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재·보선 전패, 연일 추락하는 당과 대통령의 지지도 등 현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의 위기의식은 최고조인 데 반해 청와대는 여유만만이다. 동상이몽이 따로 없다. 결국 당과 청와대는 서로 다른 타개책을 찾고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가운데)이 11월14일 청와대 만찬에 초대한 정세균 당 의장(맨 왼쪽) 등 열린우리당 임시지도부를 만찬장으로 안내하면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10·26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총사퇴한 충격파가 채 가라앉지 않은 11월초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지금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12%다. 서울에서는 한 자릿수라고 하는데, 이러다간 전국적으로 지지도가 한 자릿수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 아들이 구속되고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에도 신한국당 지지도가 20%였다. 외환위기라도 터졌다면 모를까,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야금야금 떨어지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더 위험한 것 아닌가.”
1997년과 2002년 대선(大選)에서 김대중, 노무현 2명의 ‘대통령 만들기’에 핵심 역할을 했던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초선 의원 중에는 ‘우리는 대선 전문당’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다 져도 ‘우리는 대선 전문이라서 대선에서는 이긴다’고 할 거다. 대선을 한 번이라도 치러본 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또 모르겠다. 지난번 대선은 거저먹은 줄 아는 모양이다.”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그의 어두운 전망과는 달리 11월 중순 들어 20%대로 다소 상승했다. 하지만 이는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지지층 결집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청와대가 느끼는 위기 체감온도가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만큼 그리 심각하진 않다는 것이다. 취임 이후 2년여 동안 탄핵 사태를 비롯, 온갖 수난을 겪은 탓인지 오히려 낙관론까지 나오는 분위기다. 청와대 한 핵심 관계자의 설명이다.
“내부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29~33%다. 선호도 조사결과를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읽힌다. 현 정부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노무현이 싫어서’라고 한 응답율은 8%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비슷한 수치가 나온다. ‘경제가 나빠서’가 50% 정도로 압도적이다. 결국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하든 ‘노무현이 싫어서’라고 답하는 ‘무조건 반대파’는 8%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경제만 살아나면 큰 문제는 해소된다는 얘기다. 지금 여론조사에서는 차기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경제문제 해결 능력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지만,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면 2007년에 치러질 차기 대선에선 경제문제가 큰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다. 여권의 후보가 누가 됐든 ‘노무현의 덫’에 걸려 대선에서 궁지에 몰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청와대 시각은 여당과 딴판
재·보선 패배 직후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이 노 대통령과 청와대를 정면공격하면서 언론은 일제히 ‘조기 레임덕 조짐’이라는 해석을 내놨지만, 이에 대해서도 청와대의 시각은 딴판이다.
노 대통령은 10월30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에 오르면서 “정치하면서 겪어온 풍파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다. 훨씬 더 험악한 일을 다 넘겼다. 요새는 이런 일을 자주 안 보니까 큰일났다고 하는데, 10년 전만 해도 자나깨나 있는 일이었다”고 여당 의원들의 공격에 초연한 태도를 보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 노 대통령은 캐나다의 멀로니 총리가 부가가치세 전면 확대를 추진하다가 총선에서 몰락한 예를 들면서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당(黨)이 망해도 좋다”고도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를 10% 이상 떨어뜨린 원인으로 지목받는 한나라당과의 대연정(大聯政) 제안을 당쪽에서 비난하고 나선 데 대한 서운함이 밴 말이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2003년말 열린우리당 창당(創黨) 직후 사석에서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노 대통령의 측근인 염동연 의원이 청와대를 찾아가 노 대통령에게 의석수 45석, 지지도 7%에 불과한 열린우리당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요청한 자리에서였다. 당시 열리우리당 내에서는 몇 달 뒤로 다가온 2004년 4월 총선에 대한 불안감이 엄청났다.
