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남동부 광둥(廣東)성의 성도(省都) 광저우(廣州)는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200개 기업, 우리나라 기업만 2000개가 진출해 있을 만큼 중국 경제의 새로운 구심축으로 자리잡은 도시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시장 개방의 모델로 견학했을 정도로 괄목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광저우를 구석구석 둘러봤다.
“오성홍기(五星紅旗)에 그려진 별 5개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요?”
“성조기(星條旗)의 50개 별은 미국의 50개 주(州)를 대표하는 것인데, 오성홍기에도 그런 뜻이 있나요? 혹시 가장 큰 별은 공산당을 뜻하는 게 아닐까요?”
“그건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고, 요즘 해석은 좀 달라요. 가장 큰 별은 한족을 나타내고 주변의 4개 별은 동이(東夷)·북적(北狄)·남만(南蠻)·서융(西戎), 즉 주변 오랑캐를 뜻한다는 거예요. 여기엔 티베트는 물론 한국도 중국이라는 주장이 숨어 있죠. 중국식 팽창주의가 가미된 해석이라고나 할까요. 그럼, 중국인들은 중국 영토가 어디서 어디까지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북쪽엔 고대로부터 만리장성이 있었을 테니 그곳이 경계일 거고, 남쪽으로는 베트남 이북이겠죠.”
“그 답은 매우 피상적이에요. 유물론적으로 보면 중국인들은 ‘쌀이 재배되고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땅’을 모두 중국으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베트남 이남은 너무 덥고 만리장성 이북은 너무 춥다는 거죠. 따지고 보면 여기 광저우가 남쪽의 경계선쯤 되는 곳이라고 할까요.”
중국 화남경제의 중심지인 광저우를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은 올초 한국 의류산업의 메카라 할 만한 동대문에서 한 상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싹텄다. 그는 길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배달부대를 가리키며 “쟤들한테 앞으로 얼마나 더 일거리가 있을까” 하고 중얼거렸다. 5년 전만 해도 오토바이 숫자가 두 배는 넘었다는 것이다.
“지금 기자양반이 입고 있는 셔츠, 면바지, 코트가 전부 중국산이란 걸 알아요? 한국 의류산업은 지금이 최대 위기야. 위안거리라면 동대문 상인들이 중국으로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는 것뿐인데, 그게 과연 한국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 광저우에 한번 가봐요. 동대문은 구멍가게 수준이라니까.”
“2020년 한국 경제규모 따라잡는다”
광저우행(行)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광저우의 바이윈(白雲) 신공항을 통해 곧장 갈 수도 있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랬던 것처럼 베이징에서 기차를 타고 하루 종일 중국을 유람하며 갈 수도 있다. 비행기로 곧장 가자니 주변도시를 못 보는 아쉬움이 남고, 기차를 이용하자니 너무 먼 도시다.
절충안이 있다. 홍콩을 경유해서 입국하는 방법이다. 홍콩발 광저우행 기차로 들어가고, 나올 때는 거꾸로 선전(深?)을 통해 홍콩으로 나오는 행로다. 이 여정은 광둥성의 주요 도시들을 기차로 훑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거니와 홍콩과 광저우가 1일 생활권이라는 주장을 몸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홍콩에서 광저우로 갈 때 필요한 것은 중국 비자뿐. 주룽(九龍·광둥에선 카오룽으로 발음한다)반도의 중심지에 위치한 훙한역에서 간단한 출국절차만 밟으면 된다.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두 시간에 한 대씩 배정된 광둥선(廣東線) 열차는 홍콩시민은 물론 전세계에서 도착한 바이어들을 선전과 광저우로 끊임없이 실어 나르고 있었다.
평일인데도 기차 안은 빈 좌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붐볐다. 열차가 홍콩 중심을 벗어나 창 밖으로 한적한 풍경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홍콩 버금가는 거대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선전이었다.
