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 사는 한국인은 20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미국인의 0.7%에 해당하는 무시 못할 수치다. 그런데도 한인은 ‘소수 인종 중의 소수’로 분류된다. 미국 주류 사회, 특히 정치권에서 한인의 영향력이 그만큼 작기 때문이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11월8일 미국 뉴저지주 에디슨시 시장에 당선된 준 최(한국명 최준희)와 지원 유세에 나섰던 민주당 거물들. 왼쪽부터 존 코자인 뉴저지 주지사 후보, 준 최 ,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
2003년은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이 되는 해로 크고 작은 기념행사가 미국에서 열렸다. 그런데 100주년 행사를 마무리하는 폐회식 행사가 현지 교포 2000명을 초대한 가운데 바로 이 호텔에서 열렸다. 최고급 호텔인 만큼 행사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한인으로서는 자랑스럽고 중요한 이 행사에 뉴욕 시장은 고사하고 주요 선출직 공무원 대부분이 나타나지 않은 것. 뉴욕 플러싱 지역을 대표하는 중국계 시의원이 뉴욕시를 대표해 참석한 유일한 선출직 공무원이었다. 매년 11월에 있는 일반선거를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는데도 현실은 이랬다.
[사례 2]
2005년 10월9일(일요일) 미국 뉴저지주 북부 노우드에 자리잡은 뉴저지 초대교회(담임목사 이재훈)에 아침 일찍부터 미국 정치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최근 연방 하원에서 ‘떠오르는 별’로 주목받고 있는 공화당 소속 스콧 개럿 의원과 거든 존스 민주당 주 하원의원을 비롯해 근처 테나플라이, 노우드, 데마레스트 시장이 줄줄이 찾아와 예배에 참석했다. 개럿 의원은 통역을 통해 설교를 들은 뒤 “목사님의 설교가 참 신선하다”는 인사말을 잊지 않았다.
[사례 1]과 [사례 2]의 차이는 왜 나타났을까. 왜 똑같은 한인 모임에 미국 정치인들은 이렇듯 상반된 반응을 보였을까.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언뜻 우리 시각에서 ‘훨씬 중요한’ 한인 행사에는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은 미국 정치인이 한인교회 예배에는 한꺼번에 몰려왔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 정치권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법칙이 숨어 있다. ‘표가 있는 곳에 정치인이 있다’는 게 그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뉴욕시와 근처 뉴저지 등 ‘뉴욕 메트로 권역’에 살고 있는 한인은 대체로 37만~40만명으로 추산된다. 히스패닉이나 흑인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선거에서 근소한 표차로 당락(當落)이 갈리는 정치인에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그런데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뉴욕 한인들의 투표율이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사안에 따라 특정 후보에게 몰아주는 ‘조직표’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뉴욕 정치인들은 한인 유권자 표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한인 이민 100주년 행사도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뉴저지주의 한 교회에서 열린 예배에는 미국 주류 정치인이 대거 몰려왔을까. 이는 11월8일 뉴욕 시장, 뉴저지 주지사 등을 뽑는 일반선거를 앞두고 한인유권자센터(소장 김동석)가 신도 수가 많은 이 교회에서 유권자 등록활동을 펼쳤기 때문. 이 교회는 신도수가 1000명이 넘는, 근처에서는 가장 큰 교회다. 특히 한인 밀집지역인 뉴저지주 버겐카운티는 한인의 표심(票心)이 지방선거의 당락을 가를 수 있는 지역이라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와이에 한인이 처음 도착한 1903년은 미국 사회에 한인 이민이 시작된 해다. 이후 100년이 지나면서 미국 주요 대도시 주변에는 대부분 ‘한인 커뮤니티’가 구성돼 있을 정도로 미국 내 한인은 급증했다. 하지만 미국 내 한인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의 공식통계인 센서스 최근 자료(2000년 기준)에 따르면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은 모두 107만6872명. 캘리포니아주가 34만5882명으로 가장 많고 뉴욕주가 11만9846명, 뉴욕 인근의 뉴저지주가 6만5349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아시아계 중에서는 중국, 인도, 베트남 다음으로 많다.
하지만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인구까지 포함하면 실제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은 200만명 정도로 봐야 정확하다는 게 대체적인 추산이다. 불법체류자가 적지 않을 뿐 아니라 한인들이 대체로 센서스 조사에 소극적이어서 다른 국가 출신 이민자에 비해 통계에 잡히는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200만은 결코 적은 인구가 아니다. 미국 인구의 0.7%에 해당하는 규모다. 물론 불법체류자가 상당수 포함돼 있는 추산치지만, 잘만 조직화하면 정치력을 충분히 키울 수 있는 규모다.
까다로운 유권자 등록절차
그러나 미국에서 한인의 정치력은 그 숫자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이는 무엇보다 한인의 투표율이 낮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기관에서 미국 내 한인 투표율을 조사한 통계는 아직 없다. 뉴욕, 뉴저지 일대에서 한인 투표하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인유권자센터의 통계가 거의 유일하다.
이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한인 투표율은 1994년 7%에서 지난해 23.5%로 높아졌지만 다른 소수민족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편이다. 1998년의 경우 한인의 투표율은 10%로 주요 소수인종 중에서 가장 낮았다. 유대인이 78%로 가장 높았고, 흑인 43%, 히스패닉 40%, 중국계 35%, 인도계 32%였다.
