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호

세계적 음악도시 꿈꾸는 백재현 광명시장

“광명역 앞 7만평 ‘음악기지’ 만들어 1조원 부가가치 창출”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2005-11-30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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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 문제 풀리면 쿠바 아바나市와 자매결연, 쿠바 문화원도 유치
    • 내년 광명음악벨리 축제에 세계 유수 아티스트 초청
    • 컨트리 음악의 고향, 美 오스틴市 6번가가 모델
    • 광명역 폐쇄는 있을 수 없는 일
    세계적 음악도시 꿈꾸는 백재현 광명시장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은 이웃 도시와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라면 기업들의 경쟁보다 더 살벌하다. 유권자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단체장은 4년만 하고 그만둬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별 경쟁체제가 가속화하면서 아이디어 전쟁도 벌어진다. 경기도 부천시의 애니메이션 축제, 전남 함평의 나비 축제는 누구나 한번쯤 생각했을 법한 아이디어를 먼저 실현해 시장을 선점한 사례다. 다른 도시의 부러움을 사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시의원 출신 재선 시장

    백재현(白在鉉·54) 경기도 광명시장은 음악도시라는 컨셉트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열린 광명음악벨리 축제는 지역주민은 물론 음악 애호가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 10월에 열린 축제는 EBS가 공연을 녹화해 2시간에 걸쳐 특집방영했다. 사흘 동안 거리 곳곳에서 다채로운 음악이 공연되자 시민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음악에 젖어들었다.

    백 시장이 그리는 미래는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리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페스티벌’이나 프랑스 칸의 ‘미뎀’ 같은 음악축제처럼 전세계의 이목을 끄는 축제로 키워내겠다는 것. 이런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첫 단계로 남미와 유럽 음악의 원류로 알려진 쿠바 음악을 들여올 계획이다. 한국과 쿠바 사이엔 아직 국교가 수립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외교적인 문제가 풀린다면 쿠바 수도 아바나시(市)와 자매결연하고 쿠바 문화원도 유치할 예정이다. 내년에 열린 세 번째 음악축제에선 쿠바음악을 주제로 해외 유명 아티스트를 초청할 계획도 있다. 이를 위해 11월초 도시 마케팅 전문가를 쿠바에 파견했고, 곧 실무협상을 마무리 하게 된다.

    백 시장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 경기대 무역학과를 나와 세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30대 초반에 세무사 사무실을 개업한 그는 한때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돈을 잘 버는 세무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신뢰를 그 비결로 꼽았다. 기업가가 속마음까지 털어놓을 정도로 세무사를 신뢰하지 않으면 선뜻 회사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기업의 재무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해서 단점까지 솔직하게 밝혀주면 대부분의 기업주는 세무사를 ‘내 사람 같다’며 신뢰하게 된다고 한다.



    기획, 생산, 소비, 유통까지

    정치 입문도 그가 25년 살아온 광명시에서 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경제적 기반을 닦게 해준 광명시를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 청년회의소 활동이었다. 여기서 재정위원으로 활약했고, 정치인들을 만나 정계로 들어섰다. 시의원, 도의원을 거쳐 1998년 광명시 민선 2기, 2002년 3기 시장에 재선(再選)됐다.

    두 차례에 걸쳐 시장으로 선출된 요인으로 그는 지자체끼리 다투는 일이 많은 현실에서 이해당사자들을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조정하는 능력을 들었다. 추진하는 사업이 지역시민의 반발을 불러올 때면 “꾸준히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으며 설득하고, 그래도 안 되면 적절하게 보상한다는 원칙을 지켰다”고 한다.

    -음악에 애착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웃음). 광명이 큰 도시들 사이에 끼어 있잖아요. 광명시 인구가 35만인데, 1100만의 서울, 100만의 부천, 70만의 안산이 이웃이고, 전통 도시 안양도 곁에 있어요. 다 큰 도시죠. 그러니까 남 하는 것 따라 하다가는 결국 그 문화에 흡수됩니다. 나름의 문화를 만들어가지 못해요. 그래서 ‘광명’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뭘까 구상하다가 음악도시를 생각한 거죠.

