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고건 전 국무총리

변화구 다양한 소신 없는 순응주의가

  • 김종석 인천의료원 신경정신과장 mdjskim@naver.com

    입력2006-05-16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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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선거 때마다 어떤 기준으로 뽑아야 할지 망설이는가. 때로는 자신이 선택한 대통령이 기대에 못미처 후회한 적도 있는가. 선거 때 보여준 태도와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에 보여준 행보엔 차이가 많다. 이것이 대통령 잘못일까, 유권자 잘못일까. 둘 다일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만큼은 후회 없이 대통령을 뽑아보자는 취지로 대권주자 심리분석 시리즈를 마련했다. 방대한 자료와 기사 검색, 그리고 필자의 독특한 방법론이 동원된다. 정작 대권주자 자신도 모르는 내면 탐구, 그리고 이를 통한 리더십 예측.
    고건 전 국무총리
    고건(高建·68) 전 총리는 ‘내향적 감정형’으로 보인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은 내향적 감정형을 ‘잔잔한 물은 깊다’는 말로 요약한 바 있다(카를 융의 심리학적 유형에 대해서는 기사 맨 뒤 상자기사 참조). 이런 사람은 인내심이 많고 포용력이 있으며 관용을 잘 베푼다. 도량이 큰 호인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고건이 내무부 지방국장이던 1975년 초봄, 부하직원들을 데리고 서울 근교의 저수지로 낚시를 하러 갔다. 그런데 부하직원 하나가 낚싯대를 크게 뒤로 젖히다가 그만 고 국장의 눈두덩을 꿰고 말았다. 직원은 ‘이젠 죽었구나’ 생각하며 고 국장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고 국장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가위를 가져오라고 했다. 이어 낚싯줄을 자른 뒤 차분하게 낚싯바늘을 빼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낚시를 계속 했다. 직원에게는 한마디도 질책하지 않았다. 고 국장은 그날 이후에도 그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고 한다.

    내향적 감정형은 좋고 싫은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적으로 무관심하고 냉담하며 상대를 배척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고건이 젊었을 때 일이다. 지방 출장을 떠나 저녁에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자기 감정은 숨긴 채 아이들 안부만 물었다. 며칠을 그렇게 하다가 날짜에 맞춰 돌아왔다. 아내는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을 놀래주려고 벽지를 바꾸고 아이들과 자신의 머리 모양도 바꿨지만 고건은 본체만체했다.

    그러나 고건의 속마음은 달랐다. 아내가 장난삼아 ‘한눈 팔지 마세요. -여편’이라고 아주 조그맣게 쓴 메모지를 속옷 사이에 몰래 넣어두었다. 무심해 보이기만 하던 고건은 그 메모 밑에다 ‘두 눈 다 팔았음. -남편’이라고 써놓았다고 한다.



    국무총리 시절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의에서도 고건은 이런 면모를 보였다. 야당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유유자적하게 답변했다. 아들뻘 되는 한 의원이 “총리, 똑바로 들으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여도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어조도 마찬가지였다. 내향적 감정형은 다른 사람에게 겸손하고 양보를 많이 해 대인관계가 원만하다.

    고건은 수십년째 매일 아침 단골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머리손질도 목욕탕 안에 있는 이발소에서 한다. 그가 주로 이용하는 식당도 오래된 단골집이다. 고건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티를 내지 않는다. 회식자리에 가면 상석에 앉는 법이 없다. 사무관 때부터 지금까지 비서를 시켜 전화를 건 적이 한 번도 없다. 언제나 직접 전화를 건다. 목에 힘 준 적이 없다.”

    전남 도시자 시절엔 야근하는 말단 직원들을 돌아가면서 대폿집으로 불러내 막걸리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부하들이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넌지시 암시를 주고 부하들이 그것을 자신의 아이디어로 추진하도록 유도하곤 했다.