염 의원은 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지금 이 상태로는 총선에서 몇 석이나 건질지 걱정이다. 문제는 경제인데, 경기 진작책을 써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반응은 싸늘했다.
“열린우리당이 군소정당이 되더라도 억지로 경기를 살리는 짓은 못한다. 앞의 정부에서 선거를 의식해 경기를 살린다고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바람에 지금 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답만 돌아왔다.
지금의 당청(黨靑) 갈등 사태를 두고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도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실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레임덕이라면 여당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어떤 세력이 움직여서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인데, 그런 것은 아니지 않나. 의원들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기 문제로 느끼면서 개인 감정을 토로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선거 패배에 따른 불안감을 드러낸 차원이지, 조직적인 반란에 따른 여권의 분열 조짐은 아니라는 얘기다.
청와대의 이 같은 낙관론의 근거 중 하나는 서민의 체감 경기가 내년에는 분명하게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추정한 3/4분기 경제성장률이 7.2%다. 2002년 4/4분기 이래 최고 성장률이다. 언론이 경제에 파란불이 커졌음을 나타내는 수치를 의도적으로 외면해도 끝내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체감경기는 차츰 나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내년에 체감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도 그렇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경기 회복을 전제로 차기 대선 역시 해볼 만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만일 대선 정국 때까지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청계천 복원으로 바람을 일으킨 이명박 서울시장이 ‘추진력 있는 경제 대통령’을 내걸고 우위에 설 것으로 보이지만, 경기가 회복된다면 결국 정치의 영역을 주도하는 인사가 대권(大權)을 잡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차기 대선은 ‘조폭 스킨스’ 게임?
또한 2007년 대선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지지도 순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게 청와대측 시각이다.
한 핵심 관계자는 “2002년 대선은 고정 지지층이 없는 후보들간의 경쟁으로 대선의 성격이 바뀌었다. 2007년 대선은 그런 양상이 더 두드러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과 10여 년 넘게 함께 일해 온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처럼 아예 차기 대선전을 ‘조폭 스킨스 게임’에 비유하는 이도 있다. 골프 게임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상금 액수가 커지는 스킨스 게임을 변용한 조폭 스킨스 게임은 다음 홀에서 패하면 그 앞의 홀에서 딴 상금까지 모두 토해내는 올인 게임. 게임의 원리상 맨 마지막 18홀에서 승리하는 자가 모든 상금을 독식하게 된다. 한마디로 막판까지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지금의 지지도에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이러한 기류는 내년 1월이나 2월에 내놓을 예정인 노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간의 미래 구상’으로 연결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탈당(脫黨)이나 거국내각 구성, 임기 단축과 조기 개헌론 점화와 같은 충격적인 제안은 없을 것이라는 게 청와대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다.
그러나 이는 딱히 내놓을 승부수도 없고, 설령 어떤 승부수를 던지더라도 전혀 먹히지 않는 현 상황을 청와대가 인식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만큼 현실정치에 있어 노 대통령의 ‘힘’이 크게 줄었다는 얘기도 된다.
실제로 2008년 차기 총선의 공천권도 없고, 이렇다 할 지역적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빠’들의 결집력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어떤 수를 내놓더라도 이를 따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청와대의 낙관론은 그런 점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가는 처지를 합리화하는 자위적 논리일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내년 5월 지방선거 때까지는 노 대통령이 어떠한 정치적 행보도 자제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노 대통령을 잘 아는 여권의 한 인사는 “대연정 제안이 실패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이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한번에 판을 뒤집는 승부수 정치는 국민이 바라지 않는 시대가 됐다는 걸 절감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견(私見)을 전제로 노 대통령의 ‘승부수 정치’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재신임 국민투표와 대연정이라는 두 번의 큰 승부수를 던졌는데, 까놓고 얘기해서 승부수 정치는 ‘3김 정치’의 잔재다. 노 대통령 본인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YS와 DJ 밑에서 정치를 배운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국민은 하나하나 구체적인 실적을 보여주는 지도자를 원한다. 대연정이 그 어떤 대의명분을 갖다 붙여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국민의 요구가 달라졌다는 시대의 변화를 노 대통령이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도부 총사퇴 후 내년 초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끌어갈 열린우리당 임시 집행부가 11월2일 순국선열에 참배하기 위해 국립현충원에 들어서고 있다. 가운데가 정세균 신임 당의장.