    2000년 초, 문화관광부가 문화산업단지를 공모했을 때 광명의 문화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때 살펴보니 음악 관련 사업을 벌이는 도시도 없고, 음악도시라는 컨셉트를 선점한 곳도 없었어요. 영화나 영상, 애니메이션 도시는 많은데, 음악도시는 없었습니다. 음악도시가 되려면 공연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방송국과도 가까워야 합니다. 그런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음악도시가 없었던 것 같아요. 광명엔 이런 걱정거리가 없습니다. 방송국과도 가까운 데다 KTX(고속철도) 광명역사 앞 7만1000평을 음악도시 부지로 확보했습니다.”

    -광명시가 베드타운으로는 알려져 있어도 음악적 자산이 있는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바탕은 없죠. 경남 통영시가 음악가 윤이상씨가 태어난 곳이라는 점을 홍보하면서 국제클래식 음악제를 개최하는데, 우리에겐 그런 자산이 없습니다. 그래서 광명 음악도시는 대중음악을 산업화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7만평의 음악도시에서 음악의 기획·생산·소비·유통·전시·인재양성을 한데 묶어내고, 한류(韓流)의 모태로 만들 겁니다. 이 아이디어가 좋았는지, 얼마 전 손학규 경기지사가 고양시에 한류의 본무대를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우리 아이디어를 베낀 것 같아요, 하하.”

    땅값 올라 예술인 떠난 동숭로

    -계획은 좋지만, 실제로 음악이란 요소를 도시에 주입하기가 쉽진 않을 듯합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음악벨리축제를 연 겁니다. 시민들이 음악과 친해지라고요. 록 음악을 주제로 ‘록의 발자취’란 공연도 했고, 전통민요 경연대회도 열었어요. 올해는 사흘 동안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도록 인디밴드들을 위한 축제를 열었습니다. 도시 문화는 이렇게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겁니다.”

    -축제 하나 여는 데 예산이 얼마나 들어갑니까.

    “5억원을 썼습니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다른 축제에 견주면 훨씬 적게 든 편입니다. 올해 축제에선 광명을 음악도시로 만들겠다고 본격 선언했으니 돈을 쓴 의미가 있어요.”

    -계획을 들어보니 음악도시는 10년 이상 투자해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라 어려운 점이 적지 않을 듯합니다.

    “재정 형편을 따지기 전에, 이걸 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데만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어요. 여건이 만만치 않아요. 그린벨트 아니면 땅이 없고, 그외의 땅은 개발이 끝났기 때문에 어디에 음악도시를 만들 것인지 답이 안 나왔습니다. 2000년 문광부의 문화산업단지 공모에서 광명의 음악도시가 지정되지 않은 것도 그린벨트 지역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음악도시 건설 부지를 변경해 건설교통부 산하 중앙도시계획위원회를 설득했습니다. 2004년 광명역이 신설되니 이 지역에 음악도시를 건설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거듭 요구했죠. 결국 2003년말에 건교부의 승인을 받고, 7만1000평을 음악도시 부지로 개발하는 계획을 세운 겁니다. 지난해 11월엔 개발계획 승인이 났어요. 처음엔 건교부에서도 반대했어요. 그 요지에 아파트 지어 팔면 돈이 된다는 겁니다. 광명시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확립하려면 그 땅이 필요하다고 계속 설득했죠. 결국 우리 소원대로 됐습니다. 이젠 돈 주고 땅 사는 일만 남았어요.”

    -광명시가 무슨 돈으로 그 부지를 살 수 있습니까.

    “어떤 형태로든 사야 합니다. 서울 혜화동 동숭로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화의 광장으로 제 몫을 해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임대료가 올라가고 땅값이 올라가니까 예술인이 많이 떠났습니다. 요즘은 유흥가로 변하고 있어요. 수많은 개인이 땅을 분산 소유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겁니다. 이곳 음악도시는 광명시나 공익재단이 땅 소유권을 관리하도록 해야 해요. 땅값이 오르지 않게 하면서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아직 결정되진 않았지만 시와 공익재단이 함께 소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총2400억원 정도 소요됩니다. 시에선 상징적으로 그중 1∼5%를 매입하고, 나머지는 재단이 소유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30년 걸리는 대형 프로젝트

    -공익재단이라면 어떤 형태를 뜻합니까.

    “민간자본이 참여하는 재단을 하나 만들어야죠. 물론 민간이 투자한다는 이유로 그냥 내버려둬선 안 되겠죠. 가령 건물의 1∼2층은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도록 하고, 나머지 층은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죠.”

    -언제쯤 착공할 수 있을까요.

    “빠르면 2007년에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지역에 어떤 시설을 만들 것인지 기본 계획은 마련됐지만, 이런 음악도시는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준비작업으로 음악 축제도 열고, 쿠바음악도 들여올 겁니다.”

