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기독교-이슬람 대립 이후 떠오르는 ‘제3의 축’

삼극체제에서 親美만으론 위험,중립적 실리 외교노선 찾아라!

  • 조명진 EU 집행이사회 안보전문역 myeongchin.cho@gmail.com

    입력2006-05-16 17: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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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전체제 종식 후 헤게모니를 잡은 미국의 독주가 경제적, 정치적으로 큰 도전을 받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던 세계경제 질서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고, 중국과 인도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미국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은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의 극단적 대립으로 이어져 세계 곳곳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했다. 종교와 이념만으로 편 가를 수 없는 시대는 이러한 상황을 적절히 이용해 실리를 챙기는 제3의 축을 낳았다.
    기독교-이슬람 대립 이후 떠오르는 ‘제3의 축’

    \'서방세계는 지구의 오염원?\' 유럽의 신문들이 마호메트에 대한 풍자만화를 게재한 데 대한 항의 시위가 이슬람권 전체로 확산된 가운데 파키스탄에서 열린 한 시위에서 서구 기독교세계를 풍자한 대형 만화가 선보였다.

    세계경제의 3대 블록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유럽연합(EU), 그리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블록 간의 포럼인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는 미국이 빠져 있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는 EU가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은 전통적으로 대서양 협력(Trans-Atlantic Cooperation) 차원에서 쌍방관계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무역교류가 아시아에 집중되고,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두 포럼의 공통분모인 아시아가 미국과 유럽 중간에서 ‘균형자적 역할’을 할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 초 말레이시아 수상 마하티르가 주창한 동아시아경제구역(East Asian Economic Caucus)과 아시아통화기금(Asian Monetary Fund) 발족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ASEM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미국의 충직한 동맹국 영국과 일본이 포럼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EU 회원국수가 2004년 5월부터 15개국에서 25개국으로 확대된 점을 감안한 미국이, EU가 회원국 간의 이해상충으로 인해 미국의 국익을 저해할 어떤 정책도 펴지 못할 거라는 안일한 자만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얼마 전 EU가 대(對)중국 무기금수조치 해제 문제를 들고 나오자 미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은 EU를 잘 길들여왔다고 믿었는지 모르지만, EU로서는 여러모로 세계 최대 시장의 잠재력을 지닌 중국을 놓칠 수 없는 상황이다. EU는 통합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끌어냈지만 회원국 처지가 각기 다르고, 표결방식이 경직되어 정책입안과 집행 면에서 효율성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단일 시장을 이룩하고 12개국이 단일 통화인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단일 금융정책을 펴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 한계도 드러냈다. 탈(脫)냉전기에 영향력 있는 국제 문제 해결사의 역할을 모색 중인 EU로선 아시아와의 협력이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요원한 동아시아 경제통합

    미국과 유럽의 공조체제가 어렵다면 세계를 이끌 동아시아 경제통합체 구성은 어떤가. 동아시아 주요 국가를 묶는 경제통합체 창출을 논의해볼 수는 있지만, 한일관계와 중일관계를 보면 그것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집단안보체제로 발전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친미 성향의 일본과 친미·친중 성향이 혼재하는 한국을 보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지역경제통합체를 창출하려면 최소한 블록 내에 명실상부한 선도국가가 있어야 한다. NAFTA에는 미국이 있고, EU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있는 것처럼, 중국이나 일본이 서로 상대를 선도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동아시아의 경제통합이란 요원한 일이다.



    중국의 고도성장이 지금 추세로 계속된다면 앞으로 20년 뒤엔 중국경제가 일본경제를 추월할 것이다. 일본이 간과해온 것이 경제력만으로는 국제적으로 선도 국가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경제력에 걸맞은 외교정책과 군사력이 뒷받침돼야 국제사회에서 통하는 영향력이 나올 수 있다. 중일관계가 독일과 프랑스 또는 미국과 영국 같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아시아의 책임 있는 동반 선도국가로서 제몫을 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하나의 가정에 그칠 뿐이다.

