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 연속 90% 이상의 취업률 기록
- 유니폼 입은 교직원, 통유리로 된 대학본부
- 셔틀버스 타고 출근해 휴지 줍는 총장
- “진리와 교양도 좋지만 토익 700점은 받아야 입사원서 내잖아요”
- “이 학생의 인성(人性)은 총장이 책임집니다”
- 육신의 빛 찾아주며 느낀 보람, 마음의 빛 찾아주는 재미로 이어져
건양대학교를 처음 만난 것도 만원 지하철 안에서다. 까치발을 한 채로 중심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중 출입문에 붙어 있는 학교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대학 광고판보다 크기가 작았다. ‘전국 대학 취업률 1위.’ 서울도 수도권도 아닌 충남 논산에 있다는 이 낯선 학교의 자랑이 ‘겁 없는 과장광고’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지난해 말 교육부가 발표한 전국 대학 취업률에 따르면 건양대의 취업률은 90.4%로 B그룹(졸업생 1000명 이상 2000명 미만) 대학 가운데 1위를 차지한 것이 분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4년 연속 90%를 웃도는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취업률은 두루뭉술하게 추정한 수치가 아니다. 졸업생 중 ‘4대 보험 가입 직장에 최소 2개월 이상 다니고 있는 경우’만 따진 것이다. 대졸자 취업난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요즘 같은 때에 건양대 졸업생들은 어떻게 그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는 것일까.
초록색 유니폼 입은 교직원
용산역에서 고속철(KTX)로 1시간30분. 논산역 앞에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10여 분 한적한 도로를 달려 건양대 앞에 닿았다. 내리고 보니 정문까지는 한 정거장을 더 가야 한다. 학교 담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살핀다. 원룸이며 식당, 주점, 분식점, 문구점…. 꼭 하나씩 옹기종기 모여 있다. 번화하진 않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얼굴 가득 생기가 넘치는 학생들 사이로 어색하게 정문을 통과한다. 오랜 세월 깎고 다듬은 역사가 오랜 캠퍼스와는 다르지만 교정이 깨끗하고 아늑하다.
그런데 저 많은 건물 어디에 총장실이 있을까. 학교를 둘러보는데 ‘2005년 교육부 발표 전국대학 취업률 1위’ 현수막이 건물 한쪽 벽에 걸려 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눈에 확 띄는 초록색 재킷을 입은 남자가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눈에 들어온다. 이 학교 교직원들은 유니폼을 입는다더니…. 그중 한 사람에게 물어 총장실이 있는 건물을 찾았다. 1층에 들어서니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벽으로 된 대학본부 사무실이 나타난다.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한눈에 들어온다.
건양대는 1962년 서울 영등포에 김안과를 개원해 안과전문종합병원으로 키운 김희수(金熺洙·78) 박사가 1991년 고향인 충남 논산에 설립한 학교다. 2001년 총장에 취임해 직접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김희수 총장은 김안과의 성공 비결이 환자 중심의 서비스였듯 대학도 학생 중심의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직원들의 유니폼, 통유리로 된 사무실 모두 ‘학생 중심 대학’을 표방하는 그의 아이디어다.
김 총장은 고령임에도 활기가 넘쳤다. 오후 2시를 좀 넘긴 시각, 그의 허리춤에 있는 만보계 숫자는 이미 7000을 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교정을 돌고 강의실을 순회하며 학생들에게 불편한 점이 없는지 살피느라 1만보는 족히 걸으니 운동이 절로 된다고 한다. 점퍼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흰 모자를 쓴 채 교정을 돌며 휴지를 줍는 총장에게 학생들도 마음의 벽을 허물고 다가선다. 김 총장은 8년 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대전으로 내려왔다. 대전에서 논산까지는 학생들이 이용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다닌다.
“여우도 죽을 땐 머리를 고향 쪽으로 둔다는데, 고향 가까이 와서 사는 게 좋죠. 조용하고, 서울처럼 복잡하지도 않고요. 영등포에서 여의도만 가려고 해도 30분이 걸리곤 했는데, 대전에서 학교까지 30분이면 돼요. 셔틀버스를 타면 학생들이 농담도 하고, 불편한 점도 격의 없이 얘기해주니까 좋지요. 얼마 전엔 학교 식당 식수에서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직원들도 파악하지 못했던 건데, 학생들이 얘기해줘서 바로 검사에 들어갔어요.”
