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지렁이, 두더지, 미생물은 자연의 쟁기…그들이 있어 땅은 이불처럼 폭신폭신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입력2006-04-28 17:5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힘들게 땅을 갈지도 않았는데 곡식을 가득 거두다 보면 뭐라 말로 하기 어려운 느낌을 받는다. 한 일도 없이 얻어먹는 기분이랄까. 경외감, 미안함, 감사함, 기쁨, 고마움, 평화로움. 생명을 보살피는 기쁨은 소비할 때 얻는 만족과는 다르다. 내면에서 솟아나는 기쁨이라고 할까.
    지렁이, 두더지, 미생물은  자연의 쟁기…그들이  있어  땅은  이불처럼  폭신폭신
    당근꽃이 피어나는 모습. 붉은 뿌리에 익숙하다가 꽃을 처음으로 보니 황홀함 그 자체였다.

    “광화! 뭐해?”

    “아, 네. 김매요.”

    “곡식도 없는데 김을 매?”

    아랫마을 할아버지가 밭을 지나다가 한마디 하신다. 농촌에서는 보통 곡식을 심기 전에 밭을 전부 갈아엎는다. 평생을 농사로 이골이 난 어른들로서는 곡식도 없는 밭에 김을 매는 일이 별나 보일 수밖에.



    우리는 몇 년째 밭을 갈지 않고 농사짓는다. 기계로 어마어마한 일을 해내는 시대에, 우리는 우리만의 농사법을 찾아가고 있다.

    풀에 두 손, 두 발 다 들다

    기계를 써서 땅을 갈지 않는 농사법을 무경운(無耕耘) 농법이라고 한다. 내가 무경운 농법에 관해 처음 영감을 받은 것은 일본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저서를 읽고 나서다. ‘현대의 노자(老子)’로 불리는 후쿠오카의 농법은 일명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농법’으로, 구체적으로는 4무(無) 농법을 말한다. 즉 땅 갈지 않기, 비료 안 주기, 풀 안 뽑기, 농약 안 치기다. 그러고도 농사가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가 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농사를 시작하며 나도 자연농법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4월부터 풀이 여기저기 올라오다가 5월이 되니 앞이 까마득했다. 풀 천지에다가 곡식을 심을 엄두가 안 났다. 괭이질을 하며 버티다가 그나마 비가 오니 망연자실 두 손, 두 발을 들고 말았다. 농사나 자연에 대해 잘 모르고, 책만 믿고 덤빈 셈이다. 몸도 아직 농사지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뼈와 살이 다시 태어나야 했다.

    지금은 밭 1000평 모두, 그리고 논은 500평 가운데 150평을 무경운으로 짓는다. 논농사와 밭농사는 무경운에서도 많이 다르다. 여기서는 밭농사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왜 무경운을 하는가. 논밭을 간다는 것은 우선 물리적으로 힘이 드는 일이다. 예전에는 소로 땅을 갈았지만 이제는 대부분 기계로 한다. 기계를 쓰면 힘이 거의 들지 않는다. 대신에 그 기계를 마련하고 유지하는 데 또 다른 힘이 든다. 기계는 힘이 좋고 속도가 빠른 만큼 사람이 기계에 다칠 위험도 높다.

    땅을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한꺼번에 풀 잡기, 거름 뒤집어주기, 곡식을 쉽게 심을 수 있도록 땅을 부드럽게 갈아주기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한꺼번에 대량으로 하기’가 아닐까 싶다. 기계는 철저히 대량생산 체계를 따른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농사는 ‘골고루 그때그때 하기’다. 우리 식구가 심고 가꾸는 곡식은 종류가 50여 가지다. 3월에 감자와 홍화를 심고, 4월에 양배추, 양상추, 검은콩, 그러다가 5월에 대부분의 곡식을 심는다. 옥수수, 기장, 수수, 메주콩, 녹두, 참깨. 6월에는 양파, 마늘, 보리, 밀을 거두고 그 자리에 팥이나 콩나물콩을 심는다. 7월 한여름에 메밀을 심고 8월 휴가철에는 김장 무와 배추, 그리고 가을에 당근을 심는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다시 겨울을 나는 곡식으로 마늘, 밀, 보리, 양파를 심는다. 그러니까 한겨울, 땅이 얼었을 때를 빼면 늘 무언가를 심고 가꾸고 거두게 된다. 그러다 보니 기계를 쓰는 게 더 불편할 정도다. 그때그때 몸을 바람처럼 움직이는 게 더 편하다.