    “국무총리쯤 되는 사람이…”

    강원도 부지사로 있던 1974년 8월, 홍성철 내무부 장관은 그를 내무부 지방국장에 중용한다. 홍 장관은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가끔씩 청와대로 들어와 브리핑하는 고건 새마을담당관을 눈여겨보았고, 그에 대한 인사 보고를 접했다. 당시 부처에서 올라온 고건에 대한 인사평은 ‘상사에게도 잘하지만 부하들과 융화도 잘한다. 아랫사람을 아끼고 남을 더 내세울 줄 안다’였다. 그를 상사로 모신 사람들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향적 감정형의 단점은 외향적 사고가 미숙하다는 것이다. 시시비비를 잘 가리지 못하고 따지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소신을 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1980년 5·17 비상계엄확대조치 때 고건 정무수석비서관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과도기간을 단축해 정치일정을 투명하게 밝혀야 하며 계엄령의 시한을 명시하고 개각을 해야 한다”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의 바람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였다. 최 대통령으로부터 비상계엄 확대를 위한 국무회의에 배석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고건은 평생 처음으로 가슴속에서 불덩이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군정(軍政)은 절대 찬성할 수 없었다. 그는 국무회의 배석을 거부하고 사표를 썼으며 장위동 집에 칩거했다.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반항의 표시만 한 셈이다.

    내향적 감정형은 매사를 꼼꼼하게 처리하려고 한다. 이는 열등한 외향적 사고를 보상하려는 행동이다. 내향적 감정형은 사고의 다양성이 부족해 몇 가지 개념으로 많은 자료를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다.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한 적 있는 한 직원은 자신의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국무총리쯤 되는 사람이 시시콜콜한 것까지 일일이 지시한다고 해서 일부 직원들은 그를 ‘고 주사’라고 불렀다. 의심이 나는 사항이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어떤 일이든 자신의 기대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부하들에게 끝없는 개선을 요구했다. 일부 직원들은 고건이 내용보다는 의전이나 보고서 꾸미기 등 형식적인 일로 피곤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고건에게는 이러한 내향적 감정형의 특징 이외에 또 다른 면이 보인다. 장애인 시상식에 참석했을 때 수상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고건은 눈높이를 맞추려고 했다. 장애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시상을 한 것. 명지대 총장이 되어서는 학교 앞 호프집에서 대학생들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맥주를 마셨다. 한 기자가 고건에게 “바다낚시에서 배우는 것은 어떤 겁니까”라고 묻자 고건은 웃으며 “타이밍을 잡는 것이죠. 텐션(긴장)과 플렉시빌리티(유연함)를 적절하게 구사해야 합니다. 세상만사가 다 똑같지 않나요”라고 답했다.

    이처럼 고건은 감각이 대단히 발달했다. 내향적 감각형은 뛰어난 감각 덕분에 상황을 잘 파악하고 매끄럽게 대처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국무회의에 배석한 고건 서울시장이 장관들이 풀지 못하는 국정 현안을 한두 마디 핵심어로 맥을 짚어내자 “행정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이원종 충북지사는 고건이 서울시장을 지낼 때 교통국장과 내무국장으로 일했는데, 그의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좋은 대안을 선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미래예측 능력이 뛰어나 그를 상사로 모시면 군더더기 일이 생기지 않는다. 필요 없이 헤매는 일이 없다.”

    내향적 감각형은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선택한다. 이처럼 신념보다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대응하기 때문에 행동에 일관성이 없다. 군정만큼은 동의할 수 없다고 하면서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직 사표를 냈으나 같은 해 9월 교통부 장관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전두환 정권 때에는 농수산부 장관, 민정당 국회의원, 내무부 장관을 차례로 지냈다. 이런 사실에 대해 고건은 어떻게 해명할까.

    “나는 행정 전문가이지 재야인사가 아니다. 당시는 군정에서 헌정(憲政) 체제로 돌아온 시점이었다. 헌정 체제로 돌아왔으니 본연의 전문분야로 복귀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을 두고 일부에선 “고건은 자신이 직접 나서기보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스타일이다. 그것도 승산이 있는 곳에만 얹는다”고 비판한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관직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명지대 총장으로 있던 1995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민선 1기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달라고 했으나 다섯 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1년 후 김영삼 대통령이 높은 순위로 전국구 국회의원을 공천할 테니 총선을 도와달라고 했으나 “학교와 학생들에게 ‘정치를 하기 위해 중간에 떠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안 된다”고 사양했다.