“우리 대학이 살 길은 취업뿐”
안과의사로 명성을 날리던 그가 교육 사업에 뛰어든 건 1979년 고향에 건양 중·고등학교를 설립하면서부터다. 병원을 운영해 일군 부를 혼자 끌어안지 않고 고향에 환원하고 있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이야기할 만도 한데,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그의 말엔 꾸밈이 없었다.
“서울서 돈 좀 벌었다고 하니까 고향 분들이 찾아와서 고향에 있는 한 사립 중·고등학교가 운영이 잘 안 되니 맡아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육영사업이 뭔지도 몰랐어요. 도와달라고 하니까 해야 되나 보다 하고 시작했죠. 막상 해보니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더라고요. 그러다 논산에 대학이 필요하다고 해서 대학을 만든 거고요.”
그는 대학을 세워놓고, 학생들이 둥글둥글하게, 사람 됨됨이가 좋은 사회인으로 자라기만을 바랐다. 전국 최고의 취업률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지방대학의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다. 시쳇말로 인성교육이 학생들을 밥 먹여주지 않았다.
“2001년 무렵부터 사립대, 특히 지방 사립대들이 위기감을 크게 느꼈어요. 그래서 직접 학교 운영을 맡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인성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지방엔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우리 대학이 살길은 취업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입학=취업’, 입학하면 졸업은 당연하고, 취업할 수 있는 대학을 만들어보자고 했죠. 입학을 시켰으면 취업까지 학교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거죠. 저 한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취업률 1위가 되겠습니까. 교수님들과 직원들, 전 구성원이 호응해줬으니 가능했던 거죠.”
건양대 신입생들은 입학 후 진로적성검사를 받는다. 그 결과는 당사자뿐 아니라 각 학과에 통보된다. 교수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학생들과 면담하고, 진로 지도를 한다. 건양대 성경모 홍보팀장은 “1학년 때부터 취업을 향한 준비자세를 갖추도록 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건양대는 2003년 취업교육 전용 건물인 ‘취업매직센터’를 열었다. 취업·진로 상담실, 모의 면접실, 어학실습실, 멀티미디어강의실 등을 갖추고 1년 내내 취업 실기 교육과 특강을 진행한다. 2006학년도 1학기에 개설된 매직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비즈니스 영어’ ‘취업영어문법’ ‘한자능력검정시험 3급 대비반’ ‘공무원시험대비 국어강좌’ ‘창의적 공학 설계를 위한 사고 방법 및 실습’ ‘언어치료교육전문가과정’ ‘실내건축기사 자격증 대비 실기연습’ ‘회계원리연습’ ‘특수아동미술치료’ ‘관광종사원 자격시험 과정’ ‘풍선공예 지도자 2급 과정’ 등 총 27개 과정이다.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사설 기관에서 과외수업을 받고 있는 강좌들이 대부분이다. 각 과정마다 담당교수가 정해져 있고, 대체로 방과 후에 수업이 진행된다.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총장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이철성 교수(교양학부)는 “기업들이 인재를 채용한 뒤에 재교육비로 상당한 비용을 지출한다고 하는데, 우리 대학 학생들은 수준별, 단계별로 진행되는 취업교육을 받고 졸업하기 때문에 실전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졌다”고 말한다.
건양대는 동아리 활동도 취업준비의 연장선상에 있다. 공연미디어학부엔 드라마, 영화이벤트, 문예창작, 광고 분야의 4개 연구동아리가 있고, 세무학과엔 세무사·공인회계사반이, 경찰행정학과에는 경찰공무원반이 활동 중이다. 총 140여 개 동아리 활성화를 위해 대학에서 매년 5000여 만원을 지원한다.
취업할 때 가장 기본적인 요건으로 간주되는 토익과 컴퓨터 관련 자격시험 대비는 지난해부터 아예 1, 2학년 정규 과목으로 만들었다. 사회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교육도 좋지만 토익을 정규 교과목으로 만들었다는 대목에선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김 총장은 “대학이 취업 정거장은 아니지 않느냐”는 화살도 각오하고 있었다.
