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대만 독일산이고, 내외장재는 순수 국산인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3월29일로 3000회 공연을 돌파했다. 동명의 독일 원작을 우리 실정에 맞게 번안한 이 작품은 하룻밤 사랑으로 잉태한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 나선 연변 아가씨가 청량리행 지하철을 타면서 시작된다. 포장마차 단속반, 윤락 여성, 미군 아버지를 둔 혼혈인, 강남 사모님, 지하철 잡상인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해 1990년대 말 서울의 자화상을 그린다. 설경구, 황정민, 조승우, 방은진 같은 걸출한 스타들이 ‘지하철 1호선’을 거쳐갔다. 총 관람객 수 60여 만명. 원작자 폴커 루트비히는 1000회 돌파 당시 내한해 ‘해외에서 가장 오래 공연 중인 독일 작품’을 위해 ‘로열티 면제’라는 큰 선물을 안긴 바 있다.
12년을 한결같이 ‘지하철 1호선’의 운전대를 잡은 연출가 김민기(金敏基·55). 주위에선 벌써부터 4000회, 5000회를 얘기하고 한국 공연 문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대기록이라고 치켜세우지만 그는 담담하기만 하다.
“관객이 드는 한 공연은 계속하겠지만, 이미 누린 것만도 과분합니다. 더 욕심내면 안 되죠.”
늘 그렇다. 그는 묵묵히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다. 그것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의 몫이 아니다. 양희은에게 ‘아침이슬’을 만들어줄 때도 그랬고, 독집 음반을 낼 때도 그랬다.
조용한 기관사가 모는 지하철 1호선은 요즘도 북적댄다. 1970년대 민중이 ‘아침이슬’을 해방구로 여겼듯 관객은 건강하고 낙천적인 서민의 이야기에서 웃음과 희망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