    이러한 내향적 감각형의 단점은 소극적인 형태로 현실에 순응한다는 점이다. 최연소 내무부 지방국장과 최연소 전남지사를 시작으로 무려 7명의 대통령 밑에서 관료생활을 했으면서도 역대 대통령과 마찰을 빚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1970∼80년대의 정치 격변기를 거치며 정권이 수없이 바뀌는 혼란의 와중에서도 그가 중용된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 때문에 고건은 “무소신의 전형이고 처세의 달인이어서 결정적 순간에 ‘노’라고 말하지 못할 사람”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이러한 성격적 특성으로 보아 고건은 융의 심리학적 유형 가운데 내향적 감정형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으며, 아울러 제2기능인 감각도 발달한 내향적 감정감각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장점과 단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말 잘 들어주는 사람’

    우선 고건의 장점은 포용력이 있고 대인관계가 원만해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고건은 ‘돌다리도 두드려 볼 정도로 신중하다’거나, ‘계속되는 의견조율을 통해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화합형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고건 전 국무총리

    서로 상반된 성격의 두 사람, 고건 전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

    그는 검증된 ‘조정의 명수’이다. 첨예하게 대립된 이해관계를 현장에서 풀고 성공적으로 조정했다. 서울시장 때는 매주 토요일에 시민과 만나 서울시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던 문제들을 해결했다. ‘서울 노사정 모델 협의회’를 만들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던 지하철 파업을 종식시켰다.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국무총리를 할 때는 국회가 여소야대였고, 나중엔 민주당이 분당되면서 집권당이 원내 제3당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고건은 현안 입법과제에 대해 야당과 협상해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 주5일제 관련 근로기준법, DMB(디지털위성방송) 허용 방송법 개정, 신용불량자 개인신용관계법 등을 통과시켰다. 정치력이 없다면 야당과 협의해 쉽게 처리할 수 없었던 사안들이다.

    고건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수용해 정책에 반영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총리, 서울시장, 장관, 지사 시절에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남의 말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그는 골치 아픈 민원에 대해서도 열심히 들어주면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다고 믿는다.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합리적으로 정책을 결정한다.

    서울시장 시절 고건은 민원심사위원회, 수질검사위원회, 시정개혁연구위원회 등 여러 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시민단체 대표, 변호사, 학자, 주부, 이해당사자 등을 참여시켜 다양한 세력이 함께 문제의 해결책을 찾게 했다.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을 가능한 존중했다.

    예컨대 1989년 각계 인사를 참여시켜 ‘남산 제모습찾기 100인 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그렇다. 옛 수도방위사령부 자리에 남산한옥마을, 옛 남산외인아파트와 외인주택 자리에 남산야외식물원, 옛 안기부장 공관 자리에 서울문학의 집이 들어서게 된 것은 그가 추진한 ‘남산 제모습찾기’의 결과였다.

    요체를 알고, 맥을 짚고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고건은 외부의 압력이나 상급자의 청탁보다 부하직원의 전문적 판단을 더 중시했다. 그는 매주 1회씩 정례적으로 관련 공무원이 참석하는 ‘정책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는 정책에 관심이 있는 공무원이라면 누구라도 참석했으며, 담당 주사도 의견을 발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회의에서 얻은 결론은 서울시의 중심정책을 이뤘다고 한다.

    그가 조직을 관리할 때 의식적으로 강조한 원칙은 신상필벌(信賞必罰)이다. 노력한 대가를 받도록 함으로써 일과 인사는 따라가는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인사관리의 기준은 청렴도와 성취도. 전남도지사로 있을 때 고건은 단 한 사람도 중앙에서 밀고 내려오지 않도록 했다. 지방에서 근무한 공무원에게 승진 또는 영전의 기회가 돌아가도록 했다. 고건을 이상적인 서울시장으로 보는 이유로도 청렴, 공명정대, 인사의 조정능력, 인화단결 등 인사와 관련된 내용이 가장 많았다.

