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역대 대통령 국가경영 리더십 재평가한 김충남 박사

“이승만 안보, 박정희 경제, 전두환 정치가 국가발전 초석”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06-05-16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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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존경하는 대통령이 하나도 없는 불행한 나라에 살고 있다. 하지만 세계 11대 경제대국을 이뤄냈고 민주화를 쟁취했다. 김충남 박사는 이런 괴리가 대통령에 대한 평가기준이 잘못된 데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그가 새롭게 조명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국가경영 리더십에 대해 들어보자.
    역대 대통령 국가경영 리더십 재평가한 김충남 박사
    지금까지 우리에게 대통령이란 비판과 폄훼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독재자’나 ‘무능한 지도자’로, 뒤에 들어선 정권에 의해 ‘청산돼야 할 잔재’로 단죄되었다. 국민적 존경은 커녕 ‘국가경영을 제대로 했다’고 평가받는 대통령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그러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같은 글로벌 기업을 일군 경영인이나 케네디 같은 선진국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다룬 책은 쏟아져 나와도 우리 대통령들의 리더십을 다룬 책은 보기 드물다. 독재자나 실패한 지도자에겐 배울 게 없을 테니까.

    그런데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국가경영 능력이 없었다면 광복 60년 만에 세계 11대 경제대국을 건설하고 민주주의를 성숙시킨 배경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내놓은 책이 최근 출간돼 눈길을 끈다. 이승만에서 김대중까지 역대 대통령 6명의 국가경영과 리더십을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한 ‘대통령과 국가경영’(서울대 출판부 간)이 그것.

    미국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연구원으로 있는 저자 김충남(金忠男·66) 박사는 청와대에서 9년여 동안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3명의 대통령을 보좌했다. 1992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통령학을 다룬 책 ‘성공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을 펴내기도 했다.

    책 출간에 맞춰 열흘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그를 4월1일 만났다. 순박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천상 책상물림 학자 타입이라 험난한 청와대 생활을 어떻게 그리 오랫동안 했을까 싶었는데, 그는 ‘한술 더 떠’ 자신이 대령으로 예편한 육사 21기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등록금도 없는데다 먹여주고 재워주니까 육사를 선택했죠. 그런데 정책적으로 생도들 중에서 교수 재목감을 뽑았는데, 운 좋게 거기에 선발돼 육사 졸업 후 서울대에 편입했어요. 국비로 서울대 석사, 미국 미네소타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육사 교수로 복무했죠. 그래서 말만 대령이지 실제 군 생활 기간은 학사장교보다도 짧았어요.”

    그가 청와대에 처음 들어간 것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인 1984년 1월. 그후 노태우 대통령 임기 중반인 1990년 여름까지 6년6개월 동안 사정비서관과 정무비서관으로 일했다. 청와대를 나온 후에는 1년여 동안 미국 미네소타대 객원교수로 있었다.

    “청와대 참모의 임무는 대통령이 국가경영을 잘하도록 도와주는 건데, 그 일을 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자료가 국내에는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미국에 있는 동안 미국 대통령들은 어떻게 국가경영을 했는지 알아봤어요. 미국도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격동의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도움이 될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걸 기초로 1992년 ‘성공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을 썼죠.”

    이 책이 인연이 되어 김영삼 대통령의 부름을 받았고, 1994년 1월부터 1996년 여름까지 2년6개월여 동안 다시 청와대에서 일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의 국정운영에 실망해 아내의 병을 핑계 삼아 사표를 낸 후 하와이로 건너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9년째 동서문화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동서문화센터는 하와이대에 있지만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아시아태평양지역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기관입니다. 덕분에 좋은 여건에서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국가경영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죠.”

    처음부터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국가경영 리더십을 연구할 생각은 아니었다.

    젊은 세대 자학사관 팽배

    “하와이대에서 북한 전문가인 서대숙 교수를 만났어요. 하루는 둘이 함께 밥을 먹는데 서 교수가 ‘남한엔 신통한 대통령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남한은 신통한 지도자가 없는데도 경제가 좋고, 북한은 신통한 지도자가 있는데도 국민이 밥도 못 먹느냐’고 반문했죠.”

    또한 도서관에 세계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다룬 책이 있길래 우리나라 지도자로는 누가 있는지 살펴봤더니 김씨가 두 명 있더라고 한다.