    풀 미워하지 않기

    지렁이, 두더지, 미생물은  자연의 쟁기…그들이  있어  땅은  이불처럼  폭신폭신
    농사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곧잘 하는 말이 ‘잡초는 없다’이다. 그렇다. 잡초는 없다고 보면 없다. 쓸모가 있다고 보면 또한 그렇다. 중요한 건 ‘때’라고 본다. 무조건 내버려둔다고 되는 게 아니다. 풀이 거름이 되고, 곡식이 풀과의 경쟁에서 이기게 하려면 풀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어느 계절에 무슨 풀이 올라오고, 무슨 풀이 땅을 차지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땅에서 올라오는 풀이 있는 반면 거름으로 사라지는 풀도 있다. 곡식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농사짓기 전에는 곡식도 다 풀이었다. 그 풀이 오랜 세월 농사로 가꿔지면서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곡식이 되었다. 때에 맞추어 씨앗을 심어야 함은 물론, 그 철에 왕성하게 땅을 차지하는 풀과 경쟁해 이길 수 있도록 풀을 미리 잡아줘야 한다.

    이를테면 밀밭에는 겨울을 나는 풀이 극히 적다. 밀이 빼곡히 땅을 차지하고 자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밭에 봄 감자를 심으려 하면 망초나 별꽃 같은 풀이 미리 자리잡고 있다. 이들을 헤치고 감자를 심는 것도 어렵지만 감자가 싹이 날 무렵, 이 풀은 제 세상 만난 듯 뿌리와 잎을 죽죽 뻗어, 밭을 거의 다 덮을 정도로 기세가 등등하다. 그러니 감자를 심기 전에 봄풀의 기세를 꺾어놓아야 한다. 이렇게 무경운 농사에서도 풀 잡기는 큰일 가운데 큰일이다.

    나는 두 가지 방법으로 풀을 잡는다. 하나는 제때 잡기, 그리고 또 하나는 피복하기다. 여기서 피복(被覆)이란 농사 부산물이나 솔가리 같은 마른풀로 흙을 덮어주는 것을 말한다. 사실 피복만 잘 하면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말한 것처럼 풀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볏짚이나 솔가리 같은 마른풀을 덮어주는 걸 ‘유기물 피복’이라고 한다. 유기물 피복이 두터우면 풀이 풀을 잡는다. 풀이 자라려면 햇볕을 받아야 하는데 마른 풀이 뒤덮고 있으니 햇볕을 받지 못해 풀이 덜 난다. 어쩌다 풀씨에 싹이 나더라도 땅속이 아닌 거죽에서 나기에 뽑기도 쉽다.

    유기물 피복으로 제초효과를 보자면 그 두께가 최소한 3cm는 돼야 한다. 그래야 햇볕을 막아준다. 땅에 유기물 피복을 해서 좋은 건, 단지 풀을 잡아서만은 아니다. 땅속에 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게 된다. 피복은 먹잇감이 되고 땅이 적당한 습기를 머금게 해 준다. 그 속에서 온갖 생물이 왕성하게 활동한다.

    하지만 피복을 3cm 정도로 덮는다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싱그러운 풀을 베다가 땅에 깔아보면 깔 때는 제법 두툼한 것 같아도 열흘만 지나면 물기가 말라버려 아주 얇아진다. 여기에다가 비에 삭고, 지렁이가 먹고, 미생물이 분해해 한 해가 지나면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때 놓치면 골병든다!

    피복 재료로는 마른풀이나 산의 부엽토 또는 볏짚이 좋은데, 이것 또한 덮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양이 필요하다. 넓은 밭을 한꺼번에 다 덮기란 쉽지 않다. 해마다 조금씩 늘려가는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도 피복이 두텁지 않은 곳의 풀 뽑기는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가을걷이를 끝낸 초겨울부터 풀을 뽑기 시작한다.

