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더십이 화두다. 각종 수식어를 붙인 리더십 관련 서적이 쏟아지고 성공한 조직의 리더에게 러브콜이 빗발친다. 바람직한 리더십은 인류의 오랜 고민. 효율적 통치와 피지배자의 자유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여러 정치체계를 거쳤다. 글래디에이터의 폭군 코모두스 황제는 도의는 없되 효율적으로 군중을 통치할 책략을 마련하지만 되레 자신이 함정에 빠지고 만다.
중국 민중은 폭군 진시황의 죽음에 대해 “진시황이여, 그대는 죽으리라. 내 집 문을 열고,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내 국물마저 가로채고 그것도 모자라 또 달라네. 한마디 인사도 없이 내 술을 다 마셨네”라며 처절함을 담아 노래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알렉산더의 죽음에 대해 “알렉산더는 죽어 먼지로 돌아갔다. 먼지는 흙이다. 흙은 진흙이 된다. 그리고 알렉산더가 변해서 된 그 진흙으로 우리는 맥주통의 마개를 만들어 쓴다”고 했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모든 인간에게는 중간 결산이 필요하다. 특히 권력자에 대한 평가는 깊고, 넓고, 또한 냉정하다. 그 평가에서 업적과 선정(善政)이 확인된다면 권력자의 죽음은 비로소 영광의 영생으로 이어진다.
“존경하는 마이드 장군!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모두 당신의 공로입니다. 그러나 만약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만약 작전에 실패한다면 장군은 링컨 대통령의 명령이었다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이 편지를 모두에게 공개하십시오!-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
링컨이 남북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게티즈버그 전투 때 마이드 장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면서 보낸 짧은 편지 내용이다. 책임은 자신이 지고 영광은 부하에게 돌렸다. 올바른 성품과 책임감에서 나오는 리더십의 표본이다.
‘현대사회에서의 리더십’을 논제로 한 논술이 여러 대학에서 다양한 형태로 출제되고 있다. 국가 지도자, 경영인 등 각 상황에 따라 어떤 리더십이 요구되는지를 익혀둬야 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고대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글래디에이터는 고대 로마의 공공장소나 원형 투기장에서 사람이나 맹수와 싸우는 검투사를 뜻한다. 영화 내용은 로마의 한 장군이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 뒤 자신과 가족의 복수를 위해 검투사로 재기하는 이야기다.
황제만 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로마인에게 내려진 가장 극악한 저주’라고 하는 폭군 코모두스에 대한 역사의 평가로부터 발동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권력에 대한 의지와 욕구를 심층적으로 그렸다. 등장하는 캐릭터는 실존인물을 중심으로 하지만, 주인공 막시무스 장군은 허구의 인물이다.
‘명상록’으로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이기도 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121∼180)는 덕망 있는 황제였다. 시민들에게 철학을 강의하고, 전쟁을 인간성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한 평화주의자였으나, 부득이 전쟁을 하게 되면 몸소 변방의 전선으로 나갔다. 영화에서는 그의 종말을 아들인 코모두스에게 살해된 것으로 그렸지만 실제로는 전장에서 얻은 역병 탓이었고, 아들 코모두스를 무척 아껴 후계자로 삼았다. 코모두스는 즉위 초에 자객의 습격을 받은 뒤부터 원로원을 겁내고 멀리했으며, 콜로세움에 나가 칼이 아니라 납으로 만든 검을 든 검투사를 상대로 살육 경기를 무수하게 벌였다. 13년의 치세 끝에 애첩 마르키아가 코모두스를 독살하려 했으나 독이 늦게 퍼져 그의 레슬링 상대였던 청년에게 목이 졸려 죽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해설 자막이 나오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전성기 때 로마제국의 세력은 아프리카 사막에서 영국 북부의 국경에 이르렀으며, 전세계 인구의 25%가 로마 황제의 통치를 받았다. 서기 180년,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게르마니아와 치른 12년간의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을 무렵… 로마 제국의 승리와 평화는 이제 마지막 고비에 직면했다!’