10월30일 청와대 출입기자들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이 밝힌 미래 구상은 ‘정파적 이해를 떠난 국가 미래과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의사결정 시스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이해찬 국무총리가 정기국회 시정연설에서 제안한 ‘정당 및 사회단체 연석회의’와 같은 사회적 대타협의 틀을 제안하고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미래 구상은 단순히 저출산 고령화, 국민연금 등 중장기 정책 과제를 나열하는 수준이 아니다. 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내놓고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이 화두를 먼저 쥐는 대선 주자가 여(與)든 야(野)든 결국 차기 대선에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 마지노선은 ‘결선투표제’
사회적 대타협의 틀로 상원제 도입을 위한 개헌론(改憲論)을 제안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오히려 노 대통령은 개헌 문제로 정국의 이니셔티브를 쥐는 구상을 접었다는 얘기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청와대의 기류에 정통한 여권 한 고위 인사의 전언.
“노 대통령이 권력의 분산이나 책임정치라는 측면에서 내각책임제에 상당히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각제 개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이미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안다. 노 대통령은 현재의 권력구조로도 충분히 분권(分權)적 운용이 가능한 만큼 개헌은 안 해도 그만이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선에 그치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안다.”
‘최소한의 선’에 대해 그는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가 불일치하는 것을 조정하는 정도 아니겠는가. 다만 노 대통령은 결선투표제는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부통령제를 도입하는 것에는 부정적이다”라고 설명했다.
결선투표제는 예를 들어 중도개혁 진영과 진보 진영 간의 연합 같은, 정책과 노선에 따른 연대를 유도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정·부통령제는 한 정당 내 지역 맹주간의 연대 형태로 지역주의를 온존(溫存)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대로라면 결선투표제는 득실 면에서 한나라당이 반대할 개연성이 높아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개헌 논의가 과열되면 오히려 레임덕을 자초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 정치권 내에서 차기 대선의 중요 변수로 부각되고 있는 개헌 논의는 의외로 변죽만 울리고 막상 큰 파괴력이 없을 것이란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열린우리당 기획위원장 민병두 의원은 적어도 내년 초부터는 개헌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도 “막상 개헌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정치의 전면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생존’을 위한 전략 논쟁이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양상으로 분출하고 있다.
우선 ‘통합론’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 각종 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당내 의원의 절반 이상이 ‘민주당을 포함해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정치세력과의 연대 내지 통합하지 않고는 위기에서 탈출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통합론의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2006년 5월 지방선거 이후 그 흐름은 급속하게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이미 노 대통령의 탈당을 전제로 ‘헤쳐모여’식 정계개편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이를 겨냥한 것이다.
통합론은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당에 복귀해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했는데도 참패할 경우 현실의 문제로 등장할 공산이 크다.
‘통합론’과 ‘제3후보론’
고건 전 국무총리의 움직임도 변수가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만약 고 전 총리가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을 지원하면서 정치의 전면에 나서고, 두 당이 호남·충청에서 시장과 도지사 서너 자리를 장악하면 여권에 미치는 파괴력은 엄청날 것이다. 대부분이 수도권과 충청, 호남 출신인 열린우리당 의원들로서는 한나라당에 참패하는 것보다 더 큰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동영, 김근태로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는 순간 열린우리당은 곧바로 와해 위기에 빠지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의 수도권 지역 K의원(2선)은 “정동영을 지지하는 30명, 김근태를 지지하는 30명은 끝까지 간다고 치자. 그러면 열린우리당 의원 144명 중에 나머지 80여 명은 어떡해야 하는가.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물론 호남에서 민주당에도 참패하는 날에는 그날로 당이 붕괴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통합론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한나라당도 우려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통합론의 한쪽 당사자이자 열쇠를 쥔 민주당에 은밀하게 공을 들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마치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앞다퉈 제휴를 추진했던 제3의 후보 정몽준의 위치를 지금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는 셈.
