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오면서 덫에 걸린 것 같은 느낌, 이 순간에 나서지 않으면 책임감 없는 모습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본능적으로 승패에 생각이 미치더라고요. ‘그럼, 나가면 (당선) 되는 거냐.’ 사실 예측불허였어요. 여론조사에서 이렇게까지 지지율이 높게 나올 줄은 전혀 예상 못했어요. 그러다 조금 지나니까 승패와 무관하게 가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선 중심의 젊은 의원들이 ‘나가봐라’ ‘되든 안 되든 봉사하라’고 권유해 나를 필요로 하는 실체를 접하면서부터죠.
(시민 논객이) 그런 과정을 다 이해하고 하신 질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로서는 굉장히 당혹스러웠어요. ‘나를 비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특혜를 받고 들어왔다고 생각하는구나.’ 정치를 아는 분이면 그런 질문은 안 하셨을 거예요. 당내 경선을 2주 남겨두고 뛰어들면서 당선될 거라고 확신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당 밖에서 아무리 지지율이 높다고 하더라도. 전 오히려 희생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특혜라고 말씀하시니 선뜻 와 닿지 않더라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내 경선 방식이니 하는 정치적 메커니즘을 잘 모르잖아요. 그런 상황에선 충분히 ‘특혜’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당원, 대의원, 일반 시민의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의 반영 비율이 복잡해요. 여론조사에서 제 지지도가 높게 나오고 있지만 그게 절대적인 게 아닌 거죠. 당 밖의 일반 시민이 투표에 참여할 확률도 낮고요. 그때(지난해 서울시장 출마 포기 당시)나 지금이나 (경선 방식이) 결코 제게 유리하지 않습니다.”
국가경쟁력 강화 연구
-그때나 지금이나 불리한 건 마찬가진데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요.
“앞에서 말한 그러한 경로를 거쳐 제가 갑자기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거예요. 과거엔 제가 능동적으로 출마, 불출마를 결정했다면 이번엔 수동적으로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 거죠.”
-‘100분 토론’에서 홍준표 의원이 말한 것처럼 시장이 등 떠밀려서 나오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그게 좀 심한 표현이라면, 의지가 있었으나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뛰어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누군가가 힘껏 밀어줘서 나왔다고 봐야 하나요?
“무슨 얘긴지 알겠어요. 시장을 안 한다고 생각하고, 한발 떨어져 시민의 처지에서 시정을 바라보는 느낌이 시장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시정(市政)을 바라보는 것보다 오히려 더 정확할 수 있어요. 리더의 역할이라는 건 큰 틀에서 방향을 정해주는 것이고, 특히 행정조직에서 리더가 할 일은 우선순위의 부여라고 생각해요.
한정된 예산을 갖고 어떤 정책에 더 주안점을 둘 것인가 하는 건 리더의 가치체계, 시장이라면 시정 철학, 구상 이런 것들이 영향을 미친다고 보거든요. 그렇다고 볼 때 일찌감치 시장이 되려고 준비한 사람과,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시정을 바라본 사람의 가치체계는 다를 수밖에 없죠. 그런 점에서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제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시정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고 봐요. 감히 그렇게 보고 싶은 거죠.”
그는 “지난해 8월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는 책을 펴내기까지 1년 반 가량 국가경쟁력 강화와 리더십 연구에 미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지방행정이 중앙행정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걸 깨달았고, 서울시장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높게 나타나자 자연스럽게 시정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아무런 의지도 없는데, 등 떠밀려 나온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2004년 1월, 한나라당의 인적 쇄신을 주장하며 솔선수범해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16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자 홀연히 정계를 떠났는데, 그때 이미 서울시장 자리를 마음에 뒀던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억측이다”고 일축했다.
“그땐 서울시장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렇게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전략적으로 살지는 않아요.”
서울시장 출마를 위한 장기적인 포석으로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처음 제기됐던 2004년 당시 부인 송현옥 교수(세종대 연극비평)도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의 시장 선거 출마 계획을 부인했다.
“그런 말들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을 먹으면서도 우리 부부끼리 얘기했지만 우리가 뭐가 아쉬운 게 있겠습니까. 시장이나 대통령도 몇년간 고생하다 결국 칭찬보다 욕을 더 많이 얻어먹는 자리 아닙니까. 남편이 사람들이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좋은 이미지 속에 물러났으니까 앞으로도 좋은 이미지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납득할 만한 이야기다. 아쉬울 게 없는 상황에서 정치인의 표적이 될 공직에 나설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진정성이 담긴 이야기였다면 그로부터 2년 뒤 그가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했을 때 부인은 반대했을 것이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