    “두 김씨라고 하면 흔히 김영삼, 김대중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김일성, 김정일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출판사에 선정기준이 뭔지 물었더니 기본적으로 그 나라의 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북한 지도자에 대한 자료는 있는데 우리나라 건 아예 없으니까 수록할 수 없었던 거죠.”

    그는 외국에 머물면서 한국이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르고 세계 11대 경제대국으로 성공한 나라임에도 외국 사람들은 여전히 ‘분단국가’ ‘독재국가’ ‘전쟁으로 피폐한 나라’라는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데 놀랐다고 한다.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우리부터 우리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역사교육부터 잘못돼 있어요. 국사 시간에 현대사가 없잖아요. 역사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연속인데 현재가 실종된 거죠. 현대사를 다룬 책들은 대부분 독재와 반민주라는 부정적인 시각만 부각시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극단적인 말이 돌 정도로 자학사관(自虐史觀)이 뿌리박혀 있어요.”

    이들 젊은 세대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건국됐고,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했는지를 모른다.

    “젊은이들은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잘 산 줄 알아요. 젊은 세대에게 우리가 광복과 전쟁을 거쳐 오늘날의 부를 이루기까지 어떤 과정을 걸어왔는지, 과거 대통령들은 왜 그런 길을 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외국에도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독립한 제3세계 국가가 100개쯤 돼요. 지난해 한 외국 언론에서 ‘국가실패지수’라는 걸 측정했는데 북한 소말리아 등 20개국은 완전히 실패한 나라로, 20개국은 실패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20개국은 불안정한 나라로 나왔어요. 우리만큼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나라가 없어요.”

    개도국 지도자의 평가기준

    세계가 놀랄 만한 뛰어난 성과를 이룬 역대 대통령들의 국가경영 리더십을 제대로 분석하고 평가한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5년 동안 이 연구에만 몰두했다. 기존 연구가 거의 없었기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는 한국 대통령은 우리의 역사 발전과정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가령 1950년대를 평가하려면 그 시대 한국의 관점에서 봐야지, 안락한 서구의 소파에 앉아서 보면 안 돼요. 예를 들어 드라마 ‘영웅시대’를 보면 정주영씨가 전쟁 중에 우격다짐으로 다리 놓는 장면이 나와요. 지금 시각에서 보면 미친 짓이지만 그 시대는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었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안보에 90%의 노력을 집중했는데 ‘독재냐 아니냐’만 따지면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올 수 없죠.”

    -일반적인 기준으로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건가요.

    “민주냐 비민주냐 하는 선진국 기준으로 개발도상국 지도자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요. 개도국 대통령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해야 합니다. 지도자가 선견지명을 가지고 국민을 끌고 가는 목적지향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돼요. 개도국 지도자는 그 시대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극복했느냐 못 했느냐를 가지고 평가해야 합니다.”

    역대 대통령 국가경영 리더십 재평가한 김충남 박사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왼쪽부터)

    -한국이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발전해왔다는 말씀인데, 역사는 민중이 만들어간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물론 국민의 피와 땀과 노력이 국가발전을 이룩했습니다. 그런데 남한과 북한은 똑같은 민족인데도 지도자가 다르니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어요. 후진국일수록 지도자가 중요해요. 구멍가게도 주인이 운영을 잘못하면 실패하듯이 국가운영도 잘못하면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됩니다. 예를 들어 김영삼 대통령은 신한국을 창조하고 세계화한다고 했는데, 그 거창한 목표를 어떻게 5년 안에 실현하겠어요. 그렇게 뜬구름만 잡으니까 안 됐던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정통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쿠데타를 옹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하지만 당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장면 정부의 무능력으로 한국이 공산화한 걸로 봤어요. 1959년 쿠바가 공산화하는 등 제3세계가 줄지어 공산화하던 시기였거든요. 역사적으로 정변과 혁명은 수차례 있는 일이에요. 남미처럼 쿠데타 이후 경제를 망쳤다면 단죄를 받아야 하지만 역사를 발전시켰다면 긍정적인 면도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두환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주항쟁은 매우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군대가 시민과 충돌해 사상자를 낸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시 한국은 박정희라는 카리스마 정권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었다는 겁니다. 전 대통령은 그 위기를 잘 극복했고 박 대통령이 미완으로 남긴 한강의 기적을 완성했어요. 1977년 수출액이 100억달러였던 게 지금은 3000억달러에 이릅니다. 선진국 도약의 기틀을 다진 부분은 인정해야죠.”