선전은 홍콩과 맞닿은 도시다. 선전이 중국 개혁개방의 모델도시로 선택된 이유이자 존재이유다. 1979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선언 이후 선전과 주하이(珠海)는 각각 홍콩과 마카오와의 국경무역을 통해 선진 경제제도를 하나씩 습득해갔다. 주민 60만의 작은 어촌이던 선전은 25년 만에 인구 1000만의 거대도시로 급성장했고, 연평균 28%의 경제성장을 지속하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35위안에서 6만1596위안으로 73배나 뛰어올랐다.
광둥성 전체로 보면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광둥성 경제는 매년 12%씩 성장하며 홍콩 경제규모에 근접하기 시작, 지난해에는 홍콩과 싱가포르 둘 다 제쳤다는 통계가 나왔다. 2008년에는 타이완을, 2020년에는 대한민국 경제규모를 따라잡겠다는 광둥성 공산당 서기의 발언까지 나왔으니 중국은 홍콩이란 여의주를 입에 문 정도가 아니라 광둥성 전체를 여의주로 삼은 느낌이다.
제3세계 무역의 성지(聖地)
선전에서 잠시 멈춘 기차는 둥콴(東寬)을 거쳐 광저우를 향한다. 홍콩에서 시작된 광둥선은 선전-둥콴-광저우-푸산(佛山)-자오칭(肇慶)으로 연결된다. 중국에는 두 개의 주목할 만한 삼각주 경제지대가 있다. 첫째는 ‘창강(長江) 삼각주’로 상하이(上海)를 중심으로 난징(南京), 쑤저우(蘇州), 우시(無錫), 창저우(常州), 양저우(揚州), 항저우(杭州), 사오싱(紹興) 등 총 16개 도시 8200만 인구를 아우르는 경제지대를 말한다. 이에 버금가는 ‘주강(珠江) 삼각주’란 이 광둥선 주변의 8개 공업도시를 일컫는다.
기차 객실은 중국인들은 물론이고 백인, 흑인이 섞여 있어 다국적 인종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인근에 공업도시가 즐비했지만 대다수 승객이 광저우에서 내렸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의 절반 이상이 광둥성에서 생산됐을 겁니다. 아프리카 바이어가 요구하는 가격대에 맞출 수 있는 의류 생산지는 전세계에 이곳뿐이거든요.”
이곳에서 잔뼈가 굵은 한상(韓商)의 귀띔이다. 생산이란 다양한 파급효과를 낳는가 보다. 아프리카에서는 광저우를 방문하는 상인이 되는 것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을 정도로 광저우는 이미 제3세계 무역의 성지(聖地)가 됐다고 한다. ‘무역의 성지.’ 듣기에 따라서는 무서운 말이다.
열차로 국경을 통과하면 하차할 때에도 입국절차를 거쳐야 한다. 홍콩에서 광저우까지 기차로 2시간 남짓 걸렸다. 최근 이 노선을 이용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고 한다. 광저우-인천 노선 항공권이 언제나 매진돼 구하기 어려운 반면 값싼 홍콩행 항공권은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주로 홍콩, 마카오를 향하던 한국인들의 행선지가 이제는 광저우로 옮겨갔다는 의미다.
광저우는 한눈에 서울을 연상케 했다. 광저우를 관통하는 주강의 풍경은 한강과 흡사하고, 중심가에 솟은 마천루나 빽빽하게 거리를 메운 자동차 또한 서울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데려올 생각입니다. 지금껏 나 혼자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해왔는데, 이제는 광저우에 정착하려 해요. 중국 어디에도 이만한 여건을 갖춘 도시가 없어요.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기에도 한국보다 낫습니다.”
광저우의 동대문시장 격인 광저우국제경방성(廣州國際輕紡城) 인근 오피스텔에서 40대 중반의 한국인 사업자 3명이 함께 숙식을 해결하며 무역전장의 최일선을 지키고 있었다. 이들이 내세운 무기는 의류시장에 대한 현장지식과 중급 정도의 중국어, 그리고 이곳 화남에까지 들어와 한상들을 돕고 있는 조선족의 헌신적인 도움이다.