현악기와 기타가 어우러지는 신비로운 음악을 배경으로 로마와 게르마니아가 벌이는 치열한 전투 장면이 이어진다. 어둡고 울창한 삼림 속에서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리처드 해리스 분)가 직접 참전한 로마 부대가 결전을 기다리고 있다. 로마의 위대한 장군 막시무스(러셀 크로 분)의 진격 신호에 따라 드높은 함성 소리와 함께 불화살이 날고, 숲이 불타고, 땅은 병사들이 흘린 피로 물들면서 마침내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포스터.
“폐하께서 이번엔 진짜 위독한 걸까?”
“10년째 위태로우셨어.”
“그래서 날 부르셨을 거야.”
“집요한 네 야심,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
“후계자를 발표할 생각인 거야. 나말고 누구겠어? 황제가 되면 등극을 축하하는 검투시합을 열겠어.”
“난 지금 따끈한 샤워가 그리울 뿐이야.”
코모두스는 아버지인 황제가 있는 곳에 도착하지만 전투는 이미 끝나고 승전을 축하하는 분위기다. 야전막사에서 황제가 전쟁 영웅 막시무스 장군을 부른다.
“소원이 무엇이냐?”
“고향을 떠난 지도 3년이 돼갑니다. 고향에는 아내와 여덟 살짜리 아들이 있습니다. 고향에 가서 농사를 짓고 싶습니다.”
“고향에 가기 전에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분부만 내리십시오.”
“짐이 죽고 나면 로마를 지켜주게. 자네에게 그럴 권한을 주겠네. 공화정을 실시하여 로마 시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고, 로마를 부패시킨 타락을 종식시키게! 영예를 거절하진 않겠지?”
“황공하오나 싫습니다. 왕세자 코모두스는?”
“도덕적인 인물이 아니네. 어려서부터 봐왔잖은가?”
“시간을 주십시오.”
막시무스 장군을 만난 다음 마르쿠스 황제는 왕세자 코모두스를 부른다.
“로마를 통치할 준비가 되었느냐?”
“네, 아버님!”
“넌 황제가 되지 못할 것이다.”
“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막시무스에게 권력을 넘기겠다. 원로원이 통치할 준비가 될 때까지 짐을 대신할 것이다. 로마는 공화국으로 다시 돌아간다.”
“막시무스?”
“내 결정에 실망했느냐?”
“아버님이 날 미워하신 대가로 세상을 피로 물들이겠어요.”
코모두스는 아버지인 황제 마르쿠스를 포옹하는 척하면서 목을 졸라 살해하고, 자고 있던 막시무스를 불러서 “황제가 자다가 조용히 사망했어. 짐은 자네의 충성을 명령한다. 손을 잡아라. 난 두 번 청하지 않아”라고 명령한다. 황제의 죽음을 살해로 단정한 막시무스가 거절의 제스처를 보이면서 나가버린 다음 공주 루실라는 동생인 코모두스의 뺨을 때린 후, 손에 키스를 하고 “황제 폐하”라고 말한다.
야욕의 희생자 막시무스
막시무스는 숙소로 돌아와 원로원 의원들을 만나려 했지만 한 발짝 앞서서 황제의 근위병에 의해 체포돼 숲 속으로 끌려간다. 막시무스는 처형되기 직전에 칼을 빼앗아 근위병을 죽이고 말을 타고 도망치면서 “아내와 아들을 지켜주시고 곧 만나러 간다고 전해주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한다.
집을 향해 말을 달리는 막시무스. 그러나 그가 도착하기 전에 아내와 아들은 황제의 근위병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다. 집에 도착하자 불에 타 숨진 채 갈고리에 걸려 있는 아내와 아들의 모습을 본 막시무스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깨어나 보니, 자신이 노예 시장에 팔려가고 있지만 신분을 밝힐 수도 없는 처지다.
막시무스는 검투사 출신인 프록시모(올리버 리드 분)에게 팔려가 스페인 사람이라는 뜻인 ‘스패냐드’라 불리는 노예 검투사가 된다. 검투시합에 출전한 막시무스는 상대를 무참히 죽인 후 칼을 던지며 “이래도 만족 못하겠나? 이걸 보러온 게 아니었어?”라고 외친다. 관중은 “스패냐드, 스패냐드”라고 함성을 지르며 막시무스를 환호한다.