    절차적 정통성 vs 성과적 정통성

    -성공한 독재는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 링컨은 훨씬 더 강력한 독재를 했어요. 정치적 반대자 수천명을 구속하고, 언론을 탄압하고, 정치인을 축출했어요. 제1차 세계대전 때 윌슨 대통령과 제2차 세계대전 때 루스벨트 대통령도 그랬어요. 이들은 그 같은 조치가 평상시에는 헌법에 위배될지 몰라도 위기 때에는 나라를 보위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봤습니다. 국민도 이를 수용했고요. 지금은 모두 영웅적인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지요.

    비스마르크도 유럽의 후진국가였던 독일을 발전시키기 위해 독재를 했어요. 일본도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이뤘고요. 이들은 자기 나라에서 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받지, 독재자로 비난받지 않아요. 정통성엔 절차적 정통성과 성과를 통한 정통성이 있어요. 지금 많은 국민이 박정희의 정통성을 인정하잖아요. 오히려 뒤에 나온 대통령들일수록 절차적 정통성은 있을지 몰라도 성과적 정통성은 떨어져요.”

    -대통령들을 분석해보니 어떤 공통점이 있던가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분들이라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깊이 이해했어요. 그래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셨죠. 또한 노태우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극적인 성격이었어요. 일 추진 의지가 뛰어난 거죠.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제3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성공할 뛰어난 지도자예요. 무엇보다 우리 대통령들은 자주적이었어요. 약소국이지만 다른 나라에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나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분들이죠.”

    그는 대통령의 국가경영 성과를 평가할 때 먼저 국가의 생존을 보장하는 안보를 튼튼히 다졌는가, 그 바탕 위에서 경제를 살렸는가를 살핀 다음 민주주의 실현을 이뤘는가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 국가경영 리더십 재평가한 김충남 박사

    국가 건설 단계의 지도자 유형

    “이승만 대통령의 최대 치적은 안보예요. 베트남만 해도 평화조약체결 2년 만에 공산화됐잖아요. 한미방위조약이 없었다면 박정희의 경제기적도 없었을 겁니다. 언제 공산화할지 모르는 우리나라에 누가 투자를 하겠어요. 정부에서도 국방비 부담이 너무 커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한 것만으로도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분단을 고착화하고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무조건적 통일을 주장한 김구 선생을 우상시하고 이 대통령은 몹쓸 인간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이 대통령이 반탁(反託)을 주장한 것은 소련의 속셈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소련이 들어간 나라치고 공산화되지 않은 나라가 없어요. 소련 지배하에 들어가면 다시 자유를 잃는다고 판단한 거죠. 친일파 이야기를 하는데, 당시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공산주의를 막는 게 중요한데 친일파를 빼고 나면 공산주의자만 남는 상황이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봐요.

    이 대통령의 또 다른 공로가 교육입니다. 구한말 나라가 망한 게 국민이 몽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의무교육을 실시했어요. 1945년 우리나라 문맹률이 70%가 넘었고, 중등교육 이상을 받은 사람이 2만6000명에 불과했습니다. 인재가 있을 리 없었죠. 그래서 학교를 짓고 교사 수만명을 양성했어요. 전쟁 중에도 천막을 치고 공부하게 했고요. 그 결과 임기 말에는 국민의 95%가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됐어요. 교육혁명이죠. 교육으로 나라발전의 기초를 다진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경영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이 대통령에 비하면 약점이 많아요. 쿠데타로 집권하고, 삼선개헌과 유신개헌을 하고…. 하지만 종합해보면 세계 최고의 국가지도자라고 봅니다. 당시 한국은 자본이 없어 빈곤의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재일동포 수만명이 북한으로 갈 만큼 북한이 더 잘살았어요. 그래서 경제발전을 하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도 없고 안보도 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가 쓴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책을 보면 당시 한국의 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어요.