희망 찾아 악으로 깡으로
광저우에 정착한 무역업자들이 하는 일은 천차만별이지만 다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한국에서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의류의 원자재를 이곳에서 물색해 한국으로 사 나르는 일이다. 하나의 의복을 구성하는 부속품은 10여 가지에 그치지만 그 종류는 무한대라고 할 만큼 다양하다.
광저우를 중심으로 한 광둥성은 홍콩을 통해 선진경제를 익혀 지금은 중국 경제 발전의 거대한 여의주가 됐다. 광저우의 한 최신식 의류 도매시장.
두 번째는 중국에서 직접 상품을 만들거나 아니면 중국 상품을 우리나라와 선진국에 유통시키는 일이다.
세 번째는 한국, 미국, 일본 등지의 대형 양판점에서 주문한 옷을 납기일 내에 만들어 수출하는 일이다. 이른바 하청제작을 말한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인 무역업자들은 대개 중국의 중소업체들을 상대하는 일을 도맡는다. 중국 업자들은 한국 업자들에 비해 의류관련 제조 및 수출 노하우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은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한상들은 대부분은 조선족을 고용해 한 팀을 이루고, 수요자(미국, 일본 등)가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일을 도맡는다. 생산은 중국인이, 무역은 한국인이 담당하는 구조인데 중국 상인들의 시야가 넓어지면서 최근엔 이 같은 구도에 금이 가고 있다.
“한국인이 중국의 의류수출에 관여하는 것도 아마 우리 세대가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야 20년 전부터 섬유로 밥을 먹어온 사람들이니까 노하우가 있다지만, 이젠 중국에서도 의류산업은 사양산업이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C사장을 따라 광저우 남쪽 주택지역에 자리잡은 가내 수공업 현장에 동행했다. 서울에도 종로구 창신동이나 동대문구 왕십리 일대에 가내 수공업체가 흩어져 있다. 물론 재봉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한국인보다 동남아 출신이 더 많지만.
제품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봉제를 책임진 중국인 사장과 한국인 C사장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통역을 맡은 조선족 L씨는 답답한지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일본에 납품하기로 한 여성 블라우스가 애초 제시한 디자인대로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얼마나 까다로운데, 주문한 디자인대로 했어야지 당신 마음대로 만들면 어떻게 해?”
“이 방식이 보편적이라니까요. 지난번 미국에 납품할 때도 이렇게 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다시 만들라고 하고 싶어도 촉박한 납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나중에 벌금을 물더라도 일단 납기일 안에 물건을 보내는 수밖에. 속이 시커멓게 탄 C사장은 업체를 바꾸겠다고 씩씩거렸지만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돌아섰다.
“중국 사람들은 만날 이런 식이라니까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밑지는 장사지만 하나하나 가르쳐가면서 키워야지.”
섬유산업 같은 3D업종은 중국에서도 이미 사양산업으로 분류된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창강 삼각주는 금융과 온라인 게임,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했고, 이곳 주강 삼각주는 급변하는 IT산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섬유산업을 지탱할 인력과 능력은 충분하지만 저부가가치 산업에 중국의 미래를 걸 수 없다는 걸 자각했다는 의미다.
광저우로 몰려드는 한인들
세계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한 광둥성에는 어느새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200개 기업이 진출해 있다. 한국에선 삼성전자, 포스코, LG화학 같은 대기업을 비롯해 2000여 개의 제조업체가 진출했다. 지난해에는 현대상용차가 광저우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광둥성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은 약 5만명. 광저우총영사관이 개설된 2001년에만 해도 교민수가 5000명이 채 안 됐지만 매년 두 배씩 늘어나고 있다. 한인교회도 10여 개를 헤아린다. 광저우에 약 1만명, 선전에 약 2만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대신 홍콩 교민의 수는 해마다 급감하는 추세다.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쑨원이 세운 중산대학은 광저우 경제발전의 허브 구실을 하고 있다.
“광둥인들은 천성적으로 부지런합니다. ‘돈을 벌려면 늘 바빠라(要發財, 忙起來)’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 홍콩 건설의 주역인 이들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해요. 그런 행태는 한국인과 비슷하죠.”