황제가 된 코모두스는 마르쿠스 황제를 추모한다는 명분으로 150일 동안 로마에서 검투시합을 개최한다. 실은 로마 시민을 현혹해 자신의 왕권을 튼튼히 하고 공화정의 욕구를 무뎌지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을 정치에서의 ‘상징조작’과 관련지어 생각해봐야 한다.
막시무스는 코모두스가 주최하는 검투시합에 참가한다. 로마 콜로세움 원형 경기장에 황제 코모두스와 공주 루실라가 입장하고 검투시합이 시작된다. 노예 검투사들과 로마 전차부대와의 집단적인 대결로 전투를 방불케 하는 시합이 벌어진다. 막시무스의 맹활약으로 검투사들이 승리하고, 그는 관중의 영웅이 된다. 투구를 쓰고 있어 막시무스인 줄 모르는 황제 코모두스는 그의 실력을 칭찬하고자 모든 관중이 바라보고 있는 경기장으로 내려온다.
“역시 명성답군. 자넬 넘볼 만한 검투사는 없겠어. 투구를 벗고 신분을 밝히게. 이름이야 있겠지?”
“제 이름은 검투사입니다.” (등을 돌리는 막시무스)
“감히 등을 보여? 노예! 투구를 벗고 이름을 밝혀라!”
(투구를 벗는 막시무스) “내 이름은 막시무스… 총사령관이었으며, 마르쿠스 황제의 충복이었다. 태워 죽인 아들과 아내의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반드시 복수하겠다. 살아서 안 되면 죽어서라도!”
황제 코모두스가 근위병들에게 “조준! 막시무스에게 칼을 들이대라”고 명령하자 공주 루실라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이를 지켜본다. 관중이 주먹을 불끈 쥐고서 “살려줘라, 살려줘라” 하면서 함성을 지르자 코모두스는 할 수 없이 “무기 원위치”라고 명령한다. 루실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관중은 이제 “막시무스, 막시무스!”를 외친다. 그리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음악이 흐른다.
심판의 칼은 군중에게
한때 연인 사이였던 공주 루실라가 막시무스를 찾아온다. 남편과 사별한 그녀에게는 여덟 살 난 아들 루시우스가 있다. 루실라가 막시무스에게 “내가 한때 알았던 남자는 고귀한 사람이었죠. 깨끗한 절개로 아버지와 조국 로마에도 충성했죠. 돕고 싶어요”라고 하자 “그는 이제 존재하지 않소. 동생의 악랄한 계략 덕분이었소”라고 답한다.
64일째 계속되는 검투시합에 황제 코모두스와 공주 루실라, 원로원 의원들이 입장한다. 코모두스는 로마 역사상 무적의 챔피언이자 전설적인 검투사인 티그리스와 막시무스의 결승전 시합을 명령한다. 원형 경기장에 호랑이까지 풀어놓아 막시무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지만 티그리스는 막시무스에 의해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수많은 관중은 노예가 된 막시무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함성을 질러댄다.
원형 경기장 한복판에 선 막시무스에게 코모두스가 근위병들과 함께 내려와 “자넬 어떻게 해줄까? 자넨 절대로 순순히 죽지 못해!”라고 말한다. 막시무스가 결연한 의지로 “하나 더 죽인 다음 눈을 감겠다!”고 대답한다. 관중이 “막시무스! 막시무스!”를 계속 외쳐대자 어쩔 수 없이 코모두스는 막시무스를 살려준다.