    NAFTA, 동아시아를 포함한 ASEAN, EU, 세 개 축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이른다. 미국 중심의 NAFTA에 속한 인구는 미국 3억, 멕시코 1억5000, 캐나다 3200만으로 총 4억8200만명. EU 25개 회원국의 총 인구는 4억5000만인데, 저출산율로 인해 별다른 증가세를 보이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EU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는 독일로 8200만명이며 이 가운데 350만명이 터키 이민자다. 만약 7000만 인구의 터키가 EU에 가입하면 EU 전체인구가 5억2000만명으로 늘어난다. 또한 2020년이 되면 터키의 인구가 독일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독교권은 출산율이 저하되고 있는 데 반해 이슬람권은 출산율이 여전히 높다.

    그럼에도 EU 회원국들이 터키의 EU 가입에 부정적인 것은 비단 종교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EU는 터키에 대해 인구 비중에 걸맞게 독일, 프랑스, 영국 수준의 지위를 부여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제적 이슈가 된 덴마크의 마호메트 풍자 만평은 EU 내 반(反)이슬람 정서를 키움으로써 터키의 EU 가입에 찬물을 끼얹었다.

    핵심 변수, 인도와 중국

    인도와 중국은 국제경제 질서를 뒤바꿀 수 있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인도는 2002년부터 경제규모 면에서 미국, 일본, 중국에 이어 네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2025년이 되면 인도의 경제규모는 중국, 미국 다음으로 커질 전망이다. 미국의 전세계 GDP 비중이 21%에서 18%로 줄어드는 반면 인도의 GDP 비중은 6%에서 11%로 증가하고, 2035년 인도의 경제규모는 EU의 주축 4개국(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보다 커질 전망이다. 산업구조 면에서 중국이 저렴한 노동력에 힘입어 제조업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갖고 있는 반면, 인도는 IT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인도를 방문해 핵협력협정을 맺고 F-16, F-18 같은 첨단 전투기를 팔기로 했다. 미국의 이 같은 행보는 중국 포위정책의 일환으로 전략적 동반자관계 구축을 의미하지만, 인도에는 남아시아의 맹주로 등극하기 위한 채비가 될 수 있다. 인도는 단일 국가경제로는 NAFTA, ASEAN, EU 주도의 경제체제하에서 생존하기 힘들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다. 미국과 함께 중국을 공동의 경쟁자로 여기는 것이 인도의 외교노선이다. 또한 종교적으로 힌두교가 우세한 인도는 이슬람권인 파키스탄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어 미국과 함께 이슬람 세계를 공동의 적으로 지목할 만한 국가다.

    인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인구 면에서 막대한 시장 잠재력을 지녔다. 이미 10억명을 넘어섰고 2030년 안에 인구가 중국보다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처럼 산아제한정책을 펴는 게 아니어서 인도의 노동인구 증가는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다. 인도는 아직까지 여성 1인당 3인 이상의 자녀를 낳고 있기에 경제가 성장할수록 구매력도 커져 인도 시장에 대한 기대도 크다.

    중국은 2010년까지 ASEAN과 함께 인구 20억의 세계 최대 경제블록이 될 자유무역지역(Free Trade Area)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남미와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에너지 자원 구매자로서 협력관계를 증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반미, 반제국주의적 성향이 강한 짐바브웨, 케냐, 콩고, 잠비아, 수단, 베네수엘라, 브라질이 중국이 외교역량을 쏟는 국가들이다.

    에너지 자원은 제한되어 있고 그 수량은 점차 고갈되는 상황에서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 간의 긴장관계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면 세계는, 특히 걸프지역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는 위기에 처한다. 미국은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60%를 수입하지만 그중 20%만 중동에서 수입한다. 유럽 국가의 걸프 의존도도 30%를 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한국, 일본, 대만은 전량을 수입하는데 그 75%를 중동에서 들여온다. 인도는 75%를 수입하는데 그중 80%가 중동지역이고, 중국은 40%의 수입분 중 60%를 중동에서 수입한다. 더욱이 중국과 인도의 수입량은 매년 8∼10%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와 중국이 연초에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압둘라를 국빈으로 초청, 전례 없이 극진한 대접을 하며 오일외교를 펼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05년 4월 중국이 인도네시아와 전략적 동반자관계 협정을 체결한 것은 석유와 천연가스 공급에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다. 또한 중국은 현재 수입분의 28%를 차지하는 아프리카 산유국에 대한 의존도를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1995∼2003년 중국이 체결한 상호투자협정 40건 가운데 18건이 아프리카를 상대로 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중 수단은 중국 석유 공급의 8%를 차지하는 국가로 중국국영석유회사(CNPC)가 수단의 오일시추와 송유관 관리까지 책임지고 있다.