13년 전 광저우 중산대학으로 어학연수를 온 조승현(32)씨는 결혼 후 광저우에 정착해 소규모 무역업을 하고 있다. 그는 광저우 생활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아직 큰돈을 벌진 못했지만 꿈과 희망을 갖기엔 충분한 환경”이라는 것. 급성장하는 광저우 경제에 발맞춰 한인 사회의 폭도 그만큼 확대되고 있다.
중국 각지에서 활동하던 한인들 중에서도 광저우에 정착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는 전언이다. 아직은 한인의 숫자가 많지 않고 산업 경쟁력이 높아 장기 거주에 이롭다는 전망 때문이다. 이 지역에선 광둥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북경어(보통화)를 배운 한인들에게는 언어 장벽이 있었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보통화가 널리 보급되고 있는데다 홍콩과 인접해 있어 영어사용 인구도 중국에서 가장 많은 편이다.
뛰어난 교육 인프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 중산대학은 화남지역 최고 명문대학이다. 이제 중국의 명문대학 인근에서 수백명의 외국유학생이 살고 있는 것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이 대학은 도시의 역사와 함께한 듯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학 입구에는 이런 글귀가 씌어 있다.
‘세계에 위대한 사람은 많지 않다. 위대한 사람이 세운 대학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이 ‘위대한 사람’은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쑨원(孫文, 호는 中山)이다. 쑨원은 광저우 출신이다. 광저우에서 남쪽으로 30km를 가면 중산현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이 쑨원의 고향이다. 홍콩과 마카오에서 의사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1912년 중화민국을 세웠고, 이후 타계한 1926년까지 14년간 군벌세력과 치열한 내전을 치렀다. 외세와 힘겨운 투쟁을 하기 위해 공산당과 손을 잡았던 그는 말년에 광저우에 대학을 세우고 직접 삼민(三民)주의를 실천했다.
현재 이 대학은 경영학석사(MBA) 과정이나 IT관련 분야에서 인재를 배출하며 광둥성 경제발전의 허브 구실을 하고 있다. 홍콩과 가까워 중국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교수진이 포진한 것도 장점. ‘청포도’를 지은 민족시인 이육사가 1926~27년 이 대학에서 공부했다는 것도 흥미롭다. 당시 광둥성은 서구 문화를 가장 빨리 받아들였기에 자연스레 혁명적 분위기가 충만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한국 독립지사들도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북한, 김정일, 그리고 화교
광저우는 시내 전체가 도매시장인 것처럼 보였다. 의류 및 신발도매시장 짠시루, 완구· 문구·판촉물 시장 이더루(一德路), 의류 원단 및 부자재 시장 중다(中大), 건설 부자재, 전자제품 도매시장 등 광저우 시내에 있는 도매상만 30만개에 달한다고 하니 도시 전체가 시장인 셈이다. 규모뿐만 아니라 시장 시스템이나 운영방식 또한 선진적인 수준이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적인 판매망을 구축해놓고 있다. 과거에는 광둥 하면 ‘책상다리만 빼고 다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는데, 요즘은 ‘책상다리를 포함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중국은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1차 가공산업의 학습을 끝마치고 점차 첨단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광저우 인근에 자리한 한 봉제공장.
주목할 점은 최근 급변하는 북한과 중국 관계다. 광저우에는 북한 출신 화교가 적지 않다. 북한에서 평균 이상의 삶을 살던 화교들이 왜 이곳으로까지 흘러들었을까. 한 화교는 이렇게 답했다.
“바로 광저우에 있는 치난(햘南)대학 때문입니다. 이 대학은 전세계 화교들에게 입학특혜를 주는데, 1990년대 후반 이후 북한의 젊은 화교들이 경제난을 피해 대거 중국으로 복귀하면서 이곳에 몰려들었죠.”