공주 루실라의 주선으로 원로원 의원들을 만난 막시무스가 “로마 탈출을 도와주십시오. 군대를 이끌고 와서 황제 코모두스를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 다음 군대는 원대 복귀시키겠습니다”고 간청한다. 막시무스를 다시 찾아온 루실라가 “황제 코모두스가 눈치를 챈 것 같으니 탈출을 급히 서두르세요”라고 말한다. 막시무스는 탈출하려다 근위병들에게 발각되어 체포되고, 코모두스는 탈출을 도운 루실라의 아들 루시우스를 인질로 잡고 “누나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루시우스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이미 군중의 영웅이 된 막시무스를 함부로 처형하지 못하는 황제 코모두스. 그는 군중 앞에서 대결해 막시무스를 합법적으로 죽이고, 군중의 환호성을 자신에게로 돌리겠다는 책략을 짜낸다.
1 장군에서 노예로 인생역전을 거듭하는 막시무스. 2 야욕 앞에 부정(父情)을 버리고 끝내 몰락하는 코모두스. 3 막시무스를 응원하는 공주 루실라. 4 아들 코모두스 대신 능력 있는 장군 막시무스에게
이때 코모두스가 손목에 감춰둔 작은칼을 꺼내어 덤벼들지만 막시무스의 공격으로 피를 흘리며 죽는다. 막시무스는 근위대장에게 “노예 검투사들을 풀어주고 공화정을 실시하라”고 말하며 쓰러진다. 막시무스는 달려온 루실라의 품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고, 애잔한 음악이 흐르면서 영화가 끝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스펙터클하고 박진감이 넘치는 액션과 장엄한 화면, 주인공의 섬세한 심리 연출로 글래디에이터를 2001년 아카데미 작품상에 올렸다. 러셀 크로는 막시무스 장군 역을 맡아 2001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음악을 맡은 한스 짐머는 골든 글로브 음악상을 수상했다. 그는 다양하고 웅장한 음악을 영화의 장면과 자연스럽게 연결해 분위기와 감동을 한층 고조시켰다.
‘영화 속 논술·구술 워밍업’
▼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국가를 이끌어가는 원리와 방법에 대한 여러 함의를 담고 있다. 바람직한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보자.
‘핵심 기본 논제 1’
▼ ‘글래디에이터’는 공화정에 대한 갈구를 나타내고 있다. 플라톤은 민주주의에서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요구하면 결국 독재 정치인 참주제라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온다고 했다. 이러한 플라톤의 견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시오.
‘예시 답안’
(찬성) 민주정치의 기본 원리는 자유와 평등이다. 인간은 억압과 속박에 얽매이지 않을 자유가 있고, 기회를 균등하게 나누어 가질 권리가 있다.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최대한 실현시키기 위한 투쟁의 역사다.
그러나 플라톤의 주장처럼 지나친 자유의 보장과 허용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유가 과도하게 주어진다면, 개인은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무기력함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한편 과도한 자유를 누리던 개인은 통제를 조금만 받아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자유만을 내세우면 극단적 이기주의를 불러 점점 고립의 길을 자초(自招)하게 된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은 이런 상태를 잘 표현한다. 이때 개인은 자기의 외부 현실에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소외되고 고립된 개인은,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이나 이념 등의 새로운 제약을 원하게 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이념이나 권력에 동조함으로써 자신의 소외감을 해소하려 한다.
파시즘이나 나치즘은 이 같은 경향이 극단화되면서 생겨난 독재정치 형태다. 결과적으로 자유의 지나친 허용이 독재 정치를 불러들인 셈이 된다.
이와 같이 민주정치는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중요시함으로써, 오히려 자유를 포기하고 새로운 구속을 낳게 할 위험성이 있다. 지나친 자유는 개인을 불안하게 하고, 개인은 그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절대적인 권력이나 이념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재 정치를 발생시키는 원인이다.
(반대) 민주정치의 기본 원리는 자유와 평등이다. 특히 자유를 꿈꾸고 신장시키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모든 인간은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는 인간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플라톤은 개인의 자유가 지나치게 강조될 때 오히려 독재 체제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엔 논리적인 오류가 있다. 설령 민주정치의 특징 중에 독재정치로 흐를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민주정치가 항상 독재정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치즘이나 파시즘이 예외의 경우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플라톤의 주장은 하나의 현상을 확대해석해 일반화한 오류다.
