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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진실

밀약은 단순한 ‘대화 기록’… 조선 병합 승인한 협약은 없었다

  • 하정인 고려대 대학원 석사과정·사학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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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의 ‘우열 민족관’

태프트가 방일한 지 3개월 후 일본의 친정부 언론기관인 ‘고쿠민(國民)’은 가쓰라와 태프트의 흥정 밀약을 보도했고, 주일대사 그리스콤은 10월4일 워싱턴으로 전문을 보내 비밀협정의 루머가 일본 언론에 회자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서를 접한 루스벨트는 “나는 미국의 영토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것에 대한 대가로 어떠한 이에게도 무엇을 요구하거나 들어주는 일이 없다고 확인한다. 우리는 그러한 간섭을 막을 수 있는 완전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영토보전과 관련한 지원에 대해 어떠한 보장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언명하고, 이 문제를 일본공사 다카히라에게 추궁했다.

며칠 후 가쓰라는 다카히라를 통해 루스벨트에게 공식 견해를 표명했다.

“‘고쿠민’은 일본 정부 기관이 아니며 그 기사는 정부가 지시하거나 정보를 제공한 것도 아니다. 일본 정부는 조선에서 직면한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호의적인 태도를 인식하고 이에 감사한다. 이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어떠한 제안이 있었다는 사실은 없다.”



이는 일본 정부의 대(對)언론 발설에 대한 일반적 부정이 아니고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대한 루스벨트의 해석(조선과 필리핀에 관한 흥정의 부인)에 동의하는 일본 수상의 절대적인 설명이었다.

‘고쿠민’은 일본 지도부와 가까운 친정부 기관이었다. 따라서 당시 포츠머스 강화회담이 실패했다는 국내 여론이 비등하자 일본의 큰 외교적 성공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정보를 일본 지도부가 흘렸을 가능성이 있다.

1905년 2월, “일본이 하와이나 필리핀을 공격하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언론인의 질문에 루스벨트가 “무력에는 무력으로 싸워 이겨야 하며, 일본에 대처할 수 있도록 미국의 군비는 항시 강력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답변한 사실은 ‘고쿠민’에서 비롯된 미일간 입장 차이에 대한 루스벨트의 견해를 뒷받침해준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볼 때 루스벨트 대통령이 러일전쟁에 따른 일본의 조선 병합을 양해한 것은 그의 언급대로 일본과의 비밀협정이나 협약에 기초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단지 그가 개인적으로 빠져든 ‘우열 민족관’에 입각해 일본의 조선 병합 그 자체가 세계 평화는 물론 ‘열등’하고 자치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한국민의 장래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데 그 동기가 있다고 할 것이다.

‘다시 보기’ 필요한 밀약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면서 부딪치는 어려움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과 그 진행과정이 모두 지나가버렸고 현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역사란 기록으로 전승되고 있는 것들, 그리고 후대인이 그것을 근거로 해서 새로 편집, 정리, 해석한 것일 뿐이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모두 과거에 관해 파악된 것, 이해된 것일 뿐이지 ‘역사 그 자체’는 아니다.

따라서 역사 연구의 지향은 과거 인간의 사상과 행위를 인식하고, 그 역사를 일어난 대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과거를 재구성하는 데 근거가 되는 모든 자료, 즉 사료가 없으면 역사를 재구성해볼 수 없다. 물론 이 사료는 엄격히 비판되고 해석돼야 한다.



에스더스는 루스벨트와 미일관계에 관한 몇 권의 저서를 간행했고, 1924년 데넷의 논문 발표 이후 자신이 반론을 제기한 1959년까지 수많은 사료와 새롭게 발견된 사실들을 검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흥정하지 않고 국력에 의한 외교정책을 집행한 루스벨트의 정통성과 러일전쟁 및 당시의 국제정세에서 강력하고 확고했던 미국의 태도를 추정하는 데 주력했을 것이다(루스벨트는 러일전쟁의 중재에 대한 공로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일본은 어쩌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가쓰라와 태프트의 대화를 이용하고 확대해석하려 했는지 모른다. 그러면 에스더스 같은 학자가 의문을 제기했는 데도 아무런 저항 없이 교과서에 밀약 부분을 실은 우리의 역사 인식은 무엇인가.

신동아 200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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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인 고려대 대학원 석사과정·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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