나 이 책은 영화 ‘스타워즈’의 선지자 ‘요다’ 같은 능력을 겸비한 필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총동원해 잘 요약해놓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기본교양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꽤 맞춤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