    고건은 지금까지 맡은 과업을 대부분 성공적으로 수행했기에 ‘행정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어떤 조직이든 고건이 장(長)이 되면 잡음 없이 잘 굴러간다. 그를 상사로 모신 사람들은 “일에도 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조용하고 냉정하게 들여다보면서 요체만 건드려 파열음이 생기지 않게 한다”고 얘기한다. ‘행정도 예술’이라고 하는 고건의 얘기를 들어보자.

    “예술에서는 작품을 통해 예술가와 감상자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행정에서는 정책과 사업을 통해서 행정가와 시민의 소통이 이뤄진다. 소통은 체감을 전제로 한다. 행정의 고객인 시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행정 서비스는 관료만을 위한 행정이다. 예술이 작품을 통해 감동을 주듯 행정도 행정서비스, 정책, 사업을 통해 시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무미건조, 우유부단

    그래서 고건은 탁상행정을 싫어했다.현장을 확인하고 현실에 적합한 행정을 강조했다. 스스로 달동네와 읍, 면, 동을 찾아다니며 현지 주민과 대화를 나누었다. 부하들에게도 그러한 것을 요구했다. 고건은 서울시장 부임 이후 약 6개월 동안 서울에 있는 100여 개의 달동네 중 30여 곳을 방문해 주민과 직접 의견을 나누고 서민 생활행정의 방향을 기초생활 환경을 개선하는 것으로 정했다.

    예컨대 상하수도, 소방시설, 탁아소, 공부방을 늘리는 것이었다. 달동네의 주택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도 남달랐다. 과거에는 달동네를 싹 밀어내고 고층 아파트를 짓는 방법을 택해 언제나 세입자의 주거문제가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건은 달동네에 임대아파트를 지어 세입자를 현지에 수용하는 재개발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또한 고건은 이해관계에 대한 계산이 정확해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극대화할 정책대안을 선택하는 능력을 갖췄다. 미국 행정학회장 마크 홀저는 고건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의 서울시정 경영개선사례를 ‘빌딩 굿 거버넌스’란 책에 실었다. 그 시스템으로 고건은 국제투명성협회에서 상을 받았다. 그는 대단위 토목사업보다 시민의 불편을 해소하는 행정운영 방식의 개선에 관심을 가졌다. 행정관리의 초점을 문제해결 방식의 개선에 모았다. 대규모 재정지출과 인력 동원 없이도 공공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고건의 단점을 꼽자면 우선 정치적 신념과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는 신념과 이상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 있으며 지배적이고 자신감에 차 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려는 강한 욕망을 지녔다.

    그런데 고건은 이러한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무리하지 않고 순리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다. 확고한 정치적 신념이나 철학과는 거리가 있다. 행정지도자로서 고건의 업적은 새마을운동의 성공적 설계자로서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일반인은 고건을 개성을 지닌 지도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무미건조한 안정적 관리자로 인식한다. 관리들도 뚜렷한 업적을 남긴 기관장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를 이상적 지도자로 생각하는 공무원은 많지만, 커다란 업적을 남긴 기관장으로 꼽는 공무원은 서울시에서도 별로 없었다. ‘현재 주어진 것을 조화롭게 만드는 사람’으로 느낄 뿐이다. 총리로서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일상적 국정 시스템을 향상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소극적이며 현실상황에 순응적이기 때문에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고건은 자신의 소신을 위해 모험을 하지 못한다. 그는 ‘변화’를 주도한 적이 거의 없다.

    또 다른 단점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두 수용해 정책을 결정하려다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부 공무원은 고건에 대해 “지나치게 신중하고 합의를 중시하다 보니 우유부단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냐, 스톱이냐’

    노무현 정부의 총리로서 고건은 화물연대 파업, 부안 방폐장 등 수많은 사회 갈등 의제를 충분히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전북 전주에서 열린 지방행사에서 부안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설치 여부와 관련해 “주민과 합의만 된다면 주민투표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 전에라도 연내 주민투표가 가능하지 않겠냐”고 했다. 전날까지 정부는 주민투표법과 정밀지질조사, 총선 연계 등의 이유를 들어 주민투표 연내 실시 불가 방침을 밝혔다. 총궐기대회를 준비하던 부안 대책위는 즉각 기대감을 표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다음날 번복됐다.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고건은 “주민투표법이 제정돼야 부안 문제에 대한 투표가 가능하다”며 말을 바꿨다. 부안 주민과 시위대는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며 더욱 강경한 쪽으로 돌아섰다. 방폐장 문제는 ‘고냐, 스톱이냐’는 분명한 선택을 요구했다. ‘행정의 달인’으로 불린 고건도 이런 상황에서 딱 떨어지는 선택을 하는 데 서툴렀다. 그래서 부안 주민은 고건에게 “결정권도 없고 대화할 의지도 없으면서 시간만 끈다”며 비난했다.

