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은 정거장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왔다가 이곳을 떠난다. 이 거리와 바람을 피우거나 정사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연애는 하지 않는다.” 1997년 홍콩을 떠나며 영국인들이 남긴 말이다. 영국의 지배가 끝나고 중국에 반환될 시기가 다가오자 홍콩인들은 불안해했다. 홍콩은 오랫동안 중국이면서 중국이 아니었기에. ‘중경삼림’과 ‘첨밀밀’은 한국인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사랑 영화지만, 홍콩 반환을 앞둔 시점에 홍콩인이 겪은 배신감과 피로감, 홍콩과 중국 대륙과의 미묘한 관계가 녹아들어 있다.
홍콩 빅토리아항의 전시·컨벤션센터.
이 조약으로 조그만 시골 어촌이던 홍콩은 다시 태어난다. 영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때 영국에 넘어간 것은 홍콩이라는 ‘섬’뿐이다. 그런데 이 홍콩 섬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영국은 1860년에 다시 홍콩 섬과 마주한 주룽(九龍·광둥에선 카오룽으로 발음) 지구를 차지한다. 영국은 1898년에 중국으로부터 주룽 반도 북쪽의 이른바 신제(新界) 지역도 99년간 임차한다.
임대 만료 시기를 앞두고, 영국과 중국은 1982년부터 협상을 진행한다. 영국의 대처 수상은 덩샤오핑에게 신제 지역의 조차(租借)기간을 연장해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영국이 중국에 돌려줘야 할 곳은 99년간 임차하기로 한 신주 지역뿐이다. 하지만 신제 지역을 중국에 돌려주고 주룽과 홍콩 섬이 생존할 방법은 없다. 신제는 주룽과 홍콩 섬에 물과 식량 등 생존기반을 공급한다. 덩샤오핑은 영국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고, 홍콩 전체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1984년까지 2년에 걸친 중·영 회담 끝에 조차기간이 만료되는 1997년 7월1일에 영국은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고, 중국은 50년 동안 홍콩의 현행 제도를 바꾸지 않고서 한 나라 안에 두 가지 제도를 시행하는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유지하기로 합의한다. 실제 반환협상은 1982년부터 시작됐다. 한 세기 전의 약속이 정말 실행에 옮겨질지 실감하지 못한 홍콩인들은 그때부터 비로소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기 시작한다. 홍콩인들에게 ‘1997’이라는 숫자는 종말이자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과 초조가 홍콩인들을 사로잡았다. 1980년 이후 홍콩인 40여 만명이 해외로 이민을 떠났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홍콩 영화의 토양은 바로 홍콩의 ‘1997 신드롬’이었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중경삼림(重慶森林)’(1994)은 ‘1997’이라는 임대 만료 시기가 임박한 홍콩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이별 이야기다. 영화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들어 있고, 네 명의 주연배우가 나온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진청우(金城武)와 린칭샤(林靑霞)다. 진청우는 사복형사 223호이고, 린칭샤는 마약밀매상이다. ‘아미’라는 여자친구에게 차인 진청우는 이별한 그날부터 여자친구가 좋아하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은다. 그 통조림들의 유통기한은 모두 5월1일이다. 4월30일 저녁에도 유통기한이 2시간밖에 남지 않은 통조림을 찾는다.
홍콩과 통조림
5월1일은 그의 생일이다. 그는 만일 자신의 나이와 같은 30개의 통조림을 다 먹을 때까지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사랑도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이면 유통기한이 지나는 통조림을 모조리 먹어치운 진청우는 느글느글한 속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러 간다. 술집에 처음 들어온 여자와 사귀기로 마음먹는다. 그 여자가 마약 중개상 린칭샤다. 인도 사람들을 고용해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하려던 린칭샤는 공항에서 인도인들이 마약을 가지고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그들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둘은 함께 술을 마신다. 취해 곯아떨어진 린칭샤를 호텔에 재운 뒤 진청우는 생일인 5월1일 아침, 몸 안의 눈물을 땀으로 모두 배출하기 위해 조깅을 한다.