    세계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알제리, 인도네시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리비아, 나이지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베네수엘라, 카타르)은 베네수엘라를 제외하고 모두 이슬람 영향권에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반미 성향이 뚜렷하다. 중국, 러시아, 인도는 이러한 국제관계를 적절히 활용할 기회를 노린다. 이란에 대한 러시아의 핵 기술 제공, 중국의 미사일 기술 제공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대한 대가로 중국석유회사 시노펙(Sinopec)은 2억5000만t의 이란 천연가스를 향후 30년간 공급받기로 했다. 700억달러 규모의 이 계약은 이란 국제교역 역사상 가장 큰 액수로 기록되고 있다.

    9·11테러의 어부지리

    2001년 9·11테러 이후 국제관계 구도를 세 가지로 분류하면,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가담한 국가군, 이란·북한·시리아 같은 테러혐의 국가와 알 카에다 같은 테러단체 지지 국가군, 테러와의 전쟁과는 무관한 테러 무풍지대 국가군이 있다. 미국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에서 어부지리 격으로 덕을 본 두 나라가 있는데, 바로 중국과 러시아다. 이 두 나라는 자국 내 독립 혹은 분리주의자들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제압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와 중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공조한다고 천명한 뒤 자국령인 체첸과 티베트에 대한 군사적 진압에 나섰다. 독립운동이든, 자치권 투쟁이든 상관없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딱지를 붙이면 어떤 군사적 진압도 정당화할 수 있는 현실이다. 러시아는 2004년 북(北)오세티아 인질 사건 이후 체첸에 대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는데, 티베트나 신장(新疆)성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중국도 이들에 대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할 게 분명하다.

    미국, 러시아, 중국은 공통적으로 이슬람 세력을 골칫거리로 여긴다. 외형상으로는 세 나라가 이슬람 세력을 상대로 공동전선을 펴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 일방주의적 패권구도에 불만을 가진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재정립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인정하지 않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정권을 가장 먼저 초청한 나라가 러시아인 점은 러시아가 제3세력 속에 하나의 축을 만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대 종교세력의 충돌

    최근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의 갈등은 2004년 11월에 처음 표출됐다. 네덜란드의 반 고흐 감독이 이슬람의 여성차별을 비판하는 ‘굴종(Submission)’이란 제목의 텔레비전 영화를 제작했다가 괴한에게 살해당한 것. 이 살인범은 고흐 감독의 가슴에 ‘서구의 이교도’에 대항해 궐기할 것을 촉구하는 격문을 꽂아놓았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5년 11월에 프랑스 파리 북동쪽 교외에서 10대 이슬람 소년 2명이 변전소에서 감전사했다. 이슬람 이민 2, 3세들은 이들이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가다가 변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경찰의 과잉 추격에 항의하는 데모를 벌였다. 가난과 실업, 갖가지 차별에 대한 이슬람 이민자의 분노가 일시에 폭발한 사건으로 프랑스 이민정책 실패가 문명의 충돌로 비화된 것이다.

    최근 벌어진 덴마크 신문 만평 사건도 문명충돌이 무력충돌로 확대될 위기로 번지고 있다. 이슬람 세력은 폭탄 터번을 두른 마호메트를 그린 한 컷 만화를 신문에 게재한 모든 국가를 적대시하고 있다. 이에 CNN 등 미국 언론은 문제의 풍자만화를 소개하지 않는 극도의 조심성을 보였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민심이 반미로 돌아설 경우 벌어질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두려워한 것이다. 덴마크 만평 사태는 결국 ‘테러와의 전쟁’에 적색경보를 울리게 했다.

    또 다른 문제는 미국 네오콘의 대응이다. 미국 안보·외교의 핵심세력인 네오콘의 상당수가 유대인이다. 이라크전쟁의 본질은 이스라엘에 대한 잠재적 위협 인물인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하물며 이란이 이스라엘을 말살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EU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핵개발을 추진하는 작금의 상황을 워싱턴의 네오콘은 좌시하지 않는다. 특히 럼스펠드 장관의 이란 담당관인 해럴드 로드가 유대인이어서 향후 대(對)이란 문제에 이스라엘의 국익을 반영한 정책 결정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이런 사실을 반영하듯 2년 안에 미국이 이란 공격을 목표로 구체적인 작전을 수립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미국의 대(對)이란 군사공격에 대해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이란 공격시 예상되는 사하브 3, 4호와 러시아제 X-55 미사일을 이용한 보복은 물론이려니와 이란에서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까지 이어지는 ‘초승달 벨트’의 시아파 세력이 연합공세를 펼칠 가능성 때문이다.