정가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민주당 한화갑 대표에게 ‘대통령후보 자리 빼고는 뭐든지 다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소문이 퍼진 지 오래다. 물론 민주당은 한나라당과의 제휴에 아직은 부정적이다. 태생적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민주당이 여의도로 중앙당사를 옮기면서 입주식을 할 때 벌어진 해프닝. 민주당측은 사전에 박 대표에게 공식 초청장을 보냈고, 박 대표가 도착하면 당직자들이 당사 건물 1층에서 마중하기로 의전까지 박 대표측과 합의해놨다. 박 대표도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막걸리를 선물로 준비했다.
그러나 막판에 민주당쪽에서 “박 대표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통보했다. 아직은 한나라당 인사들과 환한 표정으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득(得)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노 대통령의 대연정이 호남 민심(民心)의 대대적인 이탈을 불러온 것처럼 자칫하면 박 대표의 민주당 방문이 비슷한 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통합론이 대체로 당내 호남 출신과 중도파 의원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면, ‘제3 후보론’은 주로 친노(親盧) 진영을 중심으로 해 노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 사이에서 거론된다. 열린우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정동영과 김근태가 싸우는 것으로 ‘빅 매치’가 되겠는가. 흥행 면에서도 박근혜와 이명박의 싸움에 훨씬 떨어진다”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서 제3 후보론이 나오는 것은 새로운 후보를 밀겠다기보다는 ‘노무현 신화’의 밑바탕이 됐던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처럼 일단 판을 키우고 봐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인 정동영, 김근태 장관을 견제하겠다는 친노 진영의 계산이 깔려 있다.
아직은 여권 내에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수준이지만, 정치권 바깥의 인물 가운데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 아름다운 재단을 이끄는 박원순 변호사, 벤처기업가 안철수씨를 영입 대상으로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노무현 짓밟는 건 ‘자해행위’
김두관 대통령정무특보가 최근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영입을 주장하는 동시에 김부겸, 김영춘, 송영길, 유시민, 임종석 의원 등을 거명하며 ‘40대 재선그룹 당 리더론’을 내놓은 것도 제3 후보론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최근 여권 내에 급속하게 퍼진 유시민 의원 입각설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친노 직계 의원이 밝힌 얘기는 의미를 곱씹어볼 만하다.
“노 대통령으로선 유 의원을 한번 장관을 시켜볼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지도부 사퇴 파동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의원이 김근태 장관을 지지하는 재야파의 행태에 실망한 게 사실이다. 기껏 한다는 게 당 의장 몰아내고 노 대통령을 씹는 것이었다. 지금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짓밟는다고 해서 자기 지지기반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노 대통령이 아무리 인기가 없다고 해도 당 지지도보다는 늘 10%쯤 높다. 당 지지자 중 5~6%는 아무리 뭐라 해도 노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거둬들이지 않을 골수 지지자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을 극복한답시고 노 대통령을 밟아봐야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노 대통령은 2001년 DJ가 아들 문제로 언론에 의해 궁지에 몰렸을 때에도 언론과 전쟁을 벌이면서 DJ를 적극 보호했다. 그런 점에서 유시민은 머리가 좋고 계산이 빠르다.”
통합론이든, 제3후보론이든 여권의 분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여권의 위기 타개책은 결국 ‘뭉쳐야 산다’가 아니라 ‘찢어져야 산다’는 데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이는 거꾸로 지금 여권의 위기가 다른 무엇보다 정체성 혼란 같은 내부의 문제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