그날 아침 린칭샤는 자신을 배신한 보스에게 권총세례를 퍼붓는다. 옆에는 유통기한이 적힌 통조림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다. 권총세례를 받은 보스는 백인이다. 영화에서 린칭샤는 백인 보스에게 배신당하고, 진청우는 애인에게 버림받는다. 진청우는 생각한다.
홍콩에서 만난 대륙인의 사랑을 그린 천커신 감독의 영화 ‘첨밀밀’
영화에서는 사랑도, 통조림도 5월1일이면 유통기한이 만료된다. 그리고 영국은 홍콩에서 7월1일이면 유효기한 만료다. 1997년 7월1일이면 홍콩을 떠나는 영국은 홍콩인들에게 흡사 유통기한이 찍힌 통조림 같다. 유통기한이 만료되면 영국은 홍콩을 버리고 떠날 것이다. 그렇게 떠날 영국은 홍콩인들에게 애인이고, 자신을 돌보고 거두어주는 보스였다. 그런 영국이 이제 떠난다. 그것이 배신일지도 모른다. 애인이 떠나고, 보스인 백인에게 배신을 당한 뒤 새로운 둥지를 찾지 못하는 진청우와 린칭샤의 방황과 고통, 피로감은 당시 홍콩인 대다수의 느낌 그대로다.
하지만 그렇게 애인과 보스가 떠난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진청우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조깅을 하면서 슬픔을 잊고 새출발을 하려 한다. 린칭샤는 백인 보스를 살해한 뒤 그동안 쓰고 다니던 금발 가발을 벗어던진다. 보스에게 배신당한 린칭샤 옆에는 구두를 신고 자면 다리가 붓는다면서 구두를 벗겨주고, “예쁜 여자는 구두가 깨끗해야 해” 하면서 정성껏 구두를 닦아주는 진청우가 있다. 애인과 보스가 떠난 뒤 새롭게 출발하는 두 사람은, 영국이 떠난 뒤 새롭게 출발하는 홍콩인 셈이다.
주룽 반도의 침사추이
‘중경삼림’ 첫 번째 이야기의 무대는 주룽 반도다. 주룽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침사추이다. 침사추이를 가로지르는 나단 로드에 청킹맨션(重慶大厦)이 있다. 이곳이 영화의 주요 무대다. 청킹은 ‘重慶’을 광둥어로 읽은 것이다. ‘중경삼림’의 영어 제목은 ‘Chungking Express’이다. 영화에 나오는 첫 번째 이야기가 청킹맨션을 배경으로 진행되고, 두 번째 이야기의 배경이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Midnight Express)’라는 패스트 푸드점이라 두 공간을 합성해 제목을 만든 것이다.
나단 로드는 주룽에서 번화한 곳이자 가장 혼잡한 곳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이 거리만의 매력이다. 하얏트 호텔 등 최고급 호텔도 있지만 우리나라 여인숙쯤에 해당하는 싸구려 숙박시설도 즐비하다. 나단 로드 36번지 대로변에 높이 솟은 낡은 빌딩이 청킹맨션이다. 홍콩의 대표적인 저가 게스트하우스다. 4층부터 숙소이고 3층까지는 상가인데, 환전소와 도색잡지 가판대, 기념품 가게, ‘짝퉁’ 가게들이 널려 있다.
어둠침침한 복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으면 누군가 달려들어 칼을 들이대지 않을까 조마조마할 정도로 무섭고 위험해 보이는 건물이다. 청킹맨션은 방값이 싸서 돈을 벌기 위해 동남아나 아프리카, 인도, 네팔에서 온 사람들이 장기 체류하곤 한다. 그래서 인도 식당, 네팔 식당 등이 있다. 진청우는 범죄가 빈발하는 이곳 일대를 순찰하는 사복경찰이다. 린칭샤는 청킹맨션에서 마약 운반책 노릇을 할 인도 사람들을 구하고, 보스에게 매수되어 도망간 인도 사람들을 찾아 헤맨다. 그러면서 청킹맨션의 어지러운 광경이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현란하게 화면을 채운다.