    햇살이 따스한 겨울날 땅거죽이 녹으면 풀 뽑기도 할 겸 나물을 하러 나선다. 이맘때 밭에 나는 풀로는 광대나물, 점나도나물, 망초가 있는데, 싱싱한 겨울 나물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겨울 풀을 다 먹을 수는 없다. 대부분 풀은 거름이 되도록 밭에 깔아둔다. 그러다 보면 풀을 미워할 수 없다. 우리 생명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니까.

    사실 겨울에 김을 맨다고 해봐야 얼마나 하겠나. 바람 없고 햇살 좋은 날, 산책 정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본격적으로 풀이 나기 시작하는 봄부터는 틈틈이 빈 밭에 김매기를 해둬야 한다. 이른바 ‘헛김매기’다. 5월 초에 심는 곡식이라면, 4월에 한 번, 심기 전 또 한 번, 이렇게 김매기를 두 번 한다. 고구마처럼 5월 말이나 6월에 심는 경우는 헛김매기를 세 번 정도 한다. 빈 밭에 김을 매는 거니까 때만 맞추면 아주 쉽다. 곡식이 없으니까 슬렁슬렁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우습게 보고 내버려두다가 때를 놓치면 두 손 들고 항복하게 된다. 자칫 골병들기 쉽다.

    지렁이, 두더지, 미생물은  자연의 쟁기…그들이  있어  땅은  이불처럼  폭신폭신
    여름이나 가을 김매기는 곡식에 따라, 풀에 따라 다르다. 곡식이 왕성하게 자라면 그 아래 작은 풀은 힘을 못 쓴다. 이렇게 한 해를 지나고 나면 풀 덕에 부쩍 철이 드는 느낌이다. 나서야 할 때, 지켜볼 때, 물러날 때를 안다는 것. 이거야말로 모든 자신감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그 다음 생각할 문제는 부드러운 흙과 거름이다. 살아 있는 흙은 부드럽다. 농사를 짓지 않고 수십년 묵혀둔 흙은 그 속을 파보면 그 자체로 부드럽다. 쟁기로 땅을 깊이 갈아봐야 20cm 남짓 들어간다. 그러나 자연이 스스로 하는 땅갈이는 이보다 깊게 이루어진다. 곡식이든 풀이든 그 뿌리를 다양한 깊이로 뻗어내린다. 뿌리를 타고 물과 공기가 스민다. 그리고 한해살이풀의 뿌리는 이듬해 거름으로 바뀐다.

    만만치 않은 후쿠오카 자연농법

    이런 과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산이지 싶다. 수백년 그냥 내버려둔 산 속 나무 아래 흙. 그곳에는 낙엽이 쌓이고 썩어간다. 켜켜이 높이 쌓이는 게 아니라 다져진다. 맨 아래는 흙과 경계가 없다. 흙과 만나는 곳은 미생물이 왕성하게 활동한다. 하얗고 노란 곰팡이가 핀다. 부엽토 두께는 기껏 몇cm 정도. 이 부엽토는 햇볕을 가려 흙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그 아래는 두더지나 쥐구멍이 나 있다. 이 흙은 거뭇거뭇한 빛을 띤다. 냄새도 퀴퀴하지 않고, 독특한 향기다.

    어려운 점은 밭을 이렇게 만들어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후쿠오카가 말하는 자연농법은 40년에 걸친 ‘노력과 관찰’ 끝에 얻은 결과물이다. 자연농법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만일 오래도록 비료와 농약을 치며 농사 짓던 땅이라면 땅속에 유기물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땅에 유기물 피복만으로 농사를 짓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땅이란 참 넓고, 깊다. 웬만큼 거름을 넣어도 만족할 만한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땅이란 하루아침에 살아나는 게 아니다. 그러니 예비단계로 기계 힘을 빌린다. 거친 유기물(산에 검불, 볏짚, 왕겨 따위)과 잘 삭은 거름(퇴비, 왕겨 훈탄, 발효 시킨 쌀겨와 깻묵 따위)을 넣고 흙과 잘 섞어준다. 이렇게 하다가 어느 정도 땅심이 살아나면 그때부터 무경운으로 들어간다.

