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스쿠니 문제’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현대송 옮김/ 역사비평/223쪽/9800원
이런 주장은 대개 우익 인물들에게서 나온다. 그들은 또 패전 이후 도쿄 전범재판에서 군국주의 국가 지도자들을 전범으로 규정하고 처형한 것은 승전국의 논리일 뿐, 일본인 자신들은 전범이라고 규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순국자(殉國者)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태평양전쟁에 승리했다면 전쟁 영웅이 됐을 지도자들이 패배했기 때문에 전범이 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최근 일본 정치가들의 입을 통해 점점 더 자주, 공개적으로 표명되고 있다.
제국주의 역사를 보는 또 다른 시각은 참회론이다. 이런 시각을 가진 이들은 과거 제국주의 역사는 일본인 스스로 참회해야 하며, 특히 태평양전쟁은 “만대에 씻을 수 없는 오욕의 전쟁”이며 일본을 “거의 망국의 위기에 몰아넣었으며” 인접국가에 커다란 피해를 주었다고 과오를 인정한다.
1998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오부치(小淵) 수상은 “식민지 지배에 의해서 다대한 고통과 피해를 주었으며, 이를 반성한다”며 제국주의 참회론을 표명했다. 1995년 패전 50주년을 기념해 일본 국회가 발표한 결의안도 거의 같은 내용이다. 제국주의 참회론은 태평양전쟁이 일본인이 초래한 비참한 결과를 스스로 반성하고 그 경험을 살려서 새로운 일본을 건설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갖는 일본인들을 우리는 양심세력이라고 부른다.
제국주의 긍정론과 참회론의 대립
현실정치에서 제국주의 긍정론과 참회론 간의 대립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문제다. 왜냐하면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이 제국주의를 확대하기 위해 벌인 전쟁에서 전사한 일본인 군인들을 제사 지내며 추모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1978년 비밀리에 합사되어 제사를 받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하는 것을 반대하고 규탄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전범을 포함해서 제국주의 전쟁의 전사자들을 참배하고 추모하는 행위이며 이것은 과거 제국주의 역사를 긍정하는 행위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 수상은 정부를 대표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 과거 제국주의 역사를 반성하는 것이라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수상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야스쿠니 신사에 5년 연속 참배한 고이즈미 수상은 공식적으로 제국주의 참회론의 역사인식을 표명한다. 그는 “A급 전범들도 전범이며 지난 태평양전쟁은 국책(國策)을 그르친 결과로서, 시작해서는 안 되는 전쟁이었다”고 국회에서 답변한 바 있다. 그러면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관해서는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일본인 전몰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몰자들에 대한 추모는 개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일본 문화에는 사람이 일단 죽으면 전범이라는 구별이 없어진다는 게 고이즈미의 변명이다. 일본 수상이 개인 감정의 문제, 혹은 문화적이며 종교적인 문제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정당화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감정, 역사인식, 정교분리, 문화
도쿄대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가 저술한 ‘야스쿠니 문제’는 제국주의 참회론적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야스쿠니 신사와 그 참배 문제에 대해 쓰고 있다. 저자는 야스쿠니 신사에 관련된 문제를 감정, 역사인식, 정교분리, 문화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분석했다.
첫째, 개인 감정의 차원에서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는 주장에 대해 저자는 “야스쿠니 신사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찬미 시설”이라고 반박한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국가 지도자들이 제국주의를 시작할 무렵, 대외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국가가 찬미하고 최고의 영예를 부여함으로써 다른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게 하려는 의도로 만든 시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참배하는 것은 제국주의 지도자들의 의도를 수용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