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숍을 주도한 미국측 전문가는 조엘 위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국제안보분야 선임연구원과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 모두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워크숍에서 미 국무부의 제안을 받아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프로젝트를 자세히 소개하고 주요내용을 토의했다. 북한 붕괴 이후 한국과 미국 등 주변국들의 대응방안을 사전에 마련하기 위해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의 제목은 ‘The Day After’였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붕괴과정 자체’가 아니라 ‘붕괴 이후 사태를 관리하고 재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서 의미심장하다. 붕괴 이후 필요한 방안을 군사·정치·경제·인도적 지원 분야로 나누고, 이라크와 구(舊)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이뤄진 국가 재건과정과 비교해 예상되는 문제점과 사전준비 요소를 점검하는 ‘실무계획’의 성격이 강하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도 유사한 비공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5년 초 시작되어 완성단계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 이 프로젝트는 미국의 카네기재단(The Carnegie Endowment)과 중국의 유력 연구기관이 공동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프로젝트에도 미 국무부가 관여하고 있다는 전언을 감안하면, 최근 미 행정부는 워싱턴의 싱크탱크를 통해 동북아 각국의 핵심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북한 붕괴에 대비한 세부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물론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이들 프로젝트에 각국 정부가 공식 참여하고 있지는 않다. 2월 방한한 ‘The Day After’ 프로젝트 관계자들 또한 정부 부처는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이들은 워크숍을 진행한 국책연구기관에 이 프로젝트에 대한 공동연구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프로젝트 자체가 최종 완성된 것은 아니므로 워크숍 또한 예상되는 주요 쟁점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점검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그러나 워싱턴이 ‘북한 붕괴’라는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그로 인해 파생하는 변수를 어떻게 상정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는 것. 향후 프로젝트는 이들 쟁점과 변수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참석자들의 말을 종합 정리한 ‘The Day After’ 프로젝트 워크숍의 개괄적인 논의 내용이다.
북한 붕괴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할 수 있다. 폭력사태를 수반하는지 아닌지, 외부의 간섭에 의한 것인지 내부 요인에 의한 것인지 등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붕괴 시나리오는 ▲외부 상황변화에 따른 붕괴 ▲식량배급체계 왜곡 등으로 인한 자체 붕괴 ▲군사 쿠데타로 인한 체제전복 ▲미국 등의 군사공격에 따른 붕괴로 요약할 수 있다. 각 시나리오에 따라 이후 전개될 양상은 크게 다르며, 주변국들이 대비해야 할 사항도 편차를 보인다.
붕괴 이후 발생하는 문제는 군사요소를 포함한 안보 관련 요소, 정치·국제법적 요소, 경제적 요소, 인도적 지원 관련 요소 등 네 가지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앞서의 네 가지 시나리오와 이들 네 가지 요소를 교직하면 검토해야 할 쟁점들을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안보관련 요소에는 붕괴 직후 가장 먼저 떠오를 쟁점이 얽혀 있다. 고도 병영(兵營)국가라는 북한의 특징을 감안할 때, 붕괴 조짐이 보이는 단계에서부터 주변국은 북한의 무기체계를 통제하기 위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핵무기 등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량살상무기(WMD)가 국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막는 일을 첫째 목표로 삼을 것이다(이러한 사전개입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 이견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붕괴 이후에는 북한 전역의 군사시설을 접수하고 인민군의 무장을 해제하는 작업이 첫 임무가 된다. 지하요새화한 북한 군사시설의 특성상 사전에 위치정보를 확보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중국 등 비교적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국가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중장기적으로는 WMD를 해체하고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거나 한국군에 통합하는 방안 등이 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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