자유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증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유가 무제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저마다 자유를 최대한으로 누리려고 하지만 민주정치에서는 법과 제도를 통해 조정하고 있다. 따라서 지나친 자유의 허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개인은 법과 제도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가 상충되는 부분은 그 사회에서 조절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지나친 자유 때문에 개인이 고립감과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자유가 지나치게 허용된다고 해서 민주정치가 곧 독재정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정치에서 개인은 법과 제도를 통해 스스로 자유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소중히 생각할 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자유를 누리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권리인 동시에 인간 사회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핵심 기본 논제 2’
▼ ‘글래디에이터’에서는 검투시합을 정치 기술인 상징 조작으로 이용하고 있다. 정치에서의 상징 조작에 대해 말하시오.
‘예시 답안’
정치적 지배는 타인에 대한 지배이기 때문에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고는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최소한 상대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시에 감정적인 존재이므로 지배자나 지도자는 자신의 명령이나 지도를 상대가 받아들이도록 끊임없이 이성적 반응을 재생산해야 한다. 이런 반응을 재생산하는 데 실패하면 최후의 수단인 물리적인 강제력을 발동하게 된다.
그러나 대중을 자의적인 물리적 강제력으로 통치하는 것은 가장 열등한 지배 방식이다. 인간의 이성이 발달함에 따라 이런 열등한 방식은 다른 고차원의 방식으로 대치돼왔다. 현대 정치에서는 상징 조작이 중요하다. 상징 조작이란 노래, 제복, 슬로건 같은 정치적 상징을 사용해 국민에게 동일한 자극을 줌으로써 지배자들이 원하는 통일된 행동과 사고를 이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징 조작은 물리적인 힘을 빌리지 않고도 국민 사이의 분쟁을 완화시키거나 이해의 대립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상징은 다른 것을 대신하는 사물이나 기호를 뜻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알리기 위해 연기를 피운다면 이 경우 연기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을 상징이라고 한다. 언어나 도표, 수학적 기호 등도 상징이 발전된 형태이며 이 중에서도 언어는 인간 사회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인간이 상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인간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생활을 영위하며 서로 유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을 정치라고 할 때 정치 행동과 상징은 근원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정치 영역에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상징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에서 상징은 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 국가, 권위 등을 감각적인 것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국기, 국가, 제복, 건축물 등으로 나타낸다. 메리엄은 정치에서의 상징 조작을 미란다와 크레덴다로 나누어 설명했다.
미란다는 원래 ‘감탄할 만한’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에서 온 말로 ‘놀랄 만큼 뛰어난 정치 기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일반적으로 정서적인 유대감을 희구하거나 질서에 귀속되기를 바란다. 인간의 이런 심리에 호소하는 상징을 동일시의 상징이라 한다. 동일시의 상징이란 그것을 바라볼 때, 또는 노래를 같이 부를 때 모두가 동일한 집단의 일원이라는 일체감을 자아내게 하는 상징이다. 이것은 인간의 정서적인 면에 호소하는 상징이다. 권력의 미란다는 이러한 동일시의 상징을 이용해 국민의 마음을 규합하려 한다.
반면 크레덴다는 신학 용어에서 나온 말로 ‘신조’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 어떤 것을 대할 때 그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면 수긍한다. 그러므로 합리적이고 타당함을 내세워 사람들의 이성을 움직이는 기호를 합리화의 상징이라고 한다. 이것은 인간의 이지적인 면에 호소하는 상징이다. 권력의 크레덴다는 이러한 합리화의 상징을 이용해 국민에게 그 권력의 정통성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곧 권력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라는 것을 국민의 마음속에 심어줌으로써 자발적으로 지배를 받아들이게 하는 은밀한 정치 기술의 하나다. 이것은 주로 지적이고 합리적으로 권위를 획득하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정부에 대한 존경과 자발적인 복종, 희생, 합법성의 독점 등이 있다.