    그는 또 효율적인 국정운영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이전에는 청와대 비서실의 기능이 의전담당 정도였어요. 그가 처음으로 기능참모제도를 만들어 청와대가 사령탑이 되어 국정운영을 하게 된 거예요. 제가 보기에 그의 과오는 본인이 정치를 쇄신하겠다고 했는데 거기에 실패했다는 거예요. 유신선언 이후 한번도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으니까요.”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는 경제발전 업적을 높게 평가했더군요. 하지만 당시 높은 경제성장률은 3저(低) 호황이라는 외부적 요인 덕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경제과외수업을 받는 등 노력을 많이 했어요.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물가안정인데, 박 대통령도 물가를 잡지 못했지만 전 대통령은 성공했어요. 이른바 3저 호황기는 1985∼86년인데, 그 시기 다른 나라들도 모두 호황을 누렸던 것은 아니에요. 당시 우리의 성장률은 세계 1등이었어요. 또한 개방과 자율화를 통해 경제체질을 튼튼하게 만들었고, 품질 경쟁력 향상도 이때 중점적으로 이뤄졌고요. 박 대통령도 7년 단임이었으면 그만큼 못했다고 봐요. 이후 대통령들도 그렇게 못했어요. 정통성과는 별개로 국가경영은 잘했다고 생각해요.”

    -민주화 측면에서는 점수를 얻기 힘들지 않을까요.

    “캐나다의 한 박사가 제 책을 보고 e메일을 보냈어요. 자기는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전 대통령이 제일 잘했다고 생각한대요.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도 성장시키고, 최초로 정권을 이양하는 민주화도 했으니까요. 흔히 군사독재가 6월 민주화운동을 불러왔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같은 시기 필리핀에도 혁명이 일어났는데 거기는 경제실패에서 온 혁명이었고 우리는 경제성공에서 온 혁명이었어요. 먹고 살 만큼 됐으니 민주화하자는 것이었죠. 전두환을 새롭게 볼 필요가 있어요. 물론 본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지만.”

    가장 민주적인 대통령은 노태우

    -‘성공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에서 노태우 대통령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술했더군요.

    “노 대통령이 추진한 북방정책은 당시 세계 조류의 영향도 있었지만 과감하게 잘한 거예요. 외교지평을 넓혔고, 특히 중국과의 물꼬를 터 지금 우리 경제의 기틀을 다졌죠. 북방정책이 있었기에 세계화정책과 햇볕정책이 가능했다고 봐요.

    저는 노 대통령이 우리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대통령이라고 봐요. 민주주의를 이뤄냈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참고 민주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세상은 그런 신사를 용납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했듯이 해외 갔다 오면서 ‘국내정치 담당하는 대통령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푸념할 정도였죠. 여소야대인데다 3김이 대통령후보 경쟁에만 몰두하니까 힘을 발휘할 수 없었거든요. 경제적으로는 당시 경제정책이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가는 등 일관성을 가지지는 못했죠.”

    -김영삼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어땠습니까.

    “외환위기는 세계적인 경제위기 때문에 닥친 것이지 꼭 그분의 책임은 아닌데 모든 책임을 그분이 다 짊어져 안타까운 부분이 있어요. 운도 없는 편이었죠. 남북정상회담도 날짜까지 잡은 상태에서 김일성이 죽었으니…. 그분의 문제는 민주투사의 연장선상에서 개혁을 하려 했다는 거예요. 계속 ‘썩은 사과를 골라내야 한다’며 사정(司正)을 했는데, 사정과 국가경영은 다른 문제거든요.

    경제정책에서도 노태우 정권 말에 인플레이션이 있었기 때문에 금리를 낮추고 안정정책을 했어야 하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돈을 막 풀었어요. 그게 치명적이었죠. 임기 5년 동안 경제장관이 7명이나 바뀌는 등 경제정책의 비전도 없었고요.”

    -세계화 시대를 열었다는 건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말로는 세계화를 외쳤지만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어요. 인재 배치에서도 실패했고요. 게다가 청렴정치를 한다고 했는데 각종 비리가 터지니까 국민이 ‘이게 뭐냐’며 등을 돌렸죠. 그분은 애국심과 열정은 있었지만 좀더 책임감을 가지고 국가경영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김대중 대통령의 국가경영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난세는 영웅을 만드는 법이죠. 외환위기가 그를 선택하게 만들었고, 국민적인 합의가 있었기에 경제위기를 빨리 극복했어요. 굉장한 성과죠. 너무 빨리 극복하면서 샴페인을 일찍 터트린 게 문제였지만.

    노벨상까지 받은 햇볕정책도 잘한 일이에요. 문제는 너무 성급하게 추진하면서 부작용이 생겼다는 거예요. 역사에 박정희보다 더 위대한 지도자로 기록되기를 바랐기에 욕심을 부렸어요. 박 대통령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한 것처럼 그런 걸 의식하지 않고 문제를 풀려는 마음으로 일했어야 했는데 그게 아쉽죠.”

    - 김영삼 대통령보다는 후한 점수를 주시는군요.

