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나다를까 그는 당선되자마자 ‘폭탄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임기 3년간 회장 월급을 단 한푼도 받지 않고, 대신 이 돈으로 회원들에 대한 법률지원기금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이는 정부의 의료비 부당청구 실사에 법적으로 맞서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또한 ‘항생제 과다처방 병원을 공개하라’며 행정소송을 낸 시민단체에 대해 형사·민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혀 거듭 주변을 놀라게 했다.
4월4일 대한의사협회 사무실 인근의 레스토랑에서 장 회장을 인터뷰했다. 그는 “회장 임기가 5월1일부터 시작되는데, 협회 안에서 인터뷰를 하면 현 회장과 직원들이 불편할 것”이라고 했다.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그는 깔끔한 검은색 정장차림이었는데, 모양새가 독특했다. 상의는 국내에선 보기 드문 디자인의 더블재킷이었다.
-양복이 특이합니다.
“같은 옷을 입어도 뭔가 특이한 게 좋지 않습니까. 주위에서 패셔너블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공청회 같은 데 가면 여의사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이번 선거에서도 여의사들이 표를 많이 줬죠, 허허. 기성복보다는 맞춤옷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리 비싸진 않습니다. 뭔가 변화한다는 것은 좋은 것 아닙니까. 의사협회도 앞으로 많이 변할 겁니다.”
항생제 처방은 의사의 판단영역
-강성 이미지를 풍기는데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법을 어긴 약국과 한의원을 고발하면서 그런 이미지가 생긴 것 같은데, 저를 깊게 사귄 분들은 제가 얼마나 ‘로맨티스트’인지 잘 압니다. 약사나 한의사가 자기 직역(職域)에서 본연의 역할만 한다면 제가 강성으로 보일 리 없지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의 로맨티스트라고 봐주면 안 될까요? 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한 일인데 왜 강성으로 비쳐져야 하는지….”
-최근 정부가 항생제 과다처방 병·의원을 공개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참여연대가 정부를 상대로 항생제 사용정보를 공개하라고 행정소송을 냈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한마디로 초등학생 수준의 발상이지요. 어느 병·의원이 항생제를 많이 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얼마나 적정하게 썼느냐, 즉 정말 필요한 환자에게 썼느냐가 중요하지요. 항생제 투여의 적정성은 환자의 상태나 개인별 특수성에 따라 다르고 이는 전문가인 의사가 결정할 일입니다. 정부는 이번 발표를 하면서 감염학회나 의학회 등 전문가 집단에 자문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2차 감염성 환자가 많아 항생제를 쓸 수밖에 없는 병·의원은 무조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바이러스성 감기엔 항생제 처방이 실제로 효과가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교과서에 분명 그렇게 적혀 있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은 독특합니다. 보통 감기를 비롯한 바이러스성 상기도 감염(급성) 증세로 병의원을 찾는 환자의 80∼90%는 이미 약국에서 이러저러한 약을 먹은 후 병세가 심해져서 찾아옵니다. 합병증을 달고 오는 거죠. 누런 가래가 나오거나 기관지염 증세를 동반하는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으면 폐렴이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방치하면 죽을 수도 있죠. 그런데 어떻게 항생제를 안 씁니까. 기관지염이나 폐렴은 방사선 촬영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2차 감염 증세의 직전 단계는 담당의사만이 판단할 수 있어요. 항생제 처방 빈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의사를 비난하면 소신 진료는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