    민선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 고건은 후손들을 위해 장묘문화를 화장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신념으로 서울추모공원을 서초구 원지동에 건립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사반대하는 서초구민을 설득하지 못해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조남호 서초구청장은 고건이 임명직 시장일 때 구청장으로 임명한 사람이지만 주민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고건을 도와주진 못했다.

    고건의 이 같은 장단점을 바탕으로 리더십을 평가해보자. 고건은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2003년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에 직면하여 63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하면서 고건은 국정 전반을 잘 이끌어 국정공백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단지 뛰어난 행정가로만 알려진 고건은 이 일로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심었다. 당시의 긴박한 상황에 대해 고건은 이렇게 말했다.

    “국가적인 위기였다. 순전히 대통령 권한대행인 내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권한대행이 된 뒤 첫 24시간 동안 비상전화 옆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상황을 진정시켰다. 국가 안보, 대외 관계, 우리 경제의 해외 신인도, 사회 안정, 경제 안정 등의 문제에 대해 나의 직감적인 판단으로 순서를 찾아 상황을 진정시키며 위기를 관리했다.”

    만취한 아버지, 침착한 아들

    고건은 국가적 ‘비상사태’와 어떤 숙명적 관계가 있는 것 같다. 1979년 전남지사를 마치고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왔을 때 10·26사태와 5·18민주화운동을 겪었고, 1987년 내무부 장관 때는 6·10항쟁에 직면했다.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시민을 해산하기 위해 군을 투입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고건이 이를 막았다. 군 투입이라는 불상사를 피했기에 6·29선언이 나올 수 있었다. 1997년 국무총리로 있으면서 외환위기도 맞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났던 것 같다. 그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소풍을 가는데 당시 연희전문 교수이던 부친 고형곤 교수가 따라갔다.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술 생각이 난 부친이 아들 고건을 데리고 조그만 맥주홀로 들어갔다. 아들을 앞에 앉히고 고 교수는 맛있게 술을 마셨다. 아들은 어색하고 무료할 텐데도 두리번거리며 잘 참았다. 그런데 고 교수가 그만 만취하고 말았다.

    고 교수가 정신을 차려보니 집이었다. 아들 걱정이 되어 건넌방을 보니 아들은 밥을 먹고 있었다. “어떻게 우리가 집에 왔느냐”고 물었고, 아들은 태연하게 “원효로까지 전차를 타고 다시 기차를 갈아타서 서강에서 내렸다”고 했다. 어린 아들의 태연자약에 술이 덜 깬 아버지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고건은 실용주의적 정책을 선택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최근 고건은 “진보와 보수의 이념논쟁에 사로잡힌 정치 리더십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념 논쟁으로는 세계화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없다”며 “우리는 이제 지난 시대가 남긴 이념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이념 대립을 극복할 통합의 리더십으로 ‘창조적 실용주의’를 주장했다.

    “창조적 실용주의 리더십은 소통과 연대를 중시하고, 일로서 승부하고, 상생을 지향하며, 지속가능한 혁신을 추구하는, 세계로 열린 개방의 리더십이다. 이런 정치 리더십만이 사회를 통합하고 역사를 진전시킬 수 있다.”

    고건과 같은 내향적 감정감각형은 정치적 신념과 카리스마는 부족하지만 현실에서 가장 유용한 정책을 선택하는 능력은 뛰어나다. 추상적인 정치적 신념보다는 국민생활에 실용적인 정책 구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할 수 있다.