관련 기출문제
다음 제시문은 국가를 이끌어가는 원리와 방법에 대한 동서고금의 다양한 생각을 보여준다. 제시문 (가), (나), (다)를 논의의 근거로 삼아 현대적 의미의 리더십을 논술하시오. 1400∼1600자 (이화여대 2001 정시)
▼ 제시문
(가) 전하(殿下)의 다스림이 이미 그릇되어 나라의 근본이 망했고, 하늘의 뜻은 가버렸으며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비유하자면 백년 된 큰 나무에 벌레가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말라버렸는데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어느 때에 닥쳐올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낮은 벼슬아치는 아래에서 히히덕거리며 우선 주색만을 즐기고 높은 벼슬아치는 위에서 어름어름하면서 오로지 재물만을 늘리며, 물고기의 배가 썩어들어가는 것 같은데도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궁궐 안의 신하는 자기 세력 끌어들이기를 용이 못에서 물 빨아들이듯 하고, 궁궐 밖의 신하는 백성 벗기기를 이리가 들판에서 날뛰듯 하니, 가죽이 다 해어지면 털도 붙어 있을 데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나라 일을 정돈하는 것은 자질구레하게 형벌을 정하는 데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전하의 한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학문을 좋아하십니까, 풍류와 여색을 좋아하십니까,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시는 바에 따라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이 달려 있습니다.
진실로 어느 하루 깜짝 놀라 깨달아 팔을 걷어붙이고 학문에 힘쓰시면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도리를 얻게 됩니다. 그렇게 하시면 그 안에 온갖 선(善)이 갖추어지고 온갖 덕화(德化)도 이로 말미암아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을 들어서 시행하면 나라를 고루 잘 살게 할 수 있고, 백성을 화합하게 할 수 있으며, 위태로움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사람을 쓰는 일은 몸을 수양함으로써 하며, 몸을 수양하는 일은 도(道)로써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사람을 쓰는 데에 이렇게 하신다면 전하를 모신 신하들로서 사직을 보위하지 못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덕화를 베푸셔서 태평한 천하를 이루신다면, 저는 마구간의 끝자리에서나마 채찍을 잡고 정성을 다해서 신하의 직분을 다할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을 바로하는 것으로써 백성을 새롭게 하는 요체를 삼으시고, 몸을 수양하는 것으로써 사람을 쓰는 근본을 삼으셔서 왕도(王道)의 법을 세우십시오. 왕도의 법이 왕도의 법답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답게 되지 못합니다. 밝게 살피시기를 엎드려 바라옵니다. 저는 감당할 수 없이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이 말씀을 전하께 올리옵니다.
-남명(南溟) 조식(曺植)의 ‘을묘사직상소’ 중에서
(나) 나는 상상적인 견해보다 사물의 구체적인 진실을 따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은 현실적 존재로서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방식과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될 이상(理想)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열중한 나머지 현실을 포기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멸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서 완벽한 선(善)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착하지 못한 많은 사람의 틈바구니에서 파멸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지위를 보전하고자 하는 군주는 좋지 않은 짓을 행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언제 그것이 필요하고 언제 그것이 필요치 않은가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악덕이 없이 그의 권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는 그런 악덕의 오명(汚名)을 뒤집어쓰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모름지기 군주는 두려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두 가지를 함께 누리기는 어려우므로,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사랑을 받기보다 두려움을 받는 편이 안전하다. 사람들이란 일반적으로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이고 위험을 피하기에 급급하며 이익을 탐낸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주가 은혜를 베푸는 동안은 전적으로 군주의 편이어서 자신의 피, 재산, 목숨과 자식까지도 바치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실제로는 그럴 필요성이 별로 없을 때 하는 말이다. 막상 그래야만 할 때가 닥치면 그들은 배반한다. 그래서 그들의 말만 믿고 다른 준비를 해놓지 않은 군주는 몰락하게 된다.
