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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여행가

오대양 누빈 영원한 도전자, ‘캡틴’ 제임스 쿡

인류를 위한 위대한 발견, “미지의 남방대륙은 없다”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오대양 누빈 영원한 도전자, ‘캡틴’ 제임스 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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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누빈 영원한 도전자, ‘캡틴’ 제임스 쿡

영국 그리니치 국립해양박물관이 소장한 쿡 선장의 초상화(1937).

쿡은 먼저 탐사에 필요한 배를 구입해줄 것을 해군본부에 요구했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이랬다.

“홀수(배 밑부분으로 물에 잠기는 부분)가 얕아야 하고 장기간 항해에 충분할 만큼의 식량을 실을 수 있도록 선창이 넓어야 하며, 좌초해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필요시 육지로 끌어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아야 한다.”

해군본부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1765년에 건조된 엔데버호(號)를 구입했다. 길이 30m, 너비 8.7m에 368t급 선박인 엔데버는 뱃머리가 아주 높았다. 흠이라면 너무 단조롭다는 것. 목조 범선 엔데버에는 젊은 식물학자 조지프 뱅크스와 박물학자 다니엘 솔랜더, 그리니치 천문대 소속 천문학자 찰스 그린, 외과의사 몽크하우스 등 조사대원 11명을 포함해 모두 94명이 승선했다. 주축은 10∼30대의 젊은 선원들이었다. 약관 20세의 뱅크스는 항해에 동행하기 위해 국왕 조지 3세가 기부한 돈의 두 배인 1만파운드(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100만달러 상당)를 기부했다.

엔데버호가 잉글랜드 남단의 항구 플리머스에서 대탐험의 깃발을 올린 것은 1768년 8월25일. 쿡은 그날 순풍이 불었다고 항해일지에 적어놓았다. 왕립협회가 그에게 부여한 임무 가운데에는 금성 관측도 포함됐다. 최초로 나침반을 이용해 1698∼1700년 대서양 남쪽 해역을 탐사한 항해가이자 천문학자인 에드먼드 할리가 1769년 6월3일 금성이 태양의 표면을 통과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그 희귀한 천문 현상은 남반구에서만 관측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왕립협회는 그 결과를 토대로 지구와 태양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 바퀴벌레, 쥐떼와의 전쟁



엔데버호에는 맥주 4400ℓ, 브랜디·럼주 같은 독주 5920ℓ, 포도주 1만2000ℓ 등 엄청난 양의 술이 실렸다. 18개월 분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쿡은 그것이 바닥나기 전에 귀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쿡은 술에 관한 한 비교적 너그러워 하루 평균 선원 1인당 맥주 3.9ℓ를 지급했다. 쿡은 신선한 물을 비롯해 장작과 식량을 구하는 데 신경을 쓰는 등 부하 선원들의 복지와 건강을 세심히 챙겼다.

그러나 항해가 계속되면서 심각한 문제가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장실은 말이 화장실이지 노천 배설구나 다름없었고 목욕과 세탁은 사치스러운 꿈이었다. 비누가 없던 시절이라 선원들의 머리엔 이가 버글버글했고 배 안엔 구더기, 바퀴벌레, 쥐가 득시글거렸다.

쿡 일행이 대서양을 통과해 대륙을 처음 본 것은 그해 11월8일이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건 엿새 뒤인 14일이다. 지금의 브라질 리우 해안이다. 쿡은 상륙하자마자 보급품부터 구했다. 기강이 해이해진 대원은 매질로 다스렸다.

선원들은 식사로 오트밀 죽을 먹었고 배에서 기른 염소의 젖을 짜 마셨다. 돌고래와 상어를 잡아 식량을 보충하기도 했다. 하지만 뱃멀미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쿡이 당시 선원들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이던 괴혈병의 원인을 사전에 알고 신선한 채소를 지속적으로 먹게 해 극단적인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

엔데버호 안에서는 영국 사회의 축소판인 양 신분 질서가 철저하게 지켜져 본토에서와 똑같이 계급에 따라 분리된 생활을 했다. 원래 사치라는 걸 모르던 쿡이라 그의 방은 비좁았다. 쿡은 또 과묵해 선상의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는데, 로맨틱하고 말이 많은 젊은 식물학자 뱅크스 덕분에 그나마 얼마간 분위기가 살아나곤 했다.

엔데버호에는 ‘항해의 목표날짜’라는 것이 없었고 지루한 일상이 이어졌다. 때맞춰 나오는 식사, 푹신한 의자, 위생적인 화장실에 음악과 영화, 음료수와 술이 나오고 잠들고 싶으면 언제든 눈을 감고 또 천재지변이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예정된 시각에 도착하게 마련인 최신식 항공기 내에서도 10시간 이상 머물면 지루함을 느끼는 현대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항해 조건이었다.

문란한 타이티 여인들

쿡은 남미대륙의 최남단인 케이프 혼을 통과해 계속 서진(西進)한 지 8개월 만인 1769년 4월13일 타이티 섬(원래 이름은 킹 조지 섬)의 마타바이만에 도착했다. 그때까지 그가 한 항해 중 가장 긴 것이었다. 쿡 일행이 섬에 나타나자 그곳 사람들은 평화의 상징인 푸른 나뭇가지로 맞이하면서 ‘티아오(친구)’라고 불렀다. 쿡 일행은 그곳에서 파리떼와 소매치기 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이글거리는 눈빛을 가진 풍염한 몸매의 여인과 아름다운 경관에 한동안 마음을 빼앗겼다.

그때가 마침 금성이 태양 면을 통과할 시기라 쿡은 금성 관측을 위해 작은 요새와 관측소를 세웠다. 쿡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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