청킹맨션이 있는 나단 로드에서 남쪽으로 홍콩 문화센터, 홍콩 예술박물관, 그리고 홍콩 섬으로 가는 스타페리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길은 홍콩 최고의 산책로 가운데 하나다. 해변을 끼고 반대편 홍콩 섬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 상하이은행 빌딩, 중국은행 빌딩 등, 홍콩을 대표하는 멋진 건축물이 연출하는 세계 최고의 항구 풍경을 볼 수 있다. 특히 야경이 일품이다. 홍콩에서 환상적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두 곳이다. 한 곳은 홍콩 섬에서 급경사를 오르는 재미있는 픽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피크로 가서 주룽 쪽을 바라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룽 남쪽 침사추이 해변에서 홍콩 섬 쪽을 구경하는 것이다. 설이나 추석, 크리스마스, 연말에는 침사추이 해상에서 불꽃놀이를 하는데 불꽃놀이와 홍콩 빌딩의 조명이 어우러져 연출하는 야경이 장관이다.
2004년에 침사추이 해변공원에 ‘스타의 거리’가 생겨 볼거리가 늘었다. 홍콩 유명 배우와 감독 73명의 사인과 핸드 프린팅이 길바닥 곳곳에 있다. 수많은 배우의 손바닥 도장에 자신의 손을 맞춰보다 보면 홍콩이 영화의 도시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필자가 좋아하는 장궈룽의 것은 없다. 장궈룽은 ‘스타의 거리’가 생기기 1년 전인 2003년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캘리포니아 드리밍’
‘중경삼림’ 두 번째 이야기는 줄거리보다도 영화 전편에 흐르는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 Papas)’의 명곡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이 인상적이다. 많은 영화 팬이 ‘중경삼림’하면 이 노래를 떠올린다. 노래가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데다가 촬영감독인 크리스토퍼 도일의 카메라가 현란하게 움직여서 ‘중경삼림’의 두 번째 이야기는 ‘캘리포니아 드리밍’의 뮤직비디오처럼 느껴질 정도다.
영화 ‘중경삼림’에 등장하는 저가 게스트하우스 청킹맨션.
‘중경삼림’의 두 번째 이야기의 배경은 홍콩 섬이다. 홍콩 섬의 명물 가운데 하나가 세계에서 가장 긴 옥외 에스컬레이터다. 길이가 무려 800m나 되는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가 그것이다. 오전 10시까지는 내려오고 이후에는 올라가기만 한다. 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다 보면 주위의 집 안 풍경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중경삼림’의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도 이 에스컬레이터 옆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다고 한다. 영화에서 량차오웨이의 집도 이 에스컬레이터 옆에 있다. 그래서 왕페이는 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면서 짝사랑하는 량차오웨이의 집을 몰래 훔쳐본다.
량차오웨이가 출근하면 왕페이는 몰래 량차오웨이 집에 들어가서 량차오웨이의 옛날 애인이 입던 스튜어디스 복장을 감춰버리고 집안을 말끔히 청소하고 새로 통조림을 사서 선반에 채워놓는다. 옛날 애인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자기 식으로 량차오웨이의 집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량차오웨이에게 들킨다. 량차오웨이는 왕페이의 마음을 알아챈다. 그리고 떠난 애인에게 새 남자가 생겼으며 그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결국 량차오웨이는 왕페이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내일 8시에 ‘캘리포니아’에서 기다릴게요.”
두 사람의 약속 장소인 ‘캘리포니아’란 바는 홍콩 섬 란콰이펑에 있다. 센트럴 역 D1출구에서 나와 랜드마크 백화점을 지나 위쪽 언덕길을 올라가면 조그마한 바가 늘어선 보행자 전용 거리가 나온다. 이곳이 란콰이펑이다. 동서양 문화가 뒤섞인 홍콩 문화의 특징을 여실히 체험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혼자 여행하기를 즐기는 필자는 주로 걸어 다니면서 구경을 한다. 발바닥이 아프고 다리에 힘이 빠질 정도가 됐을 때, 특히 홍콩처럼 덥고 눅눅한 거리를 걷다가 지쳤을 때, 거리의 카페에서 이국 풍경을 내다보며 시원한 생맥주를 한잔 하는 즐거움은 여행자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란콰이펑에 줄지어 선 멋진 바들은 낯선 여행객이 그런 즐거움을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홍콩은 정거장이다”
란콰이펑 언덕을 중간쯤 올라가다 왼쪽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입구에 ‘캘리포니아’란 바가 있다. 물론 란콰이펑에 ‘캘리포니아’란 이름을 가진 바는 그것말고도 많다. 영화 속 량차오웨이의 단골집이자 왕페이의 직장인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는 그 골목을 따라 10m쯤 더 들어가 길이 갈라지는 곳 왼쪽 모퉁이에 있었다. 지금은 담뱃가게로 바뀌었지만.