    그 다음부터도 흙 위에 유기물을 계속 덮어준다. 풀도 뽑아 덮어준다. 사람이 먹는 곡식을 제외한 농사 부산물은 그대로 다시 깐다. 옥수수라면 옥수수 열매를 따고는 겉껍질까지 그대로 깔아둔다. 이렇게 하니 옥수수가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분 대부분이 땅에 남아 있게 된다. 그리고 형편이 닿는 대로 여러 가지 유기물을 덮어준다. 산에 검불, 밭 둘레 풀, 냇가에 갈대, 볏짚이나 왕겨도 깔아준다.

    해가 갈수록 밭은 놀랍게 달라진다. 지렁이와 두더지가 사는 건 물론이고, 온갖 작은 벌레들과 미생물이 제 세상 만난 듯 살아간다. 땅이 살아나니 발로 밟은 느낌이 폭신폭신한 이불처럼 탄력이 있다. 밭에 가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진다. 밭에서 자라는 풀도 차츰 바뀌는 것 같다. 우리 밭에는 바랭이가 적어지고 별꽃이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기본 준비가 되면 웬만한 곡식은 심기만 해도 잘 자란다. 그러고도 좀더 많은 거름을 필요로 하는 토마토나 배추 같은 작물엔 한 삽씩 거름을 넣기도 하고, 액비(液肥, 물거름)를 웃거름으로 주기도 한다.

    ‘땅속 과일’ 야콘을 한입 베어 물면…

    흙에 유기물이 놓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지렁이다. 참 신기하다. 어디서 오는지, 콩깍지 하나만 땅에 떨어져 있어도 지렁이가 생긴다. 지렁이도 여러 가지다. 굵기는 연필만하고, 길이는 한 자가량 되는 지렁이도 생긴다. 이놈들이 땅 위 아래를 들락날락하면 땅이 막 움직이는 것 같다. 지렁이 살갗이 햇볕에 반사라도 되면 무지개 빛을 띠면서 묘한 신비감을 준다.

    지렁이는 식성이 엄청나게 좋고 똥도 많이 싼다. 지렁이 똥은 거름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지렁이 학자들에 따르면 어떤 지렁이는 땅속을 2m 이상 파고 들어간다고 한다. 아무리 기계가 좋아진다 해도 이렇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지렁이는 자기 생명으로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한다. 그 덕에 흙은 부드럽고 기름지다. 지렁이가 다닌 구멍은 물과 공기를 잘 스미게 해준다. 사람 눈에는 작고 연약해 보이는 지렁이가 엄청난 일을 해주는 셈이다. 지렁이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힘은 신비롭기만 하다. 농사꾼 처지에서 이보다 더 고마운 동물이 있을까.

    지렁이, 두더지, 미생물은  자연의 쟁기…그들이  있어  땅은  이불처럼  폭신폭신
    밭에 지렁이가 늘어나면 먹이사슬에 따라 두더지가 생긴다. 두더지란 놈은 사람에게 유익하기도 하고, 피해도 준다. 두더지도 땅을 잘 간다. 두더지가 지나간 자리는 땅이 불끈불끈 솟아난다. 기계처럼 땅을 뒤집지 않고, 땅속에서만 가니 토양이 유실되지 않는다. 두더지가 지나가면 흙이 부드러워진다. 고구마나 감자를 호미 없이 손으로 캘 수 있다.

    야콘이라는 곡식은 캐기가 더 쉽다. 야콘은 고구마를 닮았지만 고구마보다 더 길쭉길쭉하고 수량도 많이 나온다. 맛은 배 맛에 가까워 ‘땅 속 과일’이라고 하며 최근에는 유기농산물로 인기가 높다. 야콘 잎이 마른 즈음, 줄기를 잡고 두 손으로 당기기만 해도 대부분 잘 뽑힌다. 땅이 딱딱하다면 팔뚝만한 야콘을 그냥 뽑아올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사실 무경운이란 사람 기준일 뿐 자연은 늘 움직이고 스스로 땅을 갈고 있는 셈이다. 지렁이와 두더지뿐 아니라 우리가 잘 모르는 아주 작은 벌레와 미생물이 모두 함께 살아가고 움직이는 자연의 ‘쟁기’다. 살아 있는 흙 한줌 속에 수억마리나 되는 생명이 산다고 하지 않는가.