    유능, 정직, 겸손 3박자 조화

    내향적 감정형은 진실로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볼 줄 알기 때문에 집단의 윤리적 지주가 될 수 있다. 고건은 이러한 자질을 제대로 갖춘 인물이다. 고건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게 깨끗한 이미지다. 그는 모두가 인정하는 청백리(淸白吏)다. 오랜 공직생활을 거쳤지만 고건은 ‘미스터 클린’이라 불릴 만큼 스캔들이나 부정부패 따위에 연루된 적이 없다. 이런 인물이 아직도 우리 곁에 실재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고건을 총리 내정자로 지명한 이유에 대해 ‘청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결벽증이라고 느껴질 만큼 오해받을 일을 하지 않는다. 오해의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단 둘이 만나는 경우가 없다. 반드시 공개된 장소에서 만난다. 뇌물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가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귀엣말이다. 매사가 공개적이고 투명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고건이 전남지사로 부임할 때 광주에 파견되어 그를 관찰했던 정보기관 요원은 “대부분의 엘리트는 유능하지만 정직하지 않고, 정직하면 근면하지 않고, 근면하면 교만하다. 그러나 고건은 이 경계를 넘은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카를 융의 심리학적 유형론

    고건 전 국무총리

    스위스의 심리학자 및 정신과의사 카를 융.

    심리학적 유형론은 카를 융이 발표한 학설 중 비교적 초기의 이론이다. 의식의 구조와 각 기능의 유형, 의식과 무의식과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 핵심. 융은 심리학적 유형을 두 가지 측면에서 보았다. 첫째는 일반적인 태도에서 볼 수 있는 심리적 특징에 따라 내향적 태도와 외향적 태도로 구분했다. 둘째는 정신 기능을 사고·감정·감각·직관으로 구분하고, 각 기능 중 적응과정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우세한 기능에 따라 유형을 분류했다.

    융은 네 가지 정신기능 중 가장 잘 분화된 주기능이 어느 것이냐에 따라 사고형·감정형·감각형·직관형으로 나누었고, 이를 다시 일반적 태도상의 유형을 고려해 내향적 사고형, 외향적 사고형으로 나눴다(표1 참조).

    융의 유형론에 의한 대통령의 성격유형은 선천적 성격적 특성으로 결정된다.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개인적 요인은 교육적 배경과 사회적 경력이다. 환경적 요인은 가정환경과 사회·문화적 환경 등이다. 선천적인 성격에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성격유형은 대통령이 되어서 보여줄 정치적 행동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는다.

    고건 전 국무총리
    이러한 성격유형과 정치적 행동이 보여줄 관련성을 분석하기 위해 ‘리더십 스타일 분석 모형’(표2 참조)을 만들었다. 이 분석 모형은 필자가 20년 간 정신과 의사로 환자를 치료하면서 얻은 임상경험, 그리고 지난 5년간 한국판 게리 휠라이트 테스트(Gray Wheelwright test)를 이용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연구한 경험이 토대가 됐다. 여기에 정치인의 리더십과 정책학을 연구하여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 모형은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북하기 직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성격을 분석해 적합성을 확인한 바 있다. 2001년 2월에는 박정희·김영삼 대통령을 분석해 적합성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2003년 12월에는 정치학회 학술대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분석해 발표하기도 했다.


    고건 전 국무총리
    고건은 공직자로서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1961년 서른셋의 나이로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했지만 공직생활 초반은 불운했다. 부친이 야당 의원이어서 3년 반 동안 보직을 받지 못했다. 피해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길을 바꾸기로 하고 사표를 써서 품에 넣고 다녔다.

    이때 그는 ‘생존의 법칙’을 터득했다고 한다. 그것은 ‘남보다 적어도 한 시간 더 열심히 일하고 남에게 흠 잡힐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부친이 아들에게 “공직자로 있으면서 절대 ‘누구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어서는 안 된다”며 공직자로서의 몸가짐을 가르쳤다. 줄 서지 말고 실력으로 헤쳐가라는 뜻이었다. 이미 강성 야당 정치인의 아들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정부에 들어간 이상, 첫 번째 계명은 공직자로서 생존하기 위해 당연히 지켜야 할 수칙이 아닐 수 없었다.