량차오웨이는 약속 장소인 캘리포니아에서 기다리지만 왕페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냅킨에 손으로 쓴 항공권을 남긴 채 진짜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난 것이다. 1년이 지난 뒤, 량차오웨이는 경찰을 그만두고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가게를 넘겨받아 개점을 준비한다. 영국 제국의 경찰복을 벗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옛날 왕페이가 즐겨 듣던 노래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들으면서. 그때 왕페이가 량차오웨이의 옛 애인처럼 스튜어디스가 되어 나타난다.
많은 이에게 홍콩의 이미지는 머무는 곳이 아니라 거쳐가는 곳, 비행기를 갈아타는 곳이었다. 홍콩에 뿌리내리는 것이 아니라 홍콩을 거쳐 다른 곳으로 간다. 홍콩인들마저 그렇다. 홍콩인들은 기본적으로 외지에서 온 이주민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홍콩을 거쳐 다시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로 간다. 그래서 영국인 식민지 통치자들은 홍콩을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홍콩은 정거장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왔다가 이곳을 떠난다. 이 거리와 바람을 피우거나 정사(情事)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연애는 하지 않는다.”
영화 ‘중경삼림’의 두 번째 이야기는 홍콩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옥외 에스컬레이터와 번화가 란콰이펑을 확인할 수 있다.
99년 동안 계속된 영국 식민지 홍콩의 유통기한은 끝났다. 그렇다고 유통기한이 없거나 혹은 영화에서 진청우가 바라던 대로 유통기간이 1만년쯤 되는 통조림이 홍콩인들 앞에 새롭게 나타난 것은 아니다. 홍콩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유통기한이 생겼다. 중국 정부가 보장하여 50년 동안 지속될 ‘일국양제’라는 또 하나의 유통기한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중경삼림’에 담긴 홍콩인들의 숙명적인 유한한 사랑이야기는 아마도 끝이 없을 것 같다.
전설이 된 가수 덩리쥔
‘중경삼림’이 홍콩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라면 ‘첨밀밀(添蜜蜜)’은 홍콩 이방인들의 사랑 이야기다. 중국 대륙에서 돈을 벌기 위해 기회의 땅 홍콩으로 온 ‘대륙인’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홍콩이 대륙으로 반환되던 1997년에 천커신(陳可辛) 감독이 내놓은 작품이다. ‘타임’지가 선정한 1997년 최고의 영화 10편에 선정되기도 한 명작이다. 영화 제목인 ‘첨밀밀’은 중국인들에게 이미 전설이 된 가수 덩리쥔(鄧麗君·1953∼95)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영국인에게 비틀스가 있다면 중국인에게는 덩리쥔이 있다. 덩리쥔은 1995년 5월8일 태국에서 지병인 천식이 악화되어 죽었다. 그래서 덩리쥔 팬들에게 5월은 ‘덩리쥔의 달’이다. 중국 대륙, 홍콩, 대만, 그리고 해외 화교들까지 전세계 중국인들이 덩리쥔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달이다. 해마다 덩리쥔이 죽은 5월8일을 전후로 중화권에서는 덩리쥔을 추모하는 콘서트가 여기저기서 열린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그녀가 죽은 지 11년이 지났지만 그녀를 추모하는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중국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덩리쥔의 노래가 있다. 덩리쥔의 노래는 전세계 중국인들의 마음을 연결하고, 중화 세계를 연결하는 문화적 메신저다. 중국인이라면 의당 덩리쥔을 좋아하고 덩리쥔을 좋아하기에 비로소 중국인이라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공통의 취향과 정서를 고리로 한 상상의 공동체를 만든 것이 바로 덩리쥔의 노래다. 그래서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공자의 후손이라고 자부하듯, 누구나 덩리쥔의 팬이라고 자부한다. 덩리쥔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대만이나 홍콩, 대륙,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중국인들은 하나다.
