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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특집

2005년,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2005년,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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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총리를 많이 닮았네요”

▼ 고건 전 국무총리

2005년,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총리와서울시장을 지낼 때 나는 곧잘 ‘고건과 닮은 사람’이 되곤 했다. 지하철이나 동네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를 좀체 시장이나 총리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수행원 없이 혼자서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은 긴가민가해서 나를 쳐다보기 일쑤였다. 그럼 나는 ‘예, 총리 맞습니다. 안녕하세요?’라는 뜻으로 목례를 건넨다. 그래도 한마디 꼭 던지는 분들이 있다.

“똑 닮았네!”



날마다 다니는 동네 목욕탕에서도 그런 일은 흔했다. 어떤 분은 한참동안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더니 슬며시 다가와서는 “고 총리를 많이 닮았네요” 하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예… 제가 그런데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상대편에서는 눈을 몇 번 끔벅이더니, “아, 그렇죠. 여러 번 당하죠?” 하며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껄껄 웃는다. 설마 대한민국 현직 국무총리가 허름한 동네 목욕탕에서 발가벗고 목욕을 하고 있으랴 여기는 것이다.

그처럼 현직에 있을 때 나는 영락없이 총리나 서울시장을 닮은 사람이 되곤 했지만 무척이나 유쾌했다. 그런데 오히려 자리를 그만두고 나니까 사람들이 나를 알아봤다. 본디가 백성이라 백성으로 돌아왔더니 더는 ‘고 아무개를 닮은 사람’이 아니라 ‘고건’ 그대로 반기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면 서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사양을 하는데도 기어이 내 손목을 끌어다 앉히는 분들도 있다. 그렇게라도 정겨운 마음을 나타내고 싶은 것이다. 또 사인을 해달라고 사람들이 몰리고, 카메라폰 앞에서 포즈를 취해주느라 목적지에 못 내릴 뻔한 적도 있다.

동네 목욕탕에서는 더는 힐끔거리지 않고 내가 탈의실에서 옷을 다 입을 때까지 일부러 기다렸다가 반갑게 인사하고 악수를 청한다. 길을 걸어갈 때도 눈길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나도 같이 인사를 나누다보면 잔잔한 행복이 가슴으로 밀려온다.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요금이 4000원 정도 나왔다. 마침 잔돈이 없어서 만원짜리를 건네면서 5000원만 거슬러달라고 했다. 그런데 기사분이 요금을 한사코 받지 않으려고 해 1만원을 좌석에 놓고 도망치듯이 내렸다. 5000원을 내려다 5000을 더 내고 내린 셈이었다. 하지만 내 가슴에는 참으로 소중한 기쁨이 안겨 있었다. 진정 우민(又民)이 되어서야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젊은이들과의 만남은 내게 또 다른 행복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젊음의 순수와 열정이다. 호프미팅을 통해 대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나이가 젊다고 해서 청춘이 아니라 낭만과 열정과 순수를 지닌 자만이 청춘을 구가할 수 있으니 더없는 행복이 아니겠는가.

지난 5월에는 인터넷 공간에 내 손으로 작은 집 하나를 지으면서 바빠졌다. 미니홈피 ‘Let’s go’에는 청소년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회사원에서 주부까지 찾아와 방문객이 벌써 50만명을 바라보고 있다. 방문객이 많아서가 아니라 누리꾼들과 마음을 터놓고 소통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

이 모두가 본디 백성으로 돌아와 누리는 행복이다. 그러나 행복을 말하기보다 요즘은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다. 사회적으로는 갈등과 혼란이 좀체 가라앉지 않고, 사람들은 살기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나 또한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스러운 것이다.

모두들 하는 일마다 신명 나고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내게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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