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문을 연 오모테산스 힐스라는 쇼핑몰에 고이즈미 총리가 방문하는 등 그렇잖아도 백화점 많기로 유명한 도쿄 쇼핑가를 뒤집어놓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도쿄에 갈 일이 생긴(갈 일을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나는 ‘디카’와 신용카드를 들고 달려갔다. 이런, 오모테산스 힐스엔 상종가 패션부티크 지미 추와 마릴린 먼로와 샤론 스톤의 보석상 해리 윈스톤 등 93개의 ‘숍’이 있지만, 효율적으로 쇼핑할 수 있는 백화점이 아니라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쇼핑’이라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공간처럼 보였다. 크리스찬디올, 프라다, 요지야마모토 등 인근의 유명 패션브랜드 플래그십(flagship) 부티크들 또한 물건을 효율적으로 팔기 위한 매장이라기보다 브랜드의 개성을 시위하는 세계적 건축가들의 ‘쇼’장이었다.
이에 비하면 미쓰코시와 마쓰자카야, 마쓰야 등 기존의 도쿄 유명 백화점은 확실히 빛이 바랬다. 쇼핑이 불특정 대중이 식품에서 완구까지 이것저것 다 모아놓은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으로부터 대중과 금을 긋고 싶어 하는 소수 소비자가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행위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쇼퍼홀릭들은 미술관 같은 부티크, 오가닉 브랜드 레스토랑, 보석상 비슷한 초콜릿 가게 브랜드 따위를 끊임없이 선택한다. 그 순간순간의 정체성이 덧없는 ‘유행’을 만들어내지만.
우리나라 백화점에서는 만만하게 보이던 상품이 도쿄의 전위적인 부티크 건축물 안에선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이런 브랜드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컨셉트를 보여주기보다 백화점 매장 인테리어와 스타 마케팅에 돈을 쓴다. 가격이 곧 개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의 백화점인 듯하다.
도쿄에서 ‘기념품’ 수준의 쇼핑에 만족한 나는 도쿄의 ‘지름신’(‘지르다’와 ‘신’이 합쳐져 물건을 구매할 때 ‘지름신이 강림하셨다’고 함)도 별것 아니라며 의기양양하게 우리나라의 백화점에 갔다가 도쿄에서 포기했던 블라우스를 사고 말았다. 긴자에서나 어울릴 것 같던 디자인이 우리나라 백화점에서 보니 무난하다는 결론이 났다. 역시 쇼핑은 상품과 나,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쇼핑의 시스템-가게의 인테리어, 판매원과의 소통, 동행한 친구의 말, 신용카드, 그리고 간단히 말하기 어려운 사회적 심리 등 다양한 요소들-으로 구성되는 사회적 행위다. 지름신에도 국적이 있다.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