    이슬람 국가들의 통합 움직임이 가시화된 건 아니지만, 테러와의 전쟁과 서구사회의 이슬람문화 모욕 사건들은 이슬람권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되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는 인도네시아와 나이지리아에서 이슬람 세력이 교회에 불을 지르고, 그 보복으로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사원을 공격하는 형태로 갈등이 이미 표면화된 상황을 볼 때, 이슬람 세계를 통합할 지도자나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한다면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 간에 ‘제2의 십자군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슬람 세계의 통합 가능성

    이슬람 세력의 통합은 세 가지 경우의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반미로 돌아서는 시점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이끌 새로운 아랍민족주의 지도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중동지역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은 아랍민족주의다. 아랍민족주의는 시리아, 이라크,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뚜렷한 이데올로기로 남아 있다.

    아랍민족주의와 대항하기 위해 미국은 일부 아랍 국가의 보수적 이슬람 운동을 지원했다. 1970년대 말 이란혁명이 일어나고, 호전적인 이슬람 시아파가 등장하자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를 지원해 시아파와 대립하는 수니파를 육성했다. 냉전체제하에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이 소련의 지원을 받는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공격하도록 이슬람 보수 혁명세력을 부추긴 바 있다.

    그러나 9·11테러를 일으킨 조직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등 친미 이슬람 국가 출신이라는 사실은 미국의 친(親)아랍정책에 경종을 울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절대적 왕실정치와 친미 성향은 오히려 자국 내 아랍민족주의자들을 지하드의 투사로 만들고 있다. 이들을 이끌 새로운 인물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정권을 잡는다면 이슬람세계는 통일을 꿈꿀 수 있게 된다.

    둘째 가능성은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난 후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정권을 잡는 경우다. 무바라크 정권의 장기 집권과 친서방 외교노선에서 비롯된 대(對)이스라엘 융화정책은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반감을 사왔다. 이러한 반감은 나일강 유적지와 홍해 휴양지를 찾는 서방 관광객을 테러의 표적이 되게 하고 있다. 팔레비왕 시절 친미로 일관했던 이란이 호메이니 등장 후 반미로 돌아선 것처럼, 이집트가 이란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반미 성향의 원리주의 지도자의 탄생은 이슬람 세력을 단결시키는 발판을 제공할 것이다.

    ‘제2의 십자군전쟁’

    셋째 가능성은 이라크에서 미군과 다국적군이 철수한 후 수니파를 누르고 시아파가 집권하는 것이다. 중동엔 이란을 중심으로 이슬람 원리주의 환경이 구축되고 있다. 이라크에 친미 정부가 출현한 것은 민주주의 확산정책의 승리라기보다 또 다른 시아파 국가의 탄생이라고 보는 게 맞다. 중동의 헤게모니를 급진적인 시아파가 장악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담 후세인 통치하에서 탄압받은 시아파가 지도층의 기수로 떠오르고 있으며, 이란이 많은 요원을 이라크에 보내 시아파를 지지하고 이란에 이익이 되도록 부추기고 있다.

