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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떠나는 중국여행 ④

‘인생(人生)’

참을성과 끈질김으로 빚어낸 웃음, 고난의 삶을 구원하다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인생(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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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人生)’

석가대원은 방이 무려 278칸이나 되는 대규모 저택이지만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에 따라 지은 전형적인 중국식 주택이라 안에 들어서면 그런 규모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저택에서 가장 놀랍고 인상적인 곳은 집안에 설치된 극장이다. 여느 대형 극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데다가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지은 극장은 소리가 울리지도 않고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설계됐다. 자연 채광과 공연에 필요한 온갖 설비가 완벽히 갖춰져 있다. 중앙 홀에는 네모난 탁자가 마련되어 있다. 차를 마시면서 공연을 감상하도록 한 것이다.

영화에서 이곳 극장은 주인공이 날마다 밤새워 놀음을 하면서 재산을 날리는 찻집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이 찻집에서 공연하던 ‘잉시(影戱)’라는 그림자극과 소리를 배워 나중에 생계를 도모하고, 군대에 붙잡혀가서 요긴하게 써먹기도 한다. 주인공은 찻집 주인에게 노름빚으로 집을 넘겨주면서 찻집 주인에게 간청해 그림자극 도구가 든 상자를 얻는다.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려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밥벌이를 하다가 돌연 국민당군과 공산당군에 차례로 끌려가 군인 노릇을 하고,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뒤 신중국 인민이 된다. ‘인생’은 주인공 푸궤이의 인생을 통해 중국 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푸궤이 집안의 몰락은 봉건 중국의 종말을 상징한다.

“우리는 꼭 잘 살자”

푸궤이는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리고 인민공화국의 평범한 인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노름빚 대신 푸궤이의 집을 차지한 찻집 주인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자마자 죽음을 맞는다.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지주 판정을 받고, 정부의 명령에 대항하다가 결국 총살당하고 만 것이다. 이를 본 주인공 푸궤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때 집과 전답을 노름으로 잃지 않았으면 내가 저 자리에서 총살당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우리는 꼭 잘 살자!” 하고 다짐한다.

푸궤이 아내 역은 궁리(鞏?)가 맡았다. 아내는 푸궤이가 군대에 끌려가 있는 동안 집안을 건사하고, 열병을 앓아 귀머거리가 된 딸과 아들을 돌본다. 그런데 대약진운동(1958∼60) 때 딸과 아들을 모두 잃는다. 대약진운동은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자’는 구호와 함께 전 국민이 동원된 사회주의 공업화 운동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인민공사에 편입됐고, 같이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나누는 사회주의 공동체를 건설했다. 특히 마을마다 소형 용광로를 만들고는 집에 있던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두 가져다 녹여 철을 만들었다. 영화는 이런 대약진 시대의 광경을 실감나게 재현한다. 당시 사람들은 영화에서처럼 쇳덩이를 모으고 집단 급식을 했으며 밤새워 일을 했다. 물론 대약진운동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시골 마을에서 그 많은 철을 어디다 쓸 것인가.



영화에서 대약진운동으로 말미암아 주인공의 아들 유칭(有慶)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초래된다.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너나없이 용광로 앞에서 철을 제련하느라 밤샘을 하던 어느 날 밤 학교에서 전갈이 온다. 철을 제련하는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당 간부가 시찰 나오기로 돼 있으니 아이들을 급히 학교로 보내라는 내용이다. 아이 엄마는 잠든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고 그냥 자게 내버려두자고 하지만, 푸궤이는 기어코 아이를 깨워서 학교에 보낸다.

거듭되는 비극과 후회

그런데 잠이 덜 깬 아들이 학교 담장 밑에서 잠을 자다가 무너진 담장에 깔려 죽고 만다. 학교 시찰을 나오던 당 간부가 연일 계속되는 밤샘 때문에 졸음운전을 하다가 학교 담장을 들이받는 사고를 낸 것이다. 공교롭게도 사고를 낸 당 간부는 주인공과 군 생활을 함께 한 전우다. 주인공은 후회한다. ‘그때 학교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들이 죽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이 후회는 아들에 이어서 딸을 잃은 뒤에도 똑같이 반복된다.

영화는 이어서 문화대혁명 시기(1966∼1976)의 중국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모두 마오쩌둥 찬가를 부른다. 그런 가운데 마을 이장이 푸궤이에게 사윗감으로 다리를 저는 노동자를 추천한다. 장애가 있지만 노동자이기에 사상적으로 선진적이고, 안정적이라 푸궤이 부부는 매우 흡족해했다. 딸 펑샤(鳳霞)는 마오쩌둥 찬가를 부르며 마오쩌둥 초상화 앞에서 마오 주석에게 경례를 하면서 결혼식을 올린다. 딸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던 날, 주인공 부부는 딸이 있는 병원으로 간다. 그런데 그 병원에 의사는 하나도 없고 온통 홍위병뿐이다.

문화대혁명은 초기에 ‘부르주아적인 반동 학술 권위자’들을 타도하는 운동이었다.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사회를 위한 경제적·정치적 기초는 만들어졌지만, 사람들의 의식이나 사상은 여전히 봉건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게 불만이었다. 그런가 하면 예전에 사심 없이 혁명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정권의 관료가 된 뒤에는 예전의 순수함을 잃고 관료주의에 빠져 새로운 특권계급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마오쩌둥의 메시지를 받아 홍위병들이 들고 일어났다. 타도의 대상은 봉건주의와 부르주아 의식에 사로잡힌 반동적 학술 권위자로 지목된 교사와 작가, 의사 같은 지식인들과 관료주의에 빠진 고위 관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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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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