“대학이 진리를 추구하고, 학생들에게 높은 이상을 심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저로서도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거죠. 학생들에게 가장 큰 고민이 뭐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다 취업이라고 해요. 이런 상황에선 일단 취업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어야 더 나은 교육도 가능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학생들이 교양을 쌓고, 다방면에 취미를 가지면 더없이 좋겠지만 당장 입사 지원서라도 내보려면 토익 700점은 받아야 하는 게 현실 아닙니까. 지방 학생들은 취업을 준비하는 여건이 서울에 비해 열악해요. 그러니 학교가 나서서 준비를 시키는 거죠. 토익 400점대이던 학생이 수업을 들은 뒤에 500점도 받아요. 그 학생은 혼자서 더 노력해 600점, 700점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최소한 입사 지원서는 낼 수 있잖아요. 그렇게 자신감이 생기면 학생들 스스로 교양과 진리 탐구에도 관심을 갖게 될 거라고 믿어요.”
총장실에 들어오기 전 이철성 교수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김희수 총장이 점퍼 차림으로 캠퍼스를 돌아볼 때면 학생들이 격의 없이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김 총장은 학생들과 가까이하는 것이 최고의 인성교육이라고 말한다.
다이어트, 금연하면 장학금
그런 점에서 건양대는 학생들에게 취업에 필요한 양식을 일일이 다 떠먹여주지는 않는다. 대신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학습하도록 당근을 주고 있다. 그중 하나가 포인트 장학제도다. 토익을 비롯한 외국어 시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거두거나 자격증을 따면 포인트를 주는데, 포인트 1점당 1만원의 가치를 지닌다. 예를 들어 토익 800점 이상, HSK 8급 이상, JPT 1급 이상을 획득하면 50포인트, IT자격증을 따면 15포인트가 적립된다. 취업 매직프로그램을 듣고, 사회 봉사활동을 해도 포인트가 적립된다. 누적 포인트가 20점을 넘으면 장학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건양대에선 다이어트나 금연에 성공해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흔히 비만 1단계라고 얘기하는 신체질량지수(BMI) 25 이상인 학생이 6개월 동안 체중의 10%를 감량하고, 6개월간 유지하면 100만원을 지급한다. 흡연학생이 1년간 금연에 성공하면 5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김 총장은 “너무 뚱뚱하면 기업체 면접 때 자기 관리를 못한 것으로 평가돼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대부분의 사무실에서 금연을 실시하고 있어 비만을 없애고 금연한다면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취업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김 총장은 “학생들이 다이어트와 금연을 통해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하고, 인내심을 함양하는 것이 더 큰 소득”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장학제도를 유지하려면 학교 재정이 든든해야 할 터. 서울 소재 대학들은 아직까지 등록금 인상을 놓고 학생과 대학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우리 대학은 학교 전체 예산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50% 정도예요. 나머지는 김안과병원과 대전에 있는 건양대부속병원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재단의 기여가 큰 편이죠. 인건비 등 일반경비 인상 같은 최소 부분만 등록금에 반영하고, 그것조차 학생들과 협의하기 때문에 분쟁이 없어요.”
연간 수백억원의 기부금이 답지하는 대학들도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에 김 총장은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듯 웃음을 지었다.
“우리 대학에 들어온 기부금은 불과 2억∼3억원이에요. 그것도 정말 어렵게 생활하는 분들이 아끼고 모아서 기부한 거죠. 서울에 있는 대학들처럼 기업 등에서 수백억원의 기부금을 받는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기부금마저 서울로 집중되는 현상을 확인하고 보니 ‘지방대 육성’은 정부의 외침만으로는 요원해 보인다. 건물을 신축해주거나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의 형태로 대학과 교류를 활성화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지방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겠다고 말을 건네자 김 총장은 “그러면 좋겠죠”라고 답했지만 욕심은 없어 보였다. 그러면서 인터뷰 답변을 정리해놓은 종이를 들춰보인다.
“우리는 예산을 정말 아껴 써요. 모두 이면지를 쓰죠. 절약하고 또 절약합니다.”
기자가 건양대에서 받아온 자료도 모두 이면지를 재활용한 것이다.