노래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전편에 흐르는 ‘중경삼림’은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혼란과 불안감을 젊은 연인들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에 담아냈다.
기회의 땅 홍콩
영화 ‘첨밀밀’은 리밍(黎明)이 남자 주인공 소군을, 장만위(張曼玉)가 여자 주인공 이교를 맡았다. 홍콩은 원래가 이민자들의 도시다. 내륙, 지금의 중국 대륙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해 도시 규모가 커졌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상하이까지 점령하자 상하이에 있던 상공인들과 자본이 홍콩으로 대거 유입됐고, 1949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 선 이후에 다시 한번 대규모 난민이 홍콩으로 왔다.
한동안 주춤하던 대륙 출신 이민자들이 다시 홍콩으로 몰려든 것은 대륙에서 문화대혁명이 종결(1976)되고 개혁개방이 시작되던 1970년대 말부터다. 한 해 10만명씩 몰려올 정도였다. 소군도 그중 하나였다. 1986년 3월1일 ‘신이민자’의 한 사람으로 대륙인임을 상징하듯 푸른 인민복 차림으로 홍콩에 왔다. 다행히 홍콩에 고모가 살고 있어서 고모가 내준 다락방에서 자면서 음식점에 닭을 배달하는 일을 맡았다. 털을 뽑은 닭을 자전거에 줄줄이 달고 홍콩 시내를 경쾌하게 달린다. 소군의 얼굴에는 기회의 땅 홍콩에 와서 성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기쁨이 넘친다.
영화 ‘첨밀밀’의 인기와 더불어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중국의 전설적인 가수 덩리쥔.사진은 북한에서 발행된 덩리쥔 우표다.
홍콩은 맥도날드 천국이다. 홍콩에 처음 간 것이 1985년인데, 아침에 커피를 마시러 맥도날드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아이들로 만원이었다.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등교하는 것이었다. 요즘은 대륙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중국 맥도날드는 아침 일찍 문을 연다. 대륙 사람들도 그렇지만 홍콩 사람들은 집에서 밥을 해먹지 않는다. 아침은 출근하다가 죽이나 샌드위치 등으로 해결하고, 저녁도 밖에서 사먹는다. 여성들이 편할 수밖에 없다. 번 돈의 대부분을 먹는 데 쓴다. 중국인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기는 사람들(民以食爲天)’이다. 중국인의 종교는 도교가 아니라 차라리 식교(食敎)라 할 만하다.
처음 탄 월급을 들고 맥도날드로 달려갔지만 소군은 당황스럽다. 도대체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도 모르는데다, 더 큰 문제는 말이었다. 대륙 출신인 소군은 광둥어를 할 줄 몰랐다. 보통화는 성조가 넷이지만 광둥어는 성조가 여덟이다. 글로는 소통이 되지만 말로는 소통이 되지 않는다. 광둥어에는 아직도 입성이 남아 있어 어떤 음은 우리 한자음과 흡사하다.
대륙인과의 운명적 만남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 홍콩에서도 보통화를 쓰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영어와 광둥어만 통용되던 홍콩에서 보통화가 약진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보통화를 교육하고 대륙과 교류가 늘어난 데 따른 경제적·정치적인 이유로 자발적으로 학원에 가서 보통화를 배우는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한창 대륙인들이 몰려들던 1980년대 홍콩에서 대륙 보통화를 쓰면 대륙인이라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외국인인 나조차 홍콩에서는 보통화보다 영어를 쓰곤 했다. 그래야 대접받을 수 있었다.
