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오빠는 풍각쟁이야’

또 하나의 최초, 일제 강점기 대중가요史

  •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ymlee61@empal.com

    입력2006-05-17 16: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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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는 풍각쟁이야’

    ‘오빠는 풍각쟁이야’ 장유정 지음/황금가지/433쪽/2만2000원

    이제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사적인 연구는 개괄적 통사(通史)에서 특정 시대와 부류에 대한 심화 연구로 넘어왔다. 필자가 학술서로서 최초의 대중가요사를 자처한 ‘한국대중가요사’를 펴낸 것이 1998년이니, 한국 대중가요사의 연구 속도는 비교적 빠른 셈이다. 선행 연구자로서는 반갑고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다. 자신이 시작한 연구 분야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황무지처럼 방치되어 홀로 그 곳에 남아 있는 민망함은 면하게 됐으니 말이다.

    이번에 나온 ‘오빠는 풍각쟁이야’는 장유정의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은 책으로 식민지시대 대중가요가 그 대상이다. 아마 이 논문도 국문과 최초의 대중가요 박사논문이라는, ‘최초’의 명예를 오랫동안 간직하게 될 것이다. 항상 ‘최초’의 행위는 미개척지에 깃발 꽂는 흥분을 동반하지만 막상 시작할 때는 많은 망설임이 있다. 저자가 ‘머리말’에 밝혀놓은 대로, 대학가요제에 도전장을 내볼 정도로 가수를 꿈꿔왔던 개인적 절실함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삐딱선’을 타는 모험을 감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록물에 근거한 문화사적 접근

    이 책이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대중가요에 대한 풍부한 문화사적 접근이다. 국문학 논문임에도 작품 내적 분석이 아닌 당대 대중가요가 놓인 문화사적 맥락에 대한 천착의 비중이 책의 절반을 넘을 정도다. 특히 저자의 시선이 대중가요의 생산자와 생산과정, 그리고 수용자와 수용의 맥락 모두를 살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생산가능한 대중가요라는 상품의 본질, 유성기라는 새로운 기계를 지녀야 들어볼 수 있는 전달방식, 대중가요와 유성기가 유통되는 시장, 이를 구매하고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수용자들은 실제로 대중가요를 존립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다.

    저자는 당시의 기록들, 특히 문서기록들을 최대한 모아서 이를 구명한다. 음반에 삽입된 가사지, 각 신문과 잡지에 실린 광고와 기사, 연감 등의 공공기관 기록물을 가장 중요한 자료로 활용했다. 그래서 식민지시대의 대중가요를 앙상한 악보나 노랫소리가 아니라 당대를 풍미한 문화로 생생하게 복원한다. 예컨대 1912년 유성기 광고로 쓰인 삽화(유성기 나팔통에서 한복에 한삼 끼고 춤추는 여자들이 흘러나오는 그림)는 당시 사람들이 유성기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유성기에 대한 기사와 홍보문구에서 당시 개화한 지식인들이 꿈꿨던 서양 스위트홈의 이미지를 추출한 것은 좋은 분석이다.



    기록물에 근거해 당대의 총체적인 상을 재구성하려는 저자의 욕구는, 유성기 음반에 실린 전통가요(판소리, 잡가, 민요, 시조를 이렇게 지칭했다) 등 대중가요 이외의 것들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았다. 또한 대중가요의 여러 갈래가 당시 어느 정도 생산되고 수용됐는지에 대한 통계적 분석도 그 시대를 포괄적으로 파악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의 이러한 연구방법은, 최근 몇 년간 인기를 모으고 있는 미시사(史)에 대한 관심과 일맥상통한다. 역사나 사회를 연구함에 있어 정치와 경제 이외의 문화와 생활, 풍습의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예술문화 연구자들이 당대 기록물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마치 풍속사가처럼 당대의 생활사·문화사 전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연구 경향이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저자가 주장하는 ‘이식과 자생의 이분법을 넘는 일’은 바로 이러한 연구방법으로 가능했다. 미시사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완벽하게 이식적, 혹은 자생적이라고 못박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으랴. 인간사는 모두 과거의 다기한 측면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고, 미시사는 거시적 태도에서 무시하기 쉬운 이 복잡한 결을 놓치지 않으려고 구석구석에 애정 있는 눈길을 주는 방법론이다.