    곡식이 어릴 때는 두더지 피해가 크다. 뿌리를 다치기 때문이다. 특히 무나 당근은 튼튼히 뿌리내리기 전에 두더지가 지나가면 거의 다 죽는다. 두더지를 몰아내려고 몇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조금 넉넉히 심는 수밖에 없다. 두더지 굴을 피해 곡식을 심는 지혜도 생겼다.

    그리고 두더지라고 무한정 번식할 수는 없다. 천적이 나타난다. 두더지 구멍에서 머리를 쳐든 뱀을 처음 본 날, 얼마나 반갑던지…. 뱀이 좋아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무경운 피복 농법이 다 좋은 건 아니다. 몇 가지 골칫거리도 있다. 그중 하나가 거세미라는 벌레인데, 밤나방과 애벌레로 거무스름한 빛깔에 연필 굵기만하고 길이는 2~3cm다. 낮에는 흙 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 곡식을 해친다. 5월 초, 본밭으로 곡식 모종을 옮겨 심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왕성하게 활동한다. 줄기를 똑똑 끊어 먹는다. 감자는 싹이 여러 개 나니 피해가 덜하지만 고추나 검은콩에는 치명적이다. 모종을 두 자 정도 널찍이 옮겨 심고 나면, 날마다 몇 포기씩 사라진다. 뿌리가 자리잡기 전, 밭 여기저기 이빨 빠진 것마냥 비어간다.

    “난 안 그랬소!”

    거세미를 잡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써 봤다. 쌀겨를 묻거나 설탕물을 그릇에 담아 유인도 해보았다. 이런 방식이 안 하는 거보다야 낫겠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넓은 밭에 다 하기도 어렵다. 넉넉히 심고, 예비 모종을 남겨두고, 날마다 밭을 돌면서 거세미를 잡는 수밖에 없다. 거세미를 어찌 잡나? 거세미가 먹은 자리는 구멍이 있다. 구멍을 따라 둘레를 조금만 파보면 거세미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다. “난 안 그랬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봄에 김매기할 때 풀뿌리를 따라 거세미가 땅 위로 올라오기도 한다.

    어떤 곡식에는 두터운 피복 자체가 힘겨운 때가 있다. 피복 때문에 풀이 잘 안 날 정도니 곡식이라고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무나 당근, 참깨 같은 곡식은 피복이 두터우면, 씨앗에서 싹이 터 올라올 때 햇살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줄기가 길게 웃자란다. 그러다가 비바람이 몰아치면 휘어지거나 부러지기도 한다. 이런 곡식은 씨앗을 넣을 때 피복을 밀쳐, 싹이 자라날 적당한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싹이 올라와 자리를 잡을 때는 북을 줘야 한다. 씨앗을 심기 위해 밀쳤던 구멍을 흙으로 메우는 것이다.

    무경운의 또 다른 골칫거리는 여러해살이풀과 나무뿌리다. 쇠뜨기는 습한 땅에 잘 자란다. 땅속으로 줄기가 뻗어가며 여기 불쑥 저기 불쑥 올라온다. 뽑아도 다 안 뽑히고, 줄기 중간이 끊기고 만다. 그때그때 잡아주어야 한다.

    더 큰 골칫거리는 띠. 아주 깊숙이 뿌리내리면서 땅속으로 번진다. 워낙 깊이 뿌리내리고 힘이 좋아, 곡식은 경쟁이 안 된다. 괭이로 밭 테두리를 잘 단속해줘야 한다. 띠는 두엄더미 위로도 차고 오를 만큼 생명력이 강하다.

    지렁이, 두더지, 미생물은  자연의 쟁기…그들이  있어  땅은  이불처럼  폭신폭신
    또 하나 어려움은 나무뿌리와 나무다. 밭 둘레에 자라는 나무는 자랄수록 그 뿌리가 밭으로 야금야금 들어온다. 밭 둘레 칡덩굴도 호시탐탐 밭을 노린다. 새들이 싼 오디 똥에서 뽕나무가 싹이 터 자라기도 한다. 겨울에 밭 둘레 나뭇가지를 잘라주고, 밭 경계 부위는 괭이로 선을 그어주고 관리를 잘해야 한다. 밭은 언제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려 한다.