발로 뛰는 총장과 교수들
건양대 졸업생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는 IT와 보건·의료 계통이다. 2000년대 들어서 ‘IT중심대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IT교육에 집중한 결과 IT분야로 진출한 졸업생이 많고, 최근엔 의학과와 간호학과 졸업생들이 국가고시에 100%에 합격하는 등 의료계에서의 활약도 두드러진다는 게 건양대측의 설명이다. 세무사 시험, 공무원 시험 합격자도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취업의 질’을 높이는 건 여전히 건양대의 과제로 남아 있다. 건양대 졸업자 대부분이 중소기업으로 진출하고, 대기업에 들어가는 경우는 아직까지 드문 상황. ‘취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교수들이 발로 뛰고 있다. 총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직접 충남 논산 출신의 경영인들, 사업체를 운영하는 지인들을 만나 졸업예정자들의 취업을 요청한다. 졸업식을 앞둔 12월, 1, 2월엔 특히 분주해진다.
총장도 열심이지만 교수들의 업무가 과중할 듯하다. 연구하랴, 강의하랴, 학생 진로 지도에 취업까지 책임지려면.
“제자 사랑, 학교 사랑이 대단하신 분들이죠. 이병철씨(삼성 창업자)가 관상을 보고 직원을 채용했다고 하는데, 저도 얼굴이 환하게 핀 사람을 뽑습니다. 또 이야기를 나눠보면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어요. 우리 학교에 오면 학생들을 가르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담임 역할도 하고, 사감 역할도 해야 하며 취업을 위해 발로 뛰기도 해야 한다고 얘기하죠. 그런 마음가짐이 되어 있다는 확인을 받고서 채용합니다. 이왕 한솥밥을 먹으려면 마음이 맞아야죠. 어느 조직이든 인화가 안 되면 성공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전 교직원을 뽑을 때마다 직접 면접을 합니다.”
김 총장의 인화는 학교 밖까지 이어진다. 그는 총장 취임 후 학교 인근의 원룸임대업자, 하숙집이나 상점 주인들과 적극적으로 만났다.
“맹모(孟母)는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고, ‘아이는 마을이 키운다’는 미국 속담도 있어요. 학생은 학교에서만 교육하는 게 아니라 학교 앞 주민들에게도 교육의 책임이 있죠. 그래서 하숙집 주인들을 만나 학생들을 친자식처럼 보살피고, 잘못하면 따끔하게 야단쳐달라고 부탁했어요. 상인들에겐 밤늦게까지 학생들에게 술을 팔지 말 것을 당부했고요. ‘밤늦게까지 술을 먹으면 다음날 수업받는 데 지장이 있는데, 당신 자식이라면 그렇게 하겠느냐’고 얘기했더니 다들 공감하셨어요. 요즘은 하숙집에서 학생들 생일에 떡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는 걸로 알고 있어요. 업소들도 학생들에게 술 한병 더 팔려고 하기보다 아들, 딸처럼 챙겨주죠.”
건양대의 경쟁력은 인사성
학교 인근 업소 주인들까지 알아보는 총장을 학생들이 외면할 리 없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깐 캠퍼스를 거니는데,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가벼운 목례가 아니다.
“총장님, 안녕하세요.”
김 총장은 학생들의 인사성에서 건양대의 경쟁력을 발견한다.
