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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떠나는 중국여행 ④

‘인생(人生)’

참을성과 끈질김으로 빚어낸 웃음, 고난의 삶을 구원하다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인생(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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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소설의 무대는 남부지방인데, 장이머우는 이를 톈진으로 옮겼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톈진 서쪽 교외에 있는 ‘석가대원(石家大院)’이란 곳에서 영화의 초반부를 찍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소설에 없는 그림자극을 영화에 추가했기 때문이다. 그림자극은 주로 북부지방의 예술이라 이 두 가지 요구를 충족하기엔 영화 촬영장소로 톈진이 가장 적당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영화를 톈진에서 찍은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이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중국인의 인생관과 유머와 웃음이 톈진과 썩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톈진은 베이징, 상하이, 충칭과 더불어 중국 4대 직할시 가운데 하나다. 충칭은 비교적 최근인 1997년에야 직할시가 됐으니 사실상 중국의 3대 도시 중 하나인 셈이고, 베이징으로 통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명성이 남부 도시들에 밀리지만 톈진은 과거에 중국 최대의 공업도시로 이름을 날렸다. 톈진 하면 떠오르는 명물이 있다. 한동안 베이징 시내를 주름잡으며 베이징 사람들의 발 노릇을 했다가 지금은 한국의 ‘아반테 XD’에 점점 밀려나고 있는 빨간색 소형 택시 ‘샤리(夏力)’, 그리고 중국 즉석라면의 상징인 ‘캉스푸(康師傅)’, 우리나라에도 진출한 유명한 만두 ‘거우부리 바오쯔(狗不理包子)’ 등이다.

고난을 대하는 삶의 태도

톈진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무형의 것’도 있다. 바로 톈진 사람들의 유머 감각이다. 톈진은 유머의 도시다. 중국인들이 즐기는 오락 가운데 ‘샹성(相聲)’이란 것이 있다. 예전에 고춘자·장소팔이 하던 만담과 비슷하다. 중국식 만담인 샹성은 톈진의 명물이고, 허우바오린(侯寶林), 마리싼(馬立三)과 같은 유명한 샹성 배우들 대부분이 톈진 사람이다. 톈진 사람들의 ‘입’이 그만큼 유명하다. 톈진 사람들은 긴 단어를 짧게 줄여서, 긴 말을 짧게 줄여서 말하는 데 기막힌 재주를 보인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30자를 써서 말할 것을 톈진 사람들은 25자면 족하다. 그렇게 축약을 잘할 뿐만 아니라 말이 빠르고 유창하고, 중간에 쉼이 없다. 만담을 하기에 제격이다.

그런데 말이 아무리 유창해도 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유머다. 물론 그 유머는 포복절도할 정도로 웃기는 것도 아니고 허무맹랑한 것도 아니다. 소재가 거의 일상생활에서 나온 것들이고, 서민과 소시민의 지혜가 담겨 있는 것들이다. 그런 소박한 유머로 서민의 힘들고 지친 삶을 슬쩍 위로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유머가 그렇다.



술꾼이 밤늦게 술에 취해 길을 막고 차를 세웠다. 그런데 택시가 아니라 110이라 적힌 경찰차였다. 차에서 경찰이 내렸다. 중국 서민에게 경찰은 공포의 대상인데, 술에 취해서 경찰을 건드렸으니 큰일난 것이다. 경찰이 “당신 뭐하는 거야?”라며 화를 낸다. 순간 술꾼은 술이 확 깬다. 이제 어떡할 것인가. 당황하면서 말한다. “택시 타고 집에 가려고….” 그러자 경찰이 윽박지르며 말한다. “뭐야? 차에 110이라 적힌 게 안 보여?” 난감한 술꾼이 얼버무린다. “저는, 그게…이 택시는 1km에 1위안 10마오라는 표시인 줄 알고….”

톈진이 왜 유머의 도시가 됐고, 톈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유머 감각이 발달했는가. 혹자는 톈진이 항구도시여서 생존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그런 생존의 압박감에서 다소나마 벗어나기 위해 이런 유머가 생겨났다고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고난의 세월을 살아온 것이 어디 톈진 사람들뿐인가. 중국에서 톈진보다 살기 힘들고 생존을 위해 고생을 겪었던 곳은 수없이 많다. 사실 유머는 그런 고난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고난을 대하는 삶의 태도에서, 삶의 고난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인생관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인생’에는 그런 고난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여유와 웃음이 들어 있다.

‘인생’은 고난의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 1940년대부터 문화대혁명이 끝나는 1970년대까지 한 집안이 격동의 중국 현대사 속에서 겪은 고난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푸궤이(富貴)라는 사내다. 이름 그대로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란 주인공은 노름으로 집과 가산을 탕진한다. 부자이던 시절과 노름을 일삼던 장면을 찍은 촬영지가 톈진 서쪽 교외에 있는 ‘석가대원’이라는 곳이다. 톈진 대갑부의 저택이다. 이 저택에 가려고 톈진역에서 택시를 탔다. 서쪽 교외 지역이어서 대개는 요금을 흥정해야 한다. 40분 정도 걸리고 요금은 70위안(9100원) 정도다.

최근 중국에서는 여행 열기가 대단한데, 그중에서도 옛날식으로 재현한 거리나 고택을 찾아가는 여행이 유행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석가대원 주위도 톈진 시정부가 새롭게 관광지로 단장하고 있다. 이런 고택으로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영화 ‘홍등’을 찍은 산시(山西)성의 교가대원(喬家大院)이다. 석가대원은 규모면에서는 이에 못 미치지만, 베이징에서 2시간 정도를 투자해 중국 전통적인 대저택의 면모를 느껴보기에는 손색이 없는 곳이다.

278칸 대저택 ‘석가대원’

석가대원은 청나라 때 톈진 8대 부자로 꼽히던 부잣집이다. 건평이 2000평이고, 방이 무려 278칸이나 있는 대규모 저택이다. 그런데 집 밖에서 보면 어마어마한 규모가 드러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그런 규모를 느낄 수 없다. 밖에 큰 사각형이 있고, 그 안에 여러 개의 작은 사각형이 들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에 따라 지은 전형적인 중국식 주택이다. 우리나라 전통 양반집과 비교해보면 중국의 부잣집은 대단히 폐쇄적이다. 밖으로 큰 성곽이 있고, 안에 다시 작은 성곽들이 있는 구조이다. 각각의 독립된 네모 공간이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재미있는 것은 남향인 입구에서 집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지반이 높아지게 설계되어 있는 점인데, 한걸음 한걸음 더 높이 올라가라는 축원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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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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