위대하고 고상한 정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돈을 주고 얻은 우정은 매수한 것일 뿐 진정으로 확보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위기에 몰리면 군주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 인간은 두려움을 주는 사람보다 사랑을 주는 사람을 해칠 때 덜 망설인다. 사랑은 의무의 사슬로 묶여 있는 것인데,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자기 목적에 도움이 될 때는 언제든지 그 사슬을 끊어버린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심으로 유지되는데 그것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중에서
(다) 남북전쟁 이래의 영웅인 카우보이는 기술 시대의 새로운 영웅인 엔지니어로 대체되었다. 엔지니어는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효율성이라는 도구로 무장한 엔지니어는 신(新) 제국의 건설자였다. 그의 거대한 작품들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마천루와 교각과 댐이 미국 전역에 세워졌다. 미국인들은 새로운 기술화(技術化)의 가치에 몰입한 나머지 기술 이상주의를 옹호하게 되었다.
미국의 사회이론가 베블런은 상업적인 탐욕과 시장의 비합리성이 기술의 시대적 역할을 약화시킴으로써 대대적인 낭비와 비능률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를 전문 엔지니어들에게 위탁함으로써 경제를 구원하고 미국을 새로운 에덴동산으로 변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엄격한 효율성의 기준에 의거해 비능률을 뿌리뽑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국가를 잘 작동하는 메가톤급 기계처럼 생각하고 전문 엔지니어가 그것을 운영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이후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라 칭하는 개혁자 집단은 베블런의 생각을 받아들여 미국의 엔지니어들에게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부여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정치 경제와 관련된 철학적 개념들과 대중적 민주주의가 미 대륙의 기술 지배를 위한 설계도를 만드는 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에 의한 통치보다도 과학에 의한 통치를 선호했다. 이들은 기술 유토피아의 이상을 현실 정치에 반영하려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들 테크노크라트들은 과학이 낭비와 실업, 배고픔과 빈곤을 영원히 추방하고 궁핍의 시대를 풍요의 시대로 바꾼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들은 자연과 인간 및 기계사용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국가의 자원을 총괄하고 관리하는 별도의 기관을 설립할 것을 주창했다.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중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Tip’
●논제는 통치자의 자질과 역할 및 통치방법 등을 발췌한 제시문을 논의의 근거로 삼아 현대적 의미의 리더십에 관해 논술하라는 것이다. 제시문 (가)는 우리나라의 전통 사회에서 이상으로 삼았던 왕도 정치의 리더십을 말하고 있으며, 제시문 (나)는 윤리적 관점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현실적인 통치 기술로서의 리더십을 말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제시문 (다)는 모든 개인적인 욕망과 사회 통념을 넘어 과학 기술의 합리성만을 신뢰하는, 기술적 효율성에 근거한 리더십을 거론하고 있다.
●세 가지 제시문을 정확하게 읽고 분석하고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바람직한 리더십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이 제시문에 나타난 리더십의 다양한 형태를 분석함으로써 이 사회를 이끌어갈 각계각층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리더십에 대해 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시 답안’
국가나 기업 등 사회의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이 관건이 된다. 리더십 문제는 국가 통치자의 문제인 동시에 모든 국민의 문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한 국가의 운명이 지도자의 리더십에 의해 좌우되는 사례를 봐왔다.
예를 들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를 해방할 수 있었던 것은 링컨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덕분이다. 동양의 요임금 순임금 시절은 태평성대를 구가하며, 백성이 착하여 아무나 벼슬을 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이와 달리 폭군인 걸임금과 주임금 시대에는 백성이 포악해 아무나 잡아다 목을 베어도 될 만큼 모두 죄인과 같았다. 이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국가의 운명과 사회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방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리더십을 정립하는 것이 한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제시문은 세 가지 서로 다른 리더십의 유형을 보여준다. 제시문 (가)는 왕도정치(王道政治)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내용이다. 왕도정치는 동양의 이상적인 정치 철학으로 도덕에 의한 교화를 정치의 기본으로 삼는다. 지도자는 몸을 수양하고 덕(德)을 수양해 태평천하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제시문 (나)는 현실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군주는 두려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아야 한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둘을 모두 누리기는 어려우므로,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면 ‘사랑’을 포기하고 두려움의 존재가 되라고 권고하고 있다.