    “제가 김영삼 대통령을 직접 모셨으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그럴 수 없는 일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이런 책을 쓸 수가 없어요.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약점은 있어요. 호남이 그때껏 푸대접을 받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요직에 앉혔어요. 지역 안배가 되어서 함께 발전해야 하는데 독식을 하면서 부패가 심각했어요. 인사등용은 김영삼 정권보다 나았지만 특정지역에 편중된 것이 치명적이었죠.”

    위험천만한 개인적 리더십

    -후임 대통령으로 갈수록 평가가 인색해집니다.

    “5년 단임이라는 어려움이 있는데다 국민 기대에 부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에요. 임기가 짧으면 처음부터 실현가능한 계획을 세워야 했는데 너무 큰 계획을 세웠어요. 정책 목표도 뚜렷하지 않았고요.

    더 큰 문제는 임기 동안 인사교체가 심했어요. 클린턴 대통령은 8년 동안 교육부 장관이 1명이었는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재임 10년 동안 12명이 바뀌었어요. 세계에서 장관 재임기간이 가장 짧은 나라일 거예요. 지방선거나 국회의원선거에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들을 차출하면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 나갈 수가 없어요. 청와대가 정치지망생의 경력관리 장소여서는 안 됩니다. 그게 제가 이후 대통령들을 짜게 평가하는 이유예요.

    역대 대통령 국가경영 리더십 재평가한 김충남 박사
    또한 노태우 대통령까지는 국가경영이 시스템 리더십에 의해 움직였는데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시스템보다는 개인적 리더십에 의해, 사조직에 의해 나라를 끌어갔어요. 그러면서 설익은 정책만 펼치다 포기했던 거죠. 국민의 지지를 못 받는 건 당연하고요. 개인적 리더십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 복잡한 시대에 무슨 수로 대통령 혼자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겠어요. 현대는 영웅의 시대가 아니라 조직의 시대예요. 일할 조직을 만들고 거기에 꼭 맞는 사람을 배치해서 일을 시켜야 합니다.”

    -참모의 기능이 중요하겠군요.

    “제가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실망한 게 그가 일을 못했다는 게 아니라 참모들의 행태에 실망한 거예요. 참모들이 책임의식이 없어요.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도 그런 참모들이 있었어요. 역사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자신이 추진한 일이 잘못되어도 대통령이 비난받고 책임을 지지, 자기가 지는 게 아니니까요.”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경영은 어떻다고 봅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개인적 리더십이 강한데다 이데올로기적인 요소까지 더해져 있어요. 어느 기자가 노 대통령에게 어떤 인재를 등용할 거냐고 물으니까 ‘인생 역정이 나랑 같은 사람을 쓰겠다’고 했대요. 참 무서운 일이에요. 국정운영이 인생역정하고 뭐가 연결되는지 모르겠어요.”

    대통령선거≠인기투표

    -차기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완전한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어요. 경쟁력이 없으면 망할 수밖에 없어요. 교육만 해도 지금 서울대 대학원이 정원을 채우기 힘들 정도로 위기예요. 기술경쟁력도 부족하고요. 전반적인 사회 인프라가 약해요. 그걸 튼튼히 하는 게 차기 대통령의 과제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전 대통령들처럼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기 보다는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임기 동안 선거나 인기에 구애하지 않고 거기에만 매진했으면 좋겠어요. 처칠이 ‘어려운 시대에는 인기 없는 말을 하고 인기 없는 정책을 펼치는 사람만이 지도자 자격이 있다’고 했어요.

    우리는 대통령을 그가 나라를 잘 끌고 갈지 어떨지도 모른 채 인기투표로 뽑잖아요. 국가경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뽑고 나서 무조건 대통령을 비난하기 전에 스스로 국가경영에 책임의식을 갖고 지도자를 뽑기 위해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그는 역대 대통령들에 대해 ‘잘한 사람, 못한 사람’ 편을 가르기보다는 국정운영을 잘한 대통령을 인정하고, 다음 대통령은 그 토대 위에 무엇을 했는지를 바라봐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국가건설의 3대 목표가 안보, 경제, 정치인데 우리는 그 과정을 졸업했어요. 역대 대통령들이 이룬 성과 위에 오늘이 있는 겁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안보,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의 경제성장, 노태우의 북방정책,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도 무엇을 위해 노력했는지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역대 대통령들을 부끄러운 대통령으로 만들기보다는 자랑스러운 대통령으로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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