    지난 2월22일 이라크의 시아파 최고 성지인 사마라의 아스카리야 황금사원이 폭탄 공격을 받고 파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시아파는 이를 수니파의 공격으로 간주하고, 수니파 사원 50여 곳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수니파 주민 130명이 피살되고, 종파 갈등은 내전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세계에 약 13억 이슬람교도가 있는데 90%가 수니파에 속하며 나머지 10%가 시아파다. 문제는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서 다수의 수니파와 소수의 시아파가 혼재한다는 점이다. 즉 양 종파간 갈등이 불거졌을 때 아랍 전체가 무장충돌할 가능성이 숨어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종파 갈등을 수니파와 시아파 공동의 적인 이스라엘로 분출시킬 역량 있는 지도자가 나올 경우 제2의 십자군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이슬람 영향권 국가
    대륙별 나라 인구 종교 비율
    아시아 회교국가 우즈베키스탄 약 3300만명 회교(수니파 68.2%), 기독교(4.7%)
    카자흐스탄 약 1700만명 회교(수니파 40%), 러시아정교(26%)
    말레이시아 약 2020만명 회교(55%), 기독교(8.6%)
    몰디브 약 26만명 회교(수니파 99.4%), 기독교(0.1%)
    방글라데시 약 1억2000만명 회교(87%), 힌두교(11.7%)
    스리랑카 약 1906만명 불교(69%), 힌두교(16%), 회교(7.6%), 기독교(7.5%)
    싱가포르 약 423만명 회교(15.3%), 기독교(12.7%), 힌두교(3.7%)
    인도 약 10억6546만명 회교(11.4%), 힌두교(82.6%), 시크교(2%)
    인도네시아 약 2억3000만명 회교(90%), 기독교(5%), 힌두교(3%), 불교(2%)
    파키스탄 약 1억4903만명 회교(97%)
    아프리카 회교국가 가나 약 1800만명 회교(16%), 기독교(64%)
    가봉 약 140만명 회교(4.2%), 기독교(87.1%)
    감비아 약 110만명 회교(95.4%), 기독교(3.7%)
    나이지리아 약 1억2600만명 회교(40%), 기독교(50%)
    니제르 약 900만명 회교(90.5%), 기독교(0.38%)
    르완다 약 773만명 회교(10%), 기독교(80%)
    마다가스카르 약 1400만명 회교(2.2%), 기독교(52.7%)
    말라위 약 1085만명 회교(14.5%), 기독교(81.1%)
    말리 약 1080만명 회교(86.3%), 기독교(3.8%)
    모리셔스 약 115만명 회교(16.6%), 힌두교(52%), 기독교(28.3%),
    모잠비크 약 1800만명 회교(13%), 기독교(42%)
    베냉 약 590만명 회교(17%), 기독교(28.2%)
    세네갈 약 840만명 회교(94%), 천주교(5%)
    소말리아 약 980만 회교(수니파 99.96%), 기독교(0.04%)
    우간다 약 2240만명 회교(8%), 기독교(83.4%)→개신교(30%)
    에티오피아 약 5800만명 회교(35%), 기독교(58%)→개신교(14.1%)
    차드 약 640만명 회교(45.5%), 기독교(35.1%)→개신교(14%)
    카메룬 약 1350만명 회교(24%), 기독교(63.2%)→개신교(22%)
    탄자니아 약 2900만명 회교(35%), 기독교(51%)→개신교(19%)


    기독교-이슬람 대립 이후 떠오르는 ‘제3의 축’

    전세계 이슬람교도 수

    또 다른 문제는 13억 이슬람교도의 분포 상황이다. 아랍 국가와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같은 전통적 이슬람 국가 외에 미국(800만), 유럽(2000만), 인도(1억), 중국(4000만)에도 이슬람교도가 거주하고 있다(표 참고).

    한국의 유아적 사고

    이처럼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복잡한 양상을 띠며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노선을 선택해야 할까.

    아시아의 일부 안보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 모두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적 시각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지금껏 ‘한국만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는 약소국적 사고 틀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미국과 유럽은 2001년 9·11테러, 2004년 3·11 마드리드 테러, 그리고 2005년 7·7 런던 테러가 보여준 것처럼 이슬람 테러의 온상이다. 즉 ‘내부의 적’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EU의 경우, 동유럽 10개국을 제외한 EU 단일 시장권내에 약 2000만명의 이슬람 교도가 거주하고 있다. 이는 EU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한다. 서구사회보다 상대적으로 출생률이 높은 이슬람은 2025년 4000만명까지 증가해 EU 전체인구의 1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국가 밖의 이슬람 세력보다 내부의 이슬람 세력을 통제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형국이다.

    군사력을 보면 북한은 병력 면에서 세계 3위이고 한국은 6위이다. 한반도가 통일됐을 때 기존 병력이 고스란히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병력 수에서 중국의 230만명 다음으로 많은 150만명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실체를 정작 한국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 주된 이유가 미국에 안보 문제를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성인이 됐는데도 유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은 세계 10번째 경제 대국이면서도 국제사회에서 그에 상응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 학자들이 “동아시아 주도권 경쟁에 중국과 일본 외에 한국이 있다”고 말할 때조차 한국 관계자들은 이를 수긍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세계에서 두 번째 큰 군대로 150만 병력의 통일 한국이 미군에 전시작전권을 계속 맡기는 것은 기형적이다.