    한번은 장마 때 밭둑이 무너진 적이 있다. 비가 많이 온 탓도 있지만 이보다 밭고랑을 방치(?)한 탓이 더 컸다. 무경운을 하면 4~5년에 한 번 밭고랑을 손봐주어야 한다. 감자나 고구마를 캐고 나면 아무래도 고랑이 조금씩 망가진다. 곡식이 자라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으나 장마 때 물 빠짐이 제대로 안 되니 취약한 밭둑자리가 무너진 것이다. 무너진 밭둑을 다시 쌓으며 ‘방임과 자연은 다르다’는 공부를 단단히 해야 했다.

    ‘자연’과 ‘방임’은 다르다

    이러한 몇 가지 어려움만 제쳐둔다면 무경운은 매력적이다. 땅을 갈지 않고 농사를 지으니까 선택의 여지가 많다. 풀을 뽑을 때, 다 뽑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하다 싶은 풀은 살려둔다. 그 가운데 하나가 냉이와 달래다. 봄마다 밭을 갈아엎으면 냉이가 자라지 못한다.

    무경운을 하게 되면서 냉이가 보이면 뽑지 않고 살려두었다. 냉이 한 포기가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씨앗이 어마어마하다. 한 포기만 해도 그 일대는 냉이 천지가 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이 밭 저 밭에 냉이가 지천이다. 아무리 맛있는 냉이도 날마다 먹을 수는 없는 일. 이제 냉이도 ‘잡초’가 되어 뽑아야 한다. 필요한 양만 두고 뽑는다.

    냉이 다음으로 우리 밭에 저절로 자라는 풀이 달래다.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달래장을 만들면 이것만으로도 한 끼 반찬이 될 정도로 맛있다. 김이라도 있으면 금상첨화다. 달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봄이면 푸른 줄기가 위로 솟아나 사람의 손길을 끈다.

    달래는 캐는 맛도 좋다. 달래는 옹기종기 모여 자란다. 그 가운데 가장 굵다 싶은 놈을 골라 캔다. 기다란 줄기를 따라 땅속으로 호미를 넣어 캐보면 줄기 끝에 동그란 모양의 흰 비늘줄기가 있다. 새알 같기도 해서 앙증맞다. 그런데 달래 곁에는 새끼 달래가 올망졸망 매달려 있다. 새끼들이 번식하는 거다. 그러니까 달래를 캐지 않고 두면 그 둘레로 번지며 번식을 한다. 달래를 캘 때 굵은 놈만 캐고 잔 건 다시 땅에 잘 묻어둔다.

    봄이면 마늘과 양파가 쑥쑥 자라기 시작한다. 하지만 뽑아 먹기에는 이르다. 한창 자라는 중이라 그 뿌리는 아직 먹을 게 없다. 이 때문에 달래가 더욱 고맙다. 봄 입맛을 잃기 쉬울 때 달래가 그 향기를 드러내는 게 아닌가 싶다.

    풀을 선택해 뽑듯이 곡식 또한 뜻대로 심고 가꿀 수 있다. 밭 하나에 3월부터 10월까지 심고 싶은 곡식을 이랑 여기저기 심을 수 있다. 섞어짓기나 돌려짓기가 쉽다. 가을에 시금치, 상추, 월동초를 밭 여기저기 뿌려두면 이른 봄부터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감자도 지난해 덜 캔 것 가운데 얼지 않은 녀석들이 올라온다.

    당근꽃을 아십니까

    한번은 가을 당근을 다 캐지 않고 조금 남겨둔 적이 있다. 그런데 이듬해 봄 얼어 죽지 않은 당근이 몇 뿌리 있었다. 6월 중순 무렵, 꽃대가 위로 죽 올라온다. 사람 가슴 가까이까지 솟더니 가지 끝마다 꽃을 피우는 것이다. 뿌리에 저장해둔 모든 에너지를 한꺼번에 끌어올리는 것 같았다. 당근은 뿌리를 먹기에 농사를 지으면서도 꽃을 본 적이 없다. 씨앗은 해마다 종묘상회에서 사다 심었다.