광둥어를 몰라 더듬거리는 소군을 구해준 것이 여주인공 이교다.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교가 고맙게도 보통화로 상대해준 것이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교도 소군과 같은 처지의 대륙인이다. 그리고 영화 맨 끝 장면에서야 밝혀지지만 두 사람은 같은 날 같은 기차를 타고 홍콩에 오면서 머리를 맞대고 잤다.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교는 광둥성 출신이라 광둥어를 할 줄 안다. 그래서 홍콩인 행세를 하며 닥치는 대로 일한다. 홍콩 물정에 어두운 대륙인들을 영어 학원에 소개해 주고 커미션을 받고, 학원 청소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소군도 이교의 꼬임에 빠져 영어학원에 가서 영어를 배운다. 소군은 이교에게서 호출기라는 것을 처음 보고, 은행 카드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된다. 소군은 이교한테 홍콩에서 사는 법을 배운다. 그런 가운데 둘은 가까워진다.
어느 날, 학원 수업을 마치고 소군이 이교에게 말한다. “차가 있으니까 바래다주겠다”고. 이교가 놀라며 “차가 있느냐”고 묻는다. 중국어로 자전거는 ‘自行車’다. 그래서 중국어로 ‘유처(有車)’라고 하면 자전거가 있다는 뜻도 되고, 자동차가 있다는 뜻도 된다. 이교는 처음에 자동차가 있다는 것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소군 자전거에 타면서 이교는 “이런 것은 홍콩에서 차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평소 닭을 배달하던 소군의 자전거 뒷좌석에 타고 가는 이교의 표정은 무척 밝다. 흡사 고향에 온 듯하다. 대륙에 있을 때처럼 자전거를 타고 가고, 여기에 덩리쥔의 ‘첨밀밀’ 노래가 흘러나온다. ‘첨밀밀(톈미미)’이란 달콤하다는 뜻으로, 연인 관계를 상징한다.
달콤해요, 당신의 미소가 달콤해요봄바람에 꽃이 핀 듯봄바람에 꽃이 핀 듯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렇게 낯이 익은데생각이 나지 않아요
동서양 문화가 뒤섞인 홍콩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홍콩 섬의 번화가 란콰이펑.
급기야 중국 정부는 1983년 덩리쥔의 음악을 퇴폐음악으로 규정하고 금지한다. 하지만 이런 금지 조치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혁명가요와 군가풍의 노래만 듣던 중국 대륙 사람들에게 여리고 처량한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하는 덩리쥔은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던 셈이다. 중국 대륙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덩리쥔의 노래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었고, 대륙 가수들은 그녀의 노래를 모방하느라 바빴다.
덩리쥔의 노래가 대륙에서 유행하게 된 데에는 당시 중국 대륙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카세트 플레이어가 크게 기여했다. 해금 조치가 아무 효과도 거두지 못한 채 덩리쥔의 노래는 1985년 해금된다. 그리고 덩리쥔은 명실상부 모든 중화세계를 아우르는 중국인의 가수로 거듭 태어난다. 그러나 덩리쥔은 중국 대륙 팬들이 그렇게 원했음에도 중국 대륙에는 가보지 못하고 생을 마친다.
‘우리 홍콩인, 그들 대륙인’
‘첨밀밀’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즐겁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소군과 이교의 뒤로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 매장들이 지나간다. 이들이 지나가는 거리가 캔톤 로드이다. 주룽에서 가장 화려한 거리다. 고급 옷가게와 세계적인 명품매장이 모여 있고, 한국과 일본 단체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갤러리아 쇼핑몰도 이 거리에 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맥도날드도 캔톤 로드에서 주룽 공원 쪽으로 접어드는 길 지하에 있다.
캔톤 로드에서 침사추이 역 쪽으로 가는 길에 두 사람이 자주 들르던 레스토랑도 있다. ‘스위트 다이너스티(唐朝, Sweet Dynasty)’란 곳이다. 광둥요리의 대표 음식 가운데 하나가 죽이다. 홍콩이나 광저우에 가면 아침에 갖가지 죽을 먹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집에서는 40여 가지의 죽을 판다. 뜨거우면서도 고소한 연두부 요리, 예쁘고 맛있는 딤섬 도 있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무엇보다 맛이 일품이다. 그런데 한번 맛을 보려면 하루 중 언제 가더라도 최소 30분 이상은 줄서서 기다려야 한다.
