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밤이에요.”
이 한마디를 기억하시죠? 1992년 대종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장미희가 수상소감으로 꺼낸 첫마디입니다. 이 멋진 한마디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장미희를 기억하게 하는 대표적인 말입니다. 자기도취적인 듯하면서도 로맨틱한 수상소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장미희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수상소감이란 건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말해버리고 마는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나’를 알리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종의 ‘쌍방향 통행’이죠. 결국 멋진 수상소감은 위인들의 어떤 한마디보다 듣는 이의 마음속에 강력한 감동의 자장(磁場)을 형성합니다.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유수의 가요제, 영화제, 연기상 시상식 무대에 오른 연예인이 들려준 수상소감은 천편일률적이었습니다.
“저를 캐스팅해주신 PD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어깨가 한층 무거워집니다. 더 잘하라는 뜻으로 알고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시대엔 겸손이 최고의 미덕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중은 이런 연예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죠.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은 빠짐없이 엔터테인먼트의 재료가 되고, 대중은 평범한 수상소감에 식상하기 시작했죠. 물론 지금도 스타들의 수상소감 중 ‘감사’ 인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고마움을 표시하는 대상이 감독이나 PD에서 소속 연예기획사 사장으로 옮겨온 차이는 있지만 말입니다. 가장 짜증나는 수상소감은 아마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일 것입니다. 세상에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분명한 건, 이제 연예인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들이 수상소감을 값비싼 ‘상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소감발표를 하나의 완벽한 이벤트로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최근 국내외 각종 시상식에서 나온 인상적인 수상소감들을 분석해보고, 빛나는 수상소감들의 공통점을 살펴보겠습니다.
# ‘웅변’ 아닌 ‘귓속말’을 하라!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웅변형’ 소감보다는 ‘귓속말형’ 소감이 더 각광받는다는 점입니다. 뭔가 크고 근사한 말을 하려는 듯한 ‘웅변’보다는 수상자 자신의 매우 개인적인 얘기를 살짝 들려주는 ‘귓속말’ 같은 소감이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거죠. 지난해 청룡영화상에서 ‘너는 내 운명’이라는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황정민의 수상소감은 이랬습니다.
“사람들에게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나를 소개합니다. 60여 명의 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나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죠. 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죄송합니다. 트로피의 여자 발가락 몇 개만 떼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항상 제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하고, 현장에서 열심히 할 수 있게 해준 전도연씨에게 감사드립니다. (전도연을 바라보며) 너랑 같이 연기하게 된 건 나에게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 마지막으로 ‘황정민의 운명’인 집사람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간파해야 합니다. 황정민은 무슨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뉘앙스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죠. 이런 수상소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상대의 말을 몰래 엿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마음을 훔쳐버리는 효과가 있죠. 황정민의 이 수상소감은 굉장한 화제를 뿌리며 당장 인터넷 검색순위 1위에 올랐습니다(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최고의 문화권력은 ‘인터넷 검색순위 1위’라는 타이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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