    그랬기에 당근꽃은 아주 반갑고 신비로웠다. 당근 뿌리에서 떠오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다. 꽃이 오밀조밀 복스럽다. 몽글몽글 구름 같다. 빛깔은 여린 풀빛이 조금 섞인 흰빛이다. 향기도 은은하다. 집 둘레 텃밭에 가꾼다면 꽃을 보는 것만 해도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당근꽃에는 먹을 게 많은지 온갖 벌레가 다 꼬인다. 꿀벌, 배추흰나비, 노린재, 풍뎅이, 등에, 아주 작은 개미도 보인다. 무경운을 하면서 맛본 짜릿한 광경이었다.

    이를 한걸음 물러나서 보면 남성적인 이미지가 연상된다. 당근 뿌리는 남자고추, 꽃대가 위로 솟는 건 발기된 상태. 복스럽게 핀 흰 꽃은 정액. 그렇다면 흙은 우리 전체 몸뚱이가 된다.

    신비한 밭을 보면 우리네 삶도 신비로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경운 농사의 생산성을 좀 다르게 보고 싶다. 돈보다 몸의 철학이라고 할까. 우리 몸이 곧 자연임을 자각한다. 모든 생명은 자연에서 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 몸 또한 자연에 의지해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아등바등 해보아도 자연을 벗어날 수는 없다.

    무경운 농법은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가르쳐준다. 그러려면 먼저 사람이 자연을 알아야 한다. 땅을 갈지 않으니 계절을 잘 느끼게 된다. 철 따라 자라는 풀과 곡식에 점차 익숙해진다. 그리고 땅은 한꺼번에 바뀌는 게 아니라 꾸준히 바뀌어간다. 풀씨가 꾸준히 발아하고 자라듯 농사도 그렇다. 계절에 따라 꾸준히 심고 거두는 것이다. 한꺼번에 심고 거두는 게 아니라 여러 번에 나누어 심고, 나누어 거둔다.

    ‘조화’를 달리 보자면 조각난 삶이라기보다 온전한 삶일 것이다. 먹을거리 따로, 문화 따로, 교육 따로, 건강 따로가 아니다. 먹는 것 하나에도 모든 게 들어 있지 않나.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다 예술일 수 있고, 깨달음이 될 수도 있다. 건강도 사실 먹을거리를 어찌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겠나.

    신비로운 흙에서 태어난 몸

    우리는 돈으로 뭔가를 소비할 때 만족을 얻는다. 하지만 소비가 주는 만족은 잠시뿐이다. 같은 소비로는 같은 만족을 지속해서 얻기가 어렵다. 더 자극적인 소비를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생명을 보살피는 기쁨은 소비할 때 얻는 만족과는 다른 것 같다. 내면에서 솟아나는 기쁨이기에 그 스스로 더 깊이 나아가고자 한다.

    지렁이, 두더지, 미생물은  자연의 쟁기…그들이  있어  땅은  이불처럼  폭신폭신
    金光和
    ● 1957년 경북 상주 출생
    ●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 1996년 서울을 떠나 1998년부터 전북 무주에서 자급자족 농사
    ● 정농회 회원
    ● 저서 : ‘아이들은 자연이다’


    땅을 힘들게 갈지도 않았는데 곡식을 가득히 거두다 보면 뭐라 말로 하기 어려운 느낌을 받는다. 하는 일도 없는데 얻어먹는 기분이랄까. 경외감, 미안함, 감사함, 기쁨, 고마움, 평화로움.

    요즘은 참살이 바람을 타고 ‘먹는 게 바로 우리 몸이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참 좋은 말이다. 그렇다면 먹을거리를 길러내는 땅도 바로 우리 몸이 아닐까. 흙이 달라지면 곡식도 그 맛과 생명력이 달라지는 것 같다. 흙이 건강하고, 지구가 건강하다면 우리 몸도 건강할 것이다. 또한 흙이 신비롭다면 우리 몸도 신비로움으로 거듭나지 않겠나.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