    한국의 미래는 통일 문제와 삼극체제 하에서 국제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달려 있다. 통일과 관련해선 한국이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냉전시절 양극체제의 최전방이었던 한반도에 대한 주변 강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는 새로운 국제질서인 삼극체제에서도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2004년부터 두만강과 압록강지역에 국경수비대 인원을 증강해왔다. 최근엔 두만강 유역 나진항에 대한 50년 개발 및 사용권을 갖고, 북한과 공동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늘릴 뿐 아니라 북한 붕괴시 벌어질 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과 러시아는 2005년 8월18일, 자오둥(膠東) 반도에서 양국 최초 합동군사훈련을 시작했다. 량광례(梁光烈) 중국군 총참모장과 유리 발루예프스키 러시아군 총참모장은 이 합동훈련을 ‘평화의 사명 2005(Peace Mission 2005)’라고 명명했다.

    중·러 합동 훈련의 전략적 의미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군사력이 개입할 경우, 그것이 미군 혹은 한미연합군만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는 데 있다.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는 6·25전쟁 때처럼 미국과 전쟁을 치를 의도가 없다. 다만 자신들이 북한 문제에 개입할 권리가 있음을 표명한 것이다. ‘평화의 사명 2005’ 합동훈련이 전술적으로 상륙작전과 공수부대 투입 위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이 두 국가가 한반도 문제에 주변 당사자로서의 몫을 노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 정권이 갑작스럽게 몰락할 경우 한국군 또는 미군이 개입하지 않거나 미온적일 때, 중국군과 러시아군이 신속하게 북한에 진주하면 미국은 애써 연합주둔군을 밀어내는 무리수를 쓰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테러와의 전쟁으로 소진되는 미국의 국가재정과 국제지도력 상실, 그리고 미국 내 반전무드는 주한미군의 운명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고착된 삼극체제에서 한국 정부가 주둔비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재정적인 이유만으로도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종국적으로 주한미군이 있든 없든 제2의 38선이 그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한국은 예상되는 시나리오별로 구체적인 북한접수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질 때 일사불란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한반도 문제는 또 다시 주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비극에 처할 것이다.

    중립적 실리 외교노선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여기에 단일 경제로 부상하는 중국과 인도가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고, 갈등의 골이 깊어진 이슬람진영과 서구진영의 관계가 미국과 유럽 내 이슬람 인구의 증가로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양극체제하에서 비동맹을 주창한 제3세계가 소련과 미국 휘하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한 ‘반이념적 중립 진영’이었다면, 시장경제체제의 우월성을 인정한 삼극체제하의 제3세계는 이슬람과 기독교권의 대립을 적절히 이용해 실리를 챙기는 ‘탈종교적 실용주의 진영’이다.

    기독교-이슬람 대립 이후 떠오르는 ‘제3의 축’
    趙明鎭
    ● 1964년 강원 원주 출생
    ●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과 졸업, 동 대학 석사(서구지역학), 영국 런던 정경대(LSE) 박사(유럽학)
    ● 스웨덴 국방연구소(FOI), 본 국제컨버전센터(BICC), 독일국제안보연구원(SWP)에서 방위산업분석 담당
    ● 現 유럽연합 집행이사회 안보전문역(Security Expert)
    ● 저서 : ‘유럽연합 확대와 방위산업의 변모’ ‘한국항공방위산업의 재편’ ‘한국공군의 공중우세를 위한 중장기전략과 무기획득 방안’ 등


    테러와의 전쟁을 지속하기 위한 미국의 무리한 군사개입은 미국 재정에 큰 부담을 줘 국가재정적자를 가중시킨다. 또한 막강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가 존중할 만한 지도력이 부재한 상황은 미국이 장기적 군사개입을 펼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결국 미국은 경제적·정치적 위상이 위축됨과 동시에 내부의 이슬람에서 비롯되는 테러 위협은 늘어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은 삼극체제에서 제3세계에 속한다. 국익을 위해 한국은 외교적으로 미국과 EU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 인도, 아랍과 우호를 증진해야 한다. 한국의 대미관계에서 중요한 건 ‘반미도 안 되지만 친미는 리스크가 크다’는 점이다. 즉, 삼극체제에서 한국이 택할 수 있는 대외정책의 기조는 ‘중립적 실리 외교노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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