제시문 (다)는 과학 기술에 의한 통치로 기술 유토피아의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과학 기술에 의한 통치는 낭비와 실업, 배고픔과 빈곤을 추방해 궁핍의 시대를 풍요의 시대로 바꾸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적 의미에서 바람직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현대 사회는 지식 기반의 정보화 사회이며 다원화된 사회다. 따라서 오늘날 필요한 지도자는 왕도정치의 이상주의적 지도자나, 마키아벨리의 독재적이면서 강력한 지도자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 무조건적인 독재 권력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분명 소외된 국민을 낳을 것이고, 결국 국민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덕에 의한 이상적인 지도자가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덕에 의한 이상적인 지도자는 적어도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키지는 않겠지만,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능력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 경쟁력 제고와 경제를 살리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시문 (다)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기술 전문적 지식과 국민의 합의를 바탕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국정을 운영하고, 아울러 도덕적 청렴도 함께 갖춘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현대사회의 바람직한 리더십은 도덕성이나 강력한 국정운영 능력, 전문성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성립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리더십을 고루 겸비한 지도자만이 다원화된 무한 경쟁 시대에 국민을 결집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여 사회를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기출문제
아래 문장을 읽고 글의 요지가 무엇인지 생각하시오.(서강대 2003 수시1학기)
What makes an act excellent (virtuous)? Aristotle admitted that this is a difficult question, which cannot be answered by any exact rule. Excellence is more than a matter of knowledge or science; it is an art that each individual must develop through practice. He advised that, in general, excellence in a particular faculty lies somewhere between extremes. In battle, a warrior should exhibit neither a deficiency of nerve (cowardice) nor an excess (foolhardiness). Rather, he should strike a happy medium (courage). A work of sculpture or architecture should be judged by asking whether it might be improved, either by taking something away or by adding something to it. If it cannot, the work is “just right”-excellent.
Aristotle warned that his advice did not apply to things that are good or bad in themselves. Truth and beauty, for example, should be sought in the highest degree, while murder, theft, and adultery are evil in any degree. But in most affairs each person should find, through trial and self-criticism, the desired mean between extremes. This insistence on moderation has come to be known as the philosophy of the Golden Mean. It does not signify a pale average, or mediocre, standard; rather, it calls for the best performance of mind and body working together in harmony.
‘문제 해결을 위한 Tip’
●영문 해석
사람들의 행동을 뛰어나게(덕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은 어려운 문제라고 시인했으며 그것이 정확한 규칙에 따라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뛰어남이란 지식 혹은 과학을 넘어선 것이다. 그것은 각각의 개인이 실천을 통하여 발전시켜야 할 예술과 같은 것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특별한 능력 속에 있는 탁월함은 극단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고 충고했다.
전쟁에서 전사는 결코 긴장이 없음(겁)을 보이거나 겁을 과도하게 보이면(바보 같음) 안 된다. 오히려 그는 행복한 중간(용기)을 선택해야 한다. 조각가 혹은 건축가는 그것이 향상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의하여 판단되거나 작품에 뭔가를 더하거나 빼는 과정을 통하여 평가된다. 만약에 그렇게 향상되지 않는다면 그 작품은 단지 괜찮거나 훌륭한 정도일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충고는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서 진실과 아름다움은 높은 단계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반면에 살인, 강도, 간통 등은 어떠한 단계에서도 악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각각 시행착오와 자기비판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극단의 중간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중용에 대한 주장은 ‘황금과 같은 중용의 철학’으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것은 창백한 평균, 보통의 것 혹은 기준 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어 함께 작용하는 최상의 실행을 요구한다.
‘예시 답안’
첫째 단락은 덕의 정의에 관한 설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넘치거나 지나치게 모자라는 것은 덕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강조한다. 둘째 단락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이란 창백한 기준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조화를 통하여 이러한 덕목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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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란 어떤 행위를 할 때 마땅히 지켜야 하는 규범이다. 덕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감정을 잘 다스리고 관리해야 한다. 즉 감정이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중간 상태를 잘 유지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중간은 수학에서 말하는 평균과 같은 것이 아니다. 마땅한 때에 마땅한 일에 대하여 마땅한 동기와 태도로 행동하는 것이 바로 중용이며 참된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