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대, 그리고 가출
종종 피의자를 만나 얘기를 들어 보면 일종의 나비효과를 보는 것이 아닌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어릴 적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정신적 혹은 신체적 콤플렉스 때문에 유년기를 외롭게 보낸 사람들이 훗날 여러 명을 살인하는 범죄자가 되곤 하기 때문이다.
30대 초반의 Y씨. 그를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에 조용필의 노래 가사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가 떠올랐다. 그의 삶은 안타까웠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나는 범죄를 동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범죄의 동기는 동정한다. 이런 점에서 Y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Y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사망해 줄곧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늘 일에 바빠 가정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버지는 새 아내가 아들을 어떻게 학대하는지 알지 못했다.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어머니가 계모인 줄 모르고 자란 Y는 중학교에 입학한 뒤 사실을 알게 됐다. 어머니는 중학교 등록금을 내주지 않았다. Y는 학교 서무과 직원에게 불려가 뺨을 맞았고, 연유를 알아본 끝에 어머니가 계모라는 사실을 알았다. 예민한 감성은 상처받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도 나왔다.
그러나 중학교 중퇴자 신분으로 나선 사회는 그가 살아가기에 만만치 않았다. 다방 청소, 껌팔이, 공사장 막일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더러 아버지에게 붙잡혀 집으로 오기도 했으나 계모 슬하에선 하루를 견디기 힘들었다. 다시 가출했다.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던 Y는 묵묵히 일하는 것으로 자신의 처지를 달랬다. 지방의 한 식당에서 일하게 됐는데 성실한 그를 위해 주인이 월급 통장을 만들어 꼬박꼬박 급여를 넣어주기도 했다. 친구도 없고, 그렇다고 돈 쓸 줄도 몰랐던 Y는 돈 모으는 재미로 혹독한 삶을 견뎌냈다.
돈이 어느 정도 모이고, 나이가 들자 서울로 직장을 옮겼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꽤 많은 돈을 모았다. 그에겐 집과 직장이 인생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그는 우연히 초등학교 여자동창생 K를 만났다. 정을 못 받고 자란 사람이 낯선 서울로 올라와 살다가 고향 친구를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서로 안부를 묻고, 고향 얘기를 하다 보니 정감이 남달랐다. 그 뒤로 둘은 자주 만났고,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그녀를 보내기 싫다”
K를 만나면서 그는 새로운 삶의 기쁨을 맛보았다. 허기진 사람이 허겁지겁 밥을 먹으면 체하듯, 사랑을 모르고 자란 Y는 여자에게 쉽게, 깊이 빠져들었다. Y는 곧 청혼했고, K도 ‘돈 많고 성실한’ 그를 마다하지 않았다. K의 부모에게도 결혼 승낙을 받았다. 처음 맛본 행복감으로 그는 들떠 있었다.
순조롭던 둘 사이는 뜻하지 않은 걸림돌로 휘청거렸다. 결혼을 승낙했던 K의 어머니가 돌연 태도를 바꾼 것이다. 두 사람의 궁합을 보니 ‘결혼하면 나중에 헤어진다’고 나왔다는 것. 어머니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던 K는 이런 사실을 Y에게 털어놓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