홍콩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두 사람이 허름한 차림으로 홍콩의 부를 상징하는 캔톤 로드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홍콩에서 이룰 꿈이 있고, 외로운 홍콩에서 동병상련의 친구를 만났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제 친구가 됐다. 1987년 설 전날, 둘은 노점을 열어 덩리쥔 테이프를 판다. 하지만 비가 내려 전혀 팔리지 않는다. 이교가 무심결에 말한다. “작년에 광저우에서는 10만개나 팔았는데….” 그동안 이교는 소군에게 자신이 홍콩 사람이라고 속여왔다. 그런데 자신이 광둥성의 광저우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이교는 홍콩에서 대륙인이라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교 말대로 광저우는 홍콩과 가깝고 홍콩과 같은 말을 쓰기 때문에 ‘준(準)홍콩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자신이 대륙인이라는 사실을 숨긴 것이다.
홍콩인들은 1980년대에 돈을 벌기 위해 홍콩에 온 대륙인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차별했다. 홍콩 사람들은 이들 대륙인들을 재난으로 여겼다. 대개는 불법으로 들어온 이들을 언제라도 범죄를 저지를 잠재적 범죄자이자 홍콩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약탈자라고 여겼다. 더구나 그들은 공산주의 사회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홍콩 사람들에게는 ‘우리 홍콩인, 그들 대륙인’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가운데 공공연하게 대륙인을 멸시하고 차별했다. 당시 홍콩에서 제작된 많은 영화에서 대륙 출신들이 한결같이 범죄자로 등장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홍콩인의 이중 정체성
홍콩 사람들은 이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서구인과 만날 때 홍콩인은 중국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서구에 내보인다. 하지만 중국 대륙 사람들과 만나면 중국인이 아니라 서양인, 영국인이 된다. 대륙 사람들을 대할 때면 영국의 입장에서, 중국 대륙보다 훨씬 잘 살고 우월한 서구 선진국의 입장에서 사회주의 중국 대륙인을 바라보는 것이다.
주룽지구 남쪽 침사추이 해변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잡은 ‘스타의 거리’. 홍콩 배우와 감독 73명의 사인과 핸드프린팅이 길바닥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대륙인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으로 고통당하던 중국 근대사 비극이 한 세기가 지난 뒤에야 마무리됐음을 의미한다. 이 차원에서 보면 홍콩 반환은 중국인으로서 마땅히 즐겁고 경축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홍콩인들은 홍콩 반환에 대해 두려워하고 초조해했다. 그중 40만명은 아예 홍콩을 떠났다. 중국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계속 홍콩에 적용할지 확신할 수 없었고, 자신들을 중국인, 특히 중국 대륙 정부의 국민으로 중국인으로 편입시키기를 꺼린 때문이다. 중국인이라기보다도 홍콩인의 정체성을 앞세우기에, 자신들이 무시하고 내려다보는 중국 대륙 정부의 국민이 되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 영국의 식민 통치가 끝나고 조국의 품으로 귀환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던 것이다.
소군과 이교가 공동 투자한 사업이 완전히 실패한 그날 밤, 홍콩의 이방인인 두 대륙인은 소군의 방에서 함께 중국인의 설 음식인 만두를 먹는다. 그리고 섣달 그믐날 밤을 함께 보낸다. 이제 둘은 연인이 되고 허름한 호텔을 전전하며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얼마 뒤 둘은 헤어진다. 이교가 주식에 투자했다가 실패해 빈털터리가 되고 빚까지 떠안는다. 돈을 벌기 위해 마사지 걸이 된 이교는 자신이 홍콩에 온 것은 “너(소군) 때문이 아니라 돈을 벌어 고향 어머니에게 집을 사드리기 위해서”라며 소군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홍콩과 대륙의 관계 역전
그 뒤 이교는 마사지 단골손님이던 암흑가의 대부를 만나 동거하며 부를 거머쥔다. 부동산업으로 성공해 꿈을 이룬 것이다. 소군도 한 식당에서 요리사로 성공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 식당 주인 대신 가게를 꾸려 성공한다. 그리고 고향에 있던 여자친구를 데려온다. “여기는 홍콩이야. 뭐든지 할 수 있어”라던 이교의 말처럼 두 대륙인은 홍콩에서 마침내 성공한다. 소군의 약혼식 날 이교와 소군이 재회한다. 둘은 자신들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서로 감정을 더 이상 속이고 살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각자 연인에게 이 사실을 밝히기로 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밤, 이교와 같이 사는 암흑가의 보스가 경찰에 쫓겨 홍콩을 떠나게 되고, 이교도 그와 함께 미국으로 간다.