“우리 대학 학생들은 인사를 참 잘해요. 실력이 다소 모자란 것은 배워서 보충할 수 있지만 인성이 잘못되면 고치기 어렵지요. 그래서 처음 학교를 설립했을 때도 ‘어디서나 둥글둥글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육성하고 싶었던 겁니다. 교과목을 취업 중심으로 재편하면서도 인성교육을 1학년 필수 학점으로 정해놓은 것도 같은 이유지요. 기업체 사람들을 만나서도 ‘우리 학생들이 실력은 조금 모자랄지 몰라도 사람 됨됨이 하나는 내가 보증한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건양대는 매년 졸업생 40~50명에게 총장인성인증서를 수여한다. 1학년 두 학기 동안 인성교육을 잘 받고, 4년간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었던 학생들을 각 과에서 추천받아 총장이 인성을 보증한다는 확인서를 주는 것이다. 총장과 얼굴 한번 마주하지 못하고 졸업하는 대학생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학생의 인성을 총장이 인증한다는 것은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대전지방노동청 김동회 청장이 총장실을 찾았다. 건양대는 대전지방노동청과 구인정보를 공유한다. 김 청장이 건양대 재학생들을 상대로 취업 특강을 하기도 했다. 1983년 영등포 김안과에서 안과 진료를 받으며 김 총장과 처음 인연을 맺은 김 청장은 지난해 대학 총장으로 변신한 그를 다시 만나고는 ‘의사, 교육자, CEO’로서 1인3역을 훌륭히 해내고 있는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김 총장은 어떻게든 아이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책임지려는 분이에요. 대전 충남지역 조찬모임, 기관장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시더군요. 총장이 부지런히 움직임으로써 건양대를 알리고,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고 하는 거죠. 대덕테크노밸리 등에 있는 작지만 단단한 기업들에 구인개척을 해서 학생들을 연결해주기도 하시죠. 요즘 청년 실업률이 높은 건 구직자들이 대학 나온 것만으로 눈이 턱없이 높아진 이유도 있어요. 그런 점에서 학생들이 눈높이를 적당히 맞춰 자기 발전의 기회를 찾도록 돕는 건 바람직한 일이죠.”
육신의 빛 찾아주며 보람 느껴
김 청장은 또 “김 총장에겐 어디서든 수첩을 꺼내서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뭐든 배우고 느끼겠다는 자세가 아니겠냐”며 “만날 때마다 새록새록 인간적인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충남 논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공주에서 유학했다. 공주고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의대를 졸업한 뒤 휴전 직후 한미재단 유학생으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다. LA에서 사흘 꼬박 기차를 타고 도착한 뉴욕은 엄청나게 큰 도시,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그때 잠시 ‘우리나라도 이렇게 잘살 수 있는 방법은 교육뿐이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뉴욕에서 인턴생활을 마친 뒤 시카고의 안과대학원에 진학해 ‘육신의 빛’을 찾아주는 일에 몰두하느라 나라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귀국한 뒤에는 더 정신없이 살았다.
대전지방노동청 김동회 청장과 학생들 취업문제를 얘기하고 있는 김희수 총장.
그 시절엔 라식수술이 없었다.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공원들이 한푼 두푼 모아둔 돈으로 앞 못 보는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모시고 올 때면 큰 보람을 느끼며 수술에 임했다. 사시(斜視)가 심해서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리고 다니던 직공이 수술 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환한 얼굴로 나갈 때면 절로 신이 났다.
학창시절 오직 의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학업에 열중했던 그는 안과의사가 된 후에는 환자들에게 육신의 빛을 되찾아준다는 사명감에서 진료만을 큰 보람으로 여겼다고 자부한다. 그랬기에 몇 개월 전에 벌어진 건양대병원의 의료사고는 김 총장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지난 1월 건양대병원에서는 갑상선환자의 위를 절제하고, 위암환자의 갑상선을 제거하는 의료사고가 발생했다.
“50년 의료인생에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일이 벌어져 괴롭고 부끄러워 며칠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환자와 가족 분들께 너무나 죄송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의료과실에 대한 정확한 잘못을 규명하는 건 검찰에 맡기고, 도의적인 책임을 물어 병원장을 경질했어요.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추가 문책도 할 생각입니다.”
김 총장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함으로써 사태가 일단락됐고, 다행히 환자들도 잘 회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건양대병원측은 이번 사고를 병원의 모든 시스템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았다. 재발 방지를 위해 수술 환자 확인점검 시스템을 확충하고, 모든 교직원에 대한 재교육도 실시했다. 개원 6주년을 맞는 5월3일부터는 무사고 무결점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것 없다”
김 총장은 “안과병원만 해온 사람이 대학을 운영하려면 어렵지 않으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럴 때 그럴듯하게 내놓을 교육철학이 그에겐 없다. 그는 재미가 있어 학교를 운영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꽁초를 줍는 일도, 화장실을 돌며 학생들에게 불편한 점은 없는지 살피는 일도,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일도 모두 “재미가 있어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과거 육신의 빛을 찾아주며 맛보던 희열을 요즘도 느낀다. 서울 사람들이 실감하지 못하는 지방의 열악한 교육 현실에 놓인 학생들에게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은 없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교육사업이야 말로 마음의 빛, 인생의 빛을 찾아주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