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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몸 공부, 마음 이야기 ⑭

지렁이, 두더지, 미생물은 자연의 쟁기…그들이 있어 땅은 이불처럼 폭신폭신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지렁이, 두더지, 미생물은 자연의 쟁기…그들이 있어 땅은 이불처럼 폭신폭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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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두더지, 미생물은  자연의 쟁기…그들이  있어  땅은  이불처럼  폭신폭신
여름이나 가을 김매기는 곡식에 따라, 풀에 따라 다르다. 곡식이 왕성하게 자라면 그 아래 작은 풀은 힘을 못 쓴다. 이렇게 한 해를 지나고 나면 풀 덕에 부쩍 철이 드는 느낌이다. 나서야 할 때, 지켜볼 때, 물러날 때를 안다는 것. 이거야말로 모든 자신감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그 다음 생각할 문제는 부드러운 흙과 거름이다. 살아 있는 흙은 부드럽다. 농사를 짓지 않고 수십년 묵혀둔 흙은 그 속을 파보면 그 자체로 부드럽다. 쟁기로 땅을 깊이 갈아봐야 20cm 남짓 들어간다. 그러나 자연이 스스로 하는 땅갈이는 이보다 깊게 이루어진다. 곡식이든 풀이든 그 뿌리를 다양한 깊이로 뻗어내린다. 뿌리를 타고 물과 공기가 스민다. 그리고 한해살이풀의 뿌리는 이듬해 거름으로 바뀐다.

만만치 않은 후쿠오카 자연농법

이런 과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산이지 싶다. 수백년 그냥 내버려둔 산 속 나무 아래 흙. 그곳에는 낙엽이 쌓이고 썩어간다. 켜켜이 높이 쌓이는 게 아니라 다져진다. 맨 아래는 흙과 경계가 없다. 흙과 만나는 곳은 미생물이 왕성하게 활동한다. 하얗고 노란 곰팡이가 핀다. 부엽토 두께는 기껏 몇cm 정도. 이 부엽토는 햇볕을 가려 흙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그 아래는 두더지나 쥐구멍이 나 있다. 이 흙은 거뭇거뭇한 빛을 띤다. 냄새도 퀴퀴하지 않고, 독특한 향기다.

어려운 점은 밭을 이렇게 만들어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후쿠오카가 말하는 자연농법은 40년에 걸친 ‘노력과 관찰’ 끝에 얻은 결과물이다. 자연농법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만일 오래도록 비료와 농약을 치며 농사 짓던 땅이라면 땅속에 유기물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땅에 유기물 피복만으로 농사를 짓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땅이란 참 넓고, 깊다. 웬만큼 거름을 넣어도 만족할 만한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땅이란 하루아침에 살아나는 게 아니다. 그러니 예비단계로 기계 힘을 빌린다. 거친 유기물(산에 검불, 볏짚, 왕겨 따위)과 잘 삭은 거름(퇴비, 왕겨 훈탄, 발효 시킨 쌀겨와 깻묵 따위)을 넣고 흙과 잘 섞어준다. 이렇게 하다가 어느 정도 땅심이 살아나면 그때부터 무경운으로 들어간다.

그 다음부터도 흙 위에 유기물을 계속 덮어준다. 풀도 뽑아 덮어준다. 사람이 먹는 곡식을 제외한 농사 부산물은 그대로 다시 깐다. 옥수수라면 옥수수 열매를 따고는 겉껍질까지 그대로 깔아둔다. 이렇게 하니 옥수수가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분 대부분이 땅에 남아 있게 된다. 그리고 형편이 닿는 대로 여러 가지 유기물을 덮어준다. 산에 검불, 밭 둘레 풀, 냇가에 갈대, 볏짚이나 왕겨도 깔아준다.

해가 갈수록 밭은 놀랍게 달라진다. 지렁이와 두더지가 사는 건 물론이고, 온갖 작은 벌레들과 미생물이 제 세상 만난 듯 살아간다. 땅이 살아나니 발로 밟은 느낌이 폭신폭신한 이불처럼 탄력이 있다. 밭에 가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진다. 밭에서 자라는 풀도 차츰 바뀌는 것 같다. 우리 밭에는 바랭이가 적어지고 별꽃이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기본 준비가 되면 웬만한 곡식은 심기만 해도 잘 자란다. 그러고도 좀더 많은 거름을 필요로 하는 토마토나 배추 같은 작물엔 한 삽씩 거름을 넣기도 하고, 액비(液肥, 물거름)를 웃거름으로 주기도 한다.

‘땅속 과일’ 야콘을 한입 베어 물면…

흙에 유기물이 놓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지렁이다. 참 신기하다. 어디서 오는지, 콩깍지 하나만 땅에 떨어져 있어도 지렁이가 생긴다. 지렁이도 여러 가지다. 굵기는 연필만하고, 길이는 한 자가량 되는 지렁이도 생긴다. 이놈들이 땅 위 아래를 들락날락하면 땅이 막 움직이는 것 같다. 지렁이 살갗이 햇볕에 반사라도 되면 무지개 빛을 띠면서 묘한 신비감을 준다.

지렁이는 식성이 엄청나게 좋고 똥도 많이 싼다. 지렁이 똥은 거름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지렁이 학자들에 따르면 어떤 지렁이는 땅속을 2m 이상 파고 들어간다고 한다. 아무리 기계가 좋아진다 해도 이렇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지렁이는 자기 생명으로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한다. 그 덕에 흙은 부드럽고 기름지다. 지렁이가 다닌 구멍은 물과 공기를 잘 스미게 해준다. 사람 눈에는 작고 연약해 보이는 지렁이가 엄청난 일을 해주는 셈이다. 지렁이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힘은 신비롭기만 하다. 농사꾼 처지에서 이보다 더 고마운 동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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