왕모(30)씨는 북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이 확정됐지만 중국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지난대학을 택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발행한 여권을 소지했기에 개방화된 중국에서 살기에는 불편한 점이 적지 않다고 한다. 여권갱신을 위해 북한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것도 번거롭지만, 지척인 홍콩에조차 갈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북한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보다 북한 사람들이 훨씬 더 다정다감하고 순박해요. 민족의식도 강하고. 앞으로 광저우에서 살겠지만 북한 친구가 많기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북한관련 무역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에서는 화교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고 회고한다. 방어적 민족의식이 강고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중국이 북한을 흡수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다만 최근 중국 경제가 번성하면서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택하고 이를 배우려 노력하고 있고, 화교를 적극 활용하는 추세라고 말한다. 젊은 왕 사장은 흥미로운 뉴스를 전해줬다.
“얼마 전 ‘김정일 장군님’이 광저우에 다녀갔잖아요. 제 친구 아버지가 평양 인근에 살고 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광저우에서 평양으로 돌아간 직후 평양 주위에 살고 있는 화교들을 주석궁으로 불러 만찬을 주최했대요. 앞으로 중국과의 무역에 힘써달라고 하면서요. 북한에도 곧 변화가 시작되겠죠.”
홍콩, 광저우 그리고 선전
‘칸톤 코모더티 페어.’ 칸톤? 홍콩이나 광저우에 처음 간 사람이라면 칸톤(Canton)이란 표현에 당황할 수 있다. 이는 ‘광둥’의 광저우식 발음을 영어로 옮긴 표현이다.
4월15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광저우 무역박람회는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중국 최대의 경공업 전시회다. 봄과 가을, 한 해에 두 번씩 열리는 이 박람회는 올해로 99회째를 맞았다. 전세계 경공업의 흐름과 가격을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에 박람회 기간에는 광저우가 외국인들로 가득 찬다.
가을에는 이웃한 선전에서 하이테크 박람회의 지존으로 꼽히는 선전하이테크교역회(China Hi-Tech Fair)가 열린다. 중국 정부가 국가경제의 질적 제고를 위해 역점을 두는 하이테크산업 전문 전시회다. 두 대형 박람회 이외에도 광둥성의 여러 도시에선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상품 박람회가 열린다고 한다.
한편 광저우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상하이세계박람회에 이어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이란 거사를 앞두고 있다. 이미 공항, 철도, 도로, 지하철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도 최신식 지하철이 1∼3호선까지 운행 중이지만 먼 훗날까지 내다보고 4∼11호선 공사를 동시에 진행 중이라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런 도시를 살펴보면서 얼마나 큰 충격을 받고 돌아갔을까.
광저우 기차역에서 선전으로 이동하는 데는 1시간30여 분이 소요된다. 선전 기차역에 도착하니 강 건너 홍콩 땅이 눈에 들어온다. 홍콩은 강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지만 물가는 3∼5배 차이가 난다. 주말이면 홍콩에서 선전으로 쇼핑객들이 몰려든다.
홍콩과 선전을 잇는 다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입국 수속 건물이 가로막고 있다. 한 나라 두 체제의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은 중국에 입국할 때보다 복잡했다. 홍콩이 오랜 기간 살아남을 방법이란 이 장벽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주말에 선전에서 쇼핑을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가는 인파가 다리를 가득 메웠다. 홍콩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으로 인해 전통산업이 큰 피해를 본 것은 물론이고, 서비스업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홍콩 경제인들이 광둥에 현지처를 두는 것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고, 룸살롱이나 성매매도 사회문제가 됐다. 그런 까닭에 홍콩의 주말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적막할 정도. 상당수 시민이 쇼핑을 위해 광저우나 선전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홍콩 경제가 극단적인 위기에 처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오히려 홍콩 경제는 잠깐의 침체기를 거쳐 2004∼05년 연속 상승했다고 한다. 누군가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중국경제가 좋아지면 홍콩경제도 좋아집니다. 중국의 부자들은 이제 모두 홍콩에 가서 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중국’과 ‘지역국가’
지하철로 40분을 타고 가니 홍콩의 중심지에 도착했다. 광저우와 홍콩은 1일 생활권이 아니라 반나절이면 충분하게 일을 보고 돌아올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인구 1000만의 도시 3개(홍콩·선전·광저우)가 함께 존재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이들 도시가 각자 다른 정치체제와 경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조화를 이루며 공생하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물론 이 도시들을 다 같이 중국이라고 보는 데는 좀 억지스러운 면도 있다.
