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하순 어느 날,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호남선 송정리역사를 빠져나오니 화가 박태후(朴太侯·51)가 서 있다. 희끗희끗해진 긴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뒤로 묶고 통이 넉넉한 바지를 입은 모습에서 그의 삶을 반쯤은 읽어낸다.
먹물에 젖은 큼직한 붓을 종이에 투박하게 문질러 앙증맞은 새를 그려내는 화가 박태후. 그는 원래 공무원이었다. 원예고를 졸업하자마자 광주고등법원 정원사가 되었고, 군대를 다녀와서는 광주농촌지도소에서 근무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간대학에 편입해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내친김에 대학원까지 마쳤다. 국전과 서예대전에 줄줄이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정원의 꽃과 나무가 내다보이는 거실 창, 그 곁에서 오누이처럼 닮은 부부가 직접 덖은 차를 마시고 있다. 함께한 세월이 더해지면서 부부는 서로를 닮고 또 자연을 닮아가는 듯하다.
허리춤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은 자유로워진 세월을 말해준다. 그는 1996년, 공무원 연금을 받을 자격이 되는 근속 20년을 채우자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철밥통’을 내동댕이쳤을 때 나이 마흔한 살. 100만원 남짓한 연금에 남은 인생을 기대기엔 너무 젊은 나이다. 그러나 그에겐 더 늙기 전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전원에서, 그림을 그리며, 출퇴근 없는 인생’을 사는 것.