    대중가요의 네 갈래

    식민지시대의 대중가요를 크게 네 갈래로 구분한 것은 이 책의 또 하나의 성과다. 식민지시대의 대중가요가 트로트 일색이라는 선입견을 뒤집고, 트로트와 신민요의 양대 산맥으로 이 시대를 서술한 것이 필자의 성과라면 여기에 (트로트와 신민요에 비해 비중이 낮기는 하지만) 만요(漫謠, 코믹송)와 재즈송(당시 트로트에 비해 서양풍이 강한 노래를 이렇게 통칭했다)을 더해 식민지시대 대중가요를 4가지로 분류한 것은 이 책의 성과다. 당시 음반에는 작품 제목 앞에 작은 글씨로 작품의 종류를 명기했는데, 저자는 이를 활용했다.

    만요와 재즈송에 트로트·신민요와 동급의 지위를 준 것은 확실히 문학연구자로서의 면모가 보이는 지점이다. 왜냐하면 트로트와 신민요가 가사에서뿐 아니라 음악적으로 비교적 확고한 특성을 보이고 있는 것에 비해, 만요와 재즈송은 음악적으로 보자면 고유한 특성이 상대적으로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요는 그야말로 코믹한 가사를 지닌 노래이므로 음악적으로 분류하자면 트로트, 신민요, 재즈송으로 각기 나뉠 수 있다. 재즈송은 음악적으로 트로트에 비해 서양 색채가 강하다. 예컨대 5음계가 아닌 7음계를 구사하거나 블루스에서와 같은 블루노트를 쓴다. 그러나 저자는 음악적으로 트로트에 가까운 노래들도 화려한 도시 분위기를 담은 가사를 지닌 경우 재즈송으로 분류했다.

    음악적으로 어떠하다 해도, 문학연구자의 관점에서 재즈송과 만요가 지니는 뚜렷한 성격에 주목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트로트가 응축된 서정성을 강하게 표출하는 것에 비해, 재즈송과 만요는 도시를 묘사하거나 당대를 살아가는 인물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경향이 돋보이므로 저자는 이런 차이에 주목한 것이다.

    이 책은 식민지시대 대중가요에 대해 포괄적이고 문화사적으로 풍부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에 반해 개개의 작품에 대한 분석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식민지시대 대중가요를 트로트와 신민요, 만요, 재즈송으로 분류하면서 몇몇 작품은 치밀하게 분석했다. 이 책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각 갈래를 대표하는 몇 곡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각각의 노래가 당시 대중의 어떤 경험과 정서에 맞물려 있는가로 모아진다.

    그런데 그 대목에서 정작 식민지시대만의 고유한 특성이 무엇인가 하는 부분은 제대로 구명되지 않았다. 예컨대 만요 ‘웃음으로 눈물 닦기’나 트로트 ‘부재한 임’에 대한 상실감을 전통시가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식민지시대 대중가요가 전통시가에서 어떻게 달라졌는가다. 이것이야말로 식민지시대 대중가요의 ‘정서구조’(저자가 인용한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용어)를 밝히는 핵심 사항이다.

    몇 가지 아쉬움

    또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각주와 인용의 방식은 연구자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면서도 정도를 지키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저자는 선행연구와 의견일치를 보이는 부분에서는 각주 없이 선행연구를 받아들이고, 반박하는 대목에서만 각주를 붙여 인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4와 7음을 제거한 단조 5음계’를 트로트의 핵심적 음악적 특징으로 본 것, ‘황성의 적’ 등 트로트의 초기작이 보이는 3박자가 우리 전통음악의 3분박 체계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지적, 당시에는 신민요로 보지 않았던 ‘오동나무’를 신민요의 초기작으로 간주하는 것 등은 당연히 선행연구의 성과를 이어받은 것으로 각주 처리를 했어야 했다.

    잘못된 인용들도 있다. 김창남의 논문을 학교창가에서 유행가가 발생했다는 주장으로 오독(誤讀)한 것이나, 필자의 대중가요에 대한 정의에서 ‘그 나름의 작품적 관행을 지닌’이라는 핵심적인 구절을 제거하여 대중가요의 작품적 관행의 특성을 역사적으로 구명하기 힘들게 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대중가요에 대한 애정이 워낙 깊다보니 이 시대 대중가요사에 대한 시각을 ‘욕이냐 칭찬이냐’의 이분법으로 몰고 간 것은 균형감을 잃게 만든 지점이다.

    대중가요가 본질적으로 지닌 체제순응성이 당시 사회 속에서 어떻게 다기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에 대한 구명을 ‘대중가요 욕하기’로 간주하면, 친일가요 문제는 멀쩡한 대중가요 사이에 끼어 있는 치욕적인 불순물로 볼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저자가 가장 경계하는 태도인) 창작·생산자 개개인의 도의적 문제 차원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드커버의 학술서를 부록으로 제공된 음반을 들으며 이토록 즐겁게 읽게 해준 저자의 노고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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