일본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는 최근 저서 ‘The next global stage’에서 “글로벌 경제의 지리적, 경제적 단위는 국가가 아니라 지역”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그는 잘 갖춰진 공항과 항구 등의 교통 시스템은 물론 연구·개발(R&D)센터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인프라와 유능한 기술자까지 자체 수급이 가능한 지역을 그는 ‘지역국가(region state)’라고 이름붙였다.
‘하나의 중국’이란 정치적인 개념일 뿐, 경제적으로는 7∼8개 ‘지역국가’간 내부경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광둥성은 벌써 타이완, 한국과 경쟁하는 수준에 와 있다. 한때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투자로 부와 노하우를 축적했던 주강 삼각주는 이제 강력한 지역국가로 돌변해 ‘중국 세계화’의 선봉장이 됐다. 민주국가를 그리던 쑨원의 꿈은 이제 이루어진 것일까. 광동성은 그 해답을 2010년 아시안게임 이전에 내놓을 것이다.
[인터뷰] KOTRA 광저우 무역관 함정오 관장 |
“이곳은 한국민과 궁합 잘 맞는 기회의 땅”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광저우 무역관 함정오 관장은 만 3년5개월 동안 광저우를 지켰다. 광둥성 교민 수가 5000명일 때 부임했는데, 어느새 교민수가 4만(본문에는 5만으로 돼 있음)을 훌쩍 넘겼다. 그는 “광저우에 현대상용차가 들어설 2008년이면 한국인들의 광저우 투자는 한층 활기를 띨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광저우는 경공업보다는 IT로 투자의 중심을 옮기는 것같다. “광저우 시정부는 주력산업으로 IT, 자동차 부품, 석유화학 등을 선정해 육성하고 있다. 둥콴, 선전에 IT 하드웨어 제조 기본 인프라가 다 돼 있는데, 광저우는 이를 토대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키울 작정이다. 인근의 대학을 중심으로 베이징의 중관춘(中關村)에 버금가는 첨단산업 집약지로 만들겠다는 야심이다.” -그런데도 한인들은 물류나 의류, 경공업 쪽에 치우친 듯한데…. “전반적으로 광저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투자기업 수도 산둥성이나 상하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그러나 패션산업만 해도 이미 동대문이나 청계천에서 거래되는 신변용품이나 가죽제품은 거의 다 광저우에서 생산된 것이다. 한국의 의류, 패션 제조기반을 다 빼앗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중남미나 유럽의 한국 상인 네트워크도 광저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광저우의 인프라와 미래가 긍정적이긴 한데, 급속한 발전의 부작용 또한 있지 않겠나. “아무래도 빠른 속도로 바뀌다 보니 성장통을 앓고 있다. 교통과 환경 문제가 가장 절박한데, 중국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획기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다. 11차 5개년 계획이 이미 시작됐고, 2010년 아시안게임이 열리기 전까지 완전히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중국 부동산 투자를 고려하는 한국인이 많은데. “중국의 부동산가격은 5%라고 발표된 실질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급격하게 상승한다. 그러나 중국 부동산 투자에는 복병이 많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곳에 장기 체류하면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권하고 싶지 않다.” -광저우에 대해 총평한다면. “광둥성은 중국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개방화의 본산이다. 비즈니스가 앞서가기 때문에 우리 성향과 궁합이 잘 맞는다. 한국과의 연간 교역액이 200억달러에 이르지만 수출품의 대부분이 원부자재여서 일반인의 인식은 부족하다. 하지만 광둥성을 중심으로 한 화남시장은 규모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고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시장이다. 광둥성은 벌써 ‘9+2 경제공동체’를 추진하고 있다. 홍콩·마카오와 광둥성을 중심으로 한 중국 9성을 묶어 화남지역 경제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한국은 이에 시급히 대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