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광식 전 경찰청 차장이 지난 1월23일 경찰청에서 윤상림씨와의 돈거래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피고인은 사업가들을 상대로 약점을 잡아 거액을 뜯어내는 등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범행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범행의 상당 부분을 모른다고 하거나 부인하고 있습니다.
공소사실이 피고인의 자백이 아닌 수표계좌 추적 등 객관적인 방법으로 밝혀진 만큼 향후 재판에서 하나하나 입증하겠습니다.”
지난 1월24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문종렬 검사는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에서 열린 법조 브로커 윤상림씨에 대한 첫 재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 윤씨의 자세는 꼿꼿하고 당당했다. 그는 직업을 묻는 판사의 질문에 “사업가”라고 밝혔다.
윤상림 비리의혹 사건이 세간에 회자된 지도 넉 달째다. 윤씨는 지난해 11월20일 김포공항에서 골프채를 든 채 체포됐다. 윤씨는 구속됐을 당시만 해도 단순 공갈범 정도로 여겨졌다. 비록 현대건설에서 9억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었지만, ‘그저 그런’ 브로커로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의혹으로 분위기는 반전됐다. 급기야 ‘단군 이래 최대 브로커’니 ‘거물 법조 브로커’니 하는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붙기 시작했다.
“끝이 어딘지 모른다”
지난 석 달간 검찰은 60명이 넘는 수사인력을 동원했다. 검찰은 28건의 범죄혐의로 윤씨를 기소해놓은 상태다(2월11일 현재). 그러나 검찰은 “윤씨에 대한 수사의 끝이 어디인지 우리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동안 밝혀진 것만도 윤씨의 활약상(?)은 대단했다. 청와대와 총리실이 들썩거렸다. 경찰에선 총책임자(최광식 당시 경찰청 차장)가 물러났고 그의 수행비서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현직 판사 한 명도 옷을 벗었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군대 심지어 검찰 등 권부(權府)의 어느 하나도 윤씨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없을 정도다.
이 때문에 윤상림 비리의혹은 단순 형사사건의 성격을 넘어 고도의 정치적 사건으로 변했다. 한나라당은 이 사건을, 여권을 압박할 커다란 호재로 활용할 계획이다. 감사원의 지방자치단체 비리 감사결과 발표는 5월3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부담이 되고 있다. 맞불놓기 차원에서라도 한나라당은 윤상림 사건 파헤치기에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경우 윤상림씨가 김대중 정부 시절의 민주당 인사들과 교분을 쌓은 점이 부담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는 윤상림씨의 비리의혹은 대부분 현 정부 인사들과 관련되어 있다고 판단, 한나라당과 공조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한화갑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윤씨로부터 자유로운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다음은 그의 설명이다.
“호남 출신 윤상림씨는 DJ정부 때도 동향 권력자들과 친분을 쌓으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주로 청와대, 검찰, 경찰, 군 등 사정기관 관련 인사들이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DJ정부 때의 호남 실세 인사 대부분이 공직에서 물러나거나 힘이 급격히 빠졌다.”
사안에 따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과 전략적 공조를 취해온 민노당도 윤상림 사건에 대해선 진보세력 내의 도덕적 선명성을 부각할 기회로 보고 한나라당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민주당, 민노당은 그다지 적극적인 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