    -왜 하필 쿠바 음악입니까.

    “전문가들 의견을 들어보니, 쿠바 음악이 남미와 유럽의 음악을 만들어낸 원류랍니다. 아프리카 음악이 세계 음악의 뿌리인데, 그것을 추스르고 섬세하게 다듬어낸 게 쿠바음악이에요. 그런 음악을 우리 시의 자산으로 만들면 좋을 거라고 봅니다. 그간 한국에서 열린 쿠바 음악 공연은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합니다. 내년 세계음악축제에선 쿠바 음악을 중심으로 세계의 다양한 음악이 공연되게 할 생각입니다. 우리 음악만으로 세계적인 축제를 여는 데 한계가 있어요. 세계 음악계와 교류해야 합니다. 10년 넘게 투자해야 하고,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30년은 걸리는 대형 프로젝트예요.

    -쿠바 수도 아바나와 자매결연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계획은 있는데, 더 지켜봐야 합니다. 한국과 쿠바가 아직 수교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쿠바 문화원을 들여오는 것부터 추진할 생각이에요. 지금 실무자가 쿠바에 가 있으니 곧 좋은 소식이 올 겁니다.”

    -컨트리 음악의 도시로 잘 알려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市)와는 이미 자매결연했지요?

    “2001년부터 인연을 맺었어요. 인구 6만의 오스틴은 6번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음악을 즐기는 생동감 넘치는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이 따지지 않고 다들 맥주잔 하나씩 들고 음악에 빠지는 거죠. 오스틴의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페스티벌’은 유니버설이나 소니 같은 메이저 음반기획사들이 신인을 발굴하는 축제로도 유명하죠. 우리가 그리는 음악도시도 그런 형태입니다.”

    -완성된 음악도시의 부가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전문가들은 생산유발효과를 1조원으로 추산합니다. 도시 건설에 따른 비용과 고용창출에서 4000억원, 그리고 음악관련 산업에서 6000억원의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광명역, 흑자 내고 있다

    -지난 9월 한국철도공사 이철 사장이 광명역의 축소,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했고, 10월엔 영등포역에도 고속철을 정차시키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광명역이 축소되고 그에 따라 음악도시 개발도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철 사장이 개인적인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것이 문제예요. 국가정책은 신뢰성이 중요한데, 이걸 뒤집으면 어떻게 합니까. 영등포역에 고속철을 세우면 수입이 조금 더 생길지 몰라도 장차 교통대란이 일어날 겁니다. 교통을 분산시킨다는 측면에서 광명시에 고속철도 역을 세운 것 아닙니까.”

    -한국철도공사는 광명역 이용객이 적어 420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경상이익으로 따지면 광명역은 300억원 이상 흑자를 냅니다. 1년에 광명역을 이용하는 사람이 400만명이 넘습니다. 이를 매출로 계산하면 420억원이에요. 역 운영경비 100억원을 빼면 320억원 흑자죠. 철도공사의 적자 주장은 철도공사 전체로 봤을 때의 얘기입니다. 고속철과 역사(驛舍)의 감가상각비, 철도구간 공사비에서 발생한 적자 같은 것은 철도공사 재무제표에 반영해야지, 왜 광명역 재무제표에 반영합니까. 지난해 4월 광명역 개통 무렵에만 해도 하루 이용객이 4100명이었는데 올 들어서는 하루 1만2000명으로 늘어났어요. 올해 전체로는 430만명 이상 탈 것 같습니다. 이는 용산역 이용객보다 많은 숫자예요.

    현재 서울역으로 매일 140편의 고속철이 들어오는데, 2010년 대구에서 부산까지 2단계 고속철이 개통되고 호남선이 개통되면 매일 300편 이상이 서울로 들어와야 합니다. 기존 선로로는 200편 들어오는 것도 힘들어요. 그래서 광명에서 시작하는 거 아닙니까. 광명역을 축소, 폐쇄해서 영등포역을 키우겠다는 발상은 재앙에 가깝습니다. 광명역은 새 노선을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서울의 교통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어요.”

    -의욕적으로 시작한 음악도시가 성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정부 차원에서도 도와줘야죠. 문화관광부는 문화산업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1960∼70년대에 산업 발전을 위해 공단을 만든 것처럼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공단이 필요합니다. 음악인들이 창작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또 한류의 생산기지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제조업 공단 하나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일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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