    부친이 정치를 그만둔 다음에도 맡은 일에 몸과 마음을 전력투구한다는 자세는 고건에게 ‘제2의 천성’이 됐다. 그 때부터 그는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을 새기며 ‘감천’까지는 못 가도 ‘감민’까지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지성감민(至誠感民)’이라는 말을 만들어 좌우명으로 삼은 이유다.

    고건은 공직생활을 통해 인사운동을 하거나 어느 정파에 줄을 대거나 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자리에 연연하거나 특정 세력에 의지하지 않는 태도가 몸에 배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태도가 오랫동안 공직에서 일하게 한 힘이다.

    차기 대선 후보로서 고건은 20%가 넘는 지지율을 2년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높은 지지율은 노 대통령의 ‘돌발적 리더십’에 대한 반사이익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불안정하고 경박하며 미숙해 보이는 노 대통령에 비해 경륜과 품위가 돋보이는 그의 이미지가 만들어낸 현상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과 정반대 성격

    융의 유형론으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외향적 사고형이며, 고건은 내향적 감정형이다. 이 두 유형은 정반대의 성격이다. 외향적 사고형은 원리원칙을 중요시하여 소신 있는 행동을 하며, 도전적인 성향이 강하다. 단점은 감정이 미숙해 인내심이 부족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내향적 감정형은 인내심이 강하고 포용력이 있으며,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 좋고 싫은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않는다. 단점은 외향적 사고가 미숙하여 자기 소신을 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점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장점은 고건의 단점이고, 노 대통령의 단점은 고건의 장점이다.

    인격적 성숙도의 차이도 관찰된다. 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돌출적인 언행으로 국민에게 불안한 인상을 심어줬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변함이 없다. 할 말, 안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함부로 말한다. 순화되지 않은 비속어도 계속 사용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노 대통령은 페르소나(persona)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 페르소나는 특정한 집단에서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가치판단, 행동양식을 말한다. 페르소나를 중시하면 결과적으로 개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의 파격적인 언행은 그를 개성이 강한 인물로 부각시켰다. 전통적 가치관을 따르지 않는 파격적 언행은 적어도 대통령후보가 되기 전까지는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대통령후보가 된 순간부터 부적절한 언행은 사람들이 그의 자질을 의심하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탈(脫)권위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으나 사실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다. 대통령에겐 대통령으로서 갖춰야 할 체면과 품위가 있다. 대통령의 말은 그대로 국민에게 전달돼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고건은 차분한 교양과 겸손이 체화되어 있으며 언행이 항상 신중하다.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자세에 늘 상대방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답변도 차분하게 한다. 처세에 능한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가볍고 약삭빠른 면모는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위해 정치를 한다. 따라서 결국 자신의 이익과 공익을 어떻게 조율해 정치적 행위를 하느냐가 정치인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은 고건에게는 공연한 빈말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 고건이 보여준 리더십이 웅변적으로 이야기해준다. 그런 점에서 ‘처세의 달인’보다는 ‘행정의 달인’이 고건에게 더 옳은 표현인 것 같다.

    대통령 되면 긴장감이 떨어진다?

    그는 강력한 직구를 구사하는 정통파는 아니지만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할 줄 아는 훌륭한 구원투수다. 난마처럼 얽혀 있어 좀처럼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때 실마리를 풀어가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 국가가 어려울수록 고건의 능력은 더 빛을 발한다. 고건에게는 이념이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또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관심사다.

    고건 전 국무총리
    金鍾碩
    ● 1954년 서울 출생
    ● 서울대 의대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 서울대 의대 외래교수
    ● 現 인천의료원 신경정신과장
    ● 논문 : ‘대통령의 성격유형과 리더십 스타일에 관한 연구’


    그런데 역대 대통령을 분석해보면 대통령이 되기 전에 보이지 않던 리더십의 단점이 반드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이루기 위해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만큼 긴장감이 떨어져 단점이 노출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고건이 대통령이 된다면 부족한 카리스마, 상황에 순응적인 리더십이 가장 큰 악재로 작용할 듯하다.

    ※이 기사를 작성하는 데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 김아연 정보검색사가 다양한 자료를 검색,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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