사실 한인은 본국에서 볼 수 있듯이 어느 민족보다 정치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왜 미국에서는 정치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미국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려면 본인이 직접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하는 등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국처럼 선거관리위원회가 알아서 유권자등록을 해주는 시스템이 아니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투표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또 투표일이 공식 휴일이 아니다. 직장인이 투표를 하려면 따로 짬을 내서 투표장에 가야 한다. 그런데 한인 대다수가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어 투표하러 나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한인의 자영업자 비율은 다른 나라 이민자의 2배에 이른다. 투표하는 행위가 전체적으로는 한인 커뮤니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도 문제다.
이민 생활 20년째로 맨해튼에서 세탁업을 하고 있는 김모(50)씨는 11월8일에 투표할 의향이 있냐고 묻자 “하루하루 생업이 바빠 투표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며 “누가 후보로 나왔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투표를 하겠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뉴욕시와 뉴저지주 등 뉴욕 메트로권(圈)에서 투표할 자격이 있는 한인 시민권자 중 유권자로 등록한 비율은 35%에 불과하다. 나머지 65%는 아예 투표권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유권자로 등록한 사람이 모두 투표장에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투표율은 35%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뉴저지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 후보자들은 한인 커뮤니티를 아예 선거운동 대상에서 뺄 정도다.
한인들이 유권자 등록을 기피하는 이유는 배심원으로 차출될 가능성 때문이다. 보통 배심원은 유권자 명부에서 선정되는데, 미국 시민이라면 의무적으로 이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한인들은 이를 귀찮게 여기는 것이다.
한인 정치의식 기폭제 LA 폭동
몇 해 전부터 한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투표율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한인들의 주류 정치권 진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한인의 정치의식이 고양된 기폭제로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을 꼽는다. 폭동 사태로 수많은 한인업소를 포함해 생활 기반이 폐허로 변했는데, 가해자들은 거리를 활보한 반면 피해자인 한인들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정치력 부재에 따른 절망을 체감한 것이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노동운동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홍순형(44·미국명 로이 홍)씨다. 이민 1.5세인 그는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미국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다 폭동을 맞았다.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한인들은 빈민가인 사우스센트럴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흑백 갈등의 피해자가 됐습니다. 폭동의 도화선은 백인경찰에 의한 흑인(로드니 킹) 구타사건, 즉 흑백갈등이었습니다. 미국의 주류 언론은 이를 한국인과 흑인갈등으로 몰아갔지만, 정치력이 부족한 우리는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후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 유권자 등록운동 등 한인의 정치력 키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다.
현재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어바인시(市) 부시장으로 있는 강석희(52)씨도 폭동 이후 정치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1977년 미국에 이민 와서 전자제품 전문판매업체로 당시 1위 업체이던 서킷시티 고위직 매니저에 오르는 등 미국 주류사회에 적응해 살던 그는 폭동을 겪으면서 ‘소명(calling)’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700개가 넘는 가게가 하루아침에 불타버렸는데도 한인 커뮤니티는 무기력했어요. 정치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이후 그는 동포 1세와 1.5세를 중심으로 한미민주당협회를 결성하는 등 미국 주류 정치권과 한인 동포사회를 연결하는 일에 적극 나서게 됐다고 한다.
미국에서 한인은 ‘소수인종 중의 소수’로 분류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인이 주류 정치권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의 팰리사데스파크시(市)의 경우 한인 인구가 6065명으로 전체 인구의 35.5%에 이른다. 미 전역에서 한인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특히 자영업자의 92%가 한인이다. 그런데도 2003년까지 시장 1명, 선출직 시의원 6명 중에서 한인이 당선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난해 처음으로 한인 시의원이 배출되기 전까지 6번 도전했다가 6번 모두 실패했다. 이는 한인의 결집력이 약한 탓도 있지만 그만큼 벽이 두텁기 때문이다.
주류 정치권 진입 ‘하늘의 별따기’
강석희씨가 부시장으로 있는 어바인시도 중국, 한국, 이란계 등을 합친 소수계가 인구의 과반수를 넘은 지 오래지만 2003년까지 소수인종이 시장이나 시의원에 당선된 적이 없었다. 지난해에야 비로소 강 부시장은 민주당 후보로, 역시 한국계인 최석호씨는 공화당 후보로 시의원에 당선됐다.
이런 현실에서 김창준(66·미국명 제이 킴)씨가 한인 최초로 연방 하원의원에 오른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하원의원 재직 중에 불법정치헌금을 받은 혐의로 곤욕을 치르다 결국 1998년 4선(選) 고지에서 탈락했다.
최근 젊은 2세를 중심으로 정치권을 두드리는 한인이 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뉴저지주 에디슨에서 민주당 후보로 시장에 출마한 최준희(34·미국명 준 최)씨다. 에디슨은 인구 10만명으로 뉴저지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다.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그는 민주당 시장후보 경선을 앞두고 한 방송사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그를 겨냥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면서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던 인물. 그는 11월8일 선거에서 시장에 당선돼 한인으로서는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시 시장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다.
미국에서 연방 하원의원이나 상원의원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법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이는 나라에서 의회의 권력은 막강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미국 정치구조를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단체가 ‘에이팩(AIPAC·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단체는 현안에 따른 유대계 몰표와 막대한 정치헌금을 바탕으로 미국 정치권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로비를 하고 있다. 현재 회원수가 1만명이 넘는다. 친(親)이스라엘계 의원들에게 정치후원금을 기부하는가 하면 유대인 이외의 유권자에게도 지지해달라고 설득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체가 미국 정치권의 중동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한인유권자센터 김동석 소장은 “같은 논리로 투표가 가능한 한인 시민권자들이 결집하면 미국 정치권의 ‘일각’을 움직일 수 있고, 나아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쳐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