그렇게 헤어진 두 사람은 뉴욕에서 다시 만난다. 미국으로 도망와 이교와 같이 살고 있던 예전의 보스가 거리의 불량배들에게 허무하게 살해당하고, 이교는 불법체류자로 추방될 처지에 놓인다. 미국을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차를 타고 가던 중 이교의 눈앞에 자전거를 탄 소군이 지나간다. 그 순간 이교는 차에서 내려 소군의 자전거를 쫓아간다. 하지만 어느새 사라져버려 찾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결국 미국 영주권을 얻은 이교는 관광 가이드를 한다. 고향으로 가기 위해 티켓을 사고 여행사에서 나오다 차이나타운 전자제품 가게에 전시된 텔레비전에서 가수 덩리쥔이 죽었다는 뉴스를 본다. 그런데 그 옆에서 소군도 그 뉴스를 보고 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 서로를 확인하고는 웃는다. 그리고 ‘첨밀밀’ 노래가 흐른다. 결국 두 사람을 다시 만나도록 이어준 것은 덩리쥔이었다. 맨 처음에도 그랬고, 마지막도 그러하다. 둘은 운명처럼 다시 만났다.
지금 중국 대륙에는 소군과 이교처럼 홍콩을 기회의 땅이라고 여기면서 홍콩으로 가는 사람은 없다. 이제 중국 대륙이 홍콩이다. 옛날 홍콩인들이 차별하고 무시하던 중국 대륙이 아니다. 요즘 홍콩은 중국 대륙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중국 관광객들을 상대하기 위해 홍콩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보통화를 배운다. 홍콩과 대륙의 관계가 역전됐다고나 할까.
지난해 홍콩의 한 민영방송국에서 매일 저녁 뉴스 전에 중국 국가를 내보내 홍콩 사회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홍콩인은 자신들을 중국인이기 이전에 홍콩인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중국 대륙으로 반환된 후 중국은 홍콩인들에게서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지우고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심으려 한다.
영국이라는 제국주의가 홍콩 식민지 사람들에게 심어놓은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걷어내고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심겠다는 것이다. 그런 작업을 조용히, 천천히 갖가지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시장경제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중국 경제가 발전하고 정치적 민주화가 진척되어 갈수록 더 많은 홍콩인이 자발적으로 중국인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런 가운데 홍콩과 중국 대륙은 통합될 것이다.
그런데 식민시대와 냉전시대의 산물인 홍콩인이라는 정체성만을 고집하는 것도,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으로 완전히 복속된다는 의미에서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도 온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홍콩인이라는 정체성과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공존하는 길은 없을까. 동아시아 중화세계는 원래 세 개의 꼭지점으로 되어 있다. 중국 대륙, 홍콩, 타이완이 그것이다. 중국 대륙과 타이완에 각각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독재정권이 유지되고 있을 때 홍콩은 두 중국 밖에서 그 두 세계를 비추는 중화세계의 공공영역 노릇을 해왔다.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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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거의 경험을 생각하면 홍콩의 정체성은 새롭게 재편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홍콩인이라는 정체성과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교차하면서 그렇다고 전적으로 포개지지도 않는 가운데, 두 정체성이 때로는 화해하고 때로는 갈등하면서 서로를 되비추는 그런 정체성이 ‘일국양제’ 시대 홍콩 사람들에게 자리잡는 것은 불가능할까. 식민시대와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갈라졌던 민족 구성원들이 다시 만날 때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그 의미 있는 정체성 추구의 실험을 홍콩에서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분단시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